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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빈 강정’ 사회서비스원

올해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이 서울, 경기, 대구, 경남에서 운영되고 있다. 내년에는 지자체 11곳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을 공약했다. 대부분 민간 위탁으로 제공되는 사회서비스 부문에서 정부가 주도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민간 위탁의 폐해가 워낙 컸던 탓에, 많은 사람들이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열악한 서비스와 노동조건이 개선되길 원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산산조각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때 약속한 사회서비스공단의 규모와 재정을 대폭 축소해, 사회서비스원을 만드는 것으로 후퇴한 바 있다. 이제는 그 후퇴한 계획에서마저 더 후퇴하고 있다. 현재 시범 운영하는 사회서비스원 시설과 고용 규모는 꾀죄죄하다.

2022년까지 사회서비스원이 총 1만 1000여 명을 고용한다는 계획은 지난해에 내놓은 6만 3000여 명 고용 계획에서 규모가 대폭 줄어든 것이다. 이조차 올해 계획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이것은 전체 돌봄 노동자 규모의 1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여전히 사회서비스의 대부분을 이윤 중심의 민간 업자에게 내맡기겠다는 것이다.

거듭된 후퇴

양질의 일자리와 서비스는 공공시설 확충과 대폭적인 재정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지자체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제대로 투자하지 않는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경우, 기껏해야 올해 120여 명을 고용하는 게 전부다. 올해 계획에 비춰 봐도 3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 현재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하나도 없다. 전부 민간 위탁인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직영 어린이집을 내년부터 3년간 고작 15곳만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장기요양시설도 내년부터 3년간 6곳만 운영하고, 사회복지시설은 아예 제외했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대폭 향상되지 않으면 질 좋은 사회서비스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라는 홍보와 달리,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시간제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월급제 노동자의 경우에도 기본급에 교통비, 식대 등이 포함돼 온전한 생활임금(서울시 생활임금은 올해 1만 148원, 내년 1만 523원)조차 받지 못한다.

타 지역의 사회서비스원은 더 형편없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서비스원에 최저임금 가이드라인과 수익성 위주의 독립채산제를 적용한 탓에 민간과 전혀 다를 바 없이 운영된다.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만 주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처우개선비를 줄 수 없다는 곳도 있다. 운영 주체만 사회서비스원으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누더기가 될 사회서비스원법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사회서비스원법이 하루 빨리 제정돼, 재정 지원과 사회서비스원 우선위탁이라도 이뤄지길 바란다. 하지만 우선위탁 내용이 포함된 사회서비스원법안(민주당 남인순 의원안, 사실상의 정부안) 제정이 1년 반이 넘도록 미뤄지고 있다.

현재 사회서비스원은 민간업체와 경쟁해 운영권을 따내야 하는 처지다. 최근 대부분의 사회서비스원이 국공립보육시설 위탁자 선정 과정에서 민간업자와의 경쟁에서 밀려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국회에 계류돼 있는 민주당 남인순 의원 법안은 일자리와 서비스의 질을 충분히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남인순 법안은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과는 달리 ‘공공인프라 확충’과 ‘정부의 재정 지원’이라는 핵심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한편 윤소하 의원의 사회서비스 법안도 독립채산제와 경영평가를 받아들이는 약점이 있다.)

그 동안 문재인 정부는 민간과 “상생”을 강조하며 민간업자들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기존의 민간 위탁은 건드리지 않고 신규 국공립 시설과 위·불법 시설만 사회서비스원이 맡도록 했다.

지금은 정부와 여당이 민간업자들을 핑계 삼아 이 부족한 법안조차 후퇴시킬 공산이 크다. 이미 이를 위한 물밑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국 정국에서 우파 야당에 밀린 문재인 정부와 여당으로서는 기업주들의 환심을 사고 내년 총선에서 우파 쪽 표를 빼앗는 게 사활적일 것이다.

민간업자들은 사회서비스원으로 자신의 이윤이 침해당할까 봐 국회에 계류돼 있는 사회서비스원법을 후퇴시키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이들은 신규, 위·불법 국공립 시설을 사회서비스원에 우선위탁하는 조항과 노동자 처우 개선, 서비스 질 등을 평가 기준에 포함하는 내용 등을 삭제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만약 정부와 여당이 더 후퇴한다면 아예 사회서비스원의 취지를 없애는 누더기 법이 될 것이다.

10월 26일 올바른 사회서비스원법 제정 촉구 돌봄노동자 행진 ⓒ출처 공공운수노조

아쉽게도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민간 사용자들과 우파의 반대를 막기 위해 정부와 여당에 독립적으로 맞서지 않고 공조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남인순 법안이 여러 약점이 있지만, 일단 통과된 후 개선해 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간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가 일자리위원회 공공전문위원회 등을 통해 사회서비스원 관련 논의에 개입해 왔지만, 성과는 거의 얻지 못했다. 정부는 재정 지원 확대, 임금 가이드라인, 공공인프라 확대 등에 대한 노조의 핵심 요구를 결코 수용하지 않았다.

현재 미흡하기 짝이 없는 사회서비스원 상황을 보면, 질 좋은 일자리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거짓임이 거듭 확인되고 있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가 민간 업자들에 일관되게 맞서려면 시장과 이윤을 지키려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도 독립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