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죄죄한 개정 산안법, 더 누더기 만든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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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부터 시행될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의 시행령·시행규칙을 4월 22일 발표했다.
개정 산안법은 고(故) 김용균 씨 사망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안 그래도 보잘것없던 정부안이 국회에서 더 후퇴해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은 그것을 한층 더 후퇴시키는 내용들이다.
이것도 제외, 저것도 제외
우선, 원래도 제한적이었던 ‘위험의 외주화’ 금지 범위를 한번 더 좁혔다.
이미 개정 산안법은 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외주화를 금지하고 있지 않다. 김용균 씨의 목숨을 앗아간 컨베이어 벨트 사고를 포함해, 중대 산업재해는 압도적으로 건설업이나 제조업에서의 사고성 재해인데 이런 것들은 외주화 금지 “위험 작업” 규정에서 다 빠졌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은 “위험 물질 취급 작업”마저 4가지 화학 물질과 관련된 설비의 개조 또는 해체 작업만으로 축소시켰다. 게다가 기업주가 해당 물질을 제거했다는 자료를 제출하면 외주화를 허용해 주기로 했다.
원청 책임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이것의 적용 대상 또한 이것 저것 ‘제외’ 투성이다.
▲ 원청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고 시행령이 규정한 “위험 장소”는 22곳에 불과, 방문 서비스 노동(에어컨 수리 등)·건물 외벽 페인트칠·청소 등은 제외
▲ 건설기계 27개 기종 중 덤프·굴삭기·이동식 크레인 등 사고 다발 기계들 제외하고 4개에만 적용
▲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 조치는 관련 직종 50개 중 9개에만 적용. 화물 운송, 방송 제작 관련 노동은 제외
▲ 사무직 근로자만 사용하는 사업장(이는 모호한 규정인데, 서비스직이 여기에 해당 가능) 제외
한편, 시행규칙에서는 사업주가 작업중지를 해제하겠다고 신청하면 4일 이내에 해제심의위원회를 열도록 강제했다.
사고 발생 후 발동되는 작업중지는 추가적 위험을 막고 근본적인 사고 원인을 찾아내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4일 만에 하라는 것은 사측이 문제를 대충 덮고 넘어갈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뜻에 불과하다.
이번 시행령 후퇴는 개정 산안법조차 마뜩치 않아하는 기업주들을 의식한 것이다. 여전히 경총은 이번 시행령이 충분히 후퇴하지 않았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문재인은 개정 산안법을 ‘김용균 법’이라며 떠들썩하게 생색내며 문제가 해결된 양 여론을 호도했다. 그러나 여론의 시선을 돌린 후 결국엔 이런 식으로 누더기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사망 사고 발생 시 작업을 중지한 뒤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을 들어 안전 확보 여부를 확인하겠다”(문재인),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 확보됐다”고 해야 작업을 재개하겠다”(노동부 지침)던 약속은 다 어디로 갔나?
“개정 산안법은 국민 우롱”
4월 17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열린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쟁취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제2, 제3의 김용균을 막겠다고 하셨는데 그 약속은 지금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요? ... 사망 사고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셨는데 이런 곳[운전 설비, 컨베이어 벨트, 조선업, 건설업 등]을 집중 관리해야 안전 사고 줄이는 길이 되는 것 아닙니까?
“개정된 산안법은 솜방망이 처벌, 처벌 같지 않은 처벌이라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됩니다.
“나라가 우리를 지켜 주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 사람답게 살려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안법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 용균이 동료들을 살릴 수 있는 법이기 때문에, 저는 사력을 다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 해에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는 무려 2400여 명에 달한다. 하루에 6명 꼴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먼저 살리려는 것은 진짜 죽어나가는 이 노동자들이 아니라 경제 위기에 돈벌이가 줄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기업주들이다.
노동개악 반대
산업재해를 줄이려면 산안법 시행령 개악에 대한 항의와 함께, 당면한 노동개악에도 맞서야 한다.
탄력근로제 개악은 과로사 합법화나 다름없다. 최저임금 개악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위험·장시간·야간 노동으로 몰아 넣을 것이다.
한 해 500명 이상 산재로 사망하는 건설 현장의 노동자나 화물 노동자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단 하루도 미룰 이유가 없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권리를 위해 문재인 정부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