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 반일 감정 확산:
일본인을 도매금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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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 폐수를 방류하자 중국 내에서 반일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중국인들은 주중 일본 대사관·공관뿐 아니라 일본인 학교·식당에 돌과 계란을 던졌다. 또, 일본에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었다.
중국 정부는 백지 시위와 달리 반일 행동을 사실상 독려하거나 용인하고 있다.(중국 외교부는 “바다는 일본의 하수도가 아니다” 하고 격하게 발표했다.)
시진핑 정부는 경제 위기로 인한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데 반일 감정을 활용하는 듯하다.
시진핑 정부는 부동산 위기, 사상 최고의 청년 실업률 등으로 사회적·정치적 불안정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시진핑 정부는 민족주의(중국에는 상이한 소수민족들이 많이 있으므로 정확하게는 한족 민족주의다)를 이용해 서로 다른 계급들을 공동의 행동으로 모으려 한다.
한 여성이 베이징 시내 슈퍼마켓의 텅 빈 소금 제품 선반 앞에서 “모두 일본 때문이야” 하고 고함을 질렀다는 언론 보도는 민족주의의 효과를 보여 준다.
그러나 반일은 모호한 말인 데다 흔히 일본인 전부를 반대한다는 뜻으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일본은 단일한 하나가 아니다.(본지 471호 하세가와 사오리가 쓴 ‘일본인 사회주의자가 말한다: 관동 대지진과 학살 100년’은 그것의 역사적 실례를 보여 준다.)
핵 폐수 방류 문제만 하더라도 반대하는 일본인들이 매우 많다(16면에 실린 ‘우석균 반핵의사회 운영위원 인터뷰: ‘일본에서도 핵 오염수 방류 반대 여론이 여전히 큽니다’를 보시오).
기시다의 지지율은 겨우 30퍼센트대로 2021년 집권 이후 최저 수준이다.
따라서 “반일”이 아니라 일본 ‘정부’의 핵 폐수 방류를 반대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뭉뚱그려 반일을 주장하면 서방 제국주의(이 경우 일본과 미국)와 그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지라는 타깃을 놓칠 수 있다. 그리 되면 핵 폐수 방류를 반대하는 일본인들이 무시돼, 오히려 일본 정부(와 바이든, 윤석열)의 입지가 강화될 위험이 있다.
1941~1945년 독소 전쟁 때 일이다. 당시 스탈린은 그 전쟁을 “애국 전쟁”으로 묘사하며 독일인 전체를 적대하는 민족주의를 부추겼다. 소련 공산당의 기관지 〈프라우다〉에는 “독일인을 죽여라!”는 머리기사가 실렸다.
이런 감정적 데마고기 선동 탓에 베를린이 점령될 때까지 독일 노동자들은 자국 정부에 등을 돌리기 어려웠다. 스탈린의 러시아 민족주의는 독일 국민의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그럼으로써 나치의 주요 이데올로기적 무기를 강화했을 뿐이다.
민족주의는 원래 중간계급의 친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주의는 민족주의란 중간계급의 친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이고 그 핵심 효과가 노동자들을 지배자들에게 속박케 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 민족이 아니라 자기 계급에 충실하도록 고무해야 한다.
그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모든 민족적 요구나 민족 분리를 노동자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레닌은 강조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노동자들에게 “조국이 없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엥겔스와 레닌이 피억압 민족의 해방 투쟁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엥겔스는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와 잉글랜드인들의 아일랜드인 차별을 반대했다.
레닌은 억압하는 민족(영국과 러시아)의 민족주의와 억압받는 민족(아일랜드와 폴란드)의 민족주의를 구별했다. 그는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명분으로 민족주의를 (추상적으로)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했다.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말이다.
“식민지와 유럽에서 소수민족들의 반란이 없이도, 온갖 편견을 지닌 프티부르주아지의 혁명적 분출 없이도 사회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 혁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 ‘순수한’ 사회 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살아서 혁명을 보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중국의 한족 민족주의는 결코 억압받는 민족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한족 민족주의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억압에 반발하며 생겨났다 하지만 이미 1949년부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오늘날 중국 공산당은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등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억압한다(본지 461호 ‘중국의 소수민족과 저항’을 보시오).
레닌이 억압받는 민족(또는 종종 국민)의 해방 투쟁을 지지한 결정적인 이유는 그런 투쟁이 제국주의를 타격하고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도 마찬가지 효과를 냈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단지 미국 같은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한다는 뜻(식민주의)이 아니다. 제국주의는 경쟁하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위계적 세계 시스템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심화됐고, 대기업들은 국가와 상호의존 관계를 맺으며 국제 무대에서 다른 나라의 대기업들과 경쟁한다. 국가는 군사력·외교력으로 자국 기업의 이윤 추구 활동을 뒷받침한다.
제국주의는 이렇듯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강대국들과 그 기업들의 영향력 투쟁을 가리킨다.
현재 중국은 영향력 재분할을 위해 미국·일본 등과 지정학적·경제적 경쟁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한족 민족주의(소위 중화주의)는 제국주의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제국주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한족 민족주의에는 오늘날 아무런 진보성이 없다.
우리가 특정 민족 운동을 지지할지 말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그 운동이 억압받는 민족(국민)의 것이고 제국주의에 정말로 맞서는 것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그 반대로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운동은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