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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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우크라이나 국가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혀야 한다고 보고 전면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쳤으며, 수십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푸틴은 동유럽 지배권 쟁탈전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수위를 높이고 있다.
2월 27일에 푸틴이 ‘핵 전력’ 부대에 투입 대기 명령을 내린 것이 그것이다. 이는 서방의 제재에 맞대응한 것이기도 하다.
서방과 한국 정부의 러시아 제재, 왜 문제인가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한다. 한국 정부나 주류 언론들도 러시아를 주되게 규탄한다. 하지만 서방이 나토의 동진을 추진해 온 것이 이 전쟁의 중요한 발단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편, 이번 전쟁은 미국 대통령 바이든에게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이어 임기 중 두 번째로 맞은 지정학적 굴욕이다. 러시아의 침공이 성과를 거두면, 미국의 위상은 추락하고 핵심 전선인 대중(對中) 압박에도 차질을 빚을 터다.
그래서 미국은 대(對)러시아 압박을 키우고 있으며, 이는 다시 갈등 고조로 이어지고 있다.
먼저, 제재가 있다. ‘솜방망이 제재’라는 평이 많지만, 실상은 사뭇 다르다.
미국은 세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자국의 지배력을 이용해 러시아를 국제 결제망 스위프트(SWIFT)에서 밀어냈다. 이로서 러시아의 무역에 적신호가 켜졌고,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다.
그런데 제재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것은 러시아 지배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이다. 루블화 폭락으로 평범한 러시아인들은 심각한 생활고에 직면했다. 러시아산 밀 수입에 의존하는 이집트 같은 나라들에서도 식료품 가격이 폭등했다.
게다가 제재는 평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됐다. 미국의 ‘금융 핵무기’ 투하에 푸틴은 실제 핵무기 카드를 내비치는 것으로 대응했다. 문재인 정부의 러시아 제재 동참이 문제인 까닭이다.
서방은 ‘총성 없는’ 전쟁 중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도 하고 있다. 2월 26일 미국 국무장관 블링컨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3억 5000만 달러 규모의 무기·물자·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도 무기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유럽연합과 그 핵심인 독일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약속했다.
이런 지원들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 때도 미국은 당시 열세였던 이스라엘에 막대한 무기를 지원해 (중동을 피바다로 만들며) 전세를 뒤집은 바 있다.
서방 강대국들의 동유럽 추가 파병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영국 등은 동유럽에 군대를 증파했다. 2월 25일에 나토는 동유럽에 신속기동군 4만 명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2003년 창군(創軍) 이래 최초의 일이다.
이런 긴장 고조 기류는 중요한 두 가지 사건으로 이어졌다. 첫째,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가입이 부결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이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런 행보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충돌을 격화시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둘째, 사민당이 이끄는 독일 정부가 독일의 군비 투자를 GDP의 2퍼센트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은 유럽연합의 핵심이지만 이전까지는 군사력 증강이 제약돼 있었는데, 이제 러시아 견제를 명분으로 굴레를 벗겠다는 것이다.(아시아에서 일본이 중국 견제를 이유로 재무장에 나서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럽연합 제국주의를 더 공격적으로 바꿀 변화이며, 나토 역시 강화할 일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승리를 바라야 하나?
본지가 지적했듯, 푸틴의 침공은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는 제국주의 침공이므로 반대해야 한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그런 저항이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벌이는 항전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의 군사적 승리가 평범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진보일까?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관되게 친서방 기조를 추진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앞세워 러시아계뿐 아니라 헝가리계·유대계·타타르계 등 소수민족들도 억압했고 극우를 군경에 끌어들였다(관련 기사). 현 대통령 젤렌스키는 전임 우익 정부에 대한 불만에 힘입어 당선됐지만, 집권 후에는 전임 정부의 기조를 적극 수용했다.
따라서 젤렌스키 정부는 강대국에 핍박받는 무고한 피해자가 아니라, 제국주의 갈등에서 한쪽을 편들면서 긴장을 고조시킨 (강대국보다는 부차적이지만) 작은 일부다. 이 정부가 푸틴에 군사적으로 승리하면,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평범한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억압·공격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친서방 정부의 승리는 미국·서방 제국주의의 자신감을 키워, 우크라이나와 동유럽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정세도 더 긴장케 할 것이라는 점이다.(아래를 보시오.)
강대국들 간 쟁탈전에서 어느 쪽의 승리도 평범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진보일 수 없다는 것이 현 상황의 비극이다. 그럼에도 그 제국주의 세력들 모두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으면 진정한 대안을 건설할 수 없을 것이다.
평화 협상이 체결되면 될까?
러시아 침공의 참상 때문에 즉각 평화 협상을 체결하라는 요구가 광범하다. 당사국들이 즉각 교전을 멈춰야 한다는 요구는 완전히 옳다.
하지만 동시에, 이 전쟁이 평화 협정이 없어서 벌어진 게 아님도 봐야 한다. 2014년 체결된 민스크 협정은 당사국의 군사 행동을 금지하지만, 이제 휴지조각이 돼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푸틴의 전쟁에 용기 있게 맞서는 러시아 국내의 반전 시위는 친서방 국가에 사는 우리에게도 영감을 준다. 우리도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되며 (친)서방 국가들의 제재를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고무적이게도, 2월 27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50만 명 규모의 반전 시위가 벌어져, 러시아의 침공도 규탄하고 독일의 재무장 시도에도 반대했다. 영국의 전쟁저지연합도 러시아와 나토의 군사 행동 모두를 반대하며 3월 6일 국제 공동 행동의 날을 호소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투쟁들이 성장·발전해 궁극으로는 제국주의 경쟁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군비 증강이 평화를 보장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군비 증강을 부추기는 논리에 이용되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은 “힘을 통한 평화” 운운하며 군비 증강을 적극 선동한다. 최근에는 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계에 편입돼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문재인도 2월 28일에 육군3사관학교에서 연설하며 “자주국방”을 강조했는데, 이는 우파가 선동하는 군비 증강을 자신이 이미 추진하고 있음을 부각한 것이다.
이미 군비 증강의 조짐이 비치고 있다. 미중 갈등의 쟁점이 돼 있는 대만에서 최근 예비군의 무장 강화와 대전차 실전 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그 한 사례다. 대만 정부는 1300억 원 규모의 미사일 수입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한국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정세를 더 긴장케 할 군비 증강 몰이에 반대해야 한다.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