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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레바논 질산암모늄 폭발 사고: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정부를 무너뜨린 레바논 반정부 시위

레바논에서 질산암모늄 폭발 사고 후 벌어진 거센 항의 시위에 밀려 내각이 총사퇴했다. 지난해 ‘왓츠앱 세금 부과’ 조처가 촉발한 거리 시위로 새 총리가 들어섰지만 7개월 만에 몰락한 것이다.

질산암모늄 폭발 사고 전에도 레바논에서는 다시금 시위가 일고 있었다. 레바논인들은 정부의 무능한 코로나19 대처, 그나마 있던 일자리·공공시설마저 악화시킨 긴축 조처와 시장 자유화 정책, 시위대에 발포하는 국가 폭력에 항의해 왔다. 질산암모늄 폭발은 이미 한계에 이른 인내심의 둑을 무너뜨린 마지막 물방울이었을 뿐이다.

지금 시위대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한다. 레바논인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특정 정당이나 인물이 아니라 전반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지난해 사임한 전 총리 등 몇몇 정치인들이 시위에 참가해서 숟가락을 얹으려 했지만 야유와 물병 세례만 맞았다.

많은 레바논인들은 레바논 특유의 의석 배분 체제 탓에 부패한 인물들이 계속 영향력을 유지한다고 본다. 레바논에서는 헌법에 따라 기독교와 이슬람교 정당들이 의석을 배분받는다. 사실상 종교지도자들 간 협상으로 정권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 제도는 레바논을 식민 지배한 프랑스가 1943년 레바논을 떠나면서 만든 제도에 기원이 있다. 당시 프랑스에 의존적인 기독교 자본가들의 권력 유지를 돕기 위해 이런 제도를 만든 것이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중동에서 종교 간 화합이 불가능하다며 이런 조처를 정당화했다. 훗날 미국도 똑같은 거짓말을 하면서 2003년 침공 이후 이라크에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레바논에서든 이라크에서든 평범한 사람들은 기독교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를 뛰어넘어 단결해서 지배자들에 반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질산암모늄 폭발 사고 직후 레바논을 방문해, 새로운 “정치적 합의”를 중재하겠다고 한 것은 뻔뻔한 짓이다.

한편 유엔과 미국 등은 레바논 정부의 부패가 너무 심각해서 “국민들에게 직접” 지원금을 나눠주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 이들의 진정한 의도는 레바논에서 서방의 입맛에 맞는 세력에 지원금을 집중해서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평범한 레바논인들을 빈곤과 후진적 정치 질서에 묶어 둔 것은 바로 그 제국주의의 영향력이었다.

오늘날 베이루트는 으리으리한 도시가 됐고 소수는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러나 평범한 레바논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올 연말까지 레바논인의 60퍼센트가 빈곤선 이하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레바논인들이 변화를 요구하며 다시금 거리로 나선 것은 부패한 지배자들과 그들과 연계된 제국주의자들의 협잡에 놀아나길 거부한다는 뜻이다.

제국주의 개입으로 점철된 역사

중동의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레바논도 제국주의 개입으로 점철된 역사를 갖고 있다.

1943년에 레바논은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다고 발표했지만 프랑스 군대는 3년이나 레바논에 더 머물렀다. 프랑스에 유리한 세력이 레바논에서 권력을 확실히 다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950년대 이집트에서 영국의 비호를 받던 왕조가 나세르의 혁명으로 타도되자 아랍 전역에 서방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물결이 일었다. 1958년 레바논에서도 아랍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 친서방 정부를 위협하자, 미국은 병력 1만여 명을 보내 레바논 공항과 항구를 점령하며 레바논 정부에 힘을 실어 줬다.

한편, 레바논의 남쪽 국경은 이스라엘이 강탈한 팔레스타인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레바논에는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살고 있고 그 탓에 이스라엘 등의 깡패 짓에 거듭 유린당했다.

중동의 모든 왕정과 독재자들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중동의 정권들이 서방 제국주의와 이스라엘의 강도짓에 굴복했음을 보여 주는 존재였을 뿐 아니라, 중동 곳곳의 빈민들이 동병상련을 느끼고 급진적이 되게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특히 팔레스타인과 국경을 맞댄 레바논과 요르단에서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운동이 현지의 반정부 운동과 쉽게 결합하곤 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모태가 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도 1970년대에는 요르단과 레바논에서 활동했다. 중동의 많은 지배자들이 이스라엘에 굴복하던 바로 그때에 이스라엘에게 도전한 PLO는 많은 급진적 운동들에 영감을 줬다. 아이러니하게도 PLO 자신은 요르단과 레바논 지배자들의 지원을 중시해서 각국의 반정부 운동과 선을 그었지만 말이다.

레바논에서는 좌파들과 PLO가 기독교 우익 파시스트 정당인 팔랑헤와 충돌했고 이는 1975년 내전으로 발전했다. 이웃한 시리아의 하페즈 알아사드(현재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아버지)는 레바논에 군대를 보내 좌파와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동을 억압했고 미국은 이를 지지했다. 시리아 군대는 2005년까지 레바논 북부 지역에 주둔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PLO를 뿌리 뽑으려고 1978년과 1982년에 레바논을 침공했다. 이 과정에서 팔랑헤의 무장 깡패들과 공조해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수천 명을 살해했다.(‘사브라·샤틸라 난민촌 학살’)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2000년까지 레바논 남부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레바논에서 소외된 시아파가 주로 사는 이 지역의 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의 주둔을 방치하는 레바논 정부에 분노했다. 헤즈볼라는 이 지역 시아파들을 중심으로, 그러나 수니파와 다른 종교까지 포괄하며 이스라엘에 맞선 세력으로 성장했고 2000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철군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자 2006년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뿌리 뽑겠다며 레바논을 재침공했다. 1년 전 수도 베이루트에서 서방의 지원을 등에 업은 우파 단체들의 시위로 시리아가 철군한 것을 보며 고무받은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물리쳤다. 이는 국제적으로 큰 사건이었다.1948년 창건 이래 이스라엘의 첫 패배였던 것이다.

중간계급 반제국주의 운동의 배신

헤즈볼라가 2000년 이스라엘 철군에 일조한 데 이어 이스라엘과 직접 맞붙은 2006년 전쟁에서도 승리하자 헤즈볼라의 영향력은 대단히 커졌다. 헤즈볼라는 이란과 시리아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데다가, 이스라엘에 대한 레바논인들의 뿌리깊은 분노를 대변하고 시아파 교리에 편협하게 얽매이지 않은 덕분에 이스라엘의 허를 찌르는 군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헤즈볼라는 대중 조직으로 공개적인 정당 활동을 했고, 자체적인 학교와 병원 등도 갖고 있다. 레바논 정부가 외면한 많은 빈민에게 오랫동안 복지를 제공하며 지지를 받았다.

음모적 테러를 자행하는 알카에다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알카에다와 헤즈볼라를 똑같이 취급했고 헤즈볼라를 제거하려 했다. 헤즈볼라는 적대적인 레바논 정치 환경에서도 평범한 레바논인들의 지지 덕분에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성장할수록 모순에 부딪혔다. 커지는 영향력을 이용해 헤즈볼라는 2005년부터 정부에 입각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비판하던 정치 제도에 가담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2018년에는 최다득표당으로 부상했다.(의석이 가장 많지는 않았다.)

지난해 대중적인 반정부 운동이 크게 부상했을 때 헤즈볼라의 깡패들은 시위대를 공격했다. 한마디로 헤즈볼라는 자신이 반대했던 체제의 일원이 됐다.

근본에서 이런 타락은 헤즈볼라의 계급 기반과 무관하지 않다. 헤즈볼라가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서 핵심적이던 병원과 학교 등은 두 곳에서 얻은 자금으로 운영됐다. 하나는 이란 정부였고, 다른 하나는 중간계급 출신 시아파 상인들과 사업가들의 지원이었다.

노동계급과 달리 중간계급은 자국에서 대자본으로 성장하고 자본주의 국가의 지원을 받아 세계로 뻗어 나가길 원한다. 이스라엘 침공 격퇴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제국주의 운동에 나설 수 있지만 제국주의 질서 자체에 도전하지는 않는다. 빈민들을 위한 일부 구호 사업에 돈을 낼 수는 있어도 급진적인 경제 정책에는 반대한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워지면 긴축 같은 자본가들의 ‘상식’에 더 수긍한다.

헤즈볼라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물리치고 정부 내 영향력이 커질수록 이런 태도가 두드러졌다.

2011년 이집트 혁명에 고무된 시리아인들이 혁명에 나서면서 시리아 정부와 오랜 동맹 관계인 이란의 영향력이 위협받자, 2013년 헤즈볼라가 시리아에서 반혁명의 전위부대가 돼 시리아인들을 살해한 것은 그 타락의 정점을 보여 줬다.

헤즈볼라가 이란과 시리아를 돕고 나선 것은 같은 시아파라는 종교적 이유보다는 세속적인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이란이 서방 제국주의에 맞서고 있으니까 선한 세력이라는 진영 논리에 빠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이란의 영향력을 우산 삼아 자신들도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착취와 자본주의 국가를 지키는 데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노동계급만이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최근 레바논 거리의 반정부 시위대 사이에서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다른 주요 정치인들과 함께 규탄의 대상이 됐다. 거듭 외세에 맞서 온 레바논인들은 헤즈볼라보다 더 나은 대안을 요구하고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에 기초한 운동만이 레바논과 중동 전역에서 제국주의에 진정으로 도전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레바논 파병 한국군(동명부대) 철군하라

유엔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비호해 왔다. 애초 팔레스타인 땅 절반 이상을 하루아침에 이스라엘에 양도하도록 강요한 것이 유엔이다. 레바논 문제에서도 유엔은 이스라엘을 비호해 왔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후 물러날 때마다 유엔은 ‘평화유지군’ 이름으로 레바논 땅에 병력을 주둔시키며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레바논 내 이스라엘 반대 세력을 감시해 왔다. 그리고 2006년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패배하자 이런 구실을 강화했고 한국의 동명부대도 이때 파병됐다.한국 청년들이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헤즈볼라를 감시하는 구실을 맡고 있는 것이다.

레바논 역사에서 봤듯 이스라엘은 호시탐탐 레바논에서 영향력을 확대를 노려 왔다. 레바논에서 다시금 격변이 일어나고 서방이 이를 이용하려고 드는 지금, 동명부대가 여기에 일조해서는 안 된다. 동명부대는 하루빨리 레바논에서 철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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