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백지 시위’, 시진핑을 한발 물러서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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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장쩌민의 장례식이 제로코로나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에 기름을 붓지 않을까 하는 중국 지배자들의 우려가 있었다. 1989년 톈안먼 항쟁이 그해 4월 15일 개혁파 지도자인 후야오방의 사망을 계기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쩌민은 톈안먼 광장을 피로 물들인 당사자들이 뽑은 총리였고, 개혁·개방의 가속화로 부자가 된 기업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민들은 장쩌민을 추모하며 3분간 묵념하자는 시진핑의 제안을 공공연히 무시했다.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제로코로나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가 3연임을 시작하는 시진핑을 한발 물러서게 했다. 우루무치에서 제로코로나 정책 때문에 제때 화재 진압을 하지 못해 생긴 사상자들을 추모하는 백지 시위도 한몫했다. 12월 7일 중국 방역 당국은 상시적 전수 PCR 검사를 최소화하고 자가격리를 허용하는 10가지 방역 완화 조처를 발표했다.
백지 시위를 포함해 제로코로나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자 1989년 톈안먼 항쟁의 전야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시위가 중국 전역에서 벌어졌고, 시위의 양상이 격렬할 뿐 아니라 공산당 비판과 시진핑 퇴진 구호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백지 시위와 부분적 양보
시진핑이 서둘러 10가지 방역 완화 조처들을 내놓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억압적 조처들을 거둬들인 것은 아니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톈진 등 주요 도시에서는 봉쇄를 풀고 방역을 완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제로코로나 봉쇄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 랴오닝성의 진저우시는 코로나 감염자가 나타나자 전면 봉쇄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봉쇄를 해제했다.
지난 6일 장쑤성 난징공업대는 감염자가 한 명 나오자 학생들의 이동을 가로막았다. 학교 측의 봉쇄에 항의해 학생들은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나선 한 학생은 “우리를 건드리면 이 학교는 제2의 폭스콘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정저우시의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봉쇄에 항의해 집단 탈출한 사건은 시진핑을 물러서게 만든 항의 시위의 도화선 구실을 했다. 지난 4일 밤 후베이성 우한대에서도 매일 감염자가 수백 명씩 나오자 학생들은 집으로 보내 줄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대학 50여 곳의 학생들이 백지 시위의 주축이었다. 그래서 시진핑은 시위 확산을 막으려고 조기 방학을 실시해 학생들을 고향으로 내려보내고 있다. 대도시의 시위 장소에 공안들을 배치해 자발적인 시위가 벌어지지 못하게 막고 있다. 또, 백지 시위에 관한 컨텐츠를 삭제하거나, 올리지 못하게 하고 인터넷 우회접속 프로그램인 가상사설망(VPN) 접근을 차단하는 등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검열을 강화하고 있다.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로 체포된 사람들이 아직도 풀려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0월 13일 베이징 하이뎬구 쓰퉁차오 다리에 “나라의 도적인 독재자 시진핑을 파면하라”는 현수막을 내건 펑리파(彭立發) 씨다. 중국 정부가 배후에서 사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웹사이트 〈런민원두(人民文讀)〉는 펑리파 씨를 두고 “외부 세력에게 협조한 인민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마녀사냥은 더 일반적인 탄압의 전주곡이다.
저항의 확산
전국적 저항의 직접적 계기는 제로코로나 정책 때문이지만, 더 깊게 들여다보면 시진핑 집권 동안 가속된 통제와 착취의 강화가 만들어 낸 숨 막히는 상황 때문이다. 시진핑은 공산당과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세력들은 물론이고, 독립 노조를 결성하거나 농민공 단체를 후원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을 탄압했고,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억눌렀다.
많은 사람들은 시진핑의 거침없는 독재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를 저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낙담하거나 사기 저하돼 있었다. 2019년 홍콩 항쟁의 패배가 이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그런데 이번 백지 시위는 무소불위처럼 보이는 시진핑을 한발 물러서게 만들었다.
홍콩에 기반을 둔 〈중국노동회보〉를 보면, 많은 일터에서 크고 작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 또, 환경 파괴나 열악한 교육 환경에 항의하는 시위들도 존재한다. 일련의 시위들은 경찰과 경영진을 양보하게 만들기도 했다. 얼마 전에 벌어진 폭스콘 노동자들의 저항이 그런 사례였다.
아직까지 이런 투쟁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고 분산적이고 개별적으로 벌어졌다.
이런 저항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투쟁들이 서로 연결될 뿐 아니라, 특히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연결될 때 중국 지배자들을 무릎 꿇릴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
시진핑이 제로코로나 정책에서 후퇴하고 있지만 그에게 닥칠 더 심각한 난관은 통제 완화가 초래할 위험이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이 제로코로나 정책을 철회하고 방역을 완화할 경우 사망자가 150만 명을 넘어 어쩌면 210만 명까지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가 닥치자 시진핑은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봉쇄 정책으로 일관했었다. 중국의 보건 환경이 열악한 데다 중국산 백신의 효과도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20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시진핑은 중국이 소강사회*를 달성했다고 선포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중국의 방역 시스템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이 노동력인구의 광범함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공공의료와 보건에 대한 지출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중국 지배자들은 이런 사회 시스템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레닌이 강조한 대로 노동자 대중이 직접 사회를 운영하는 사회를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서방 자본주의와 본질이 다를 바 없는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중국공산당과 정부 관료들이 국유기업을 통제하며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