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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4차 산업혁명이 노동의 미래를 바꿀까?
④ 디지털 플랫폼과 노동의 성격 변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덕분에 사람들의 필요를 알아 내고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됐다는 신화도 널리 퍼져 있다. 사람과 사물 간 연결성이 극대화되면서, 정보를 종합하고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업을 재배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 중심의 맞춤형 소비가 가능해지고, 대량 생산 시스템에 맞춰진 낭비적인 대량 소비를 지양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런 연결성을 구현하는 장으로 디지털 플랫폼이 주목받으면서 새로운 사업 모델로 떠올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랫폼 기업들로는 우버(택시), 에어비앤비(숙박 중계), 딜리버루(배달)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배달의민족/배민라이더스 같은 음식 배달, 택배나 퀵서비스, 대리운전 플랫폼들이 대표적이다.

우버 택시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플랫폼 회사다. GPS와 연결해 택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자동차와 운전 서비스를 내놓을 용의가 있는 사람과 그것이 필요한 사람의 정보를 모으고 연결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이런 서비스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플랫폼 덕분에 협력에 기초하고 자원 활용을 극대화하는 “공유 경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런 플랫폼은 개인들이 무언가를 “공유”하는 분권적 거래 공간이 아니라 기업들이 중개 수수료로 수익을 올리는 돈벌이 공간일 뿐이다.

디지털 플랫폼이 공급과 수요를 정확히 “매칭”시켜 과잉생산 위기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순전한 신화다. “매칭” 신화는 노동시장에 적용되기도 한다. 플랫폼이라는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하면 유연하게 구인과 구직(자)을 연결할 수 있어 경직된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디지털 플랫폼도 자본주의 경제의 무정부적 속성에 따른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결할 수 없고, 어떤 똑똑한 앱도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비롯한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재인은 ‘4차 산업혁명’을 예찬하며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권리보장 요구를 외면해 왔다 ⓒ이윤선

노동자에서 독립 자영업자로?

또, 어떤 사람들은 전에는 사업을 하려면 건물이나 기계 같은 유형자산과 노동자 고용이 필수였지만 이제는 디지털 플랫폼 덕분에 이 모든 것이 불필요해졌다고 주장한다. 플랫폼 기업들의 가치 창출 원천은 고용된 노동자의 노동이 아니라 “초연결성” 자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에어비앤비는 ‘건물 하나 없는 세계 최대 숙박 회사’라거나 우버는 ‘택시 하나 기사 한 명 없는 세계 최대 택시 회사’라는 널리 통용되는 정의가 뜻하는 바다. 즉,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제 기업들은 이윤 창출을 위해 노동자를 고용하고 노동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자신이 노동자들을 고용한 게 아니고 단지 노동 공급자를 고객과 연결해 주는 구실을 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노동 공급자는 자기 회사에 소속된 피고용자가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 사업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일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용자들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 권리를 빼앗으려고 플랫폼 뒤에 숨어서 벌이는 사기일 뿐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 공급자와 관계없기는커녕 공급자의 노동과정 전반을 통제한다. 또, 플랫폼 간 경쟁에서 이겨서 수익을 높이고자 중개에 적극 개입해 요금을 정하고 노동 공급자의 건당 급료를 낮추는 등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쥐어짠다. 우버 택시가 운전자의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호출 수락률을 평가 시스템에 포함하거나, 우버잇츠가 배달자의 건당 급료를 깎는 것이 그런 사례다.

이런 점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 플랫폼 기업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은 중간 거간업체(에이전시)가 있는 경우가 흔하고, 서비스 건당 플랫폼 기업이 가져가는 비율도 매우 높다. 미국의 경우 평균 9~15퍼센트 정도인 데 반해 한국은 30퍼센트에 육박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노동관리도 수행한다. 그래서 노동 공급자는 말이 좋아 독립 자영업자이지 노동과정의 자율성이 거의 없다. 가령 배달대행업체는 노동 공급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일하도록 하고, 결근하면 벌금을 물리고, 콜을 잡지 않으면 위치를 확인해 콜을 잡도록 재촉한다.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이름뿐인 ‘자영업 사장’의 처지로 밀어넣는 이유는 자명하다. 최저임금과 노동기본권 보장 같은 각종 고용 의무를 기피하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게재한 어느 최고경영자의 다음과 같은 환호는 플랫폼 노동이 제공한다는 독립과 자유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보여 준다.

“이제 우리는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고용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소속된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가신 일이나 규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 결과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의 주체화”라는 어처구니없는 포장과는 정반대로 열악한 처지에 내몰린다. 우리 나라 플랫폼 노동자들의 근로실태를 분석한 결과, “하루 기본 12시간, 주 6일 근로를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토록 장시간 일해도 보험료, 운송수단 연료비와 유지비, 여기에 페널티까지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남는 게 전혀 충분치 않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평균 8,790원이고 최저임금 미만인 경우도 12퍼센트로 집계”됐다.(박찬임 외, «일자리 형태의 다양화 추세와 산재보험», 한국노동연구원)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일하기는커녕 대부분 노동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지 못하고,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몰라 생활을 계획하기가 더 어려운 처지다. 설사 노동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쓰고 싶은 노동자가 있더라도 최저임금, 유급휴가, 사회보험 등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씌워놓은 가짜 ‘자영업자’ 허울을 벗고 단결해 싸울 수 있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대리기사 노동자들(2018년 부산, 왼쪽)과 6일간의 파업으로 승리를 거둔 딜리버루 노동자들(2016년 영국, 오른쪽) ⓒ출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소셜리스트워커〉

“디지털 특고”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으로 전통적인 고용관계가 임시 계약관계로 대체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고용자도 노동자도 없어서, 모두가 개인 사업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노동운동 활동가들조차 유연 노동을 사이버 공간의 특성과 관련지으면서,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노동의 우버화”를 거스를 수 없다고 믿는다. 디지털 기술이 자본에게는 유토피아를, 노동에게는 파편화돼 약화될 운명을 선사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것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윤을 위한 자본가의 공세이다.

가령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으로 알려진 업무들(배달, 운전, 심부름 등)은 모두 기존 임금 노동자들이 수행했던 일이다.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일을 배정하는 과정에서 플랫폼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된 것일 뿐인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개인 사업자, 즉 “디지털 특고”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기술적 요인에 의한 불가피함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또, 디지털 기술 변화에 따른 고용관계의 변화(독립 자영업자의 증가)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압도적인 노동자들은 여전히 전통적 고용관계 속에 있다. 로런스 카츠 하버드대 교수와 앨런 크루커 프린스턴대 교수의 조사 결과를 보면, 임시직이 많은 미국에서조차 플랫폼 노동 종사자는 경제활동 인구의 0.5퍼센트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공세에 맞서 싸워 자신들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플랫폼 경제에서는 예전 같은 방식의 집단적 투쟁이 먹히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개별화돼 단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이 씌워놓은 가짜 ‘자영업자’ 허울을 벗고 단결해 싸울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미국과 영국 등지의 우버 노동자들은 피고용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고자 투쟁하고 있다. 2016년 영국 우버 택시 운전자들은 우버의 피고용자로서 유급휴가, 병가, 최저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판결을 얻어 냈다. 같은 해 영국 딜리버루 배달자들은 건당 급료 인하에 맞서 6일간의 단호한 파업으로 승리를 거뒀다.

한국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저항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다. 배달이나 대리운전 등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업무가 수행되면서 이런 노동자들을 “디지털 특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택배나 대리기사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조합 설립을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 왔다.

디지털 플랫폼이 발전했다 해서 노동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자본가들은 항상 노동자들이 필요없다는 인상을 주려 하지만, 이윤을 내려면 노동자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본질적인 관계는 변하지 않았고, 바로 이 점이 노동자들에게 이윤 체제에 맞서 싸울 능력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