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지법 폭동 등 극우 부상은 ‘이대남’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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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으로 체포된 자들의 절반가량이 2030 남성임이 알려지면서 젊은 남성들이 극우화됐다는 개탄이 여기저기서 다시 나오고 있다.
“20대 남성은 왜 극우화 되는가?(민병두 전 민주당 국회의원),” “서부지법 폭동 ‘2030 남성 우파’, 누가 키웠나(오마이뉴스),” “서울지방법원 폭동, 페미니즘 없이 얘기할 수 없다(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 등.
좌파 일각도 이런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보수 이대남 vs 응원봉 이대녀?
그러나 ‘이대남’ 일반(혹은 다수 또는 상당수)이 극우화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로 체포된 2030 남성 46명이 젊은 남성들을 대표할 수 있나?
‘이대남’ 극우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윤석열 체포를 막겠다고 우익이 결집한 1월 15일 한남동 집회에 2030 남성이 많았다고 말한다(전체의 16.9퍼센트). 반면, 지난해 12월 14일 탄핵 촉구 여의도 집회에 참가한 2030 남성은 전체의 10퍼센트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남동 우익 집회는 전체 참가 인원이 4만 9000명이고, 12월 14일 탄핵 촉구 집회는 약 45만 명이었다. 탄핵 찬성 집회에 참가한 청년 남성(4만 5000명)이 한남동 집회에 참가한 청년 남성의 5배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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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숫자로 비교해도 탄핵 찬성파 청년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한남동 우익 집회에 참가한 2030 여성들도 16.6퍼센트였다. 서부지법 폭동 주동 단체의 하나로 수사 대상이 된 청년 극우 단체 ‘자유민주청년결사(일명 MZ자유결사대)’의 단장은 젊은 여성이다.
오히려 서부지법 폭동 참가자들의 특성에서 주목할 점은 성별이나 나이가 아니라 그들의 직업으로 미루어 추측되는 계급적 성격이다. 구속 영장이 신청된 피의자들 가운데 자영업자와 무직이 절반이 넘는다. 즉, 좌절한 하층 중간계급이 이번 폭동에 주요 참가자였던 듯하다. 이는 팬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벌어진 극우 시위에서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었다.
서부지법 폭동 참가자들은 2030 남성들의 표본이라기보다는 특정 교회들과 극우 유튜버, 디시인사이드 국힘갤러리 등에서 조직된 사람들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물론 탄핵 찬성 집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고무적인 일이다.(그 배경에 대해서는 ‘윤석열 퇴진 운동의 주력 부대로 나선 2030 여성들’을 참고)
그러나 이런 사실이 ‘이대남’을 폄하하거나 ‘이대남’ 보수화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대남’과 ‘이대녀’의 의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장기적 추세
서부지법 폭동 이후 1월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는 ‘이대남’ 개탄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1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2030 여성들과 달리 2030 남성들의 국민의힘 지지가 민주당을 앞섰다(20대와 30대 남성 각각 국힘 37%, 35%, 민주당 18%, 28%). 비슷한 시기 YTN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더 극적으로 나왔다(20대와 30대 남성 각각 국힘 56%, 47%, 민주당 8%, 17%).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보수층 결집 등의 요인으로 전체적으로 국민의힘 지지가 올라 민주당을 앞서거나 대등해졌었다.
그러나 바로 한 달 전인 12월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2030 남성들도 국민의힘 지지가 민주당보다 낮았다. 계엄 전 조사와도 비교하면, 무당층이 준 것이지 민주당이나 진보 청년들이 우파 쪽으로 옮겨간 것도 아니다.
여론조사는 단기적 수치보다 장기적 흐름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특히 20대는 이슈에 민감하고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 휘발성이 큰 집단으로, 여론의 변동성이 크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대남’은 윤석열을 많이 지지했다는 이유로 최근과 같이 개탄의 대상이 됐었지만, 윤석열 정부에 가장 빨리 등을 돌린 집단이기도 했다. 2024년 총선 출구조사 결과에서 ‘이대남’은 국민의힘 지지 철회 폭이 가장 컸다.
비교적 가장 공신력 있는 데이터로 알려진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지난 10년 동안 2030 사람들의 성별 진보 성향(자신이 ‘다소 진보적,’ ‘매우 진보적’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그 추이가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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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구체적으로, 분배에 대한 선호나 북한에 대한 태도 문제(해당 조사기관이 한국 정치에서 이념 차이를 형성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판단한 쟁점이다)를 물었을 때에도 성별 간 격차는 확인되지 않았다.
페미니즘
반면,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에서는 청년세대의 성별 격차를 상당히 보이는 조사들이 나왔다. ‘이대남’ 보수화론을 과장이라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이에 대해서는 ‘이대남’의 (일부) 보수성을 인정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에 대한 장기간의 추세를 분석한 조사는 없다.
하지만 뜻이 모호한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곧장 진보냐 보수냐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거나 심지어 성평등에 대한 태도 일반을 가르는 기준으로도 삼는 것은 일면적이다.
오늘날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언중에게 여성 평등 사상과 운동 일반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종 근래 우세한 특정 페미니즘 조류인 ‘급진 페미니즘’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급진 페미니즘’은 사회 근본 분열을 남녀 대립으로 보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며 여성 평등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난점을 많이 드러냈다. 예컨대 윤석열의 쿠데타를 두고 “폭주하는 남성성(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이라는 주장이 그렇다. 일부 영페미니스트들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로 달려간 사람들을 김건희 비난을 이유로 ‘여성 혐오’라고 매도했다.
이런 과도함에 대한 불만을 성평등 가치에 대한 반대로 해석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예컨대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지원과 보상”이나 “성범죄 처벌 강화”에 대해 태도에 대한 물음에서는 청년 남녀 사이에 격차가 거의 없었다(2021년 한국일보 창간 62년 기념 여론조사).
요컨대 장기간의 추세를 분석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별 간 차이보다는 시기별 차이가 뚜렷하고, ‘진보 이대녀 vs 보수 이대남’ 식의 도식은 실제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젊은 남성 상당수가 극우화했다는 별 근거도 없는 개탄은, 역으로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과장하는 극우의 기를 살려 줄 뿐이고, 실제로 모순된 의식을 가진 젊은 남성들을 극우로 내모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또한 이런 언설은 민주당과 좌파 세력이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많이 얻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소심함이나 부족함이 아닌 다른 이유로 돌리는 것을 돕는다.
게다가 젠더 갈등을 부추겨 단결된 운동 건설을 어렵게 한다.
양극화
현재 형국은 청년 세대의 남녀 간 대립을 보여 주는 게 아니다. 윤석열의 쿠데타 미수 이후 좌우 양극화 속도가 빨라지고 특히 극우가 위기감으로 결집하는 가운데, 기존엔 꼴통이라 거리를 두던 기존 청년 극우를 국민의힘 등이 나서서 키워 주는 것이다.
윤석열은 한남동 집회에 참가한 청년들을 자필 편지에서 호명했고, 국힘 의원 김민전은 소위 ‘백골단’ 청년들을 국회로 불러 벌언권을 줬다. 이에 힘입어 청년 극우 간부들이 부쩍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 다수의 삶은 점점 팍팍해져 왔다. 좋은 일자리 부족과 극심한 청년 실업, 고립·은둔 청년의 증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청년 자살률 등.
선거 때마다 주류 양당이 청년 정책을 쏟아 낸 이유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공정은 완전히 기만이었음이 드러났다. 윤석열은 MZ노조를 환대하는 듯했지만 그저 조직 노동자 운동을 공격하고 이간질시키는 용도로만 청년을 이용했다. 그러나 민주당도 고통을 덜어 주기엔 턱없는 정책으로 생색내기에 그쳤다.
극우는 민주당의 배신과 위선을 이용해 청년층의 고통과 불만, 환멸을 파고들어 새 피를 수혈하고자 한다. 극우 폭동은 냉소와 절망감에 빠진 소수 청년들에게 마치 새로운 힘과 대안을 보여 주는 섬광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따라서 청년 세대를 극우화라고 과장하면 안 되지만, 극우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극우의 성장을 막으려면 거대한 대중 동원으로 맞불을 놓아 기세를 꺾어 놓아야 한다.(관련 기사: ‘극우에 맞선 맞불 집회가 필요하다’)
특히, 노동계급이 저항에 나서 운동이 더 커지고 더 심화돼, 청년층(다수가 노동계급의 일부)이 겪는 문제들을 집단 행동, 특히 노동계급의 집단 행동이 해결할 수 있음을 힘으로 보여 준다면, 많은 청년들이 좌파적 사상과 진정한 대안으로 이끌리기가 가능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