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인 난민들의 행진이 많은 지지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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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일요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난민들과 그들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이날 집회는 33년 전 한국 정부가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한 날인 12월 3일을 앞두고 열렸다. 12월 3일은 친민주주의 대중의 힘으로 윤석열의 쿠데타 시도를 저지한 지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집회를 주최한 29명의 ‘재한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은 1년 전 한국의 친민주주의 시민들처럼 쿠데타와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활동가들로서, 잔혹한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난민 심사에 무려 8년이나 시간을 끌다가 끝내 지난해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지독하게 불공정한 심사 과정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법무부의 결정에 손을 들어 줬다. (관련 기사: ‘11월 30일 재한 이집트인 난민들의 행진에 함께하자’)
난민협약 가입국이라면서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고작 1퍼센트대에 불과하고, 이 때문에 난민들은 일자리와 의료, 주거와 안전 등 삶의 가장 기본적인 면들에서 고통받고 있다.
이에 이집트인 정치 난민들은 스스로 투쟁에 나서, 지난 두 달간 여러 차례 기자회견과 집회 등을 개최하며 난민 즉각 인정 등을 촉구해 왔다.
첫 발언자로 이집트인 정치 난민이자 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은 알리 셰하타 씨가 나섰다.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모인 이유는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벌어질] 위험이 단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돼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난민 신청을 했었다는 이유만으로 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체포되거나 실종된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바로 아랍에미리트의 반정부 활동가 자시마 샴시가 시리아에서, 그것도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자리에서 체포된 일입니다.
“명확한 법적 보호가 없다면 정치 난민의 생명은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 우리가 바라는 것은 특혜가 아닙니다. 오로지 33년 전 한국 정부가 가입했던 유엔 난민협약에 의거해, 최소한의 인도적 기준에 따라 대우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집트인 정치 난민이자 난민 인정자인 아흐마드 투르키 씨도 발언에 나섰다.
“한 사람이 권리를 얻고 다른 사람이 같은 권리를 얻지 못한다는 것은 결코 완전한 정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대한민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해서 부나 영광을 누리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힘은 단결에서 나옵니다. 난민 지위를 받은 사람들이 아직 난민 지위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돼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말고 함께 손을 잡읍시다!”
이날 집회에는 이집트인 난민뿐 아니라 예멘과 수단에서 온 난민들도 참가했다. 발언에 나선 예멘인 난민 살레흐 씨는 난민들이 처한 생생한 현실과 절박한 요구를 전했다.
“난민을 지원하는 것은 그 사회의 어떠한 부담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이고 지원입니다. 난민들도 기회를 얻는다면 그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들이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난민들은 건강보험이 없어서 병에 걸리는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또, 한없이 길어지는 난민 심사 절차를 기다리며 정신적 안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모든 난민이 예외 없이 건강보험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난민 심사 절차를 신속화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가족 결합 절차도 더 쉽고 빠르게 진행돼야 하고, 난민들이 언어 장벽 때문에 권리를 놓치지 않도록 공공기관에서 언어 지원도 늘려 주기를 요구합니다.”
한국인들의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홍덕진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정책실장)는 성경에 따르면 정치적 박해를 받아 난민 신세였던 아기 예수의 가족을 따뜻하게 품어 숨겨 준 땅이 바로 이집트였다고 소개하면서, 그러니 이집트인 난민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야말로 다가오는 성탄절에 아기 예수를 영접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감동적인 연대 발언이었다.
난민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해 애써 온 의사인 이상윤 연구 공동체 ‘건강과 대안’ 책임 연구원은 난민들이 겪고 있는 건강과 의료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생생하게 소개했다. 또, 난민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실태 조사에 힘을 보태 줄 것을 요청하면서, 필요한 의료 지원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종로와 조계사 앞, 광화문광장을 지나는 행진에 나섰다.
“난민을 환영한다! 난민 지위 즉각 인정하라!”
특히 난민의 자녀가 용기 있게 나서 직접 구호를 선창하자 참가자들은 더욱 힘차게 따라 외치며 기세를 올렸다.
난민들과 한국인들, 다양한 이주 배경 사람들이 아랍어와 한국어가 함께 적힌 팻말을 들고 한데 어우러져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거리 시민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거리 곳곳에서 따뜻한 관심과 환대를 느낄 수 있었다. 카페 안에 있다가 행진 대열을 보고는 뛰어나와 영상을 찍는 사람, 구호를 따라 외치는 사람, 머리 위로 두 손을 높이 흔들며 인사하는 사람, 엄지를 올려 보이는 청소년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참가자들은 광화문광장을 지나 법무부의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세종로출장소 앞에 도착해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마무리했다. 참가자들은 난민들의 향후 행동에 계속 연대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