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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족 해방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

이 글은 1월 27일 같은 주제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을 개정한 것이다. 그날 토론회에서 필자는 ‘위구르인들의 분리 독립을 지지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보다는 좀 더 포괄적으로 “분리 독립을 포함한 민족 자결권을 지지한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민족 자결권은 ‘분리 독립’이라는 특수한 요구로 축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 점을 반영해 개정됐다.

2월 4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시작됐다. 개막식에서 중국 당국은 성화 최종 주자로 한 위구르인 선수를 내세웠다. 이는 올림픽 보이콧 논란을 의식한 일이었다.

앞서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은 중국의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에 정부 사절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했다. 미국은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도 만들었다.

미국 등이 보이콧에 나서자, 문재인 정부는 베이징에 가는 사절단의 격을 낮췄다. 국민의힘 윤석열은 위구르 문제에서 미국 편을 더 확실히 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정치인들은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들의 인권을 탄압한다고 비난하는 반면, 중국 정부는 “내정 간섭”이라고 반발한다.

위구르 문제는 국제 좌파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다. 예컨대, 영국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는 미국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중국을 제재하자고 한다. 반면 진영 논리를 따라 중국 정부를 옹호하는 좌파도 있다. 국내 좌파들도 이와 비슷하다.

미·중 갈등의 쟁점이 된 위구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 글에서는 크게 4가지를 얘기하려 한다. 첫째, 위구르 문제에 관한 서구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위선. 둘째, 중국의 신장 지배 과정과 위구르인들의 처지. 셋째, 냉전 해체 이후 최근까지 위구르 억압이 악화된 까닭. 마지막으로 위구르족 해방을 왜 지지해야 하는가.


서구의 이해관계와 위선

미국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위구르 억압을 두고 “인권 탄압”, “집단 학살”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다.

미국은 자기 동맹국의 인권 문제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 예컨대, 미국의 동맹국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가혹하게 억압하는 인종 분리 국가이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두둔해 왔다. 지난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폭격할 때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에 7억 달러(8387억 원) 넘는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 인권 탄압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벌인 인도주의적 개입은 온갖 인권 탄압과 학살을 낳았다. 예컨대 2001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여성을 위한 전쟁’이라고 했지만, 정작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의 약 70퍼센트가 여성과 어린이였다.

인권 운운할 자격 없는 미국 재앙이 된 아프가니스탄 ⓒ출처 미 군

위구르족 문제에서도 미국은 자기 이익에 따라 태도를 뒤바꿨다. 2001년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국은 중국의 지지를 대가로 중국의 위구르족 억압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 정부의 의견을 수용해 실체가 있는지조차 미심쩍은 한 위구르 단체를 테러 단체로 지목했고, 2002년에는 위구르인 22명을 관타나모 수용소로 잡아갔다.

최근 미국이 위구르 억압을 문제 삼는 것은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가장 위협하는 세력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을 미국이 주도해 온 국제 질서를 위협하는 “전략적 경쟁자”로 본다.

미국 정치인들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이라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장하고 있다. 위구르 문제는 홍콩 민주주의 탄압 등과 더불어 미국이 ‘권위주의’ 중국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대변한다고 선전할 수 있는 소재다.

이처럼 미국에게 위구르 문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을 결집하고 아시아에 군사 배치를 증강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명분일 뿐이다. 미국은 위구르인들의 해방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중국의 신장 지배

사실 인권 탄압이라는 것은 모호한 규정이다. 위구르 문제는 단지 개별 시민들의 법적 권리가 침해되는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가 민족 자결권을 억압하는 문제다. 위구르인들에 대한 탄압은 민족 억압의 결과이고 제국주의의 문제인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신장 지역이 고대부터 중국에서 분리될 수 없는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근거가 빈약한 주장이다. 한나라·당나라가 잠시 관여한 적이 있으나, 오랫동안 신장은 한족의 땅인 중국과는 별개의 지역이었다.

18세기 중엽에야 청나라가 이 지역을 정복하고 신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청나라 관리들은 현지 부족 통치자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의존해야만 했다. 이런 지배도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다.

중국공산당이 신장 지역을 장악한 것은 1949년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면서다.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1921년 창당한 중국공산당은 원래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옹호했다. 하지만 1930년대에 한족 민족주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1949년 중국공산당은 권력을 잡으면서 애초에 소수민족들에게 공언했던 민족 자결권 약속을 저버렸다.

1949년 혁명으로 탄생한 신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였다. 그 사회의 새로운 지배자인 중국공산당 관료들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해 소수민족 지역의 인력과 천연자원을 강탈했다. 이는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확장과 영토 병합 논리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것이었다.

중국공산당에게 신장은 경제와 안보 모두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다. 먼저, 안보 면에서 신장은 내륙을 보호할 수 있는 거대한 완충 지대로 여겨졌다. 1960년대 중국과 소련 간에는 적대와 국경 분쟁이 지속됐는데, 중국공산당은 소련이 서부 국경에서 침공할 경우 신장이 완충지 구실을 하기를 바랐다. 또 신장은 석유, 비철금속 등의 자원 공급원으로 경제 면에서도 중요했다.

원래 신장은 위구르족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그 밖에 카자흐인 등 다른 투르크계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중국공산당은 이곳을 명목상 자치구로 지정했다. 그러나 자치는 허울이었다. 행정과 군사의 실권은 대부분 현지 한족 관리들 손에 있었다. 그래서 1949년 이후 10년이 채 안 돼 자치구 내 한족 관리들의 “거만함”과 “횡포”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들었다.

중국 지배 관료들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고 한족을 신장으로 대거 이주시켰다. 그 중심에 신장생산건설병단(이하 “병단”)이 있었다. 병단은 한족의 신장 정착을 다루는 기관이었고, 신장의 경제·군사 부문에서 핵심 구실을 했다.

1949년 신장 인구 중 한족은 7퍼센트이고 위구르족은 76퍼센트였다. 그런데 이주 정책으로 한족이 많이 유입되면서 1978년에는 한족이 42퍼센트로, 46퍼센트인 위구르족과 거의 맞먹게 됐다. 한족 이주로 인해 위구르인들의 사회·경제적 입지도 점차 줄어들었다.

1966년 문화혁명 같은 중앙 정부의 노선 변화도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구습 타파라는 미명 아래 무슬림의 성지 순례가 금지됐고, 이슬람 사원이 폐쇄되거나 파괴됐다. 심지어 이슬람 사원을 무슬림들이 금기시하는 돼지의 사육장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 또, 많은 비(非)한족 간부들이 “소련 앞잡이”나 “수정주의자”로 몰려 숙청되면서, 비한족 관리의 규모가 대폭 줄었다.


냉전 해체 이후 신장

마오쩌둥 사후 1980년대에 이르러, 신장 지역에 대한 억압은 다소 완화됐다. 이슬람 사원들이 다시 문을 열었고, 성지 순례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1980년대의 상대적 유화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1990년대부터 중국 정부가 여러 개발 프로그램으로 신장 경제를 개발했는데 위구르인들은 그 결실을 누리지 못했다. 예컨대, 신장 경제의 한 축인 면화 생산의 많은 부분을 한족이 담당했다. 위구르인들은 고용과 복지 등에서도 차별받았다. 한 통계 자료를 보면, 비한족 인구가 95퍼센트를 차지하는 신장 남부의 경우 1인당 평균 소득이 신장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비한족 인구가 많을수록 평균 소득이 떨어지는 것이다.

신장 경제 개발에서 소외되고 차별당하는 위구르인들 신장의 지역별 비(非)한족 비중과 1인당 소득

1990년대 중반부터 강압적 통제도 다시 강화됐다. 여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1991년 소련 해체가 중국공산당 지도부에게 위기감을 줬다. 신장과 인접한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의 독립이 위구르인들을 자극할까 봐 걱정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위구르인들이 이런 물음을 품었다. ‘카자흐인들의 나라인 카자흐스탄도 되고, 우즈벡인들의 나라인 우즈베키스탄도 되는데, 왜 위구르스탄은 안 되지?’ 중국 당국은 위구르인들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우려해 단속을 강화했고, 이슬람 종교의 관습도 억제했다.

또한 학교에서 중국어 사용을 강요했다. 예컨대 중국 정부는 2003년부터 신장 대학에서 위구르 문학을 제외한 모든 수업이 표준 중국어(보통화)로 진행돼야 한다고 명령했다. 당시 신장 당 서기는 “소수민족들의 언어는 수용 능력이 작고 근대 과학과 기술에 관한 표현을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는 모욕적인 말로 이 정책을 정당화했다.

2001년 9·11 사건도 또 다른 배경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하자, 중국은 재빠르게 신장 정책의 초점을 반테러 노선으로 옮겼다. 그리고 자신들도 신장에서 테러리즘에 맞서 싸운다고 선언했다. 별 근거도 없이 신장 현지의 저항이 모두 알카에다와 탈레반과 연계된 테러로 규정됐다. 그러나 그 ‘테러’는 대부분 자생적이고 사전 계획 없이 시작된 저항이었다.

신장에서 검문소가 급격하게 늘었고, 검문소에서 가방과 휴대전화를 검문검색당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가택 수색도 정기적으로, 특히 밤에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많은 위구르인들이 부당하게 체포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일들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벌이는 범죄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신장이 “중국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2013년 시진핑이 권력을 잡은 이래 신장 지역에 대한 통제와 억압은 더 강화돼 왔다. 특히, 미·중 갈등이 점증하면서 중국 지배자들은 미국이 위구르인 등 소수민족들을 지원해 중국의 분열을 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신장은 일대일로의 핵심 거점이 되는 등 중국 지배자들에게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

강압적 통제에 위구르인들의 반발이 거듭되자, 2014년 시진핑 정부는 ‘반테러 인민전쟁’을 선포했다. 시진핑은 2001년 9·11 사건 이후 미국의 반테러 활동에서 배우라고 당 기구에 지시하기도 했다.

시진핑 정부는 노골적인 동화 정책(이른바 제2세대 민족정책)을 펴고 있다. 이를 위해 한족 출신 관리들이 위구르인 가구들을 밀착 감시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성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언들이 있다. 신장 곳곳에 이른바 ‘재교육 캠프’나 ‘교육훈련 학교’ 같은 시설들도 세워졌다. 몇 년 전에는 위구르인 경제학자 일함 토흐티가 정부 전복을 선동했다며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위구르 독립이 아니라 자치라는 온건한 대안을 주장했는데도 그랬다. 지금도 많은 위구르인들이 실종되거나 잡혀가고 있다.

소수민족 자치를 제한하고 동화를 촉진하는 시진핑 정부의 정책은 이제 신장을 넘어 다른 곳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2020년 네이멍구(내몽골)에서는 몽골어 교육 축소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분출하기도 했다.


위구르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한다

중국의 가혹한 민족 억압 속에서도 위구르인들의 해방 염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1949년 이래 위구르인들의 저항이 여러 차례 대규모로 일어나곤 했다.

2009년에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저항이 있었다. 중국 광둥성에서 위구르인 노동자 2명이 성폭행범으로 억울하게 몰려 살해되자, 신장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인 수천 명이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경찰이 발포하며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이에 위구르인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이 과정에서 정부 발표로는 197명이 죽었다. 중국 정부는 사망자 대다수가 위구르인에게 공격당한 한족이라고 했지만, 현장 목격자들은 이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사회·경제적 불만이 개선되기는커녕 중국 군경의 폭력으로 거듭 좌절되면서 위구르인들의 해방 염원은 더 강해졌다. 시진핑 정부가 표면적으로 위구르족의 저항을 잘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분리 독립을 포함한 위구르족의 민족 자결권을 일관되게 옹호해야 한다. 강제적인 소수민족 통합은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 특히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은 제국주의에 억압당하는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매우 강조했다.

이는 무엇보다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위해서다. 민족 억압은 지배하는 민족의 노동자와 지배당하는 민족의 노동자 사이를 분열시킨다. 레닌은 이를 극복하려면 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이 억압당하는 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했다. 즉, 진정한 단결을 위해 분리의 자유가 필요하다.

또한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은 제국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다. 레닌은 식민지 대중의 저항이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고, 이는 본국 노동계급의 저항에 힘이 된다고 봤다.

민족 자결권에 관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접근법은 위구르 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최근 중국의 한족 노동자들은 여러 투쟁에서 거대한 잠재력을 힐끗 보여 줬다. 이 한족 노동자들이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한다. 그래야 민족 간 적대를 넘어 소수민족들과 단결할 수 있고, 그런 단결된 힘으로 중국 지배자들에 맞서 자력 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미국 제국주의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위구르인들의 해방을 이룰 수 없다. 그것을 비극적으로 보여 준 사례가 바로 쿠르드족이다. 쿠르드족은 독립을 위해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도왔지만, 미국은 2017년 이라크 내 쿠르드족의 독립 시도를 저지했다.

그러나 좌파 중 일부가 위구르족 저항을 지지하는 것은 미국을 돕는 꼴이라며 위구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잘못이다. 중국을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진보적’ 대안으로 여기며 중국 제국주의의 악행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반대하는 것처럼 중국의 위구르 억압도 반대해야 한다.

요컨대, 미국과 중국 제국주의 둘 다에 반대해야 한다. 한국에 사는 우리는 위구르인들을 걱정하는 척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선을 폭로해야 하고, 그들의 올림픽 보이콧과 경제 제재 등을 지지해선 안 된다. 그러면서도 중국 제국주의에 맞선 위구르인들의 해방을 지지해야 한다.

시진핑 정부의 위구르 억압 강화 위구르인들이 갇히는 신장의 ‘재교육 캠프’ ⓒ출처 위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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