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택배 노동자 동행 취재 :
“쉴 틈 없는 14시간, 가족과 저녁 먹는 게 소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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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택배 노동자들의 업무 과중이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안타까운 과로사가 계속 이어지며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도 일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택배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부분적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택배 노동자들의 불만은 여전히 높다. 11월 12일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너무 미흡하고 강제성도 없어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본지는 한진택배 노동자를 동행 취재했다. 11월 19일 아침 6시 45분, 한진택배 이천여주지점 노동자들은 투쟁가와 집회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날도 신규 조합원의 노조 가입원서가 전달됐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전 7시, 분류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레일 위에 택배 상자들이 밀려 들었다.
밤새 대형 화물차에 실려 온 택배 상자들을 내리고 레일에 올리는 일은 이주노동자들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택배 기사들은 자기 구역의 상자를 재빨리 들어 차량 쪽으로 옮겼다. 한진택배엔 휠소터[택배 상자를 배송 지역으로 자동 분류하는 장비]가 없어, 노동자들이 택배 하나하나를 눈으로 확인하며 분류한다. 동종 업체보다 작업 시간이 더 길다.
“[이렇게 일하니까] 과로사가 발생하는 거죠. 허리, 손목, 어깨는 고질적으로 아파요. 그런데 아파도 쉴 수가 없어요. 하루 일당이 날라가는 것은 물론, 내 구역을 대신 배달해 줄 인건비까지 2~3배로 나가니까요.”
특수고용 노동자인 택배 기사들은 아파서 쉬게 되면, 계약이 해지되거나 구역이 조정될 수 있다. 병가나 연차는 꿈도 꾸기 어렵다고 한다.
“비야, 그만 좀 와라.” 한 노동자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새벽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작업장 안으로 빗물이 들이쳐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지붕 외에는 사면이 모두 뚫려 있어 비가 쉽게 들이쳤다. 물에 젖은 바닥은 미끄러워 위험했다. 곧 겨울인데, 노동자들은 추위도 걱정이라고 했다.
임현우 택배연대노조 이천한진지회장이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휴게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노조 설립하고 제일 먼저 휴게실을 해 달라고 했어요. 몸이 좀 피곤해도 어디 가서 쉴 데가 없으니까요. 커피 한 잔이라도 편하게 앉아 마실 곳도 없고요. (그래서 만들었는데) 조합원들이 휴게실을 자주 이용하지 못해요. 빨리 분류 작업을 마치고 배달을 나가야 하니까요.”
오전 10시가 되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컵라면과 초코파이가 돌았다. 노동자들은 잠시 짬을 낼 여유도 없이 작업하던 자리에 서서 컵라면을 먹으면서 분류 작업을 계속했다.
“(앉아서 식사할) 시간이 없어요. 이렇게 먹고 나가면 점심이 언제일지 기약도 없어요.”
“출근해서 앉아 있는 시간은 운전할 때 뿐이에요.”
여전한 공짜 노동
레일 위에는 엄청 큰 상자들도 적지 않았다. “저런 건 택배가 아니라 화물이에요. 받지 말아야 해요. 다른 상자 10개 실을 자리를 차지하는데 [기사들이 받는] 수수료는 똑같아요.”
한진택배 기사들이 물건 한 개를 배달하고 받는 수수료는 750원가량이다. 택배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쿠팡 같은 대형화주업체들이 주는 물건의 규격에는 제한도 두지 않는다고 한다.
낮 12시가 다 돼서야 분류 작업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아휴”, “아, 허리 아파” 하는 탄식이 들려 왔다.
경력이 10년 이상 된 한 노동자는 “가장 바라는 건 분류 인력 투입”이라고 말했다. 택배사들은 과로사가 속출하자 지난 10월에 분류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말뿐이다.
한진택배 사측은 분류 인력 1000명(택배 기사 8명 당 1명 꼴)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이천여주지점에는 단 한 명도 인력 투입이 없었다.
“지점장에게 물으니 ‘본사 지침이 아직 없다’고만 해요. 우리는 휠소터도 없는데, 사실 8명당 분류 인력 1명 투입도 너무 적어요. 분류 인력은 시급이 최저임금이라고 하니, 하루 5시간 일하는데 그 돈 받고 누가 오려고 하겠어요? 사측은 보여주기 식 언론 플레이만 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배송 출발 전까지 5시간 동안 노동자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분류 작업을 계속 했다. 그나마 취재팀이 방문한 목요일은 물량이 많지 않은 날이라고 한다.
정오부터 차량들이 하나 둘씩 배송지로 출발했다. 본지 취재팀은 조완재 택배연대노조 이천한진지회 사무국장의 차량에 동승했다.
조완재 사무국장의 배송지는 아파트 단지였다. 아파트는 그나마 수월한 편이라고 하는데도 그는 계속 뛰어 다녀야 했다. “오늘 배송 물량이 280개인데, 이거 빨리 마치고 픽업[다른 지역으로 보낼 택배를 수거해 오는 것]도 500개 정도 해야 해요.”
배송에 동행한 지 1시간 반 만에 필자는 발바닥이 아프고 다리가 붓기 시작했다. 이동 중에 화장실 사용도 큰 불편이었다. “물을 맘 편히 못 마셔요. 그래서 여름엔 탈수 증세도 생겨요.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일부 택배기사들은 소변용 큰 생수통을 하나씩 가지고 다니기도 해요.”
제대로 된 식사는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 밤 늦게 먹는 저녁 한끼다. “점심은 차 안에서 김밥, 빵 등으로 때울 때도 있고, 굶을 때도 있어요. 예전 배달 구역은 계단이 많아서 김밥을 먹으면 막 올라 와요. 주머니에 초코바를 넣고 다니며 먹었죠. 허기를 달래는 수준이죠.”
낮은 수수료
점심도 굶어 가며 쉬지 않고 배달을 완료한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이었다. 쉴 새 없이 다시 픽업 업무가 시작됐다. 배송에 픽업까지,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데엔 ‘공짜 노동’(분류 작업)과 낮은 임금(수수료)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택배 기사들이 받는 월 순소득을 노동시간으로 나누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물건 판매자인] 대형화주들에게 지급하는 빽마진[리베이트]도 문제에요. 보통 소비자들이 내는 택배료 2500원에서 판매 업체들이 가져 가는 빽마진이 600원 정도예요. 소비자들 요금에서 빼 먹는 거죠. 빽마진만 없어진다면 택배료를 인상하지 않고도 기사들 수수료를 올릴 수 있어요.”
픽업 1차분을 수거해 다시 지점에 들렀다. 택배 상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작업장이 좁고 상하차 인력이 부족해 수거해 온 상자를 내릴 공간조차 없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밖에서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인력도 부족하고 부지도 부족해요. 결국 돈과 인력 문제죠. 사측은 이렇게 보내는 시간 동안 쉬라고 해요. 빨리 일 마치고 퇴근해야 제대로 쉬죠.”
“유치원 다니는 막내 아들이 ‘아빠는 내가 잠 잘 때 들어 와서 일어나기 전에 나가네’ 하고 말해요. 제일 마음이 아파요. 가족들과 하루 중 한 끼 저녁식사만이라도 같이 하고 싶어요.”
2차 픽업까지 하루 일을 마치고 나니 밤 9시 30분이었다. 말로만 듣던 하루 14~15시간 노동이었다. 게다가 정말 팍팍한 15시간이었다. 식사는커녕 10분도 제대로 쉬지 않고 일을 해야 이 시간에 끝날 수 있었다.
한진택배 노동자들은 분류 인력 투입과 수수료(임금) 인상, 휠소터 도입 등 작업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을 준비 중에 있다.
“[노조 결성 후] 휴게실이 생겼죠. 그리고 조합원들은 모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 가입됐어요. 아직은 보험료를 반반 내고 있지만 장차 사측이 전액 부담하게 할 거예요.
“궁극적으론 직고용이 돼야 해요. 차량과 작업복에 다 한진 마크가 있는데 정작 책임은 대리점과 기사들에게 떠넘겨요. 대리점주들도 ‘갑질’ 계약으로 기사들 등골 빼먹고요.”
정부와 택배 회사들의 생색내기 대책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를 해결하지도 못할 것이고,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기에도 턱없이 불충분하다.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 택배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