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중도좌파) 개혁 정부가 극우 저지에 실패함을 보여 주는 브라질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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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1차 투표를 앞둔 브라질 대선은 지독한 기시감을 준다.
룰라는 전 대통령 극우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아들이자 정치적 계승자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와 소수점 아래에서 지지율 접전 중이다. 아버지 보우소나루는 룰라 취임 일주일 만에 부정선거 음모론을 내세우며 쿠데타를 기도했다. 가담자 1,402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런 자들이 정권 재탈환을 위협하는 현 상황의 책임을 룰라는 트럼프에게만 돌린다. 지난주 유엔 연설에서 룰라는 대선 “외부 개입”을 규탄하며 “국민주권” 수호를 다짐했다. “브라질은 어느 누구의 뒷마당도 아니다.”
물론 트럼프의 중남미 간섭은 노골적이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에서 마두로 부부를 납치한 일은 중남미 극우에게 전진 신호가 됐다. 이후 트럼프는 콜롬비아 등지의 대선에서 극우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트럼프는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백악관에 초청하며 공개 지지했고, 보우소나루는 자신이 당선하면 트럼프가 꾸린 중남미 우익 정부 모임 ‘자유의 방패’ 가입을 약속했다. 미국 극우 마가는 보우소나루 세력의 핵심 기반 중 하나인 브라질 성령운동파 그리스도교(개신교와 가톨릭)의 강력한 후원자다.
그러나 미국의 간섭은 전능하지 않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의 타국 정권 교체 시도 중 성공한 것은 39퍼센트인데, 그중 절반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어도 정권이 교체됐을 법한 경우였다. 1 간섭보다 중요한 변수는 해당국 내부 상황이었다.
룰라 정부는 쿠데타 가담자들을 법정에 세웠지만 동시에 우익과의 협치를 추구했다.
취임 직후 룰라는 보수 정당인 민주운동당(MDB), 브라질통합당, 사회민주당(PSD) 인사 아홉 명을 내각에 포함시켰다.
MDB는 2016년 노동자당(PT) 정부 탄핵(의회 쿠데타라고 할 만한)을 주도한 당이고, 브라질통합당은 보우소나루의 정당과 1970~1980년대 군부 독재 후예들의 정당이 합당한 정당이다(PT는 그 독재에 맞선 대중 파업 물결 속에서 창당됐다). 이 당들은 올해 5월 국회에서 서로 담합해 룰라의 거부권을 무시하고 쿠데타 가담자 조속 사면을 법제화했다.
그런 정당들에 룰라는 요직을 할당했다. 기획예산부 등 3석에 MDB 지도자들을, 막대한 재정을 운영하는 지역개발부와 통신부에 브라질통합당 인사들을 앉혔다. 농축산부 장관이 된 카를루스 파바루(PSD 소속)는 브라질 농축산업계 핵심 대기업의 대변자였다.
협치 강조 속에 쿠데타 수사는 좌초했다. 룰라 정부 하에서 검찰청장에 오른 호르헤 메시아스는 그리스도교 우익과 ‘화해’(사실은 정부 측의 공격 중단)를 주선했다. 수사 과정에서 군 수뇌부의 가담 정황이 밝혀졌는데도 기소된 것은 극소수였고, 수사는 마무리되지 않고 군 자체 조사로 이첩됐다.
룰라 정부가 민주주의 수호를 통치 안정성에 종속시킨 결과, 쿠데타 청산이 우익과의 거래 대가로 지불된 것이다.
우익과의 거래는 룰라 1기 정부 시절부터 PT 정부의 운영 방식이었다. 그 거래는 PT 정부가 특혜를 매매한 부패의 원천이었다. 부패는 PT가 기성 권력층의 일부임을 드러냈다.
PT는 그런 거래를 친서민 개혁 추진의 수단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브라질 복지는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1차 산업 호황의 과실 중 극히 일부만을 극빈층 구제에 돌린 것이었다.
하지만 룰라와 PT에게는 그때만큼의 운신의 폭이 없었다. 원자재 호황이 2010년대 초 끝난 후 지금까지도 브라질 자본의 수익성은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 3년간 룰라 정부는 자본의 수익성 회복을 우선했고, 복지 삭감과 제조업·금융 우대 기조를 유지했다.
이는 브라질 사회의 불평등을 더 심화시켰다. 자산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43퍼센트, 자산의 50퍼센트를 갖게 됐지만 서민들은 막대한 가계 부채와 실업에 시달리게 됐다.
이러니 룰라가 대선 외부 개입만 말한 것은 책임 회피다.
언행 불일치
룰라가 트럼프의 협박에 즉시 꼬리를 내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동기는 미·중 갈등을 브라질 자본주의의 이익 추구에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브라질과 중국은 모두 브릭스(BRICS) 회원국이지만 양국 관계는 그들이 자처하듯 ‘호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중국 무역은 브라질에 이익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 이익은 압도적으로 자본과 권력층에 돌아갔다. 경제는 세계 경기 변동에 취약해졌고, 불황의 고통은 서민들의 몫이었다.
중국 역시 무역을 이용해 브라질 경제를 공급 사슬의 밑바닥에 묶어두려 해 왔고, 이것이 브라질 제조업 쇠락에 일조했다.
이번에 트럼프의 관세 협박에 대응해 룰라 정부는 중국과의 무역 관계를 대미 협상 지렛대로 이용했다. 그러면서 그 협상을 다시 대중국 협상의 지렛대로 이용했는데, 제조업 재건(특히 전기차 생산)에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룰라는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트럼프의 주권 침해를 비판했지만 그 침해의 결과에 일관되게 도전하지는 않았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 납치를 규탄하면서도 트럼프에 협조한 델시 로드리게스 정부와 관계를 긴밀히 했고, 쿠바 봉쇄를 규탄했지만 인도적 지원은 상징적 수준에 불과했다.
언행 불일치는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더 두드러진다. 룰라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인종학살)를 규탄했지만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다. 2024년 브라질은 이스라엘산 무기를 최소 1억 6,700만 달러어치 수입했다.
룰라 정부는 이스라엘 전쟁 경제를 지탱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2024년 브라질의 대(對)이스라엘 원유 수출은 전년 대비 51퍼센트 늘어, 그해 이스라엘이 수입한 원유의 약 9퍼센트를 차지했다.(브라질 최대 원유 수출 기업은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다.)
브라질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은 룰라에게 언행일치를 요구했다. 유럽 항만 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파업을 벌인 2025년 9월 브라질 석유노조는 이스라엘 수출 중단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룰라 정부를 압박하는 행동은 간헐적·일회적 동원 수준에 머물렀고 2 그 방향은 “룰라에게 연대”해 그에게 힘을 싣는 쪽을 가리켰다. 무토지노동자운동(MST)같은 급진 좌파는 룰라를 더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그 비판을 지속적 대중 운동 건설로 발전시키기보다는 자기만의 선거 정당 건설로 수렴시켰다.
룰라 정부의 귀결은 중도 정부가 대중의 염원을 저버리고 극우 부상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방증한다.
라틴아메리카 중도좌파 개혁 정부들이 2010년대 불황에 대응해 노동자 등 서민을 저버린 것은 쓰라림을 자아냈다.
각국에서 극우가 부상했다. 그들은 ‘핑크 물결’의 잔재조차 일소하려 달려들었다. 트럼프의 간섭은 그들을 연결하고 고무했다.
극우 부상은 필연이 아니었다. 극심한 불평등과 서민 생활고, 권력층 부패라는 비슷한 경제적·사회적 위기를 겪은 나라들에서는 새로운 대중 항쟁(‘Z세대 반란’)이 분출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반극우 정서는 크다. 하지만 그 염원은 중도좌파 개혁 정부에 대한 응원 부대로 수렴됐다. 위기에서 서민을 구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그 정부들은 다시 대중의 쓰라림을 키웠지만, 진정한 좌파적 대안은 미약했다. 극우는 바로 그 정치적 공백을 파고들어 성장했다.
올해 중남미에서 잇따른 극우 집권은 그 패턴의 최신 양상이다.
10월 25일 결선 투표 끝에 보우소나루가 집권에 실패한다면 브라질과 그 너머의 노동자 대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러나 룰라의 4년이 자아낸 쓰라림에서 극우는 다시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다.
돌파구는, 중도좌파 개혁주의 정치가 보여 준 것 이상을 실천하는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투쟁으로만 열릴 수 있다.
후주
- Lindsey A. O'Rourke, Covert Regime Change: America’s Secret Cold War,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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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부족은 브라질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한 조사는 2023년 10월 7일~2025년 9월 26일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전체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이 총 436건 벌어졌다고 집계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이 50만 명 사는 칠레를 포함한 숫자다. 반면 같은 조사는 2023년 10월~2024년 6월 미국에서만 팔레스타인 연대 행동이 3,656건 벌어졌다고 집계했다.(Ciro Murillo and Christina De Paris, 'Two years of global demonstrations in support of Palestine' (2025. 10. 3))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중도(특히 중도좌파) 정부들의 이스라엘 규탄 발언과 독립적으로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은, 올해 중남미 대선에서 승리한 극우 후보들이 하나같이 이스라엘 지지를 전면에 내걸어 외교적 고립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제해 주는 상황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