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총선:
만델라의 정당 ANC가 심판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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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 최초로 단독 집권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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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 결과를 반영해 6월 1일(현지 시각)에 필자가 기사를 수정했다.
5월 29일(현지 시각) 실시된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 중간 개표 결과 넬슨 만델라의 정당이었던 아프리카국민회의(ANC)가 사상 처음으로 과반 득표에 미달했다.
개표가 거의 끝난 6월 1일 토요일 현재 ANC의 전국 득표율은 40퍼센트다. 지난 2019년 총선 때보다 15퍼센트포인트 이상 줄어든 것이다. 남아공 정부가 이스라엘의 인종 학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주도하지 않았더라면 득표는 더 줄었을 것이다.
친기업 정당인 민주동맹이 약 22퍼센트를 득표해 2위를 기록했다. 민주동맹은 흑인 중간계급과 백인 상당수에게 지지를 받았다.
애초에 ANC는 아파르트헤이트(1948~1994년에 남아공에 존재했던 지독히 인종차별적인 체제) 종식에서 떨친 명성과, ANC 지도자 넬슨 만델라의 명망을 이용해 득을 봤었다.
이후 30년 동안 ANC의 득표는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언제나 과반을 차지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후 첫 선거였던 1994년 총선에서 ANC는 62.5퍼센트를 득표했다. ANC 득표율은 1999년에 66.4퍼센트로 오르고, 2004년에는 70퍼센트 가까이 이르렀다. 그 후 득표가 줄기 시작해, 2009년 66퍼센트, 2014년 62퍼센트, 2019년 57.5퍼센트를 기록했다.
이제 ANC는 연립 정부를 구성할 파트너를 하나 이상 찾아야 한다.
5년 전, 현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는 만연한 부패를 일소하고 여당 ANC를 개혁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부패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흑인 대다수의 처지는 더 나빠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판잣집에서 산다. 국가는 그들이 거주 허가를 받지 못한 곳에서 산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둘러 다 쓰러져 가는 판자집을 철거해 버린다. 하루에 열 시간씩 정전이 일어나기 일쑤다. 공식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대비 3분의 1로 굳어져 있지만 실제 수치는 이보다 높다.
전 대통령 제이컵 주마의 신당 ‘국민의 창(MK)’이 ANC의 표 일부를 가져갔다. 금요일 밤 현재 MK의 중간 득표율은 약 13퍼센트다.
주마는 자신이 ANC보다 더 급진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주마가 실제로 원하는 것은 정부 이권 분배 방식을 바꿔 자기 파벌과, 특히 자기 출신지인 콰줄루나탈주(州)를 부유하게 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지난 30년간 남아공에서 변화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된 방식 때문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ANC와 대기업들의 타협으로 종식됐다. 노동자 투쟁이 분출하고 강력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흑인 거주지에서 봉기가 계속 벌어져 아파르트헤이트를 위협했다. 이 투쟁들은 남아공에서 자본주의 그 자체를 타격할 길을 열기도 했다.
대기업 일부와 백인 기성 권력자들은 모든 것을 잃느니 흑인 야권과 타협을 맺는 것이 낫다고 결정했다. 이 타협은 양측 모두가 상당한 양보를 한 덕에 가능했다. 이후 ANC는 기업에 대한 공격을 일절 꺼리게 됐다.
물론 1994년 이후 변화가 있긴 했지만, 결코 충분치 않았다. 그리고 진정한 경제적 권력은 여전히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권세를 누리던 바로 그 기업들의 손에 있었다. 극소수 흑인 엘리트층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부유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 중 하나인 남아공에서 말이다.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부의 86퍼센트를 소유하고, 상위 0.1퍼센트가 소유한 부가 전체 부의 3분의 1에 이른다. 자산분배율 최상위 0.01퍼센트에 속한 3500명에게 남아공 전체 가구순자산의 15퍼센트가 집중돼 있는데, 이는 하위 90퍼센트의 가구순자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은 것이다.
절박한 상황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반동적인 외국인 혐오 요구로 이끌릴 수 있다. 이번 주에 좌파 분석가 데일 맥킨레이는 이번 선거의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우익의 부상”이라고 지적하는 글을 썼다.
맥킨레이는 이렇게 썼다.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벌어져 온 일이 남아공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남아공의 선거 지형이 점차 우경화하는 것이다.
“[극우 정당인] 애국동맹(PA)의 증오로 가득 찬 욕설과 ‘외국인’에 대한 폭행 위협이든, ‘법질서’에 입각해 국경 통제를 부르짖는 민주동맹이든, 이민 체계에 깊이 뿌리 박힌 부패와 냉소와 통치 무능을 정치 개혁이라는 포장으로 감춘 ANC든 마찬가지이다.
“2024년 선거 판세에서 ‘외국인들’(특히 가난한 아프리카 출신자들) 희생양 삼기가 점점 더 인기 있는 정치적 ’스포츠’가 되고 있다.”
맥킨레이는 이렇게 비판했다. “과거를 신화화하기, ‘문화’를 이용해 먹기,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 그리고 세상의 무자비함에 대한 찬미를 (다시금) 흠뻑 수용하기. 이것이 남아공을 매우 위험하고 파괴적인 길로 내몰려 하는 슬프지만 냉혹한 현실이다.”
이런 요소들은 진정한 좌파적 정치가 필요함을 뚜렷이 보여 준다.
남아공 경제는 여전히 백인 정착민들이 지배한다
‘아바랄리 바셈존돌로[판자촌 사람들]‘는 회원 수가 15만 명에 이르는 남아공 최대 기층 단체 중 하나다. 이 단체는 노동자·빈민에 초점을 맞추고, 토지 점거 운동을 지지하며, 흑인 거주구 및 빈민가 사람들의 조건 개선 쟁취 투쟁을 지원한다.
오랜 시간에 걸친 단체 내 민주적 절차를 거쳐, 아바랄리는 총선 투표 방침을 경제자유투사당(EFF) 지지로 정했다.
줄리우스 말레마가 이끄는 EFF는 좌파적 공약을 내걸었다. “오늘날 남아공 경제는 여전히 소수의 백인 정착자들이 통제한다.
“1994년 정치적 변화는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것은 흑인들을 경제적·사회적 아파르트헤이트에 계속 종속시키려는 사기극이었다.”
EFF의 핵심 공약은 광산·은행을 비롯한 핵심 경제 부문에 대한 무상 국유화였다. 그러나 EFF는 자신이 선호하는 “애국적” 자본 부문에 대해서는 타협을 했다.
29일 금요일 오후 현재 EFF의 득표율은 약 10퍼센트다.
아바랄리는 이렇게 밝혔다. “우리 단체가 설립된 지 19년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채워진 빈곤·치욕·탄압의 족쇄에서 해방되기 위해 투쟁해 왔다.
“ANC는 2013년 이래로 우리 지도자들을 살해하고 있다. 2022년에 우리 지도자 세 명이 암살당했고, 또 다른 한 명이 경찰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 따라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은 ‘탄압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ANC에 보내는 것이고, 바라건대 아예 ANC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다.
“신당 MK는 ANC의 잔가지에 불과하다. ANC 최악의 인물·파벌 몇몇이 ‘국민의 창’에 있다.
“우리는 대중 민주주의 권력을 수립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에 헌신하는 사회주의 조직이다. 그러나 현재 출마한 정당들 중 좌파 정당이 없으므로 특정 정당의 강령을 위해 투표할 수도, 그 정당이 민중과 진보 원칙에 충실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투표할 수도 없다.
“우리 핵심 원칙 중 다수는 투표로 이룰 수 없다. 예컨대 모든 토지를 상품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 공직자 소환권 확립 같은 것들이 그렇다.
“우리는 지역 사회에서 운동을 조직하고, 빼앗긴 땅에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해 왔다. 우리는 거리에서, 언론을 통해, 협상장에서, 법정에서 투쟁을 벌여 왔다.
“아래로부터 대중 민주주의 권력을 창출하고 전국에 코뮌을 건설하고 세계적 운동들의 일부가 되는 것이 우리 정치의 핵심 토대임은 변함이 없지만, 2006년 이래 우리는 모든 정치 정당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여러 차례 선거에 전술적 개입을 해 왔다.
“아바랄리는 2024년 총선에서 EFF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아바랄리는 EFF에 가입하지도, 무비판적 지지를 제공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전술적 투표다.
“아바랄리는 아바랄리로 남을 것이며, 독립성을 계속 유지하고 민중 운동으로 남을 것이다. 5월 29일에 우리는 투표장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5월 30일에 우리는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2019년에 남아공 최대 노동조합 금속노조(Numsa)는 사회주의혁명노동자당을 창당했다. 금속노조는 2012년 마리카나 광산에서 파업 중이던 흑인 광원들이 경찰에 학살된 일의 여파 속에서 창당을 결정했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ANC에 대한 대안을 세우는 데에 너무 굼떴고, 그렇게 세운 정당이 투쟁을 위한 당인지 선거 승리를 위한 당인지도 불분명했다. 결국 금속노조의 신당은 투쟁에도 효과적이지 못했고 득표도 매우 저조했다.
이번에 금속노조는 후보를 내지도 지지 정당을 밝히지도 않았고, 우익 세력에 대한 경고를 표하는 데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