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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플랫폼 사회적 협약:
알맹이 빠진 “노동자 권익 보장” 약속

10월 6일 플랫폼 노동 사회적 대화 포럼 1기(배달서비스) 최종 합의 협약식 ⓒ제공 서비스연맹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 기업과 노동조합이 주축이 된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이하 ‘플랫폼 포럼’)이 10월 6일 최종 합의문을 도출하고 협약식을 열었다.

플랫폼 포럼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제안으로 올해 4월 1일 출범했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플랫폼 산업의 질서를 정비해 나가겠다는 취지로, 배달 플랫폼 업종의 노동계, 기업, 전문가가 모인 사회적 대화 테이블이다.

노동계로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라이더유니온이 참가하고 있고, 기업 측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우아한형제들,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 스파이더크래프트가 참가하고 있다.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한 이병훈 중앙대 교수가 포럼 위원장을 맡았다.

플랫폼 포럼은 이번에 ‘플랫폼 경제 발전과 플랫폼 노동 종사자 권익 보장에 관한 협약’에 합의했다.

여러 주류 언론들은 이번 합의가 “플랫폼 노동자 권익을 명시한 첫 노사 협약”이라고 반겼다. 협약식에는 고용노동부 차관과 박홍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가해 정부 정책과 국회 논의로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진보 언론인 〈민중의 소리〉도 “이번 합의의 핵심은 배달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한 점, 배달 노동자의 고용주를 사용자로 인정한 점”이라며 의의를 부각했다.

물론, 협약문에는 “노동조합을 자유로이 결성하고 활동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명시됐다. 그럼에도 협약문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배달 노동자의 노동자성이나 사용자 책임을 인정했다고 보는 것은 상당한 과장이다.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내용도 매우 불충분하거나 추상적 수준에 그쳤다.

열악한 노동조건

지금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플랫폼 기업들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음식배달 서비스 결제 금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4퍼센트나 늘었다.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로서 책임져야 할 퇴직금, 사회보험 등을 회피해 온 것도 급속한 수익 증대의 비결이다.

반면 배달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배달 노동자들의 조건은 매우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벌충하기 위한 장시간 노동, 신속 배달 압박 때문에 벌어지는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7일 성남시가 발표한 연구용역 결과를 보면, 음식배달 라이더는 플랫폼 앱 사용료, 중개업체 수수료, 유류비 등으로 월 평균 46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위탁 계약을 맺은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 때문에 사용자 측에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그동안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성 인정, 산재보험의 전면 적용, 이륜차 보험료 현실화(인하) 등을 요구해 왔다. 배달업 특수를 일궈 온 노동자들은 이를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협약은 이런 요구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로조건, 보상, 안전 등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항목의 내용은 핵심 알맹이가 빠져 있거나 “노력한다” 수준에 그치고 있다. 목숨을 걸고 총알 배달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속도 경쟁 유발 정책을 펼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았다.(라이더 배달료 인상, 근무조건의 잦은 변동 금지, 배달시간 제한과 평점 시스템 폐지, 안정적 고용 보장 등이 필요하다.)

협약서는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고용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계약 관계”로 명명했다. 플랫폼 기업은 “배달서비스업 영역에서 다수의 공급자와 소비자, 배달 노동 종사자를 연결”하는 주체고, 플랫폼 노동 종사자는 “플랫폼을 매개로 한 업무 수행에 대한 계약을 체결”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플랫폼 기업은 배달 노동자를 포함한 여러 당사자들을 연결하고 매개하는 것이지, 플랫폼 노동자를 고용하는 주체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런 관점은 그간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성을 회피하며 주장해 왔던 바이기도 하다.

플랫폼 포럼 출범식 때부터 기업 측 위원은 “디지털이 결합된 플랫폼 노동은 근로기준법과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며 노동자성에 대해 부정하는 입장을 밝혔다. 협약서가 노동자라는 말을 피하고 대신 플랫폼 노동 ‘종사자’라는 말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플랫폼 기업들의 반발이 반영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배달 노동자들의 출퇴근, 근태, 업무 성과와 평가, 노동강도 등을 실질적으로 통제·지휘하고 있다. 배달 노동자에게 업무를 ‘강제 배차’하고 이를 거부하면 다음 번 업무를 늦게 주는 등 불이익도 벌어진다.

2019년 10월 고용노동부 서울북부고용노동지청은 요기요 플러스에서 일하던 배달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정하기도 했다.

사용자 책임

협약서가 사용자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산재보험 등 사회안전망에 관한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이번 협약서에는 기업이 “산재보험 가입 독려”, “종합보험 안내” 등을 노력하기로 했는데, 사실 이는 하나마나 한 얘기다. 산재보험이나 (이륜차) 종합보험에 가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종사자는 사회안전망 보장의 기준이 되는 납세의 의무 이행하기 위해 상호 노력”한다는 항목도 사용자 측의 책임을 흐린다.

여러 특수고용 노동자들처럼 배달 노동자들도 전속성(노동자가 하나의 업체에 소속돼 그 업체의 일을 주로 하는지 여부) 기준 때문에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가입해도 사측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사측과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안전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배달 노동자 비율이 38퍼센트나 됐지만, 배달 플랫폼 노동자 중 산재보험 가입자 비율은 0.4퍼센트에 불과하다(한국노동연구원).

종합보험의 경우, 보험사들은 이륜차의 사고율이 높다는 이유로 매우 높은 보험료 기준을 둬 사실상 가입을 막고 있다.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배달 노동자가 업무 중 사고라도 나면 어마어마 한 이륜차 수리비를 개인이 떠맡아야 한다.

가입하려면 거의 700만~800만 원을 부담해야 하는데, 플랫폼 기업들은 이 부담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플랫폼 기업들의 사용자 책임 회피로 인해 생기는 피해들이다.

플랫폼 포럼은 상설협의기구로 전환해 후속 논의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한다. 6개월간 논의 속에서 나온 협약서가 핵심 알맹이가 없다는 건, 그만큼 노사간 입장 차이가 적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조건 향상과 노동자로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