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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정말 제국주의 국가가 아닐까?

10월 14일 중국은 육·해·공군을 모두 동원해 6개 블록 형태로 대만을 에워싸는 대규모 군사 훈련을 진행했다. 2022년 이래로 중국군이 벌인 세 번째 대만 봉쇄 훈련이었다.

유사시 대만인들에게 중국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대만을 후원하는 서방에도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쟁들에서 고전하는 사이, 시진핑은 지난달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참석해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과시했다.

미국이라는 기존 패권국과 중국이라는 신흥 강자의 대결이 오늘날 세계 정치를 불안케 하는 핵심 문제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좌파는 오늘날 미국에 맞서는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회진보연대처럼 일부는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세력보다는 기존의 서방 주도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진보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서방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예각을 무디게 하고, 무엇보다 친서방적인 자국 지배자들에게 타협하게 만든다. 이는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호소와는 정반대다.

반면 서방 제국주의에는 반대하지만 중국을 제국주의로 보지 않는 좌파도 많다. 그래서 중국이 서방 제국주의를 견제할 진보적 구실을 한다는 잘못된 기대를 걸기도 한다.

제국주의에 관한 정의

국내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안에도 중국을 제국주의로 보지 않는 좌파들이 있다.

가령 올해 국제전략센터는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의 연구 보고서 《초제국주의》(Hyper-Imperialism)를 번역해 냈다. ‘트라이컨티넨탈: 사회연구소’는 인도 출신 마르크스주의 학자인 비자이 프라샤드가 소장을 맡은 연구소다.

《초제국주의》는 제국주의를 서방으로 국한해 이해한다. 많은 좌파가 그러듯이, 제국주의를 서방 강대국들의 약소국 지배 또는 수탈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보면 아(亞)제국주의나 비서구 제국주의 열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제전략센터는 중국은 절대 제국주의 국가일 리 없고, 오히려 “다른 국가를 착취하고 억압하지 않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남반구 국가에 제시”하는 사회주의 국가라고 주장한다. 후술하겠지만, 국제전략센터는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도 중국이 진보적 구실을 한다고 기대한다.

그렇지만 ‘자국의 실물 경제가 정체된 특정 강대국(바로, 미국)이 군사력과 기생적인 금융 자본을 앞세워 남반구를 약탈해 막대한 초과이윤을 얻는 것’을 제국주의의 핵심으로 이해한다면, 중국이 서방 경제와 긴밀해진 이래 자본 축적과 경제 발전을 어떻게 이룰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국에 대한 해외 직접 투자가 급증했다. 화교 자본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 자본도 들어갔다. 처음에 서방 기업들은 중국을, 저임금 노동력으로 저가 상품을 만들어 선진국에 수출하는 공장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거기서 서방 기업들만 이득을 본 것은 아니었다. 중국 지배자들도 ‘개혁·개방’을 기회로 삼아 서방에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선진 기술을 도입하며,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많은 좌파들이 국유기업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을 근거로 중국이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서방 다국적기업들과의 협력에서 이 국유기업들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해외 자본의 유입, 농민공 같은 값싼 노동력의 풍부한 공급, 미국과 유럽의 소비 시장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중국 경제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이제는 여러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이 서방 다국적기업들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제국주의는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로 환원될 수 없다. 100여 년 전 고전 마르크스주의자인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가 여러 강대국의 경쟁 체제임을 강조했다. 그들에게 제국주의란 자본주의 발전의 결과로, 규모가 커져서 국경을 넘어 경쟁을 벌이게 된 기업들이 국가와 융합하면서 벌어지는 국가 간 경쟁이 핵심이었다. 이 점을 이해해야, 오늘날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낳은 지정학적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마이클 로버츠의 오해

스탈린주의나 옛 스탈린주의 출신 좌파만이 중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 로버츠는 매우 훌륭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다. 그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가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임을 지적하며, 그에 바탕해 세계경제를 탁월하게 분석해 왔다.

그렇지만 중국에 대한 그의 주장에는 결함이 많다. 마이클 로버츠는 굴리엘모 카르케디와 공저한 논문에서 세계 경제의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균등화되는 과정, 즉 잉여가치가 세계적으로 재분배되는 과정에서 기술이 뒤떨어진 기업에서 기술이 더 발전한 기업으로 잉여가치가 이전될 때 자본가들이 이익을 얻는 국가를 제국주의 국가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중국도 자국 노동자들이 창조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선진 경제들에게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맹점이 있다. 중국도 기술적으로 더 뒤처진 다른 남반구 지역들에서 잉여가치를 이전받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에서 둘째로 해외 직접 투자를 많이 한다. 그렇지만 마이클 로버츠는 중국의 해외 투자 규모와 그 효과를 과소평가한다.

무엇보다 마이클 로버츠의 제국주의 정의는 너무 경제에만 초점을 두고, 자본 축적과 지정학적 경쟁의 상호작용을 배제한다.

20세기 초 미국, 독일, 일본 같은 신흥 제국주의 국가들은 급속한 산업화를 바탕으로 제국주의 강대국이 됐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중국과 비슷하다. 당시 그 국가들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서 주로 영국과 프랑스 자본의 도움을 받았고, 그래서 자본 수입국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일군 산업화로 이 신흥 강대국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질 수 있었고 영토를 늘리며 기존 강자들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오늘날의 중국도 정확히 자국의 경제력 성장을 바탕으로 지정학적 확장을 꾀하고 있다.

무력시위로 대만을 ‘수복’할 의지를 드러내 온 중국. 이런 지정학적 쟁투가 제국주의의의 특징이다 ⓒ출처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마이클 로버츠가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을 오해한다는 점도 그의 잘못된 제국주의 규정에 영향을 준다. 그는 중국을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동떨어져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도 아닌 일종의 “과도기 경제(transitional economy)”라고 주장한다. 비록 노동자 민주주의는 없지만 중국 경제의 핵심이 국가 통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국가를 자본주의의 외부에 있다고 보고 있음을 방증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경제와 정치의 전일적인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체제의 핵심적 일부이고, 국가의 통치자들은 그 나름으로 자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생각하며 다른 국가들과 지정학적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가 군사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파괴 수단을 축적하는 것은 자본가가 시장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생산수단을 축적하려는 것과 같은 추진력에 달려 있다. 즉, 국가든 자본가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노동생산성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축적을 위해 잉여가치를 사용해야 한다. 축적 형태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군사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에는 유사한 역학이 작동한다.

마오쩌둥 집권기의 중국 제국주의

이렇게 (국가)자본주의를 이해하면, 중국이 1978년 시장 친화적 개혁·개방 또는 1992년 남순강화 이후에나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 국가가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마오쩌둥이 집권하고 경제가 대부분 국유화돼 있을 때도 중국은 자본주의 사회였고 중국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였다.

1949년 중국 혁명은 위대한 민족 해방 혁명이었지만, 사회주의 혁명은 아니었다.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농민 군대를 이끌고 국민당과 제국주의 세력을 대륙에서 축출했지만,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과정은 없었다.

중국 지배 관료는 산업을 국유화하고 경제를 ‘계획’했지만, 이는 외부의 경쟁 압력 속에 이뤄진 것이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지정학적 경쟁 압력 속에 살아남고자 마오쩌둥 등 지배 관료는 단기간에 강력한 국민 경제를 건설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짰다.

소수민족 정책도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이해관계에 좌우됐다. 처음에 중국공산당은 볼셰비키 모델을 따라 1921년에 건설된 혁명적 당이었지만, 1930년대를 거치며 민족주의 정당으로 전락했다. 권력을 잡은 뒤 이들은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부정하고 투르키스탄 동부(중국명으로 신장), 내몽골, 티베트를 장악했다. 천연자원을 장악하고, 소련과 인도 같은 다른 경쟁국과의 지정학적 쟁투에서 지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1949년 대륙을 통일하고 독자적인 자본 축적의 중심을 세우는 데 성공하면서, 중국은 약소국 처지에서 벗어나 주요한 지정학적 플레이어가 됐다. 1950~1953년 한국전쟁에서 중국은 미국과 직접 충돌했고 1962년에는 인도와, 1969년에는 소련과 국경 분쟁을 벌이는 등 주변 강대국과 거듭 충돌했다.

마오쩌둥의 중국은 미국·소련 같은 열강과 경쟁했기에, 자신의 영향력을 더 먼 곳까지 미치려 했다. 중국 외교 정책의 목표는 중국 국가자본주의의 이익을 수호하고, 미국과 소련 같은 ‘초강대국’에 맞서 외국의 지배계급들을 동맹으로 확보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마오쩌둥의 대외 정책은 혁명적 언사로 해외 지지자들을 고무하기도 했지만, 실천적으로는 보수적이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 정부는 다른 부르주아 정부와 외교 관계를 맺을 때 그 나라 노동계급의 투쟁이 영향받지 않도록 주의했다. 러시아의 외교 정책과는 상관없이, 각국 노동계급이 자국 지배계급에 맞서 독자적으로 선전하고 투쟁을 건설하는 것을 우선했던 것이다.

마오쩌둥의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였다면 마땅히 그런 전례를 따라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가령 중국과 인도의 관계가 단절되자, 중국은 인도의 라이벌인 파키스탄과 외교적으로 가까워졌다. 그러자 파키스탄 좌파들은 자국 독재 정부를 지지하라는 중국 정부의 ‘권유’를 받게 됐다.

그리고 중소 분쟁으로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마오쩌둥은 베트남 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 제국주의와 손잡았다. 그래서 1972년 마오쩌둥은 베트남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미국 대통령 닉슨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극진하게 대우했다.

중국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약간의 물질적 원조를 해 줬다. 팔레스타인해방민중전선(PFLP) 같은 팔레스타인 좌파들도 지원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에게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보다 훨씬 더 중요했던 것은 현지 정권들과 관계를 맺어 중동에 외교적 교두보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 정부가 아무리 독재적이고 억압적이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1975~1976년 레바논에 개입해 PLO를 분쇄하려 했던 시리아 정부와도 내내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런 정책은 당시 미국의 중동 핵심 동맹인 이란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1년 이란 샤(국왕)의 보안경찰이 국내에서 저항 세력을 학살하는 때에, 마오쩌둥은 이란 공주를 베이징에서 만나고 있었다. 중국 정부가 보기에, 자국의 라이벌인 소련과 긴 국경을 끼고 대치하는 이란 왕국이 “외국 침략에 맞서” 군비를 증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의 중국 제국주의

마오쩌둥 집권기 이후 중국은 세계 시장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났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최대의 공산품 생산국이자 수출국이고, 최대 석유 수입국이다.

중국 자신의 경제력이 커지고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이 중국의 생산에 의존하게 되면서, 중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도 그만큼 변하게 됐다. 그리고 국제 무대에서 점점 더 과감하게 행동하게 됐다.

그래서 중국은 그들 나름의 제국주의적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세계 패권을 행사하는 미국의 지위를 당장 대체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미국을 인도-태평양 지역 바깥으로 밀어내고 싶어 한다.

또한 대만을 통합해 중국의 재통일 완수하고자 한다. 그 인근인 남중국해를 통제하려는 시도도 열심히 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의 이런 시도를 좌시할 수 없다. 세계 GDP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후퇴하면 그 힘과 지위는 급격히 쇠퇴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이런 적대 관계는 상이한 생산양식 간의 쟁투가 아니다.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서 그 역학에 바탕한 적대이고 투쟁인 것이다.

그렇다면 《초제국주의》의 필자들을 비롯해 일부 좌파들이 바라듯이 중국이 남반구 국가들과 손잡고 국제 관계를 민주적으로 재편할 수 있을까?

가령 2013년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이것이 중국과 남반구 국가들에게 상호 호혜적인 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일대일로는 국제 무대에서 중국의 지정학적 위상과 영향력을 강화하고 중국이 해외에서 더 넓은 시장, 더 많은 천연자원과 에너지에 접근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초제국주의》가 주장하는 바와 달리, 중국이 일대일로에서 차관과 대출을 이용해 남반구 나라들에 진출하는 방식은 서방 강대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에 막대한 대출을 제공하는데, 그 돈은 주로 현지에서 중국 업체를 이용하고 중국 자재를 조달하는 데에 지출된다.

일대일로에 참여하려고 중국에 돈을 빌렸다가 못 갚게 되면, 중국은 상당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 스리랑카가 빚을 갚지 못하자 중국은 그 대가로 스리랑카 연해 전략 도시인 함반토타 항구를 99년간 운영할 권리를 얻었다. 이는 과거 서구 열강이 중국에 홍콩 등을 내놓으라고 했던 것을 연상케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남아공의 좌파 학자 패트릭 본드는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약탈적인” 행태를 보이며 “지역 독재자들을 지지”했다고 비판했다. 예컨대 짐바브웨 독재 정권은 중국의 투자로 직접 이득을 봤고, 중국 기업은 다이아몬드 매장층 개발 지원의 대가로 짐바브웨 군부에 새 국방 대학 건설 비용으로 9800만 달러를 줬다. 중국 기업들이 짐바브웨 현지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아프리카에서 중국은 기존 제국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지역 정치에 개입하고 현지 독재자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것이다.

쟁점들

진영 논리는 중국 같이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들을 ‘진보적인’ 국가로 오해하고, 그런 국가들의 지배계급과 좌파가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될 수 있다.

2022년 국제전략센터는 비자이 프라샤드가 엮은 《신냉전에 반대한다》는 책을 감수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유라시아”를 미국에 맞선 “저항의 주체”로 꼽았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쟁투는 제국주의 간 경쟁이고, 체제 내부의 일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국제 관계를 이러저러하게 손보는 것으로는 제국주의와 전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것은 공상이다.

진영 논리는 중국에서 노동계급이 자국 지배계급에 맞서 저항할 때 좌파가 그것을 외면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정치적 약점은 2019년 홍콩 항쟁 때 많은 좌파가 항쟁 지지를 꺼리는 데서도 드러났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서방 제국주의에 맞선 진보적인 국가로 여기는 것은 제국주의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간 관계를 주목하는 위로부터의 관점이다. 반제국주의 저항의 주체를 ‘진보적’ 국가군으로 보면, 제국주의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덜 중요하게 보게 된다.

좌파가 진영 논리를 지지하면, 국내에서는 자국 정부가 중국에 적대하지 않고 “평화 공존”을 지향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을 평화 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그런 평화주의적 요구에 동의하는 세력이라면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전략으로 연결될 수 있다. 냉전 시절에 서방 공산당들이 소련과의 평화 공존을 자국 정부에 촉구하려고 민중주의 전략을 추구한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지향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데서 노동계급의 국제적 저항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국제주의의 의의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자와 레바논에서 침공과 학살을 자행하는 지금, 이런 국제주의는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이 전쟁에서도 중국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날 중국은 현지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자, 중동의 유력한 지정학적 플레이어가 돼 있다.

지난 7월 중국은 하마스와 파타 등 팔레스타인 14개 정당의 대표자들을 베이징으로 불러서 화해를 중재했다. 국제전략센터는 이 ‘베이징 선언’을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으로 평가하는 비자이 프라샤드의 글을 번역해 냈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구실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친구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틈타 중동에서 위상을 높이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자국과 이스라엘이 맺어 온 오랜 경제적·외교적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거나 중동 자본주의의 질서를 해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이 제시하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기초는 ‘두 국가 방안’이다. 그러나 이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이 신기루를 좇게 만드는 길이다. 중국이 하마스 인사를 외교 무대로 끌어들였으나, 동시에 이는 하마스에게 불필요한 타협을 요구하는 장이 될 것이다.

글로벌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자신들이 상대하는 것의 실체, 즉 제국주의의 진면목을 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정 정의롭고 근본적인 해법은 제국주의를 쓰러뜨리는 데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스템의 일부인 중국 등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아래로부터의 국제주의적 연대와 저항을 통해 그렇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