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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임금격차,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문재인은 대선에서 성별 임금격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3퍼센트로 축소하겠다고 약속했다. OECD가 발표한 2015년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7퍼센트로 1위다.

그러나 출범 일곱 달이 넘도록 문재인 정부는 실질적인 성별 임금격차 해소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재인은 최초로 고용노동부 장관에 여성(한국노총 간부 출신인 김영주)을 임명했지만, 지금껏 나온 ‘대책’은 고작 성별 임금공시제와 여성 승진할당제 도입 얘기뿐이다.

보잘것없는 성별 임금공시제

성별 임금공시제는 기업에 남녀 임금 통계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일 뿐 고용주들의 임금 차별을 규제하는 것과 무관하다. 기업들은 알량한 성별 임금 공개조차 반발하지만, 설사 법률로 임금 공개를 의무화한들 기업이 알아서 임금 차별을 없앨 리는 없다. 이미 남녀고용평등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있지만, 기업들이 이를 간단히 무시해 유명무실하다.

요즘 여성단체와 학계의 온건 개혁주의자들은 올해 독일에서 제정된 성별 임금공시제에 주목하며 이를 성별 임금격차 해소책으로 부각한다.

그러나 이 법은 200인 이상 사업장의 노동자가 자기 임금의 기준에 관한 정보를 얻을 개인적 권리가 있음을 인정할 뿐이다. 개별 노동자가 인사처에 가서 자기 임금에 관한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 500인 이상 사업장의 고용주들은 동일임금과 관련해 피고용인의 임금 체계를 정기적으로 ‘체크’만 하면 된다.

여성 승진할당제

고용노동부 장관 김영주는 성별 임금공시제 도입과 함께, “공공부문부터 여성 승진할당제를 논의”하고 “능력 있는 여성이 승진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에서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은 부당한 차별이므로 이를 부수는 조처는 물론 필요하다. 한국은 OECD 나라들 중에서 관리직과 고위직의 여성 비중이 유난히 낮다.

그러나 여성 관리자·임원이 크게 늘어난다고 해서 여성 노동자 임금이 저절로 오르지는 않는다.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고위직 여성들이 상당히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여성 노동자의 임금은 (남성 노동자처럼) 정체되거나 심지어 삭감됐다.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의 일자리, 임금, 복지를 공격했을 때, 고위직 여성들도 그에 가세했다.

성별 임금격차 해소의 초점은 십중팔구 중간계급 여성들이 수혜자가 될 승진할당제가 아니라 노동계급 여성들의 조건을 크게 개선하는 데 맞춰야 한다. 다수가 저임금 직종·직급에 몰려 있는 여성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 또한 양육·부양·간병 등을 사회가 책임지고 일터의 노동시간도 대폭 단축해, 여성의 경력 단절을 없애야 한다.

직무급제 도입이 성평등 촉진?

문재인 정부와 협력하는 ‘거버넌스’로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한다는 여성·노동 운동 내 개혁주의자들의 구상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거나 심지어 정부의 이간질에 이용될 위험마저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직무급제 도입 계획을 밝히며 이를 비정규직·여성 등 차별받는 노동자를 위한 ‘공정임금’인 양 얘기했다. 여성·노동운동의 상당수가 직무급제를 더 평등한 임금 체계로 여겨온 것을 겨냥한 것이다. 직무급제야말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이룰 수 있는 방식이라고들 한다.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이 필요하다 올해 3·8 여성의 날 집회 ⓒ이미진

출산과 양육 부담으로 인해 경력 단절이 심한 여성들에게는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가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직무급제가 자동으로 성평등을 촉진하는 것은 아니다. 직무급이 정착된 유럽과 미국을 보면, 성별 임금격차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공정한 직무 평가’가 자본주의에 구조화된 성별 직종 분리를 허물었다는 증거는 없다. 서구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저임금 직종이 다수인 산업에 몰려 있다. 여성은 계속해서 개별 가정에서 아동, 노인, 환자를 무보수로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는 긴축 정책으로 공공서비스가 축소돼 노동계급 여성들의 부담이 증가해 왔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직무급제 도입 목적은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임금 상승 억제다. 대기업의 정규직과 근속 연수가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이 핵심 표적이다(관련 기사: 김하영,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정임금’은 정말 공정한가?’, 〈노동자 연대〉 228호). 문재인 정부는 심지어 올해 비교적 큰 폭으로 오른 최저임금 인상안의 효과를 무력화하려고도 한다.

노동계급의 단결된 투쟁이 가장 효과적인 방식

한국의 여성 임금은 1980년 남성 임금의 44퍼센트 정도에 불과했지만 계급투쟁 고양기에 여성 노동자들도 적극 투쟁해 남성의 63퍼센트 수준으로 격차를 좁혔다. 1987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과 임금 인상 투쟁이 활발히 일어났는데, 동일임금 투쟁도 많이 일어났다.

그러나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기업주들과 국가가 노동계급의 일자리와 노동·생활조건을 전반적으로 공격하면서 2000년대 들어 임금격차 축소가 중단됐다. 2000년 이래 한국이 OECD 성별 임금격차에서 줄곧 1위를 지켜 온 데는 1998년 이후 10년을 집권한 민주당 정부도 톡톡히 기여했다.

유럽에서도 남녀 동일임금을 향해 일보 전진했을 때는 1968년부터 1970년대 초반 노동자 투쟁 상승기였다. 2012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지자체 고용 노동자(여성이 대다수다)의 임금이 정부·보건 부문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보다 상당히 적다는 게 성차별의 결과임을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승리는 5년간 노동자 수천 명이 참가한 운동 덕분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서비스노조(ASU)가 미조직 부문 조직화에 나서고 노동단체들이 시위를 벌였다.

여성 다수가 저임금 직종이나 하위 직급에서 일하므로,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동일임금 투쟁뿐 아니라 임금 인상 투쟁도 중요하다. 육아의 사회적 지원 확대,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도 필요하다. 그 비용은 기업들이 내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이 이런 요구를 내걸고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성별 임금격차 해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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