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아이돌보미 아동학대 대책:
개별 노동자에게 책임전가 말고 공공복지 지출을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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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알선한 ‘아이돌보미’(이하 아이돌봄 노동자)가 14개월 된 영아를 학대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아이돌봄 노동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 강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특별 신고창구를 설치해 돌보미에 의한 학대를 신고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전체 아이돌봄 노동자에 대한 학대 예방 특별교육도 실시하겠다고 한다. 아이돌봄 신청 가정에 CCTV 설치를 지원하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라 믿고 맡겼건만 아이가 학대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가 받았을 충격과 배신감, 불안감을 이해한다. 아동학대 근절 대책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과 내용이다. 정부와 기성 언론들은 아이돌봄 노동자들을 마치 잠재적 아동학대범 취급하는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돌봄 노동자 개개인의 인성 문제에만 협소하게 초점을 맞추는 경향도 있다.
이 속에서 정작 정부(특히 책임 부서인 여성가족부)가 보육 서비스의 공공성을 내팽개친 책임은 가려지고 있다. 이것이 질 좋은 돌봄 서비스 제공을 저해하는 주된 원인인데도 말이다.
아이돌봄 지원사업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에 이른바 ‘일 가정 양립 정책’의 일환이자,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만 12세 이하 아동을 둔 가정이 정부에 서비스를 신청하면 아이돌봄 노동자가 집에 와서 아이들을 시간제나 종일제로 돌보는 제도다. 저소득 한부모 가정이나 맞벌이 부부가 우선 지원 대상이다.
전국적으로 약 6만 5000가구가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2018년 여가부 집계). 아이돌봄 노동자의 숫자도 2만여 명에 이른다. 대부분 50대 이상의 여성 노동자다. 이용 가정의 만족도는 96퍼센트나 된다. 아이와의 유대관계가 형성돼 “제2의 엄마”로 불리기도 한다.
정부가 잘해서 만족도가 높았던 게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무책임함과 매우 부실한 노동조건 하에서도 대부분의 아이돌봄 노동자들이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일해 온 덕분이다.
“제2의 엄마”
아이돌봄 노동자들이 말하는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다 노동법상 받아야 할 수당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유급 경조사 휴가조차 쓰지 못하는 서러운 처지다. 대다수가 시간제로 일하는데 (4대보험이 보장되는) 월 60시간을 채우기 어렵고, 이 일만 해서는 기본적인 생계도 꾸리기 힘들다.
집안 전체를 비추는 CCTV를 설치해 아이돌봄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는 이용자들도 있다. 아이가 자는 동안 잠시 핸드폰 보는 것조차 문제 삼는 이용자들도 있다. 노동자들은 발가벗겨진 채로 일하는 기분일 것이다. 인권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CCTV가 싫으면 거부하면 된다’고는 하지만, 그랬다가는 일자리를 잃기 십상이다. 이용자가 싫어할까 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사용한 휴지나 생리대를 고스란히 싸 갖고 오는 노동자들도 있다.
분명 정부가 만든 공공 일자리이고 여가부가 노동조건을 결정하지만, 아이돌봄 노동자들은 정부에 고용돼 있지 않다. 지자체 산하의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이용자와 노동자를 연결해 주는 데 급급할 뿐, 노동자들의 고용을 책임지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실비로 지급되던 교통비 3000원마저 삭감했다. 그 밖에 수당 체불 등의 문제도 불거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돌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분과가 출범했고, 조합원이 3500여 명으로 늘었다.
노동자들이 법정 투쟁을 벌인 결과, 2017년 서울 고법은 아이돌봄 노동자들의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지난해에는 광주지법에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도 인정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아이돌봄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받는 근거를 흐리려고 2016년부터 아이돌봄 노동자의 활동일지를 생략하고 간담회, 회의 등도 없앴다(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 노동자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피드백이 사라진 것이다.
공공연대노조 이봉근 정책국장은 이번 학대 사건 같은 일들의 근본 원인에는 이 같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성을 인정하면 그만큼 지급해야 할 돈이 느니까, 노동자들을 더 싸게 부려먹으려다가 정부 스스로 공공성을 위태롭게 만든 것이다.
공공 서비스
문재인 정부라고 예외가 아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더니, 정작 정부가 고용한 여성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친다. 가령 여가부는 지난해 아이돌봄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광주지법 판결에 항소했다. 노동자들이 노조 출범식에서 여가부의 소송 취하를 주요 요구 중 하나로 건 까닭이다.
또한 아이돌봄 노동자들은 누더기가 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에 배신당한 수많은 노동자들 중 하나가 될 듯하다.
애초 정부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는 ‘아이돌보미’도 포함됐었다. 하지만 지금껏 아무런 기약이 없다.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던 ‘사회서비스공단’에 고용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 공약 자체가 거듭 후퇴했을 뿐 아니라 아이돌봄 노동자들이 여기 고용된다는 기약도 없다.
그러나 아이돌봄 사업은 노동계급을 위한 공공서비스다. 직장 때문에 아이 돌봐 줄 사람이 절실한 사람들(특히 저소득 워킹맘과 한부모)과 일자리가 필요한 여성 노동자들 모두에게 필요하다.
더 많은 정부 투자와 보완이 필요한 이유다. 미봉책 대신에 아이를 돌보는 노동자와 맡기는 노동자 모두가 서로 믿고 안심하며 만족할 수 있는 대안 논의가 더 활발해져야 한다.
아이돌봄 서비스는 필요로 하는 가정에게 무상으로 제공돼야 한다. 연간 지원 가능한 시간(720시간)을 다 사용해 정부 지원이 끊기면 본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해서 이용을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 대기자 수가 많아 오래 기다려야 하는 현실도 개선돼야 한다.
다른 공공 서비스도 마찬가지지만, 돌봄 노동의 질은 특히나 노동 조건과 관련이 높다. 돌보는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푸대접하면서 ‘사랑으로 아이 돌보기’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기본적 생계비도 보장되지 않는 조건에서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된 노동을 제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즉, 돌봄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돼야 돌봄의 질도 개선될 수 있다. 그런 조건 개선 없이 노동자들 개인의 양심이나 도덕적 헌신성만 요구하는 건 돌봄 노동의 개선을 우연에 맡기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노동자들만 더 옥죄고 진정한 해결은 요원하게 만들 미봉책에도 반대한다.
아이 돌봄처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고 까다로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존중 받아야 마땅하고, 무엇보다 고용과 임금이 안정돼야 한다. 정부가 직접 고용하고 정규직화해, 아이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의 인권과 노동자들의 인권이 함께 존중돼야 한다.
그리고 돌봄의 질을 높이도록 정부가 투자해 노동자들에게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 학대 같은 일도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아이와 부모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국가는 애초에 기업주들에게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고 이런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마땅히 국가가 책임져야 하고, 재원은 기업주들에게 세금을 물려 충당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