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자살예방백서:
높은 자살률은 비정한 사회를 보여 주는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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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이 체제의 비정함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다. 한국의 자살 현황을 보여 주는 ‘2021 자살예방백서’(2019년 통계 기준, 보건복지부 발간)가 최근 나왔다.
2019년 1만 379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의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24.6명으로, OECD 평균의 2배 이상이다. 자살 미수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대폭 는다.
자살을 개인의 나약함이나 일탈로 보는 견해가 여전히 많지만, 사실 자살은 그 원인이 사회적인 문제다. 특히, 실업과 빈곤이 늘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일수록 자살이 늘어난다. 한국의 자살률 추이만 보더라도, IMF를 불러들인 경제 공황기인 1998년에 급격히 증가했고, 2002년 가계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일명 카드대란), 2008~09년 세계 경제 공황 시기에 다시 증가했다.
한국은 모든 연령대에서 자살률이 높지만, 특히 노인층 자살률이 심각하다(OECD 평균의 2.7배). 이는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OECD 최고인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세대 사람들은 젊은 날 뼈 빠지게 일하고도 절반 가까이가 빈곤선 이하의 처지에서 고독사를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한편, 20대는 자살률 증가 폭이 가장 크다. 2019년 응급실까지 온 자해·자살 시도자는 20대가 가장 많았다. 높은 청년 실업률, 열악한 첫 직장, 주거 빈곤 등 청년이 처한 현실이 큰 좌절감을 주기 때문이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도 않지만 올해 초 잇따른 트랜스젠더 자살이 보여 주듯, 성소수자처럼 차별과 편견에 특히 더 시달리는 집단의 자살 시도율은 더 높다.
성인들의 ‘자살 생각률’(최근 1년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사람 분율)은 건강이 나쁘다고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를 많이 느낄수록, 1인 가구일수록,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실업자이거나 일자리가 불안정할수록, 수면이 적을수록(하루 4시간 미만) 높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자살 예방’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켰고, 자살 예방 전담 부서를 신설하는 등 여러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자살률은 줄지 않았다. 2018년, 2019년에는 되레 늘었다. 나락으로 빠진 사람들의 삶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이듬해인 올해 자살은 더 늘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나마 시행하고 있는 대책도 불충분하다. 예컨대 〈한겨레〉 보도를 보면, ‘코로나 블루’로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 상담 전화가 폭증했지만, 고작 15명의 상담 인력이 주야로 교대하며 이를 감당하고 있다. 게다가 계약직 신분과 높은 노동강도로 인해 상담사들의 퇴사가 잇따른다고 한다.
존엄의 회복
일찍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살을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비극적 현상으로 봤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이렇게 썼다.
“자살의 경우, 이전에는 상층 계급들의 부러운 특권이었지만 지금은 영국 노동계급 속에서 유행이다. 많은 빈곤한 사람들이 어떤 도피 수단도 없는 처참한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경찰관이자 시인이었던 푀셰가 쓴 자살에 관한 글을 독일어로 번역해 발간하기도 했다. 푀셰는 보수적 부르주아 도덕 때문에 자살한 여성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부도덕한’ 성적 행동을 이유로 무고한 여성들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에 분개했다.(더 자세한 설명은 《계급, 소외, 차별》(책갈피)의 ‘마르크스주의 차별론’을 보시오.)
마르크스는 푀셰의 주장에 공감하며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사람들은 개인의 삶에 존재하는 악마에게서 벗어나는 최후의 방안으로 자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살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의 삶의 조건이 대폭 개선돼야 한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양질의 일자리와 복지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또, 각자도생이 아니라 집단적 투쟁이 전진하고 그 속에서 연대가 늘어나면 자살률도 줄 수 있다. 예컨대 《자살론》을 쓴 에밀 뒤르켐(또는 뒤르카임)은 1848년 프랑스 혁명이 전 유럽을 뒤흔들었을 때 유럽 전체의 자살률이 격감한 것을 발견했다.
물론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윤을 위해서 인간의 필요와 존엄을 짓밟고 불평등과 차별을 낳는 비정한 체제를 폐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