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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기후 위기, 인종차별

다음은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의 파노스 가르가나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알렉스 캘리니코스찰리 킴버 한 토론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한국 상황과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국제 상황에 대해 꽤 알 수 있다. 특히, 급진화의 리듬이 그렇다. 그리고 노동조합 문제를 놓고 영국 상황과 그리스 상황의 미묘한 차이도 알 수 있다. [  ] 안의 말은 번역을 한 이원웅 기자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첨가한 것이다.

파노스 가르가나스 (발제자):

우리 논의의 출발점은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팬데믹, 기후 변화에서 비롯한 파괴, 인종차별적 공격 등이 모두 이 체제의 매우 심각하고 장기적인 위기의 서로 다른 측면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근거로 삼아야 이 모든 측면의 상호 연관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현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

현재 위기의 첫째 측면은 경제적인 것이다. 경기 회복이 진행 중이거나, 정부들이 부양책을 펴며 경기 회복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복은 역전될 공산이 크다.

투기로 인해 막대한 거품이 형성됐고,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다. 금융 위기가 또 분출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금리를 올릴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더 큰 위험을 초래할지도 몰라 쉽게 그러지 못한다.

둘째, 경제 위기와 함께 지정학적 긴장이 증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긴장은 단지 두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긴장과 불안정성이 커질 것이다.

셋째, 방역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팬데믹 초기에 각국 정부는 록다운(봉쇄)을 시행했다. 그러나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경제 회복의 불안정성 때문에 록다운은 점점 고려 대상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다음 단계는 백신을 대대적으로 접종시켜 록다운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신으로 팬데믹을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이것이 현 상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더해, 기후 변화에서 비롯한 심각한 재난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 대응책으로 ‘그린 뉴딜’이 거론되지만, 화석연료 산업이 친환경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와 전제 조건을 결정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와 지역사회에 커다란 문제를 안겨줄 것이다. 때로는 한 나라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릴 수도 있다. 예컨대 2010년대 유로존 위기 때 유럽연합은 구제금융을 이용해 그리스에 긴축을 강요했는데, 이제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이용해 ‘요구 조건들’을 유로존 약소국들에 다시 강요하고 있다.

정치 불안정

이렇게 전체적 상황을 간략히 묘사한 것은 이런 압력 때문에 거의 모든 곳에서 정치 체제가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매우 뚜렷하게 드러났다. 여기서 이에 관해 자세히 다루기는 어렵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만 그런 게 아니다. 프랑스를 보라. 프랑스 정치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을 인물이라던 마크롱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다. 장기적이 된 위기의 이 모든 측면이 정치적 불안정을 낳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지배계급이 벌이는 인종차별적 공격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극우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세력을 다지려 한다. 따라서 인종차별 문제는 전체적인 위기와 연관돼 있다. 특히, 정치 위기와 시스템 실패와 연관돼 있다.

한편, 사태의 다른 면도 봐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계급과 청년의 일반적인 급진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 장기적인 위기 속에서 대중이 연거푸 고역을 치르면서 커다란 울분이 쌓였고 거듭 폭발하고 있다.

위기의 여러 측면 중 어느 것이든 이 울분이 폭발하는 직접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여러 곳에서 이런 분출이 있다. 여성 차별, 인종 차별, 경찰 폭력, 임금·노동조건 공격, 예산 삭감, 의료 체계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투쟁이 분출하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 왔다.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인종차별 반대 운동, 여성 운동과 결합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동참

서로 연결돼 있는 이 새로운 저항들은 좌파에게 동참할 기회를 준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우리 정치에 그것이 함의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우선, 우리는 이런 분출이 일어날 때 재빠르게 동참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이는 매우 중요하다. 대응이 늦으면 사람들은 이미 거리로 나오고 우리는 후발 주자가 된다. 그러면 안 된다. 미리 내다봐야 하고 준비돼 있어야 한다.

급진화가 현재 진행되고 있고, 여러 쟁점, 지금 우리가 토론하는 모든 쟁점을 둘러싼 투쟁으로 그것이 표현되고 있다.

우리는 쟁점을 내다보고 조직을 준비시켜야 할 뿐 아니라, 동참하고 관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활동에 참여하고 시위를 조직하고 연대를 건설한다는 의미에서 동참하고 관여해야 한다. 동시에, 이런 운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들과 논쟁을 벌이며 정치적 논의의 수준을 높인다는 의미에서도 동참하고 관여해야 한다.

정치적 논쟁은 전략과 전술,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먼저 전략적 측면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 모든 운동을 반자본주의적인 방향으로 서로 연결시키고 체제가 문제임을 드러내야 한다. 기후 운동의 슬로건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는 다른 운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그런 것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논쟁은 단지 전략적이기만 한 것이어선 안 된다. 때로 전략적 논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하는 추상적인 논의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일에 더 관심이 있다는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정치적 주장을 구체적으로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모든 운동에 노동조합이나 노동계급의 행동이 관련이 되도록 해야 한다. 사용자나 정부가 임금이나 노동조건, 실업수당 같은 것을 공격하는 경우에는 이것이 매우 당연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운동들에서도 노동계급의 조직된 힘을 끌어들이면 사태를 바꿀 수 있다.

특히, 보건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팬데믹이 현 상황을 지배하고 있고, 팬데믹이 오래 지속되는 동안 심지어 우파 정부조차 필수 노동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 노동자는 가장 필수적인 노동자다.

그들을 참여케 하는 것은 모든 투쟁에 노동계급과 노동조합이 관련이 되도록 하는 문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제기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스에서의 경험이 그랬다. 우리는 보건 노동자들의 저항에 동참하고 거기에서 기반을 건설할 수 있었다. 보건 부문의 능동적 활동가인 우리 당원들은 난민이나 여성에 대한 공격에 맞서 투쟁이 분출할 때 우리의 지향을 제시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노동계급 중심성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기할 수 있게 해 줬다.

좌파적 개혁주의의 우경화

마지막 논점은 위기가 거대한데도 개혁주의적 좌파가 후퇴하고 우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리스에서 시리자,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 영국에서 제러미 코빈이 부상하던 그런 시기가 아니다. 개혁주의 지도부가 좌파적 개혁주의를 실패한 전략이라고 비난하고 좌파적 개혁주의가 후퇴하고 있다.[영국 노동당 전 대표 제러미 코빈의 선거 도전이 실패하자 당내 우파가 지도권을 다시 장악하고 코빈과 당내 좌파를 비난하고 주변화시키는 상황이 대표 사례일 것이다.]

사람들이 급진화하고 여러 행동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는 우리가 관여할 여지를 제공한다. 제대로 조직하고 알아듣기 쉽고 면밀한 주장을 편다면 우리는 시스템의 반대자로서 널리 신망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잘 붙잡아야 한다.

찰리 킴버 (토론자)

일반적인 위기와 팬데믹 이후 저항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저항이 분출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얼마 전 구속된 전 대통령 제이컵 주마를 복권시키기 위해 주마 지지자들이 기획한 시위가 순식간에 대규모 자발적 소요로 번졌다. 주마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상점을 털었다.

그 배경에는 빈곤과 대량 실업이 있었다. 한편, 그 소요에는 외국인 혐오와 부족 간 갈등의 요소도 포함돼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 가령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과도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영국에서는 최근의 모든 대규모 대중 행동이 노동조합과 연계되지 않았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기후 위기 항의 행동,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경찰법 개악 반대 운동 등, 이 모든 운동들은 노동조합 운동이 주도하지 않았다.

전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2011년 긴축 반대 운동, 스페인 광장 점거 운동은 심지어 초기에 노동조합에 적대적이었다.

이런 상황은 혁명가들에게 두 가지 형태로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해당 쟁점을 노동계급에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할 때 현실 노동조합 운동을 그런 운동의 에너지와 영감과 맞세워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영국 상황에서 ‘영국노총(TUC)이 답이다’, ‘유니즌(Unison, 영국 최대 노조)이 답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답일 수 없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잠재력, 노동계급 중심성에 관해 훨씬 더 일반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펴야 할지, 노동계급의 가장 급진적인 부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둘째, 종파주의는 물론 경계해야 한다. 현실 운동을 우리의 강령과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혁명적 좌파단체 ‘노동자투쟁’(LO)은 노란 조끼 운동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행기] 강령에 노란 조끼 운동이 들어맞지 않는다며 그 운동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동 내에서 사상적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봐야 한다. 혁명, 즉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통한 근본적 사회 변혁, 사회주의, 노동계급의 힘과 운동의 에너지를 연결시키는 문제를 놓고 맥락 있는 정치를 제시해야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종파적이지 않으면서도 혁명적 세력으로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 (토론자)

세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 첫째, 동지들이 옳게 지적했듯이, 앞으로 우리는 꽤 심각한 사태에 잇달아 직면할 것이다. 이번 팬데믹이 보여 주는 것처럼 그 형태가 무엇일지는 정확히 내다보기는 어려울 테지만 말이다. ‘재난의 시대’에 관한 논의는 적절해 보인다. 자본주의는 스스로와 인류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둘째, 개혁주의의 위기는 국가 개입 증대와 관계가 있는 듯하다. 곧, 국가 개입 증대는 개혁주의의 파산을 드러냈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현재 신자유주의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국가 개입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자리에 개혁주의자들은 없다.

국가 개입은 지배계급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 줬다. 예컨대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노동당 투표자들에게 호소하면서 인종차별적 선동도 하고,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존슨은 이전 보수당 총리들보다 더 많은 카드를 확보했다.

셋째,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자체 재편되고 있다. 다른 동지의 발언은 기성 노동조합 관료[집합명사]를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준다. 심지어 자기 조합원들을 위협하는 위기가 왔을 때조차 말이다.

노동조합 내 우리 당원들은 저항을 건설하고 지도부를 움직이기 위해 영웅적 노력을 기울였고 때로는 성공하기도 했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운동을, 새로운 종류의 노동계급 운동이 스스로 형성되고 있는 과정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는 물류 노동자들이 굉장히 중요한 투쟁을 벌였는데, 이들은 기존의 주요 노동조합이 조직한 것이 아니라, 좌파가 (비록 그들의 전술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그리고 중동·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이 이끌고 있다.

실천을 통해 노동계급 운동이 스스로를 쇄신하는 사례다. 우리는 이런 것에 개방적이어야 하고, 이런 과정을 촉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파노스 가르가나스 (응답)

우리는 거대한 도전의 한복판에 있다.

그런데 이런 도전에 응하는 와중에 올해 가을 그리스의 우리 단체는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50년 전 우리는 8명으로 시작했다. 그리스는 독재 치하였고 우리는 대부분 망명자들이었다.

50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모든 반격에서 꽤 중요한 구실을 하는 조직을 건설했다. 우리는 제기되는 도전에 맞서도록 좌파를 결집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동지들이 이런 상황을 헤쳐나가는 경험을 많이 갖고 있다.

첫째, 우리는 신속하고 민감해야 한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 경험을 사례로 들겠다. 지난해 우리는 반(反)파시즘 운동의 큰 승리를 자축했다. 법원의 결정으로 황금새벽당이 범죄 단체로 선언됐고, 그 지도자들은 모두 감옥에 갔다.

우리는 2009년, 극우 위협의 징후가 최초로 가시화되자마자 반파시즘 공동전선 건설에 착수했다. 이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반파시즘 공동전선인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은 일찍부터 도전에 응했기에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우리 단체가 이 공동전선에서 핵심이었음은 경찰도 인정한 바다. 황금새벽당 불법 판결이 나오고 대규모 반파시즘 시위가 일어난 직후 경찰은 아테네에 있는 우리 단체 본부를 급습했다.

그들은 여론이 악화될까 우려해 결국 물러나야 했다. 우리가 사태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이 운동을 건설하는 모든 분야에서 일찍부터 공동전선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계급 중심성 연관시키기는 고난도 문제다

둘째,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제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런 어려움이 제기된 것은 우파적 견해 때문이 아니라 아나키즘과 자율주의의 영향을 배경으로 한다.

개혁주의의 실패 — 그리스에서는 특히 시리자 정부의 실패로 더 두드러졌다 — 때문에 좌파를 멀리하고 아나키즘이나 자율주의로 기우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래서 운동에 개입하면서 노동계급 정치 또는 혁명적 정치, 즉 노동계급의 힘을 이용해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하며, 이런 방향을 추구하는 혁명적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정치를 제시하는 것에 실제로 어려움이 있다.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노동계급 정치를 구체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예컨대 성차별적 공격에 맞서 젊은 여성들이 여러 저항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여성 동지들을 통해 주도한 운동 하나는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 행사를 파업의 날로, 그것도 단지 ‘여성 파업’이 아니라 노동자 파업의 날로 삼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층에서부터 이 운동을 주도하고 건설해 노동조합 지도부가 그날 파업 일정을 잡게 만들었다. 이것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3월 8일 시위가 성공적이 됐을 뿐 아니라, 젊은 여성들을 노동계급 정치로 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활동을 종파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 관료를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에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

우리는 거의 모든 곳에서 온건한 노동조합 지도부, 시리자 지도부, 사회당 지도부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기존 노동계급 운동을 무시하는 사상의 영향을 받은 거리의 정서를 추수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그렇다고 노동조합 관료와 개혁주의자들에게 굴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터에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일터에서 저항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병원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났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병원 노동자들은 긴축의 효과에 정면으로 노출되고, 보건 서비스 질을 떨어뜨리는 모든 조처로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리스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고 이는 기층을 건설할 기회가 됐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서 젊은 투사들에게는 좋은 모범을 보여 주고, 기존 노동조합 지도부에게는 압박을 가했다. 전통적인 좌파와 전통적인 노동계급 운동을 업신여기는 활동가들에게 우리는 물음을 던졌다. 단지 어떻게 시위를 건설할 것이냐뿐 아니라, 그들[활동가들]이 자기 일터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문제 말이다. 시위 참가자들이 전부 실업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젊은 노동자들이다. 일터에서 착취 문제를 마주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터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기존 노동조합 지도부에 맞서 아나키즘적·자율주의적 사상을 내세울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노동조합 관료에 도전하는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기에는 온갖 문제를 제기하는 많은 정치적 토론이 뒤따른다.

국가의 구실이 그런 문제의 하나다. 개혁주의적 좌파가 흔히 내놓는 주장은 이런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죽었다. 이제는 국가가 체제를 관리하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 하먼의 주요 논제를 기억해야 한다. 하먼이 썼듯, 신자유주의는 국가를 무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용했다. 국내적으로는 부자들이 더 득을 보게 하려고,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바람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것이 국가의 구실이다. 그리고 국가는 중요한 요소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관해 사람들에게, 청년들에게, 경험 없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설명해 줘야 한다.

반자본주의 정치와 혁명적 당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핵심적 과제다. 이 과제는 종파주의가 아니라 협력 속에서 수행될 수 있다. 체제가 빠진 혼란과 노동계급 내의 역동성 덕분에 현 시기에 상당히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