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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증보 ‘36주 낙태 영상’ 여성 살인 혐의 입건:
임신중지는 “살인”이 아니다. 여성 자신의 권리여야 한다
정부의 처벌 시도 규탄한다

8월 12일 경찰이 ‘36주 임신중지 유튜브 영상’을 올린 여성과 임신중절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 현재 상황에 맞게 기사를 업데이트했다.

8월 12일 ‘36주 임신중지 유튜브 영상’(제목: ‘총 수술비용 900만 원, 지옥 같던 120시간’)을 올린 20대 여성과 임신중절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살인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영상은 사실로 밝혀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해당 영상이 논란이 되자 재빠르게 그 여성과 임신중절 수술을 한 의사에 대해 ‘살인’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고, 일사천리로 경찰 수사가 진행됐다.

정부는 ‘낙태죄’ 폐지 이후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라는 여성들의 요구를 한결같이 무시해 왔다. 그래 놓고 임신중지에 대해 “살인” 운운하며 떠들썩하게 도덕적 공포를 조장해 처벌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나의 몸, 나의 선택 2018년 비웨이브의 임신중지 전면 합법화 시위 ⓒ이미진

‘낙태죄’는 여성운동의 성과로 2019년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2020년까지 대체입법이 마련돼야 했지만,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 모두 책임을 방기하며 임신중절약(미프진) 도입과 임신중지 합법화 등 여성의 요구를 외면했다.

법적·제도적 공백 속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임신중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노동자·청년·서민층 여성들은 비싼 병원비와 사회적 낙인으로 고통받고 있다.

정부는 이런 고통을 해결하기는커녕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의 칼을 빼들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무기를 지원하고, 인종학살 국가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늘려 온 윤석열 정부가 “생명 보호” 운운하며 임신중지를 비난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이다. 이스라엘의 잔혹한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1만 4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살해됐지만, 정부는 이스라엘을 살인자라고 비난한 적이 없다.

후기 임신중지를 고리 삼은 공격에 반대해야

경찰은 “36주면 거의 출산하기 직전이라는 점에서 통상의 낙태와는 다른 사건”이라며 “엄정 수사 방침”을 거듭 밝혔다.

보수 단체들도 ‘36주에 낙태하는 것은 살인 행위와 다름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임신 후기라 할지라도 태아는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니고 모체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만 하는 모체의 일부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태아의 권리”나 “임신중지가 살인”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여성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임신중지권은 여성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데서 중요한 권리여야 한다. 임신을 유지할지 말지는 오롯이 여성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임신 기간과 관계없이 적용돼야 한다. 기간을 제한하면 결국 그 조건의 충족 여부를 국가나 의사 같은 제3자가 판단하게 된다. 이는 여성에게 임신중지권을 주는 것이 아니다.

후기 임신중지는 시점을 놓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갑자기 불가피한 사유가 생겨 후기 임신중지를 결심할 수도 있다. 여성이 후기 임신중지가 여러모로 부담이 클 수 있음을 알면서도 선택하는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36주 임신중지 유튜브 영상’을 올린 20대 여성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 따른 호르몬 불균형으로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늦게까지 임신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임신 후기에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도 이처럼 엄연히 존재하는 일이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모임넷)’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례와 같은 후기 임신중지는 ‘낙태죄’가 존재하거나, 처벌 기준을 아무리 엄격하게 해도 일어나는 일로써, 해당 여성과 병원을 처벌한다고 해서 다시 벌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성명서 ‘지금은 살인죄 여부가 아닌 ‘36주가 되기 이전에 무엇이 필요했는지’를 물을 때다’)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한 방식으로 임신을 중지할 위험을 키워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뿐이다.

임신중지를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기 때문에 항상 보수주의자들은 임신중지권 전반을 공격하기 위한 발판으로 먼저 후기의 임신중지를 문제 삼아 왔다. 임신 후기 태아는 인간에 가깝다고 주장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신중지권을 온전히 방어하려면 후기 임신중지에 대한 공격과 태아 생명권 논란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와 우파들은 지금처럼 극소수의 후기 임신중지를 시범 케이스 삼아 공격함으로써, 임신중지를 전반적으로 제약하고 처벌하는 조치 및 법안 등을 추진할 수 있다.

이미 경찰은 어제(8월12일) 한 언론사의 미프진 거래 실태에 대한 기획보도를 명분 삼아 미프진의 불법 유통과 거래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조처는 미프진이 절박하게 필요한 여성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음지로 내몰 것이다.

또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국회에서 발의했던 임신중지 제약 법안(각각 임신 6주, 10주 임신중지만 허용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는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다시 발의할 수 있다.

지난 5년 동안 민주당은 국회 다수당이었지만,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는 법을 제정하라는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임신중지 찬반 세력들의 눈치를 보며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우파들은 ‘낙태 반대’를 자신의 정치적 어젠다로 삼으며 임신중지권을 공격해 왔다. 지난 20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을 때 전 세계 우파는 크게 고무된 바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이번 공격도 국내에서 우파를 고무하는 효과를 일부 낼 수 있다.

후기 임신중지를 고리로 한 “태아 생명권” 논리에 흔들리지 말고 윤석열 정부와 우파의 임신중지 공격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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