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특조위 결과 발표 :
민영화·외주화가 죽음의 원인임을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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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4개월간의 조사를 마치고 8월 19일 진상조사 결과와 권고안 22개를 발표했다.
특조위 발표 내용을 보면, 역대 정부들이 추진한 발전 민영화·외주화 정책이 발전소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몰고 근무조건(고용과 임금 등)을 악화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 위기를 이유로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 일환으로 발전 업무를 한전에서 떼어 낸 뒤 민간에 판매하기 좋게 화력발전을 회사 5개로 분할했다.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화력발전사 민간 매각은 좌절됐지만 말이다.
역대 정부들은 발전소의 김용균 씨가 했던 연료·환경설비 운전, 경상정비의 외주화를 확대했다. 분할된 화력발전사들은 경쟁체제 속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업무를 최저가 계약에 낙찰했다. 안전 책임도 떠넘겼다.
최저가로 입찰한 민간 하청업체들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최소 인원만 저임금으로 고용했다. 이번 특조위 조사에서 하청업체들이 발전사로부터 받은 노무비 중 50퍼센트만을 인건비로 지불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민영화와 경쟁체제는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위험업무를 증가시켰다. 화력발전사들은 연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저질의 석탄을 도입했다. 효율이 낮아 전기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석탄을 실어야 했고, 이송 과정에서 더 많은 낙탄이 쏟아져 컨베이어 벨트의 고장이 잦았다.
노동자들은 컨베이어 벨트 기동 중에도 낙탄을 처리하고 위험하게 몸을 밀어 넣고 사진을 찍어 보고해야 했다. 김용균 씨는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돼, 홀로 근무하다가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그래서 특조위는 김용균 씨가 “작업지시[를] 다 지켜서 죽었다”고 했다. 개인 과실이 아닌 민영화와 경쟁 체제가 낳은 위험한 구조 때문에 죽은 것이다.
권영국 특조위 간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 정책에서부터 발전사의 경쟁 방침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사실은 한 세트를 이루어 김용균 님을 죽음에 이르도록 했다고 저희는 추측했습니다.”
또한 특조위가 공개한 발전소 현장은 1급 발암 물질(결정형 유리규산)을 비롯 온갖 유해 물질(벤젠, 고농도 일산화탄소 등)들이 가득했는데, 주로 외주화한 업무 현장들이었다. 그런데 하청 노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안내도 받지 못했을뿐더러, 안전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작업을 하고 있었다.
“20년 동안 발전소에서 일했지만 1급 발암 물질이 현장에서 그렇게 많이 발생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발전사는 알았습니다.”(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
발전사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주화가 본격화한 지난 10년간 재해가 428건 일어났는데, 95퍼센트가 하청업체에서 발생했다. 외주화 확대가 재해를 증가시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윤을 사람과 안전보다 우선한 결과다.
특조위 보고서에 적시된 발전소의 실상은 김용균 씨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살인 병기”와 다르지 않았다. 김용균 씨 어머니는 특조위의 결과 발표를 보며 여러 번 눈물을 쏟아 냈다.
특조위는 정부의 안전 관리·감독과 법적 제재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용균 법’이라고 잘못 불린 개정 산안법에서도 발전소와 같은 위험 업무들은 도급 금지와 도급 승인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외주화로 인한 위험을 노동자가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처벌 규정의 하한형을 정하지 아니하여 엄정한 처벌을 통한 예방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특조위 보고서)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개정 산안법에 크게 불만을 나타내며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살인 병기
특조위는 권고안 22개를 제시했다. 민영화·외주화 철회,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는 발전사가 직접고용 정규직화하고 경상정비 업무는 정비 전문 공공기관인 한전KPS가 직접고용 정규직화, 안전을 위한 필요 인력 충원, 산업안전보건법령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이 주요 내용이다.
대체로 노동자들과 노동운동이 요구해 온 것들로 지지할 만하다. 운전과 정비 모두에서 특조위가 권고한 정규직 전환안은 이전 정부 방안보다 진전된 내용이기도 하다.
공공운수노조와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은 8월 20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에게 “정부와 여당이 설치한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즉각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특조위가 경상정비 업무도 발전사가 통합·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보면서도 “단계적 대안”(한전KPS 직접고용)을 제시한 것은 아쉽다. 운전과 정비 업무 모두를 발전사가 직접고용하는 것은 당장은 무리라고 본 것이다. 일부 노동자들도 이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듯하다. 운전이든 정비든 하나의 민간업체에 소속돼 있는데다 발전사 직접고용 목표를 내걸고 함께 싸우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특조위 결과 발표 다음날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는 특조위의 권고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무총리 훈령으로 마련된 특조위의 권고는 강제력이 없어 정부가 제대로 이행할 것이라고 기대하기가 어렵다. 김용균 씨 사망 이후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불린 개정 산업법과 이조차 누더기로 만든 시행령 개악, 발전사들의 정규직 전환 반대와 정부의 수수방관 등 일련의 상황을 보면 말이다.
발전소 산재 사고도 계속 발생되고 있다. 김용균 씨 사고 이후 특조위가 제보 받은 발전소 산재 사고는 11건이었다. 산재 은폐도 6건이나 됐다. 최근 일본과 경제 갈등을 빌미로 문재인 정부는 노동개악과 규제 완화 정책들을 줄줄이 쏟아 내고 밀어붙이고 있다. 이는 발전소 산재 사고를 더욱 늘릴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특조위의 권고안을 “존중”할 것이라 믿을 수가 없다. 특조위가 정책 권고안 22개 외에 이행 점검을 위한 권고안을 별도로 제시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일 것이다.
집배노동자 사망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던 ‘집배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도 이행 점검 기구를 별도로 두었지만 정부와 사측은 권고안을 전면 폐기해 버렸다. 따라서 정부를 강제하려면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 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은 8월 20일 기자회견에서 특조위 권고안 이행을 요구하며 8월 31일 서울 상경 집회 등 투쟁 재개를 선포했다. 특조위 결과 발표를 계기로 발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