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이집트인들의 기자회견:
엘시시의 학살 전력 들춰내고 정치수 석방을 요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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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오후 5시 광화문광장에서 재한 이집트인들이 라바아 학살을 규탄하고 이집트 내 정치수 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일 낮인데도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재한 이집트인들이 모였고, 이들과 연대하고자 다양한 국적의 국내 활동가들도 참가했다.
한 이집트인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라바아 학살 추모 행사가 있다는 소식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집트 현 대통령] 엘시시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도 그때 돌아가셨어요.”
2013년 라바아 학살은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이 광장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던 반대파 시위대 약 2,000명을 군경을 동원해 백주대낮에 학살한 사건이다. 국제 인권 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것이 “현대사에서 하루 동안 시위대를 상대로 벌어진 가장 규모가 큰 집단 살해 사건”이다.
당시 국방장관이자 군부 실세로서 학살을 주도한 엘시시는 지금도 이집트에서 권력을 쥐고 탄압을 일삼고 있다. 이 때문에 이날 기자회견에 참가한 이집트인들은 본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우려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참가해야 했다.
라바아 학살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2011년 1월 시작된 이집트 혁명의 열기를 끝장내겠다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이집트 군부는 라바아 학살 약 한 달 전 쿠데타를 일으켜, 2011년 혁명 이후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했다.
당시 자유주의자들과 일부 좌파들은 혁명의 진로를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라는 잘못된 구도로 바라보고 군부 쿠데타와 이슬람주의자 학살을 지지하는 치명적인 잘못을 했다. 하지만 엘시시가 이끄는 군부 정권은 이슬람주의자들뿐 아니라 일체의 반정부 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지금 이집트 감옥에 갇힌 정치수는 수만 명이나 된다. 10대 청소년들이 SNS에 올린 글귀 하나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현수막을 들었다는 이유로 보안경찰에 끌려간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재한 이집트인들은 “모든 정치범을 즉각 석방하라”는 유인물을 나눠 주고 한글로 “군부의 민주주의 전복은 범죄”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을 들었다.
한 참가자는 발언을 통해 이렇게 증언했다.
“2013년 8월 14일 … 카이로의 라바아 알아다위야 광장에서 평화적으로 농성 중이던 시위대를 이집트 보안군이 강제 해산했습니다. 당시 농성에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에 항의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민주적 절차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수천 명의 이집트인들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라바아는 단순히 농성 강제 해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가족이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를 잃게 만든 참혹한 학살이자 대학살 사건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끼리 2013년의 정치적 사건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견 차이가 이집트인들을 피 흘리게 할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집트인들의 이런 호소는 불과 1년여 전에 군사 쿠데타 위기를 경험한 한국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많은 행인들이 기자회견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유인물을 받아 갔다.
노동자연대 활동가로서 발언한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이집트를 방문해 학살자 엘시시와 친밀함을 과시한 것을 비판했다.
“만약 윤석열이 기대했던 쿠데타가 성공했으면 가장 먼저 ‘영현백’과 종이관에 들어갔을 이재명 대통령이 ‘이집트의 윤석열’과 손잡고 덕담을 나누는 것은 결코 한국인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들이 12월 3일 밤 위험을 무릅쓰고 쿠데타 저지에 나섰던 것은 이런 모습을 보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결코 살인 독재자 엘시시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 정부가 이집트인들을 비롯한 많은 난민들의 법적 난민 지위 인정에 매우 인색한 것을 규탄했다. 지난해 한국 정부의 난민 인정률은 약 1퍼센트대에 불과했다.
엘시시는 2013년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13년 넘게 독재를 이어 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독재는 결코 견고하지 않다.
한 이집트인 참가자는 이렇게 전했다. “지난주 튀니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나서 엘시시가 튀니지 대통령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걱정하고 있는 거죠. 만약 튀니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성공을 거두면 2011년에 그랬던 것처럼 이집트에서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커질 거예요.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엘시시에 대해 분노하고 있어요.”
실제로 이집트의 경제는 너무나도 취약해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군주정들의 지원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다. 정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외채 이자 갚는 데에 쓰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학살, 미국의 이란 전쟁 등으로 격화하는 중동 위기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순순히 협력하는 엘시시 정부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다.
인구가 1억 명이 넘고 ‘아랍 세계의 심장’이라 불리는 이집트는 거대한 불만의 저수지와 같다. 그 둑에 균열을 내고 해방의 물길을 열기 위해 이집트 현지 활동가들은 엄혹한 조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재한 이집트인 등 해외 망명 활동가들은 그들이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연대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