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노동정책은 어디로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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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이재명 정부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정부 임기 내에 추진할 구체적인 정책이 담길 것으로 여겨져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발표 직전에 정부는 국정과제 세부 계획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좌우 모두의 눈치를 보며 줄타기 하는 중도 성향 정부 내부의 긴장이 반영된 듯하다. 그럼에도 언론들을 통해 일부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다.
얼핏 보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자들이 요구해 온 쟁점들을 상당히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노조법 2·3조 개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장, 노동시간 단축, 산재보상 국가 책임제, 임금 체불 근절, 전국민 고용보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흡하거나 부족한 것들이 많다.

이재명 정부의 대표 개혁안인 노조법 2·3조 개정만 봐도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등 중요한 쟁점에서 후퇴했다. 사용자들은 이런 법안조차 반대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들의 눈치를 보며 법안 처리를 미뤄 왔다.
정부는 7월 말에 화물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제라 할 수 있는 안전운임제를 통과시켰지만, 3년 뒤면 일몰(종료)되는 시한부 법으로 만들어 화물 노동자들의 불만이 크다.
이번에 공개된 노동 관련 국정과제들도 선언에 그치거나 멀찍이 뒤로 미뤄진 게 많다.
주 4.5일제 도입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실제 내용은 금융과 보건 부문에서 자율 시행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주 4.5일제는 임기 후반인 2028년에나 검토한다니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은 법률 개정이 아니라 시행령을 개정해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으로 언제든 손쉽게 멈추거나 되돌릴 여지를 두려 한다.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 등을 일단 노동자로 추정하는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근로기준법 2조 개정은 장기 과제로 미뤄 뒀다고 한다.
공무원·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핵심인 단체행동권 보장은 빠지고, 단체교섭 의제 확대 수준일 것이라고 한다.
이런 계획도 기업주들의 반발에 부딪히면 더욱 후퇴할 공산이 크다.
〈매일노동뉴스〉 보도를 보면, 노동 관련 국정과제들에는 “재계 반발,” “재정 문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부대의견이 달렸다. 속도를 더 늦출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노동정책에서는 임금 인상, 고용 안정,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처럼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정책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수년간 많은 노동자들이 실질임금 하락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고, ‘쉬었음’이라고 답하는 청년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는데 말이다.
임금 억제
실상 정부의 임금 정책은 인상률 억제에 맞춰져 있다. 역대 정부 첫해 가장 낮은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 임금 인상률 억제(올해 3퍼센트, 내년 2.7~2.9퍼센트)에서 보듯 말이다.
게다가 정부는 직무급제 도입으로 임금 인상 억제를 더한층 강화하려 한다. 근로기준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그 전제 조건으로 직무급제 도입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직무급제는 연공급제를 폐지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제도이다. 역대 정부들이 임금 억제를 목적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시도해 왔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직무급 도입 없이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어렵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돈이 없다는 기업주들(정부 산하 기관들을 포함해)의 엄살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 정책에서도 정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양질의 공공 일자리 창출은 없고, 주된 내용은 AI 인력 양성과 산업 전환에 따른 노동자들의 직무 전환이나 이직·전직 등을 돕겠다는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등 산업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 대책을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고용 보장을 명시하지 않다 보니 노동자들의 만만치 않은 투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이런 사회적 대화는 노동자들에게 고통 감내를 요구하는 자리가 될 공산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 6월에도 “노동시장 유연성과 사회안전망, 그리고 사용자들의 부담이 서로 선순환될 수 있도록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하고 말한 바 있다. 역대 민주당 정부들은 해고는 쉽게 하고 구직급여 확대 등 고용연계 복지는 늘리는 방향을 추구해 왔는데, 이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투쟁 없이 개혁 없다
임금을 억제하고, 산업 육성 필요에 맞춘 일자리 정책은 정부의 노동 정책이 근본에서 기업 지원을 위해 노동자에겐 고통을 전가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이재명 정부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간부층 내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 일정한 양보책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전략은 경기 불황과 기업들의 국제적 경쟁이 심화할수록 조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번 노동분야 국정 과제에 대해 한국노총은 (보완책을 제안하면서도) 환영 입장을 냈고, 민주노총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여기에는 기업주들과 우파들이 후퇴한 노란봉투법조차 반대하며 정부를 흔들고 극우들이 성장의 기회를 노리는 상황에서 일단 정부를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노동 정책에 진보적 색칠을 하는 것은 운동의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업주와 우파의 반발에 맞설 힘은 아래로부터 대중 투쟁에 있는데 말이다.
두 노조 모두 이재명 정부를 사회적 대화의 파트너로 여기고 있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도 이미 의제별, 업종별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면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마 지난 문재인 정부 때 민주노총 지도부가 경사노위 참가를 시도했다가 내부 반발로 무산되며 사회적 대화 기구 운영에 실패한 일을 피하려고 하는 듯하다.
실제 민주당 주도로 구성된 정년연장 TF에 이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7월 이 TF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년연장을 대가로 “업종별 직무급제”를 노사자율로 도입할 수 있다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직무급제는 노동자 임금을 억제하기 위한 것인데 말이다.
이처럼 사회적 대화를 통해 타협을 우선하다 보면 노동자들도 양보를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기층 노동자 투쟁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금 노동자들은 실질임금 삭감과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진정으로 임금 인상, 고용 보장, 연금과 복지 증대 등을 이루려면 정부와 대화와 타협이 아닌 기층 노동자들의 투쟁을 우선해야 한다. 개혁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싸울 때 쟁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