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와 자살: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탓
〈노동자 연대〉 구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살률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올해 8월 기준 자살 예방 상담 전화 건수는 지난해 6468건에서 1만 7012건으로 약 3배로 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와 줄어든 소득, 고립감이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다.
한국 사회의 여러 지표들은 이미 코로나 전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이 극심했음을 보여 준다.
실업과 가난, 차별
한국의 자살률은 2005년 이래로 줄곧 OECD 1위를 차지해 왔다. 자살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실업이나 가난 등 경제적 요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한국의 자살률은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칠 때마다 크게 치솟았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특히 매우 심각한 수준인데, 이것도 OECD 최고의 노인 빈곤율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전체 자살자 중 70퍼센트가 남성이다. 남성은 가족 부양자라는 기대에 맞추지 못할 때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고민이 있거나 신체적·정신적 문제가 있어도 드러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인 압력도 남성의 자살 위험을 높이는 원인의 하나라고 의사들은 지적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청년(특히 젊은 여성)의 자살·자해·자살 시도 증가가 두드러진다. 이런 추세는 이미 코로나 팬데믹 전에 시작됐다. 20대 청년의 자살률은 다른 세대보다 높지는 않지만 3년 연속 소폭 오름세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자살자 수는 여전히 20대 남성이 더 많지만 여성 자살률의 증가 폭이 커서 그 차이가 줄고 있는 게 특징이다.
긴 시기를 두고 보면, 20대 남성과 여성의 자살률은 같이 상승하고 하락해 온 추세다(그래프 1). 자본주의가 노동자·서민층의 청년 남성과 여성 모두의 삶에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만성적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노동자·서민층 청년들의 삶이 밑바닥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1990년대에 태어난 현재 20대는 경제 위기 시기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며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온 세대이지만 여전히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올해 공식 청년 실업률은 8.9퍼센트로 IMF 외환 위기 시기인 1990년대 말 이래 최고 수준이다. 체감실업률(취업을 준비하거나 아르바이트 등 불완전한 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까지 실업자로 간주해 산출)은 무려 25.4퍼센트로 청년 4명 중 한 명이 실업자다(올해 9월).
최근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 증가 폭이 커지고 있는 것은 여성들의 기대감과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여성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자라며 전의 어느 때보다 많이 대학에 진학하고 노동자가 된다. 이를 배경으로 여성들의 자의식과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사회와 직장에 진출한 여성들은 이내 여전한 여성차별의 벽에 부딪히고 만다. 젊은 여성들은 구직 시장과 직장에서 체계적으로 차별받을 뿐 아니라, 흔히 외모로 평가받으며 천대받고 압박감을 느낀다. 이런 기대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젊은 여성들에게 큰 좌절감을 줄 수 있다.
처지를 비관한 노인에서부터 해고 압박을 받는 노동자들, 취직 장벽에 좌절한 청년들까지 이들이 처한 구체적인 조건과 비관의 계기는 다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들 모두 인간의 기본적 필요(육체적·정서적 욕구) 충족이 아니라 이윤 축적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의 피해자들이라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위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코로나 위기로 말미암아 더한층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충격으로 노동계급과 서민들이 삶의 조건이 더 나빠지며 불안과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실업자 수(102만 8000명)와 실업률(3.7퍼센트)은 모두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말 이후 최고 기록이다.
●‘한국의 사회동향 2020’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이 줄어든 경우가 49.7퍼센트에 달했다(5월 기준).
●수많은 노동자들이 감염 위협을 무릅쓰고 일하든가 굶든가 선택을 강요받아 왔다.
●일부 노동자들은 살인적 노동강도로 고통받고 있다. 올해 14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졌고, 그 중 한 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방역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방역 노동자들은 심각한 ‘번아웃’(심각한 신체적·정신적 피로 상태)에 빠져 있다.
●물리적 거리두기가 수개월간 지속되며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립감이 커지고 있다. 독거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같은 거리두기 하에서도 널찍한 집이나 교외 별장에서 지낼 여유가 있는 부유한 사람들과 좁은 방에서 어린 자녀들과 하루 종일 보내야 하는 노동계급·서민층 가정이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는 완전히 다르다.
여성, 20대 이하, 임시직 근로자
코로나는 기존 사회에서 더 취약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영향을 주고 있다.
가령,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된 뒤 노동자들은 심각한 실업난에 고통받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고용감소가 가장 큰 계층은 여성, 20대 이하, 임시직 근로자”로 나타났다(그래프 2, 3). 여성과 20~30대 청년들의 종사 비율이 높은 음식숙박업과 도소매 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등에서 일자리 타격이 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청년들이 취업은커녕 채용 일정이 연기·취소되거나 아르바이트 등을 할 기회도 얻기 어려워졌다. 월세나 관리비, 학자금 대출 이자를 연체하는 일도 더 많아졌다.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청년들은 지난 2월 이후 한 번이라도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26.8퍼센트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2018년 이뤄진 유사한 조사(2.7퍼세트)의 약 10배에 달하는 수치다(〈경향신문〉 12월 7일자).
한편, 코로나로 가정 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여성들의 가사와 양육 부담은 더욱 늘었다. 대구여성가족재단이 7월 중순에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여성들의 자녀·노부모 평균 돌봄 시간은 이전보다 무려 6시간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겪는 소외와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가정 폭력이 증가할 가능성도 커졌다.
이렇듯 청년과 여성 사이에서 우울감이나 불안, 스트레스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차별을 반영하는 것이다.
복지 대폭 확충
노동계급과 서민층의 삶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대대적인 지원과 복지 확충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난 11월 30일 정부가 2030여성과 학생(청소년)의 자살 증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방안은 완전히 알맹이가 빠져 있다. 직업 훈련, 자살 예방 상담 강화 등 별 실효성이 없거나 역부족인 것들이다. 그런데다 민주당은 노동자·서민을 위한 고용, 복지, 교육, 보육, 방역보다 기업 이윤을 우선시한 2021년 예산안을 국민의힘과 함께 통과시켰다.
자살과 우울, 불안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인 만큼 그에 걸맞는 대책이 필요하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제대로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국민에 대한 충분한 재난지원금 지급, 양육 등 돌봄에 대한 지원 강화 등 노동계급이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대중의 정신 건강을 지원하기 위한 상담 서비스도 대폭 확충돼야 하고 이용자들이 더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상담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재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기업 지원과 국방비에 쏟아 부을 재원을 대중의 필요를 위해 사용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살과 정신적 고통은 자본주의 체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윤 축적을 최고로 우선시하는 자본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본적 필요를 희생시키고 사람들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기 어렵게 만든다. 자본주의에서 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노동자들임에도,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힘을 모두 박탈해 날마다 무력감에 빠지게 만든다.
팬데믹과 그 충격으로 심화된 경제 불황도 인류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과 확산, 그것이 낳은 파괴적인 영향 모두 자본주의가 낳고 악화시켰다. 자본주의를 인간의 필요 충족을 우선시하는 사회주의 체제로 대체해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노동계급 대중이 스스로 조건을 개선하고 나아가 체제에 맞서 집단적으로 저항하고 싸우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일상을 지배했던 무력감을 떨쳐 버리고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고 자살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 1848년 프랑스의 혁명이 전 유럽을 뒤흔들었을 때 유럽 전체의 자살률이 격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