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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봄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
“진짜 사용자 여가부는 처우개선 책임져라”

아이돌봄 노동자들이 7월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발맞춰 전국 집중집회를 연다.

아이돌봄 노동자들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 지원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로, 대부분 50대 이상 여성 노동자들이다. 아이돌봄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공공연대노조 측은 그간 여가부에 처우 개선을 요구해 왔다.

그간 본지가 보도했듯, 아이돌봄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매우 열악하다. 경조사 휴가·교통비·경력수당·생활임금 보장 등 노동자들의 요구는 수용돼야 마땅한 것들이다.

아이돌봄 노동자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유급 경조사 휴가를 쓸 수 없다. 가정 방문에 드는 교통비도 노동자 주머니에서 나간다.

업무에 필요한 교육과 각종 건강검진을 위한 시간도 유급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오래 일해도 경력에 대한 보상이 거의 없다.

노동자들은 휴게시간 제도 개선도 요구해 왔다. 정부는 주 52시간제 도입에 따라 8시간 일하면 1시간의 휴게시간을 무조건 가지라고 하지만, 아이돌보미의 실정에는 맞지 않다. 직장 다니는 부모들은 보통 아이를 10시간 이상 맡겨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8시간 이상 이용할 거면 돌보미를 두 명 이상 쓰거나, 그게 싫으면 친인척 불러 돌보게 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선생님이 갑자기 바뀌면 혼란스럽다. 게다가 돌봐 줄 친인척이 있다면 애초에 돌봄서비스를 신청했겠는가? 정부의 비현실적인 주문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서비스 신청을 중단하는 가정이 늘어, 돌봄 노동자들의 일감도 줄었다. 노동자들은 이 직종을 휴게시간 예외 직종으로 분류하고 그만큼의 가산수당을 지급하라고 요구해 왔다.

무책임의 극치

이처럼 노동자들의 요구는 정당하고, 대부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돌봄의 질 개선과 직결된다.

하지만 여가부는 “근로계약서 상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모르쇠해 왔다. 올해 초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졌을 때 반짝 대응책을 내놓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뒷전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말대로 여가부가 “진짜 사용자”다. 임금을 비롯한 아이돌보미의 노동조건은 모두 여가부의 사업 안내서대로 정해진다. 서비스 제공기관이 업무를 위탁받지만, 예산과 사업 계획은 모두 여가부가 정하는 것이다.

그간 노동자들을 채용한 서비스 기관(건강가정지원센터 등)은 ‘여가부가 결정권자라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한다’며 노동자들을 돌려보냈다. 하지만 여가부는 ‘우리는 당신들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노동자들을 돌려보냈다.

이렇게 정부와 서비스 기관이 서로 공을 떠넘기는 동안, 노동자들의 분노는 커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공약한 정부가, 정작 자신들이 운영하는 돌봄 일자리에서는 위탁 구조를 이용해 처우 개선 책임을 내팽개친 것이다.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분과 배민주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여가부는 말로는 우리와 ‘한 방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확답하지 않습니다. ‘성평등 정부’를 표방하면서 뒤에선 호박씨를 깝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것 말고 이전 정부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이 정부 하에서 서비스 기관들은 아이돌봄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자 이를 뒤집으려고 항소했다. 노조에 따르면, 항소는 사실상 여가부가 결정한 것이다. 1심 판결에 따른 체불 임금(각종 법정 수당)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결국 정부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장관

그런데 최근 광주고법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아이돌보미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노동자들의 상심과 분노가 클 수밖에 없다. 노조는 대법원에 상고하려 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터무니없이 협소한 기준으로 아이돌봄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정했다. “돌보미는 기관에 출퇴근할 의무가 없고,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더라도 기관은 제재를 가할 권한도 없다. 소정근로시간을 정한 바 없고, 활동 기간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마치 아이돌보미가 사용자에 종속되지 않은 ‘프리랜서’인 양 취급한 셈이다.

그러나 위 요소들은 대부분 정부가 사용자 책임을 피하려고 아이돌봄 노동자들에게 강요한 조건일 뿐, 노동자들이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다.

또한 1심 재판부도 인정했듯이, 여가부의 업무를 위탁 받은 서비스 기관들은 직접 면접을 통해 아이돌보미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고, 보수교육과 주의사항 지시 등 노동자들의 업무 수행을 지휘·감독해 왔다. 항소심 재판부도 ‘서비스 제공기관들이 월 60시간 이상 근무한 돌보미를 4대 보험에 가입시키고, 1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주고, 수당에 대한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한 점 등 소속 근로자로 볼 여지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항소심 재판부가 아이돌봄 노동자들이 “종속노동관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것은, 위탁 구조를 이용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해 온 정부의 오랜 꼼수를 합리화해 준 것이다.

“진짜 사용자” 여가부는 부당한 판결을 앞세워 아이돌봄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해선 안 된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묻고 있다. 가장 열악한 조건의 여성 노동자들을 내치는 게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대통령과 여가부 장관의 실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