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딸”들의 보수파와의 결별 요구는 정당하다
〈노동자 연대〉 구독
주류 언론과 정치인들이 “개딸”들을 연일 공격하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그들과 결별하라고 압박하고 있다.(〈한겨레〉와 〈경향신문〉도 사설을 통해 그런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개딸”들을 ‘비민주적’, ‘팬덤 정치’, ‘홍위병 정치’,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라고 비난한다. 주로 여야 간 협치를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개딸”은 ‘개혁의 딸’의 약자로, 대선 이후 민주당에 입당한 개혁 염원 청년 여성들을 일컫는 용어였다. 요즘은 특정 세대나 성별보다는 급진 개혁 염원 이재명 지지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언론들은 “개딸”을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라고도 부르는데, 사실 “개딸”들은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한다기보다는 윤석열 정부에 강경하게 반대하고 민주당에 개혁 입법 실천을 강하게 요구한다는 점에서 강성이다.
보수파들은 일부 과도한 행태를 침소봉대하며 “개딸”을 문제 삼는데, 그 이유는 개혁 염원 자체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것이다. 그들에게 “개딸”은 일종의 코드명인 것이다.
보수 언론은 민주당이 “개딸에 휘둘린다”면서 검수완박 입법, 이재명 체포동의안 반대뿐 아니라 주 69시간 노동시간 연장 반대나 ‘노란봉투법’ 입법 시도 등을 거론한다.
“개딸”들은 김건희 특검도 빨리 도입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규탄하는 장외 집회에 참가했고, 일부는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에도 참가한다.
그들은 검찰의 이재명 기소와 여권의 이재명 민주당 대표직 사퇴 압박에 거세게 반발한다. 하지만 민주당 보수파 비판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이재명에게도 불만을 토로했다. 보수파와 타협해선 안 된다는 올바른 요구이다.
그들은 민주당 친문계와 일부 보수적 의원들을 “수박”이라고 부른다. 수박이 겉은 녹색인데 속은 빨간 것(국민의힘이 사용하는 색)에 빗대, 민주당 내 보수파를 비난하는 것이다. “개딸”들의 일부는 문재인도 수박의 일부라고 비판해(아마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친문계의 반발을 샀다.
이런 언행들에서 진보 성향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대한 환멸도 느낄 수 있다.
코드명
따라서 “개딸”과 결별하라는 다양한 보수파들의 압박은 안보·경제 위기가 깊어지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이재명에게 대중의 개혁 염원보다는 지배계급의 위기 탈출 의제에 더 충실하라는 압박인 것이다.
지금 윤석열은 서방(미·일) 제국주의 지원 노선과 노동시간 연장 개악을 동시에 밀어붙이려다가 역풍을 맞았다. 기업주들은 윤석열을 지지했지만, 대중의 반발이 크다. 북한에 이어 러시아까지 동해에서 미사일 실험을 하는 등 안보 위기도 더 커지고, 경제도 더 나빠지고 있다.
게다가 윤석열의 한일 협력 결단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보답이 신통찮다. 미국의 반도체법, 일본의 역사 왜곡 교과서 발표와 핵발전소 오염수 방류 방침 등.
결국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두고 회담의 한국 측 책임자인 대통령실 안보실장 김성한이 경질됐다. 윤석열의 50년 지기이자 외교·안보 과외교사로 불렸던 김성한의 경질은 정권 핵심부의 난맥상을 드러낸다.
정치 위기와 정치 양극화 때문에 총선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주류 정치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바로 이를 배경으로 이재명에게 “개딸”을 단속하라는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경쟁을 국회 내 말다툼으로 제한하고, 경제·외교·안보에선 초당적 협력을 하라는 것이다.
이런 압박에 대한 이재명의 대응은 소심하게도 좌우로 양팔 벌리기를 하는 것이다. 개혁파의 지지도 붙잡고 보수파와도 타협하며 시간을 벌어 내년 총선에서 이럭저럭 이기면 다음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잡을 수 있다는 실용주의의 발로다.
이재명은 최근 일제 강제동원 ‘해법’ 합의 철회 장외 집회를 좌파 정당들과 3주 연속 공동 개최했다. 3월 27일에는 긴축 기조에 어긋나는 양곡관리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동시에, 이재명은 보수파의 압박도 수용하고 있다. “개딸”들에게 자제를 요구하고, 민주당 지도부를 개편해 밀려났던 친문계들을 포함시켰다.
지도부 개편 후 당내 보수파는 총선 공천권도 내놓으라고 한다. “개딸”과도 아예 “헤어질 결심”을 하라고 한다. 새로운 통합 지도부는 이재명에게 지배계급의 의제에 충실하라는 압력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개딸” 단속 등 보수적 압박에 대한 이재명의 양보·후퇴는 보수·우파들의 기만 살리는 셈이다. 반면 개혁에 대한 기대 때문에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들에겐 실망을 주는 일이다.
이는 이재명 본인에게도 불리하다. 이재명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당과 일체가 되다가 패배한 자신의 대선 운동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개혁 염원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보수파와 주류 자체의 “개딸” 공격이 단지 특별히 유난한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개딸” 현상은, 문재인 정부의 배신에 실망과 좌절을 겪었지만,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에, 탈정치화하기보다는 민주당을 개혁해 정권 교체를 이루고 개혁을 얻겠다는 염원의 표현이다. 야당 중 유일하게 집권이 가능해 보이고 이재명 같은 개혁파가 민주당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에 개입해 개혁파를 지원·엄호하고 민주당 내 보수파를 비판하는 민주당 내부 투쟁으로 시야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집권을 통해 개혁을 얻어내겠다는 생각은 이미 세 차례(김대중-노무현-문재인)나 실패했다. 민주당이 개혁파 정치인을 앞세워 민중주의(진보적 포퓰리즘) 전략을 활용하지만, 민주당의 강령과 전략과 구성과 실천은 한국 자본주의 수호와 지배계급의 의제(특히 친제국주의)에 충실한 정당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집권하든 못 하든 노동계급과 여성은 스스로 조직화해 개혁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윤석열 퇴진 운동 같은 반정부 운동을 키워 거리 투쟁들이 성장하고 특히 노동자 투쟁들과 만날 때 개악 저지, 개혁 실현을 이루고 진정한 대안을 만들 가능성도 커진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지지자들을 배신했는데도 다시 민주당에게 개혁 기대가 생긴 것에는 좌파 측이 정치적으로 부진한 것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좌파 측은 거의 다 총선에서 윤석열을 심판하자며 지금 당장 반정부 투쟁을 보편화하려 하지 않는다. 민주당과는 공조하면서 윤석열 퇴진 운동과는 거리를 둔다. 대중의 불만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불만의 폭발을 일정 수위 이하로 관리하는 구실을 하는 셈이다.
그동안 윤석열은 시간을 벌 수 있고, 앞서 나아가는 대중은 김이 빠질 수 있다. 2011년 하반기 이명박은 그로기 상태로 몰렸었다. 하지만 바로 넉 달 뒤인 총선에서 심판하자며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은 시간을 낭비했다. 그러다 오히려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내주어 대중은 사기가 저하됐다. 그 여파가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와 대선에까지 미친 사례를 개혁과 진보 염원 활동가들은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