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젠더 갈등 논란:
급진 페미니즘과 좌파가 돌아볼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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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와 좌파는 보수 우파 정치인들의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별 이간질에 반대한다. 그러나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해 다수 페미니스트들이 지지하는 급진 페미니즘의 약점도 젠더 갈등이 커지는 데 일조했음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급진 페미니즘은 여성 차별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현이다. 지난 몇 년간 낙태죄 폐지와 불법촬영 항의 운동 등 성차별에 맞선 여성 운동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운동을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데는 약점을 드러내 왔다.
급진 페미니즘 사상은 성차별의 원인이 ‘남성 권력’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계급 간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성별로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졌다고 보며 여성 일반을 피해자로,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나 성차별주의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차별에 맞서 보통의 남성과 보통의 여성이 단결해 투쟁하는 것을 방해한다.
급진 페미니즘은 사회를 바꾸는 데서 대중행동(특히 계급투쟁)에 주목하기보다 개인의 언어 표현과 행동거지 등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편향성은 도덕주의로 흐르기 쉬워, 여성 차별 반대 운동의 저변 확대와 운동의 발전에 필요한 토론과 논쟁을 가로막는다.
급진 페미니즘의 이런 과도함은 또한 평범한 남성들 사이에서 적잖은 반발을 낳았는데, 성평등 운동을 지지하는 남성과 여성 속에서도 거부감을 일으켰다.
가령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보고서를 보면, 미투 운동·낙태죄 폐지·불법촬영 항의 운동 등 각각의 여성 운동에 대한 지지는 20대 남성과 여성 모두 높았다. 하지만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찬성은 여성이 29.9퍼센트, 남성은 4.1퍼센트에 그쳤다. 남성의 51.3퍼센트가 페미니즘을 반대했고, 여성의 상당수도 미러링과 탈코르셋 같은 운동 방식에 불편함을 드러냈다.(‘20대 현상: 탈가부장 사회를 위한 도전과 갈등’, 2019)
오늘날 20대 남성은 어떤 세대보다 성평등 의식이 높다는 점이 여러 연구와 설문 조사에서 드러난다. 지난해 12월 25일 〈한겨레〉의 “이대남을 화나게 한 ‘그 페미니즘’” 기사도 이런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20대 청년층이 성평등 운동과 페미니즘을 구분해서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페미니즘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것”에 대해 남성과 여성 청년 모두에서 불만이 높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점은 오래 전부터 본지가 힘줘 지적한 것이다. 〈노동자 연대〉는 여성 해방 운동 일반을 지지하면서도, 그 운동의 한 조류일 뿐인 급진 페미니즘이 안고 있는 한계와 약점을 동시에 봐야 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반면 지난 몇 년간 좌파 다수는 급진 페미니즘의 핵심 가정들을 받아들이면서, 심지어 노동운동의 분열을 부추기거나 이에 동조하는 과오를 반복해 왔다. 계급적 단결을 추구해야 할 책무를 방기하면서 말이다.
특히, 급진 페미니즘의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가해” 교리는 운동 내에서 경쟁 좌파나 개인을 배척하는 무기로 활용돼 왔다.
심지어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동자연대를 ‘성폭력 2차가해 단체’로 규정하고 노동자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신문 판매 금지 결정을 내렸을 때도, 다수 좌파들은 동조하거나 침묵했다.
좌파의 이런 행동이 낳는 결정적인 문제점은 개방적이고 연대가 충만한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을 세운다는 점이다.
우파가 청년층의 불만을 젠더 갈등으로 치환시키고 있는 상황에서(개인적인 젠더 갈등이야 있겠지만 그것이 사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젠더 분열에 일조해 온 급진 페미니즘과 다수 좌파는 진지하게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젠더 갈등의 원인은 착취와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혈안인 지배자들과 권력자들이 집착적으로 추구하는 이간질 전략에 있다. 지배자들은 평범한 남성과 여성의 반목을 조장하고, 노동계급의 성별 갈등을 자극해 불만이 서로를 향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구조화된 불평등과 성차별을 비롯한 온갖 차별을 해소하려면 지배자들의 성별 이간질 전략에 강력하게 도전해야 한다. 평범한 남성과 여성의 단결, 특히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단결 투쟁이 유일한 효과적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단결은 자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평범한 남성과 여성의 단결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와 그런 조직의 구실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