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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이란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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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으로 격화되고 있는 중동에서의 제국주의 경쟁

다음은 7월 3일 영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앤 알렉산더가 한 발제와 토론 정리를 글로 옮긴 것이다. 미국이 이란을 다시 공격하고 이란이 ‘양해 각서’ 파기를 선언하기 전에 열린 토론회이지만,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용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앤 알렉산더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조교수이자 중동 전문지 《미들이스트 솔리대리티》 편집인이다.

이번 전쟁을 거치며 이란은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입지를 더 강화시켰다

지난 몇 달 동안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먼저 그 전쟁의 몇 가지 결과들을 요약하겠습니다. 몇 주 전 미국이 발표한 양해 각서를 봅시다. 협상 과정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황급하게 휘갈겨 쓴 듯한 아주 짧은 문서입니다. 이 문서에는 미국과 이란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합의의 당사자는 미국과 이란입니다. 이스라엘은 당사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양해 각서에는 레바논에 관한 언급이 있죠.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반면, 팔레스타인과 가자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 합의에 대한 국제전략문제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IISS)의 분석을 인용해 드릴 텐데, 여기는 상당히 호전적인 성향의 싱크탱크죠. 일각에서는 국제스파이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pooks & Spies)라고 비꼬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들의 평가는 그 합의가 매우 나쁘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엄청나게 많은 양보를 한 반면, 이란이 양보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미국은 이번 전쟁 동안 폭격으로 타격을 입은 이란 경제의 재건을 돕기로 했습니다. 반면 이란은 자국 핵 개발에 관해 사실상 현상 유지 정도를 약속했습니다.

또, 이번 전쟁을 거치며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일대에 개입하고 페르시아만의 일부를 군사적·경제적으로 지배하는 데서 훨씬 강력한 입지에 서게 됐습니다.

형식적으로라도 이런 양해 각서가 합의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협상은 아직 진행 중이고 결렬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트럼프 정권은 이미 적잖은 타격을 입었기에 이란과의 대결 국면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이 합의의 알맹이는 어떤 형태로든 유지될 공산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끝났다거나, 이 지역이 어떤 식으로든 안정될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왜 그런지는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은 무엇이 이 양해 각서 체결을 가능하게 했는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외교협회의 외교 정책 분석가 맥스 부트는 지난 4월 말쯤 정곡을 찌르는 평가를 했습니다.

“미국 해군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기를 두려워한다. 호르무즈해협 통과를 거부하고 있는데, 위험이 너무 크다는 자인으로 보인다. 군사력으로 보면 기껏해야 5류 국가인 이란이 전 세계 석유 20퍼센트가 지나는 길목을 틀어쥐고 있는데도, 트럼프는 어찌 해야 할지 전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단지 경제적 숨통 조이기가 아니라 군사적 승리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승리가 어떻게 가능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제국주의를 더 심층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과거의 위기 때 나타난 역사적 선례를 봐야 합니다. 실제로 세계사에는 흥미로운 선례가 있습니다.

사건의 의의라는 면에서 중요한 선례는 1960년대 말과 약 10년 뒤인 1970년대 말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1960년대 말의 사건들은 미국의 베트남 개입과 그것의 최종 실패와 관련있습니다.

1965년 미국은 베트남에서 ‘롤링 선더(Rolling Thunder)’라는 작전명으로 기반 시설 폭격을 감행했지만 그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물론, 미국의 모험이 재앙으로 막을 내리고 미국 해병대와 CIA 요원들이 사이공의 마지막 인원들을 헬리콥터에 태워 허둥지둥 대피시키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재앙은 린든 B 존슨과 당시 국방부 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오판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들은 베트남을 폭격해 ‘석기시대로 돌려 놓을 수 있다’(북베트남의 산업 기반을 파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살펴보는 이유는 지금의 이란과 똑같아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자본주의가 매우 깊은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 때, 기반 시설을 공격하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에서도 몇 달 동안 이런 일이 더 격렬하게 일어났죠.

1970년대 말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1979년 이란 혁명과 관련있습니다. 그 혁명은 당시 국제 시스템에서 일어난 거대한 격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제국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노동자와 보통 사람들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제국주의 시스템의 상층과 중간층을 분석하는 것일 테지만,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제국주의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아래로부터의 저항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이 트럼프가 당한 굴욕에 환호하고 세계 어디서든 미국의 군대가 패배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드론이나 탱크가 우리를 해방시켜 주거나 정의를 구현할 것이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드론과 탱크가 미국의 위협을 받는 정권의 것이라고 해도요. 그런 것들은 결코 제국주의와 전쟁을 낳는 시스템에 맞설 진정한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와 전쟁의 다른 측면, 즉 혁명에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시스템 전체와 대결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대차대조표

우선, 중동 내 제국주의적 경쟁이라는 차원에서 이란 전쟁의 대차대조표를 그려 보겠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얻은 결과가 무엇인지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자행하는 인종학살, 레바논에서 지속하고 있는 점령과 학살, 이란과의 역내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이 전쟁이 가져온 결과를 봅시다.

어떤 면에서 이스라엘은 여전히 꽤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와 긴밀한 자들(미국 지배계급 내부뿐 아니라 이스라엘 지배계급 내의 일부)조차 이번 합의의 결과를 이스라엘에 악몽이라고 분명하게 규정합니다.

공화당 매파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5월 22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죠.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상시적으로 위협하고 걸프만의 석유 기반 시설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인식되는 현 상황은 역내 균형의 중대한 변화를 나타내며,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에 악몽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평론가나 분석가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의 군사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소장인 타미르 하이만 소장의 아주 흥미로운 분석이 있습니다. 지난 5월 그는 이번 분쟁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사령관들이 세운 주요 목표 중 어느 것도 달성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죠.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가가 향후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결정할 것이다. 이 전쟁이 실패로 미국 역사에 기록된다면[분명히 실패로 기록될 것입니다 — 앤 알렉산더], 이스라엘은 부분적으로라도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전투가 재개돼도 결과를 바꾸지 못한 채 미국이 치를 대가만 키운다면, 이스라엘이 감당해야 할 파장은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아무리 공격적이고 자신만만해 보여도 중동 내 경쟁의 역학 때문에 이스라엘의 역할, 이스라엘-미국의 관계가 실제로는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음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를 이해하려면 제국주의를 그저 영토 확장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땅을 빼앗아 식민지를 지배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전부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행태의 중요한 일부이기는 하지만 말이죠.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제국주의란 군사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이 융합되는 현상입니다.

그런 융합 속에서 관건은 어느 국가가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가장 잘 활용해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가입니다. 누가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생산하고, 그 무기의 공급망을 확보하고, 군사적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이란 정권의 군사 무기 생산을 살펴보면, 이란이 중동의 경쟁 구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란의 샤헤드 드론에 관해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흔히 간과되는 사실은 미국 공군이 샤헤드 드론을 베낀 것을 자랑거리로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샤헤드 드론을 베껴서 제작비가 5000달러 정도에 불과한 루카스라는 저가 드론을 만들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죠.

왜 그랬을까요? 샤헤드의 성능에 관한 군사 보고서들을 읽어보면, 서방의 군사 전문가들조차 샤헤드를 꽤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드론의 주요 장점은 ‘가성비’가 극도로 좋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비대칭 전쟁에 시달려 왔습니다. 수천 달러짜리 드론을 격추하려고 수백만 달러짜리 미사일을 쏘아 댔지만 빗나간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이것은 미국에 커다란 골칫거리였습니다. 엄청나게 비싼 요격 미사일과 방어 시스템을 가동하느라 이번 전쟁 동안 300억 달러가량의 돈을 고스란히 태워 버렸죠.

샤헤드 드론이 어떤 장비인지는 더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사실, 샤헤드는 여러 면에서 매우 조잡한 물건입니다. 그냥 폭탄을 장착하고 날아다니는 잔디깎이 기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군용도 아닌 부품도 잔뜩 쓰입니다. 취미용 모형 비행기 같은 것이죠.

그 부품들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전자 제품 생산망을 통해 공급됩니다. 다른 드론 생산망(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사용하는 드론 포함)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드론 생산망도 중국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에 민간용 드론을 군용으로 개조하는 과정이 수반되죠.

드론의 핵심 강점은 매우 저렴하고, 지난 50년간 자본주의 전역으로 확산된 전자 제품 제조 과정에서 핵심적이고 널리 생산되는 부품들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부담 없이 소모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이죠.

물론, 드론은 아주 비싼 시스템과 연동돼 사용됩니다. 예컨대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에 기반한 표적 지정 시스템과 연동되기도 합니다. 이런 시스템은 비싸고 구축하기도 까다롭죠.

하지만 드론 자체는 일반 가정집에서 3D 프린터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가 공군’이라고 할 만한 것이죠.

그렇다면 군사적 경쟁과 경제적 경쟁의 융합 속에서 이런 변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란 정권이 이뤄낸 군사적 혁신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란 혼자서 벌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군사 산업과 경쟁하고 있지만, 또 다른 드론 주요 생산국인 튀르키예를 비롯해 다른 지역 강국들과도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경쟁국들로 이뤄진 지역적 제국주의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론 여기에는 각국의 이데올로기나 국가기구의 성격, 형태 같은 요소들도 작용합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국가 구석구석에 스며 있는 인종차별적 본성과 인종학살적 이데올로기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지역 강국들 간의 경쟁이 자본주의 체제의 훨씬 더 큰 과정들로부터 동력을 얻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글로벌 경쟁 체제

이번 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을 더 잘 이해하려면, 이번 분쟁이 세계적 강대국 간 제국주의적 경쟁의 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미국의 상대적 취약성을 이해하려면 다방면에서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의 부상이라는 맥락을 봐야 합니다. 중국의 부상은 중국의 제조업이 지난 20년간 호황을 누린 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첨예한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명백한 사례 하나는 에너지 생산인데, 이를 둘러싼 경쟁은 약간 역설적인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세계 석유·가스 생산과 세계 경제에 대한 이번 전쟁의 타격을 일부 완화하는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제조업 원료 등을 걸프 지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석탄과 재생 에너지 모두에 막대한 투자를 한 에너지 강국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제조업 호황은 막대한 걸프산 석유를 필요로 하고 실제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영토에 있는 에너지원으로도 일부 에너지를 충당해 왔습니다. 중국은 아주 넓은 나라인 만큼 그런 이점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중국은 세계 에너지 생산에서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늘렸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같은 기간 사용한 석탄 에너지는 이를 훨씬 압도합니다. 중국의 도로 위를 달리는 반짝이는 전기차 행렬도 결국 석탄으로 전력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둘 모두를 봐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세계 에너지 시스템의 역학 변화를 잘 보여 줍니다. 자국 영토의 에너지원을 이용할 수 있는 강대국들이 호르무즈해협 봉쇄 같은 에너지 공급 충격을 더 잘 견딜 수 있는 것이죠.

미국도 어느 정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미국이 겪은 정치적·군사적 실패와 굴욕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미국은 이제 세계적 가스 수출국입니다. 수압파쇄법(프래킹)을 이용한 셰일 가스 혁명 덕분에 미국은 석유·가스 소비량이 생산량보다 훨씬 많았던 지난 50년간의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세계 경제에 복잡한 영향을 주고 중동에도 영향을 주는 또 다른 분야는 첨단 기술입니다. 인공지능 모델 생산과 그 활용을 둘러싼 경쟁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분야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인공지능 생산과 데이터 센터 건설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주식 시장 호황과 투자 열풍은 몇몇 주류 논평가들이 예상한 호르무즈해협 폐쇄의 경제적 파장을 부분적으로 완화시키는 데서 상당히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미국의 경제 호조 대부분이 지금 일어난 AI 거품 덕분임을 탁월한게 분석한 바 있습니다. 몇몇 거대 기술 기업들의 대대적이고 지속적인 성장과 가치 상승은 미국 경제가 받는 충격을 완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배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은 경쟁의 격화를 시사합니다. 미국이 지난 70~80년 동안 해 온 세계 경제의 중심축 역할에서 밀려나면서 벌어지는 일이죠.

그리고 미국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느라 세력이 약화되고 개입 능력이 분산되면서 생긴 공백을 지역 강국들 간 경쟁의 격화가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이해해야, 예컨대 가자 인종학살이 2년 넘게 이어지고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효과를 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자신의 우방인 이스라엘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일부 반영합니다.

대안

마지막으로, 대안에 관해 잠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앞서 설명한 정세를 보면, 무력감이나 심지어 절망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여러 징후를 보며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끼더라도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 특히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이 발휘될 수 있는 저항의 거점들을 찾아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1979년 이란 혁명의 교훈을 짚어보겠습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몰락한 샤는 당시 미국의 가장 강력한 중동 우방이었습니다. 샤의 몰락은 군사적 수단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조직 노동자들, 특히 석유 산업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란 국가가 와해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란 석유 노동자들의 민주적 조직화가 제국주의 시스템의 기둥을 뒤흔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란의 보통 사람들,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직화하는 노동자들, 다른 체제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편에 서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쟁 첫날 공습으로 어린 여학생이 대부분인 160명이 목숨을 잃은 학교가 있는 미나브는 석유 생산 지역이었고, 그 소녀들은 노동자들의 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지속하려는 자들과 아무 공통점이 없으며, 이곳 서방에서 저항을 키우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란 노동자들이 반제국주의 운동의 중심에 섰던 1979년 혁명의 전통이 되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린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말의 위기가 보여주는 또 다른 교훈이 있습니다. 제국주의 시스템 중심부 바깥의 위기가 중심부로 흘러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이 베트남에서 겪은 재앙이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북베트남 군대와 남베트남의 저항 세력은 미국이 지원하는 괴뢰 정권과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 해방 투쟁, 무장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들의 격렬한 저항이 없었다면 미군은 철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군 철수는 미군 내부의 반란과 미국 본토에서의 반란 때문이기도 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 제국주의의 위기를 폭발적으로 키운 것은 대중적 반전 운동의 성장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미군 병사들이 더는 싸우려 하지 않았고, 미군 장교들이 베트남 민족해방전선보다 자신들의 병사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죠.

탐욕스러운 제국주의 시스템에 맞서 우리가 자국 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과제를 다른 자들에게 맡겨 둔다면, 제국주의를 결코 패배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있는 영국에서 최근 발표된 국방 산업 계획을 보십시오. 드론 전환 계획에 50억 파운드, 대량살상무기에 최대 150억 파운드가 지출될 예정입니다. 이것은 누군가를 지키려는 게 아니라 오직 전쟁을 부채질하기 위한 것입니다.

누가 제국주의 시스템에서 득을 보느냐는 문제는 결국 국내 문제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막대한 군비 지출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군국주의, 인종차별, 애국주의 등이 강화되기 때문이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거기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1960년대의 위기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전쟁을 국내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 즉 자국의 지배계급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외에서의 제국주의와 파괴에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국 지배자들에 맞서는 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운동을 지속하고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전쟁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을 쟁취하기 위해 조직화해야 합니다.

토론 정리

몇몇 질문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걸프 지역은 이제 끝장났는가?’, ‘지금 사태가 걸프 지역의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걸프 지역의 기반 시설이 입은 피해는 상당하며, 저는 그것이 결코 작다고 보지 않습니다. 주요 석유 시설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죠. 해수 담수화 시설과 데이터센터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를 복구하는 데 막대한 돈이 들 것입니다. 이것이 상당한 불안정성을 낳을 것이라는 지적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걸프 연안국들이 자본 축적의 중심지가 더는 아니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 지역의 군사적 패권을 둘러싼 경쟁도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미군 기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기지들 때문에 걸프 국가들이 곤경에 처하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 기지들이 철수할 것이라고 시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걸프 연안국들과 이란 정권의 경쟁은 금방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걸프 연안국들은 중동의 다른 정권(예컨대 이집트의 엘시시 정권)을 떠받치는 데 쓰던 자금의 일부를 자국 방위로 돌려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고 있죠. 이스라엘과 유사한 방공 체계를 갖추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현재 아랍에미리트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스라엘과 매우 긴밀하고 꽤 공공연하게 동맹 관계를 맺고 있죠.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예컨대 인도의 역할입니다.

발제에서 중국에 관해 말씀드렸지만, 사실 지금은 인도의 석유 수요가 중국을 앞질러 세계 최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도는 자국의 정유 능력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고, 그 능력으로 가공할 석유를 주로 걸프 연안에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그 석유는 단지 연료로 쓰이는 게 아니라 원료로 쓰이기도 합니다. 인도가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산업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이, 걸프산 석유를 확보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죠.

이것은 걸프 지역 내부의 경쟁에 영향을 끼칩니다. 아랍에미리트는 인도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온 축의 일부입니다. 예컨대 인도는 아랍에미리트의 푸자이라 석유 터미널의 일부를 자국의 전략 비축유 기지로 지정했습니다.

그런데 푸자이라 석유 터미널은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있고 이란 드론의 공격 범위 안에 있습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정권은 파키스탄과 긴밀한 관계를 다져 왔습니다. 파키스탄은 아랍에미리트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들였었는데, 이번 위기가 한창일 때 아랍에미리트는 이를 상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파키스탄이 미국과 이란의 회담 장소를 제공하는 등 양측을 중재하고 전쟁을 외교적으로 종식하려는 노력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러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즉각 개입해 파키스탄이 아랍에미리트로부터 빌린 돈을 갚는 데 필요한 차관을 제공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상당 부분 핵무기와 관련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정권과 파키스탄 정권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죠.

이렇듯 한 지역에서의 불안정과 긴장—한 지역 수준의 제국주의 경쟁—이 다른 지역으로 번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이라는 지역적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쟁이 걸프 연안국들의 경쟁과 맞물리며 서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죠.

걸프 연안국들이 전쟁의 결과에 대응하려고 앞다퉈 움직이면서 재편이 이뤄지는 가운데, 더 취약한 국가들은 그것의 후폭풍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집트가 그렇습니다.

이집트야말로 이번 전쟁의 결과로 인해 더한층 취약해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청중 토론에서 언급된 이유들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집트에는 거듭된 대중 운동과 파업, 시위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근래인 2011년에도 위대한 혁명적 봉기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비록 패배했지만, 수많은 민중이 당시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죠. 당시 반란의 물결이 중동을 휩쓸자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열렬히 환호하고 그 반란들과 연대하고 커다란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집트의 그런 투쟁 전통과 이란의 투쟁 전통—즉 혁명과 대중 운동, 노동자 운동의 전통—이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야말로 중동의 가장 큰 희망이라는 한 발언자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인종분리 체제와 인종학살이 맹위를 떨치는 그 지역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려면 이란 민중이 반드시 해결책의 한 축이 돼야 합니다. 현 상황의 참혹함과 이란 내부의 극심한 탄압, 전쟁 자체의 파괴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나면 이란 사회 내의 여러 모순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날 것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과 지난 몇 달 사이에도 이란 내에서 노동자들의 항의 시위가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주로 해고에 맞선 시위였습니다. 전쟁으로 일터가 파괴되자 노동자들이 해고를 통보받은 것이죠. 치솟는 물가 문제도 있습니다.

예컨대, 지난 4월 일람 가스 정제소 노동자들은 복직 요구 시위를 벌였습니다. 케르만샤의 고압 변전소 노동자들은 사측의 임금 삭감 시도에 맞서 시위를 벌였고, 간호사들은 체불 임금 지급과 그동안 묵살되던 요구를 내놓고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하프트 타페 사탕수수 회사의 퇴직자들과 노동자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습니다.

시위 건수 자체는 매우 적습니다. 하지만 이란이 폭격을 받고 있고 정권의 탄압이 극심하다는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란 정권이 올해 초에 수많은 사람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란 민중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싸우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1979년 혁명 당시 이란 노동자 운동에서 나타난 조직화 방식이 일부 되살아날 조짐이 지난 몇 년에 걸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평의회를 기초로 조직화하고 대중 총회를 파업의 심장으로 삼아야 하고, 정권의 통제를 받지 않고 노동계급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독립적 노동자 조직이 필요하다는 이해가 되살아날 조짐이 나타나 왔습니다. 이러한 조직화 전통은 석유와 가스 부문에서 가장 강합니다.

이런 잠재력이 발전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아래로부터의 조직화 전통이 부활하는 것에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유럽에서 일어난 가장 유익한 형태의 항의는 단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총파업과, 그리스와 지중해 일대의 항구에서 항만 노동자들이 벌인 파업일 것입니다. 이들의 파업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기 위해 조율된 것인 동시에 자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이탈리아 운동의 발전 과정을 보면, 시작은 팔레스타인 문제였지만 그 문제는 곧장 이탈리아 국가가 벌이는 일에 관한 물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파시스트가 이끄는 이 정부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가?’, ‘왜 전쟁을 향해 달려가고 군국주의를 부추기는가?’ 하는 물음으로 말입니다.

이처럼 한 영역에서 시작된 물음은 다른 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민중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반제국주의가 아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사상과 긴밀하게 결합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엇보다 자국의 정권을 겨냥해야 합니다.

가끔 사람들은 “왜 [이란 정부가 아니라] 이란 ‘정권’이라고 부르나요? 왜 사우디 ‘정권’이라고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이곳 영국에도 “정권”이 있습니다. 특정한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들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가두는 정권이 있죠. 미국 역시 백악관 잔디밭에서 격투기 시합을 여는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 있죠.

따라서 저는 20년 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당시의 구호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교체는 언제나 국내에서 시작된다.”

번역: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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