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사회’ 담론은 여성 차별에 맞선 운동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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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서평
〈노동자 연대〉 구독
근래 몇 년간 페미니즘 진영에서 유행한

하지만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이 책이 인기를 끈 이유는 일상의 다양한 여성 차별 현상과 문화, 그리고 여성 차별에 가담하는 남성들을 비교적 쉽고 간결한 문체로 가차없이 비판할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는 혐오에 당당히 맞서라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인 듯하다. 이것이 만연한 여성 차별에 불만을 가진 여성들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은 차별 현상에 대한 다양한 묘사를 담고 있지만, 더 나아가 현 사회를
여성 혐오란 무엇인가
이 책의 첫번째 특징은 매우 광범한
그런데 여성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강남역 사건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이처럼 확장된 여성 혐오 개념이 쓰였다. 가령,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성차별적 인식, 야한 만화 보기,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살해 등 수위가 다른 여러 행위들이 모두
그런데 여성 혐오가
혐오 개념의 확장은 다양한 여성 차별의 심각성을 환기시키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꼭 좋은 효과를 내는 것도 아니다.
성소수자나 이주민 혐오는 단지 차별적 말과 행동을 뜻하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나 이주민을 사회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사회에서 배척하려는 것을 뜻한다. 가령, 성소수자 혐오는 성소수자를
이런 매개들을 무시한 채 여성 혐오만으로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환원론이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강남역 사건을 두고
혐오 개념 확장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우선, 혐오를 혐오이게 하는 특징들을 흐려버리고 진정한 혐오의 심각성을 오히려 희석시킨다
개념의 확장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여러 현상을
특히, 혐오 개념의 확장은 모든 남성들을 모두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태도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여성 차별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만으로 곧 혐오이기 때문이다. 실제 강남역 사건을 둘러싼 논란에서 상당수의 페미니스트들
그런 점에서
여성 혐오는 ‘남성 간 연대’를 유지하는 수단?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이 여성 차별의 원인이라는 남 대 여 분리주의적 주장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우에노 치즈코 역시
하지만 이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여성혐오의 뿌리는 남자임을 증명하는
우에노 치즈코는
또한, 이런 비유물론적 역사 서술은 근대 이후 자본주의의 역동적 변화 속에서 나타난 성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인식 변화도 설명하지 못한다. 가령, 우에노 치즈코가 분석의 기초로 삼은 이브 세지윅의 책은 19세기 영국 문학에서 나타난 여성 혐오를 다룬 것이다. 그런데 19세기와 21세기의 여성 차별은 양상이 매우 다르다. 19세기에는 여성의 참정권조차 보장되지 않았고, 기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에도 부정적인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제 여성이 노동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는 것은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 자본가들과 자본주의 국가들은 여성 차별을 체계적으로 유지할지언정, 여성들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는 데 관심이 있지는 않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두드러지는 오늘날 이런 물질적 변화는 여성에 대한 남성 대중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령, 올해 4월 통계청이 발표한
우에노 치즈코가 동성애 혐오를 자본주의와 떼어 내어, 남성집단의 유대감 형성을 위한 산물로 설명한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동성애자들을 특수한 하나의 집단으로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자본주의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이성애적 가족 제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과 관련 있다.
남성은 동질적인가?
우에노 치즈코를 비롯한
하지만 대다수 남성들이 여성차별 관념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무엇보다 남성들 사이에는 계급에 따라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자본가
우에노 치즈코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출신이지만
우에노 치즈코는 현재는 푸코와 같은 후기 구조주의에 친화적이다. 푸코의 권력 개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런 관점은 자본가 계급의 남성이든 노동자 계급의 남성이든 남성은 여성을 억압하는
대안의 문제
우에노 치즈코는 전반적으로 남성
이것은
하지만 여성 억압은 남성 개개인이 젊고 힘 좋을 때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노년에 힘 빠지면 사라지는 그런 개인적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차별은 계급 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됐고, 오늘날의 여성 차별은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과 맞물려 있다. 자본주의는 여성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면서도 안정적인 노동력 재생산의 주된 책임을 개별 가족의 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려 한다. 또한, 노동계급을 성별로 분열시켜 이간함으로써 단결을 가로막고 노동계급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헌신하길 바란다. 특정 집단이 그토록 체계적으로 차별 받아 온 데는 물질적 근원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 해방이 우에노 치즈코 스스로
두려움과 공포심, 약자와 피해자로서의 정체성만으로는 투쟁에 나서기 어렵다. 정반대로 자신감을 갖고 잠재력을 자각하는 것이 투쟁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과 힘이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에겐 있다. 그 힘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여성의 노동 없이는 굴러갈 수 없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우에노 치즈코 식의
그러나 역사유물론은 스탈린주의의 기계적 유물론과는 달리, 결코 인간 주체의 구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즉,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자동적으로 사회주의가 도래하고 여성이 해방되므로 자본주의를 심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의 물질적 토대와 인간 주체의 상호 작용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자본주의 하의 소외 때문에 노동계급이 자신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온갖 차별적 사상을 수용하는 것에 의식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차별과 착취에 맞서 노동계급의 의식적인 단결을 추구하는 혁명적 조직의 구실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보여 주지 못하는 현재의 조건에서 여성 차별에 분개한 많은 여성들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통한 체제 변혁 사상보다는 남 대 여의 분리주의적 정치에 심정적으로 이끌리기 쉬운 듯하다. 하지만 여성 차별을 끝장내고자 한다면 차별을 묘사하는 것에서 만족할 수 없고, 차별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여성해방론은 좋은 나침반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