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반 남은 미국 대선:
서로 물어뜯는 트럼프와 미국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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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이 50일도 안 남은 지금 이전투구가 한창이다.
9월 13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지명 후 최초로 네바다주(州)에서 실내 유세를 열었다. 자기 정부의 권고에 따른 주정부의 방역 지침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나는 무대에 있어서 안전하다”는 둥 뻔뻔한 말을 쏟아냈다.
이날도 트럼프는 주되게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공격했다. 트럼프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가 “국내 테러 세력”이라고 비난했고, “거리로 나가 저들에게 ‘우리 시청 불태우지 마라!’ 하고 외치라”고 자기 지지자들을 부추겼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범죄시하는 선거 전략은 해묵은 것이다. 196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은 흑인 해방 운동과 반전운동 참가자들을 “범죄자” 취급하고 알량한 인종차별 완화 조처를 “역차별”로 모는 전략으로 득을 봤다.
이에 더해 트럼프는 대선이 현직 대통령인 자신에게 불리하게 “조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권력자들의 공격을 받는다는 구도를 부각하려는 것이다.
이는 2016년 선거운동 전략의 재판이기도 하다. 당시 트럼프는 ‘아웃사이더’를 자처해, 경제 위기와 오바마 정부의 부자 지키기에 실망한 백인 하층민의 지지를 얻어냈다. 이런 전략으로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져야 하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경제 위기, 기후 재앙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 한다. 트럼프가 ‘큐어넌(QAnon)’* 같은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부추기는 것도 같은 속내에서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에 그런 ‘아웃사이더’ 자처의 효과는 이전만 못하다.
미국 지배층 주류는 선거로 트럼프를 교체하려 나서는 모양새다. 이들은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에게 지원을 쏟아붓고 있는데, 대기업·부유층 후원금 위주인 두 후보의 선거운동비 차가 8월 한 달에만 1억 5000만 달러 이상 벌어질 정도다.
이들은 팬데믹 위기와 경제 위기가 중첩된 심각한 위기에서 트럼프가 백악관에 4년 더 있는 게 못내 불안하다. 이들의 눈에 비친 트럼프는 지배 질서를 교란하고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수호하지 않으며 그럴 능력도 없는 자다.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 지배층 주류가 보기에, 트럼프는 제2차세계대전 이래로 미국이 주의 깊게 구축한 세계 질서를 교란하는 자다. 자유무역에 기초한 국제적 시장자본주의 하에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특히 서유럽)을 우방으로 두고 세계를 ‘경영’한다(“팍스 아메리카나”)는 전략 말이다. 특히 나토로 대표되는 서유럽 열강과의 관계 문제가 임기 내내 중요한 쟁점이 됐다.(반면 트럼프가 군비를 증강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는 대체로 합의했다.)
트럼프 정부의 첫 국방장관이었던 제임스 매티스나 첫 국무장관을 지낸 액손모빌 CEO 출신의 렉스 틸러슨 등은 미국 지배층 주류의 전략을 고수하려 했다. 이들은 트럼프에게 “미국의 [군사적·경제적·외교적] 해외 투자의 이점을 이해시키려 했다. 매티스는 왜 미군이 이토록 많은 지역에 파병돼 있는지를 무역협정, 복잡한 동맹 네트워크와 연관해 대통령에게 설명하려 했다. … [그러나 트럼프는] ‘뭐든 돈이 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필립 러커·캐롤 르닉 공저, 《매우 안정적인 천재》)
그러나 트럼프가 제 뜻을 펼치면서 전략적 이견은 더한층 두드러졌다.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 제국주의 질서를 짊어지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미국의 일국적 이해관계를 챙기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이런 시각에서 트럼프는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중요한 동맹 체계였던 나토를 폄훼하고 이란 핵협정을 일방 파기했다. 이에 미국 지배층 주류와 정보기관들이 앞장서서 ‘러시아 스캔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트럼프를 공격했다.
바이든이 전통적 전략으로의 복귀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바이든은 대선 후보 지명이 확실시되기도 전부터 “우방과의 혈맹을 복원”해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에 엄중히 대응”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했는데, 트럼프가 “망친” 지난 4년을 되돌리겠다는 것이었다.
미국 지배자들이 트럼프의 코로나19 대응을 물고 늘어지는 것도 이런 점과 연결해 봐야 한다. 기업주들과 권력층은 트럼프가 경제 재가동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묵인하고 때로 협조하지만(이들에게 평범한 미국인들의 목숨은 기껏해야 부차적이다), 전 세계적 위기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로 여긴다. 하지만 지배층 주류에게라고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전투구가 끝을 모르고 난무하는 까닭이다.
내우외환
트럼프는 국내 통치 문제에서도 논란에 직면했다. 물론 지배층은 트럼프가 인종차별·성차별을 노골적으로 휘둘러서 반발한 것이 아니었다. 인종차별과 잔혹함은 비단 트럼프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 아로새겨진 것이다. 흑인 노예의 피를 먹고 자란 미국 자본주의의 지배자들은 국내에서 KKK 같은 인종차별적 극우 테러도 때로 용인했고, 세계 곳곳에서 친미 독재자들의 대량 학살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임기 내내 트럼프는 전통적 지배 전략과 통치 수단(공권력)을 활용하는 한편, (자신의 선거운동 구호를 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 등 강경 우익을 고무해 사회적 불만을 흡수하려 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 전략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미국을 강타하고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을 문제 삼으면서 문제가 됐다.
트럼프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가라앉히는 데에 완전히 실패했다. 트럼프의 대응은 운동의 반발만 키웠다. 트럼프의 공언대로 군대로 운동을 진압하려 했다가는 봉기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지배층 거의 전부, 특히 중요하게도 군부가 여기에 제동을 걸었다.
게다가 트럼프가 운동에 맞서 극우의 행동을 부추긴 것 때문에 곳곳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극우가 거리에서 전투를 벌인 것도 지배자들이 바란 ‘질서 회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트럼프가 미국 지배계급의 전통적 구호인 ‘법질서 옹호’를 내거는데도 주류 언론들은 여전히 불신에 차 “미국인 과반수가 법질서 수호에서도 트럼프보다 바이든을 선호한다”며 딴죽을 거는 까닭이다.
이 점에서도 바이든은 트럼프가 아니라 자신이 체제를 안정시킬 대안이라고 자리매김하려 한다. 바이든이 막대한 돈을 들여 법질서 옹호를 내세우고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폭력성’을 비난한 광고를 한 것은 이 때문이다.(이 광고는 트럼프가 포틀랜드에서 연방수사국(FBI)을 동원해, 극우 시위자를 살해한 반(反)파시즘 운동 지지자를 보복 살해한 직후에 나왔다.)
이는 대중의 변화 염원이 아니라 지배층의 바람을 대변하는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이토록 큰데도 바이든의 당선을 장담키 어려운 이유다. 바이든 지지율은 몇 달째 정체 상태이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공약을 지지해서 바이든에 투표한다’는 유권자는 한 자리수대 비율이다.
그런데도 버니 샌더스가 바이든을 친서민 후보라고 포장하고, 친서민 공약을 더 부각해 홍보하라고 바이든에 조언하는 것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샌더스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바이든 당선이 트럼프에 맞선 대중의 승리라고 주장하지만, 바이든이 당선한다 해도 신임 정부는 전임 민주당 정부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서민을 공격하고 인종차별을 이용할 것이다.(그러나 그 전략으로도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가 맞은 위기와 딜레마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했던 배경에도 바이든이 대표하는 전통적 전략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지배자들의 이전투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단호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다. 그간 이 운동은 기성 정치 질서를 뒤흔들었고 불가능하다 여겨지던 여러 개혁을 쟁취했다. 9월 11일에는 조지 플로이드 살인범들을 재판대에 세우기도 했다. 이전에 유색인종을 살해한 경찰은 재판조차 받지 않기가 부지기수였는데 말이다. 이렇게 미국 대중은 오직 스스로의 행동으로만 변화가 가능함을 지금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