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최대 규모의 국가보안법 재판:
저항에 대한 보복이자 미국과의 경쟁을 위한 내부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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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 홍콩에서는 민주주의 운동 활동가와 전직 야당 의원 등 47명에 대한 국가보안법 재판이 시작됐다.
2020년 6월 30일부터 발효된 홍콩 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부 세력과의 결탁으로 규정한 4가지 범죄를 처벌하는 법으로,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47인은 2021년 2월 국가 정권 전복 혐의로 기소됐고, 대다수는 이때부터 2년간 구금돼 있었다.
홍콩 검찰이 주장하는 국가 정권 전복 혐의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2020년 7월 홍콩 야권은 두 달 후로 예정된 입법회(의회)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를 선출하는 예비선거를 했다. 2019년 홍콩 항쟁의 여파 속에서 치러진 이 예비선거는 홍콩 시민 60만 명이 참가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베니 타이 전 홍콩대 교수, 전 입법회 의원 아우녹힌 등이 예비선거를 주도하고, 대표적 민주 운동가 조슈아 웡과 레스터 셤, 민간인권전선 대표 지미 샴, 전 입법회 의원인 클라우디아 모, 렁쿽흥, 람척팅, 레이먼드 찬, 기자 출신인 기네스 호 등이 선거에 참여했다.
홍콩 검찰은 이 예비선거가 입법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홍콩 정부를 마비시키고 행정장관을 낙마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된 정부 전복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홍콩 정부는 야권의 예비선거 이후 코로나19를 핑계로 입법회 선거를 연기하고 선거법을 개정해 중국에 충성하는 인사들만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입법회 선거는 결국 2021년 12월에 치러졌는데, 민주 진영의 출마자는 한 명도 없었다.
홍콩의 전 입법회 의원 데이스 쿽은 “전복은 체제를 뒤집어 엎으려고 폭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한 이에게 적용하는 혐의다. 선거에 출마하고 자신들의 공적 영향력을 활용해 정부가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하도록 만들겠다는 이들에게 적용하는 게 아니”라며 이 “47명 기소는 완전한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홍콩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시진핑의 공격은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야당·민주 인사 47명에 대한 기소 이전에도 조지프 쩐 추기경을 포함해 수많은 민주화 활동가들을 공격했다. 쩐 추기경은 2022년 5월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의 신탁 관리자로 일하다가 기소됐다. 이 기금은 2019년 홍콩 항쟁에 참가했다가 기소 위기에 처하거나 재정적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외국 조직에 홍콩에 대한 제재를 촉구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며 쩐 추기경을 기소했다.
2022년 4월에는 1989년 톈안먼 항쟁 추모 집회를 매년 주최해 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의 부주석 초우항텅 변호사가 사람들에게 이 집회에 참가할 것을 독려했다는 이유로 징역 22개월을 선고받았다.
보복
시진핑은 홍콩 야당 인사와 민주화 활동가들을 탄압하는 것 외에도 민주 진영의 언론사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 2021년 12월 홍콩의 유명한 독립 온라인 매체인 〈입장(立場)신문〉이 경찰의 압수수색과 간부들의 체포 때문에 발행을 중단했다.
〈입장신문〉은 2014년 ‘우산혁명’ 직후에 창간돼 민주 진영의 온라인 매체로 인기를 얻었고, 2019년 홍콩 항쟁 당시 경찰의 시위대 탄압을 온라인 생중계해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
시진핑이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홍콩의 민주 인사들을 공격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것은 그동안 홍콩에서 벌어진 저항에 대한 보복이다. 홍콩 반환 이후 홍콩에서는 시진핑이 홍콩 주민들의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축소하려 하자 이에 맞선 저항이 지속적으로 벌어졌다. 2003년 국가보안법 제정 반대 시위, 2012년 국민윤리 교육 반대 시위,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홍콩 항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편, 시진핑은 중국 본토에서도 성장하는 노동계급의 저항을 억눌러야 했다. 2015년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던 광저우와 그 주변의 공단지역에서 노동운동 활동가들을 탄압했고, 그 뒤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자스커지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학생들을 탄압한 것이 그런 사례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국과의 제국주의 경쟁도 국내 단속을 강화하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
중국 지배자들은 2019년 홍콩 항쟁과 같은 사건들이 중국 본토의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신장위구르나 티베트 같은 소수민족의 저항을 자극할까 봐 우려한다. 그래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제압하려 한다.
홍콩 상황을 주시해 오며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은 현 상황을 ‘709 검거’와 비교한다. 709 검거란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던 광저우 등지에서 중국 당국이 2015년 7월 9일부터 약 250여 명에 이르는 인권 및 노동 변호사들과 활동가들을 국가 정권 전복 혐의로 대대적으로 체포한 사건이다.
이런 비교에는 홍콩 상황에 대한 비관이 깔려 있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송환법과 국가보안법을 저지하지 못해 사기가 저하된 상황에서 시진핑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709 검거 이후에도 중국에서는 저항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지난해 말 ‘백지 시위’는 시진핑을 한 발 물러서게 했다. 지금도 억압적인 통제와 생활 수준 공격에 반대하는 불만과 저항들이 간간히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우한과 다롄에서는 의료보조금 삭감에 반대하는 노인들이 ‘백지시위’를 잇는 ‘백발시위’를 벌였다. 이런 저항들이 홍콩의 운동에 다시 기운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