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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때늦은 낙태법 논의, 그조차 가로막는 윤석열 정부
임신중단권을 보장하라

최근 정부(보건복지부)가 국회에서 임신중단 관련 모자보건법 개정을 가로막고 있다.

지난 9월부터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논의가 시작됐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지 4년이 지나고, 관련 법안들이 발의된 지 3년이 다 돼서다. 정부와 국힘·민주당, 자본가 계급의 양당이 임신중단권 보장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보여 준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차관은 국회 회의에서 법체계상 “형법(낙태죄) 개정이 우선”이기 때문에 모자보건법 개정을 할 수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렇다고 법무부나 법제사위 의원들이 당장 형법 개정을 추진하려 드는 것도 아니다. 국회 법제사위에 3년째 계류돼 있는 형법 개정안은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현재 임신중단은 더는 불법이 아니지만, 대체 입법이 마련되지 않아 권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노동계급 등 서민층 여성들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4년 전 헌재의 판결로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여성들은 법적·제도적 공백으로 여전히 불충분한 정보 제공, 비싼 낙태 비용, 병원들의 시술 거부 등에 직면해 있다.

이런 현실은 생계비 위기가 심각한 속에서 청소년·청년이나 서민층 여성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임신중단의 때를 놓쳐 영아 유기·살해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는 11월과 12월에 기자회견을 열고 “진도 좀 나가자”며 임신중단 권리 보장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을 촉구하고, 이를 가로막는 보건복지부를 규탄했다.

12월 15일 유산유도제 도입과 모자보건법 개정을 가로막는 보건복지부 규탄 기자회견 ⓒ출처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반면, 가톨릭 교회 등 임신중단 반대론자들도 입법 공백 상태를 규탄하며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임신중단을 크게 제약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안을 지지한다. 〈조선일보〉도 최근 사설에서(12월 23일) 입법 공백 탓에 후기 낙태가 만연하다고 개탄하며 임신중단을 제한하는 입법을 촉구했다.

정부와 자본가 계급 양당은 첨예한 쟁점인 임신중단 문제가 선거를 앞두고 불거져 지지율에 영향을 줄까 봐 논의를 꺼린다. 그래서 당장 이런 요구를 수용하진 않을 듯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힘은 임신중단권에 본질적으로 적대적이다. 한국의 자본가 계급 전체가 낮은 출산율을 크게 우려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노동력과 병역 인구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경제적·지정학적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지부진한 임신중단권 논의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7월 영아 살해·유기 문제에 직면해서는 신속하게 처벌을 강화하고 출산통보제·보호출산제를 추진했다. 이처럼 정부의 메시지는 (여성의 처지는 아랑곳 않고) ‘일단 무조건 낳으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형법이 우선”이라며 모자보건법 개정을 막는 실제 목적도 형법에서 낙태죄를 존치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차후 임신중단 공격이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임신중단 문제는 다시 첨예하게 대두할 것이다.

임신한 여성의 적잖은 수가 임신중단을 경험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임신 여성의 17.2퍼센트). 임신중단권은 여성해방에 필수적인 요구이고, 주로 노동계급의 쟁점이다.

여성의 삶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임신·출산을 여성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면 여성은 평등하게 사회에 참여할 수 없다. 또, 임신중단권 부재는 노동계급 등 서민층 여성에게 훨씬 가혹하다. 부유층 여성은 지금도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기간과 사유 제한 없이 무상으로 낙태할 권리가 법으로 보장돼야 한다.

민주당도 책임 있다

정의당 의원들과 권인숙 등 민주당의 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 의원들이 임신중단권을 보장하라는 목소리를 국회에서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자체는 임신중단권 보장을 한사코 외면하고 있다. 권인숙 의원이 발의한 낙태죄 폐지와 조건 없는 낙태 허용 법안은 민주당 내 극소수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국힘 못지 않게 민주당도 현재 임신중단권 방치에 책임이 크다. 민주당은 국회 다수당인데도 임신중단권 입법에 나서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는 민주당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2020년에 형법상 낙태죄 존치를 추진하며 임신중단권 염원을 배신했다(14주 이내의 임신중단만 조건 없이 허용). 반발에 부딪혀 입법을 강행하진 못했지만, 그 법안은 아직도 살아서 현재 보건복지부가 모자보건법 개정에 반대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민주당도 한국 자본가 계급의 이익(출산율 높이기)을 공유하기에 임신중단 문제에 보수적이다.

임신중단권 운동이 민주당에 기대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유산유도제(미프진) 즉각 도입하라

보건복지부는 유산유도제(미프진)의 도입도 가로막고 있다. 남용을 막으려면 형법(낙태죄) 개정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성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임신중단을 제한하는 것일 뿐이다. 미프진 도입은 다른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입법이나 법 개정 없이 정부(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절차에 따라 도입하면 된다.

정부는 안전한 약물 임신중단 정보를 제공하는 해외 웹사이트 ‘위민온웹’ 차단도 지속하고 있고, 법원은 올해 10월에 이를 반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인권단체들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런 처사는 약값을 높이고 위험한 가짜 약 사용을 늘리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미프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필수 의약품으로, 안정성과 효과성이 이미 입증됐다. 세계 97개 국가가 도입했다. 올해 약사 172명과 의사 59명 등이 식약처에 미프진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신속하게 도입하라는 진정서도 제출했다.

유산유도제가 도입되면 안전하고 간편한 초기 임신중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유산유도제를 즉각 도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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