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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극우 이재명 정부 팔레스타인과 중동 전쟁 이주민·난민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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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본 AI

들어가며

2026년 가을 현재 인공지능은 기술 문제를 넘어 세계 자본주의의 향방을 가늠하는 쟁점이 됐다. 미국 주식시장은 AI 관련주가 떠받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와 희토류와 데이터센터를 두고 경쟁하면서 서로를 봉쇄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3대 메가 프로젝트’로 정하고 정권의 명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현대차는 사람 없이 24시간 돌아가는 공장, 이른바 DF247을 궁극 목표로 내걸었다. 노동자들 사이에는 두 가지 반응이 함께 퍼져 있다. 하나는 로봇이 곧 일자리를 모두 빼앗으리라는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먼 얘기라는 안이함이다.

이 글은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AI를 종합적으로 논하며 두 반응을 모두 넘어서려 한다. 다룰 문제는 AI가 실제로 무엇인지, 자본주의는 왜 AI에 이토록 매달리는지, 그 투자 열풍이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AI가 국가 및 제국주의 경쟁, 전쟁, 일터, 차별, 국가 감시, 생태계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다. 마지막으로, 노동계급 운동이 이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묻는다.

1. 탈신화화: AI는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가

AI를 둘러싼 논의는 과장으로 가득하다. 한쪽에서는 “초지능”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인류를 멸망시키리라 한다. 두 이야기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같은 전제를 공유한다. AI가 인간의 사회관계에서 독립해 스스로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라는 전제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전제부터 거부한다.

오늘날 생성형 AI의 원리는 압축 음원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 1 음원 파일을 작게 만들 때 알고리즘은 일부 정보를 버리고, 재생할 때 빈틈을 추측으로 채운다. 그렇게 복원된 소리는 원본과 같지 않다. 이것을 지능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논쟁거리이지만 의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자본론》의 유명한 대목을 인용할 수 있다. 2 가장 서툰 건축가도 가장 뛰어난 꿀벌보다 나은 까닭은 건축가가 집을 실제로 짓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짓기 때문이라는 대목이다.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에 비춰 현실을 바꾸는 능력은 인간 노동의 고유한 특징이다. 통계적 예측 기계에는 그런 능력이 없다.

2026년 6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노동조합 활동가 회의에서도 같은 진단이 나왔다. 3 통신노조(CWU) 산하 기술직 노조(UTAW)의 시린 아소는 기계가 의식을 갖게 돼 생계를 빼앗는다는 업계의 과대광고를 경계하자고 했다. AI는 기업주들이 원래 하려던 감원을 정당화하는 편리한 핑계로 쓰인다는 것이다. 아소는 AI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예측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적은 중요하다. 해고를 결정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용자다. “AI 때문”이라는 말은 그 결정의 책임을 기술에 떠넘기는 정당화의 수단이 된다.

아소는 AI가 인간 노동을 없애지는 않고 감춘다는 점도 짚었다. 4 모든 AI 시스템 뒤에는 출력을 감시하고 AI를 훈련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그 일은 임금이 낮고 노동 보호가 약한 지역으로 외주화된다. 노동자는 대체된다기보다 숨겨진다. 이른바 ‘인공’ 지능은 케냐와 필리핀과 인도의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 광산의 광원, 반도체 공장 노동자, 발전소 노동자가 만들어 내는 사회적 생산물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죽은 노동’이 다시금 ‘산 노동’의 외양을 띠고 나타난 것이다. 5

그렇다면 종말론은 어떻게 봐야 할까?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가 AI 능력 향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며 규제를 요구하자 올트먼, 하사비스, 머스크도 동조했다. 그들은 새삼 인류를 걱정하게 된 것이 아니다. 두 가지 근거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이런 발언이 상장을 앞둔 기업들의 홍보·마케팅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대기업이 경쟁자를 몰아내려고 국가 규제를 요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 기술 투자자는 아모데이의 주장이 오픈 소스를 막고 막대한 기술·경제 권력을 앤트로픽에 집중시키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6 요컨대 위험은 실재하지만 AI는 초지능이 인류를 쓸어버리는 공상과학이 아니라, 인간 노동과 화석연료·석유화학·반도체·데이터센터의 공급망에 의존하는 수학적 모델이다.

이것은 AI의 위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위험의 원천을 바로 보자는 말이다. AI가 우리를 죽인다면 〈터미네이터 2〉의 킬러 로봇처럼 사악한 의도를 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시스템의 오류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핵발전 안전이나 무기를 AI에 맡기는 것이 위험한 까닭은 AI의 확실성을 과신하는 안일함 때문이다. 그래서 AI의 진짜 위협은 그것이 자본가들의 손에 있고, 다른 모든 기술처럼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과 패권 추구에 쓰인다는 데 있다.

2. 기술과 경쟁적 자본축적

AI를 이해하려면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AI는 증기기관, 전기, 내연기관, 컴퓨터처럼 모순된 가능성을 함께 지닌 신기술 목록의 최신 항목이다.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미래라고 치켜세우고, 다른 사람들은 실업과 비인간화를 예언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기술 변화를 발명가의 천재성이나 기술 자체의 논리로 설명하지 않는다. 기술 변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이다. 자본주의는 경쟁으로 움직이고, 자본가들은 경쟁자보다 노동자를 더 생산적으로 만들 신기술을 끊임없이 도입하도록 강제된다. 여기서 핵심은 ‘강제된다’는 말이다. 개별 자본가가 탐욕스러운지 아닌지는(물론 거의 다 탐욕스럽다) 부차적이다. 신기술을 도입하지 않는 자본은 경쟁에서 밀려 도태된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부르주아지는 생산 도구를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고 쓴 것은 이 때문이다. 7

그런데 이 기술 혁신에는 근본적 모순이 있다. 1856년 마르크스의 연설을 인용할 수 있다. 인간 노동을 줄이고 풍요롭게 할 경이로운 능력을 지닌 기계가 도리어 노동자를 굶기고 과로하게 만들며, 새로운 부의 원천이 기묘한 주문에 걸린 듯 결핍의 원천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8 기술이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이윤 생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신은 결코 이행할 수 없는 약속을 내건다.

이 모순은 이윤율 저하 경향과 연결된다. 마르크스는 노동을 가치와 이윤의 원천으로 봤고, 기계와 원료 같은 불변자본(‘죽은 노동’)과 임금으로 지출되는 가변자본(‘산 노동’)을 구별했다. 새 가치를 만드는 것은 노동자 착취이므로, 투자가 가변자본보다 불변자본으로 더 많이 흘러가면 이윤율이 떨어진다. 신기술을 먼저 개발한 기업은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지만, 전체 이윤율은 하락할 수 있다. 크리스 하먼이 《좀비 자본주의》에서 체계화했듯, 이윤율 저하 경향과 이를 상쇄하는 요인들 사이의 긴장은 20세기 후반 이래 자본주의가 겪은 장기 침체를 설명하는 열쇠다. AI는 이 경향을 뒤집을 구세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AI 투자 자체가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불변자본 축적이라는 점에서, 그 기대에는 자기모순이 들어 있다. 9

노동계급 운동의 전략에 결정적인 점 하나를 더 짚고자 한다. 기업주들은 신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만, 그럴수록 그 기술을 운용하는 노동자들이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이 힘이 기업주들에게서 통제권을 빼앗아 기술이 인류를 지배하지 않고 인류에 봉사하게 만드는 열쇠다. 자동화는 노동자를 무력하게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다. 고도로 통합된 생산 체계일수록 핵심 고리 하나가 멈출 때 전체가 멈춘다. 10

러다이트 문제도 짚어 보기로 한다. 1811년 러다이트 운동은 옛 작업 방식을 무너뜨리는 새 기계들을 겨냥했고, 이 노동계급 급진파는 기계가 자신들을 긴 노동시간과 고된 일에서 해방하지 않고 오히려 노예로 만든다고 규탄했다. 러다이트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기술 사용에 반대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노동자들이 기계 자체와 그것의 자본주의적 사용을 구별하고 공격 대상을 물질적 생산수단에서 그 사회적 착취 형태로 옮기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고 썼다. 11 오늘날 노동운동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3. AI 투자 열풍/거품의 정치경제학

AI를 둘러싼 가장 뚜렷한 경제 현상은 투자 열풍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미국 경제 성장의 40퍼센트가 AI 투자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 거대한 투자 물결을 이끄는 것은 AI가 가져다줄 생산성과 이윤에 대한 도취적 기대라고 지적했다. 12 같은 기대가 미국 주식시장을 끌어올려 트럼프의 널뛰는 관세가 경제에 미칠 충격을 막아 줬다. 캘리니코스는 투자자 루치르 샤르마의 분석도 전한다. 2025년 미국 주가 상승분의 80퍼센트를 AI 기업들이 차지했고, 이렇게 오른 주식시장이 전 세계 자금을 빨아들이며 부유층의 소비 붐을 떠받쳤다. 이른바 ‘부의 효과’ 덕분에 소득 상위 10퍼센트가 소비 지출의 절반을 담당하게 됐다. 경제 전체가 극소수 부자의 주식 자산에 기대어 굴러가는 기형적 메커니즘이다.

캘리니코스는 이 호황이 두 가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13 첫째, 초지능이 곧 온다는 기대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AI가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머지않았다고 예측하지만, 캘리니코스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둘째, 더 근본적인 불확실성이다. 이 모든 투자가 기대한 이윤을 실제로 낼지의 문제다. AI 구동용 대형 데이터센터 비용을 감당하려면 2030년까지 약 2700조 원의 매출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있는데, 대부분의 AI 기업은 아직 이윤을 내지 못하고 있다.

캘리니코스는 “안정이 불안정을 낳는다”는 ‘금융 불안정성 가설’을 주창한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개념을 빌려 거품의 징후를 포착했다. 14 민스키는 투자가 점점 ‘폰지 금융’에 의존할 때 거품이 생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올트먼은 공급업체들과 일련의 거래를 맺어 약 1350조 원이 넘는 인프라 투자를 조달하고 있는데, 엔비디아가 칩 주문을 받는 대가로 오픈AI에 약 135조 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 한 예다. 칩 회사가 고객에게 돈을 대주고 그 돈으로 자기 칩을 사게 하는 순환 구조다.

여기에 부외 부채(기업의 공식적인 회계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숨겨진 빚)도 쌓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자금 조달에 흔히 쓰이는 방식은 막대한 사모 신용을 끼고 특수목적법인을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부채가 기술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는다. 부외 부채를 이용하면 겉보기에는 부채비율이 낮고 아주 건실한 기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금융 위기가 오거나 보증을 선 자회사가 무너지면, 장부에 없던 거대한 빚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멀쩡해 보이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을 수 있다. 캘리니코스는 이런 숨은 부채가 2007~2008년 서방 은행 시스템을 거의 무너뜨렸다고 상기시킨다.

2026년 2월 롭 호브먼은 투자자들 사이에 스며든 의심을 분석했다. 15 하나는 AI의 발전 속도 때문에 수많은 기업이 붕괴 위협을 받는다는 걱정이고, 다른 하나는 AI가 막대한 투자를 갚을 만한 이윤을 내지 못하리라는 걱정이다. 호브먼은 두 걱정이 서로 모순돼 보이지만 모두 타당하다고 봤다. 그의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2장에서 살펴본 이윤율 문제와 이어진다. 기술 혁신으로 얻는 생산성 향상은 언제나 양날의 칼이다. 한 기업의 생산성이 오르면 그 기업은 비용을 줄이고 시장점유율과 이윤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도 그 기술을 채택해 경제 전반에서 노동자 고용보다 기술에 더 많이 투자하게 되면 이윤율이 떨어진다. 이윤은 결국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보다 적게 임금을 주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기술 자체는 이윤을 만들지 않는다.

2026년 6월 캘리니코스는 거품이 더 부풀었다고 진단했다. 16 그는 이것이 신기루만은 아니라고 봤다. 빅테크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데이터센터 같은 AI 하드웨어에 경이로운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영국의 철도 광풍과 1990년대 후반 닷컴 붐처럼 이것은 거품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경제적 편익이 생기든, 기대한 AI 이윤은 오지 않으리라는 뜻이다. 캘리니코스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의 계산을 인용한다. 17 하이퍼스케일러들이 10퍼센트 투자수익을 내려면 연간 2조~5조 달러의 추가 매출이 필요한데, 이들 기업의 현재 매출은 연 1조 50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로버츠가 드는 다른 가능성은 계획된 투자가 끝내 실현되지 않는 것인데, 캘리니코스는 미국 경제가 기술 투자에 끌려가는 상황에서 이는 아마 경기 침체를 뜻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 분석은 한국에 특히 중요하다. 한국 주가는 AI 붐을 타고 전례 없는 속도로 올랐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공장 건설 일정을 수년씩 앞당기고, 막대한 국가 재정을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에 쏟아붓겠다고 한다.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더 큰 판돈을 AI에 걸었다. 거품이 꺼지면 그 충격은 반도체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를 정면으로 강타할 것이다. 그 비용은 1997년과 2008년처럼 노동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따라서 AI를 둘러싼 노동운동의 대응은 일자리 대체 문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어도 다가올 경제 위기에 대비하는 문제까지 포함해야 한다.

경제적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이런 붕괴는 갈수록 양극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불안정을 키울 것이다. 이 불안정의 문제가 다음 장의 주제다.

4. 국가와 자본의 유착과 군비 경쟁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은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을 외쳤다. AI 시대에 그 구호는 빠르게 뒤집히고 있다. AI는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재편하며 둘을 더 긴밀하게 융합시키고 있다. 선진국 정부들의 AI 전략은 최첨단 AI를 개발하는 기업들에 최고의 국가적 파트너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특화산업형 AI 집적단지’나 ‘국가전략기술 사업화 시설’ 또는 ‘에너지 고속도로’로 불리는 것을 만들어 데이터센터 투자를 끌어모으려 한다. EU는 유럽을 ‘AI 대륙’으로 만들겠다며 약 315조 원을 쓰겠다고 했고, 대규모 컴퓨팅 능력을 갖춘 ‘AI 기가팩토리’ 다섯 곳을 짓겠다고 한다.

왜 국가 개입이 불가피한가? 그 이유는 기술 자체의 성격과 경쟁의 격렬함에서 찾아야 한다. AI는 필요한 인프라와 투자 규모 때문에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한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AI 수요를 따라잡으려면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에 약 7020조 원이 투자돼야 한다고 추산했다. 그 결과는 민영화와 자유시장이 우세하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그리고 격화되는 제국주의 경쟁에 대응해 국가들이 경제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규제 완화 행정명령, 반도체 관세 위협이 이어졌다. 관세 위협을 받은 대만 TSMC는 약 135조 원을 들여 미국에 새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 경쟁은 곧장 원자재 쟁탈전으로 번진다. 희토류는 반도체 같은 AI 하드웨어에 필수적인데,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70퍼센트 가까이, 가공의 90퍼센트 가까이를 차지하고 최근 엄격한 수출 통제를 도입했다.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와 희토류 채굴·가공 사업 지원 협정을 맺었고, 미국 국방부는 미국 내 유일한 가동 희토류 광산 운영사의 최대 주주가 됐다. 국방부가 광산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되는 것만큼 국가와 자본의 융합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현상도 드물다.

이 현상은 고전적 제국주의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제국주의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지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임금 노동의 착취에 토대를 두고 경쟁적 자본축적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발전에서 직접 나온다. 거대 AI 기업들이 국가와 점점 뒤얽히는 방식은 국가 간 경쟁이나 기업 간 경쟁보다 훨씬 체계적인 무언가를 드러낸다. 루돌프 힐퍼딩의 《금융자본》(1910)은 자본주의가 자본을 점점 더 소수의 손에 집중·집적시켜 독점이 자라게 하고, 거대 기업의 필요와 국가의 필요가 얽혀 자유시장과 법치에 관한 모든 말이 ‘국익’이라는 더 큰 것에 흡수된다고 설명했다. 18 여기에 레닌과 부하린의 분석을 보태야 한다. 19 특히 부하린은 《세계 경제와 제국주의》에서 20세기 초 자본주의가 ‘국가자본주의 트러스트들’ 사이의 경쟁으로 변모한다고 했다.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토니 클리프, 크리스 하먼,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고전적 제국주의론을 발전시켜 냉전기 미·소 대립과 오늘날 미·중 대립을 모두 자본 간 경쟁의 국가적 형태로 이해했다. 캘리니코스가 《제국주의와 세계 정치경제》에서 제시한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교차라는 틀은 AI 경쟁을 이해하는 데 꼭 들어맞는다. 20 AI 경쟁에서 미국은 ‘민주주의’를, 중국은 ‘사회주의’를 대표하지 않는다. 두 국가자본주의 블록이 기술 우위를 놓고 다툴 뿐이다.

이 경쟁의 현 상황은 이렇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중국 AI 칩과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의 전면 중단을 요구하고, 중국 국가는 이에 맞서 자국 반도체 설계·제조 산업을 대대적으로 키우며 화웨이와 캄브리콘 같은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주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제조에 핵심적인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막아 반격했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도 AI에서 이기지 못하면 게임이 끝난다고 말했다.

이 경쟁은 AI의 군사화로 곧장 이어진다. 기술 기업들은 한때 ‘공익’을 표방했지만 빠르게 군과 손잡고 있다. 유리 프라사드에 따르면, 구글은 자사 제품을 무기 제작에 쓰지 못하게 하던 조항을 최근 삭제했고, 이제 군이 제미나이 AI를 자체 프로그램에 탑재하도록 허용한다. 21 오픈AI도 비슷한 금지 조항이 있었지만 2024년부터 현역 미군 중령을 이사회에 두고 있고, 다른 기술 기업들과 함께 국방부와 2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앤트로픽은 한동안 예외처럼 보였다. 국내 대량 감시와 완전 자율 무기에 자사 AI를 쓰지 못하게 해 국방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르자 소송까지 냈다. 그러나 프라사드는 이것이 바뀌고 있다며, 아모데이가 “앤트로픽은 국방부와 차이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고 강조한 발언을 인용한다. 미군은 이란에서 표적 선정에 앤트로픽의 AI를 썼다고 보도됐다. 민간 AI 기업은 국가의 전쟁 기계에 통합되고 있다. 그리고 ‘안전 보장’과 ‘민주주의’라는 미사여구가 군사 협력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된다.

아모데이는 중국이 AI에서 앞서면 미국과 세계에 중대한 위험이 된다고 경고하면서 이를 자기 구상의 가장 어려운 딜레마로 꼽는다. 그의 ‘글로벌 거버넌스’ 구상은 제국주의 경쟁과 국가·기업 유착이 심해지는 세계에서는 공허하다. 국가와 기업은 경쟁자보다 앞서려고 자본주의의 냉혹한 논리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인의 선의는 체제의 논리를 이길 수 없다.

20세기 초의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를 준다. 당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민간 기업이 국가와 더 통합되자, 국가들은 그 기업들을 유지하려고 전 지구적 규모에서 시장과 자원 통제권을 놓고 경쟁했다. 이것이 국제 평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했다.

AI 군사화는 한국에도 곧바로 적용된다. 한국은 미·중 AI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반도체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HBM은 미국 AI 산업의 핵심 부품이고, 이재명 정부의 반도체 전략은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과 긴밀히 엮여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현대로템의 무인·로봇 무기 개발, 육군의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논의는 한국 자본주의도 AI 군사화의 적극적 참여자임을 보여 준다. 한국의 AI 붐을 이해하려면 한국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체제 안의 하위 제국주의로서 차지하는 위치를 분석해야 한다.

AI는 단조롭고 하찮은 일을 자동화해 노동의 고역을 없애고, 마르크스가 ‘진정한 부’라고 부른 자유 시간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이 자본축적을 일차 동기로 삼는 자본가의 통제 아래 있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손에서는 AI가 해방이 아니라 지배의 기술이 될 것이다.

5. 일터의 AI: 감시, 노동 강도, 탈숙련

AI가 노동자들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곳은 일터다. 영국 노동연구소(LRD) 연구원 디미트라 코토우자는 2026년 4월 인터뷰에서 AI가 일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생생하게 전했다. 22 코토우자 연구원은 먼저 AI의 상당 부분이 보이지 않게 도입된다는 점을 짚는다. AI 감시 기술이 한 예다. DHL 배송 차량에 운전자를 향한 카메라가 도입됐는데, 명분은 위험 감지였다. 노동자들과 유나이트 노조 일터 대표들은 유럽연합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활용해 이 기술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고 승리했다. 그러나 국가는 이런 보호 장치마저 허물고 있다. 2025년에 통과된 ‘데이터(사용 및 접근)법’은 자동화된 의사결정에 대한 보호를 줄였다. 전에는 자동화된 의사결정이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예외만 있었지만, 이제는 원칙적으로 합법이고 일부 통제만 있다. 새로 등장하는 알고리즘 관리 방식은 임금, 업무량, 근무지, 근무 시간에 관한 결정과 연결되고, 인사와 채용·해고 결정에도 쓰이고 있다.

코토우자 연구원이 든 사례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피터버러 시의회의 ‘제럴딘’ 챗봇이다. 23 이 시스템은 한 선임 사회복지사의 소통 방식, 과거 조언 이메일, 그 복지사가 가진 모든 정보로 AI를 훈련시켜 만들었고, 다른 사회복지사들에게 조언을 제공한다. 전에는 사회복지사들이 서로 찾아가 도움을 청했지만, 이제는 ‘제럴딘 AI’를 쓰도록 안내받는다. 코토우자는 이것이 동료 관계와 일터 조직화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 동시에 이것은 노동자 지식의 탈취이기도 하다. 그 사회복지사에게서 수집한 데이터는 챗봇에 내장되는 순간 자산이 되고 기업주의 비용을 줄여 준다. 해리 브레이버먼이 《노동과 독점자본》에서 분석한 과정, 곧 노동자의 숙련과 지식을 관리자 쪽으로 빼앗아 가는 테일러주의의 핵심 원리가 AI를 통해 전문직과 돌봄 노동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 문제도 이미 현실이다. 해외 언론계에서는 기자들이 대량 해고됐다가 AI 보조원으로 재고용되는 사례가 많다. AI가 하루 50건의 기사를 만들어 내고 기자들은 그것을 편집만 하라는 식이다. 더는 저자가 아니라 AI 편집자가 되는 셈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AI는 일자리를 없애는 것만큼이나 일의 성격을 바꾸고 노동 강도를 높이는 데 쓰인다. 탈숙련 문제는 의료 분야에서도 나타났다. AI 서기가 진료 기록을 모두 작성하자, 일부 의사들은 환자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돼 불안해했다. 청년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경험 많은 프로그래머는 AI로 빠르게 코드를 생산할 수 있지만, 신입 노동자들은 AI의 오류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해 신뢰할 수 없는 인력으로 여겨질 수 있고, 직접 코드를 짜며 실제로 이해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다. 숙련이 재생산되는 경로 자체가 끊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코토우자 연구원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24 노동조합에 힘이 있다면, 신기술 도입에 동의하기 전에 충족돼야 할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 이런 ‘신기술 협약’에는 임금 삭감 금지, 업무량 증가 상한, 정리해고 금지 같은 조항이 들어갈 수 있다. 또한 노동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동의 없이 데이터를 수확하지 않으며, 기술 도입에 직원을 참여시키고, 감시와 자동화된 의사결정에 관한 보장을 포함하는 조항도 가능하다.

코토우자는 그런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지점에 이르는 것이 가장 어렵고, 그러려면 조직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AI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할 좋은 동기가 된다고 덧붙인다.

코토우자는 국경을 넘는 연대도 강조한다. AI를 생산하는 노동자들, 곧 극심하게 착취당하고 매우 낮은 임금을 받는 세계 노동자와 연대해야 하며, 이들의 조직화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가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투쟁 사례들도 있다. 캐나다의 DHL 배송 노동자들은 AI 사용에 맞서 파업을 벌여 승리했다. 25 맨체스터 노조 활동가 회의에서는 배우노조 에퀴티의 로런스 부바르가 배우와 공연자들이 파업 위협으로 자기 목소리와 초상의 무단 사용에 맞섰으며, 이는 미국 SAG-AFTRA 노조의 파업으로 고무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26 2023년 할리우드 배우·작가 파업이 보여 줬듯, AI 도입 조건을 바꾼 것은 협상 테이블의 논리가 아니라 파업의 힘이었다.

기술 노동자들 자신의 저항도 눈여겨봐야 한다. 2025년 4월 영국 런던의 구글 딥마인드 노동자 약 300명은 통신노조(CWU)에 가입하려는 운동을 벌였다. 27 그들은 집단적 힘을 이용해 이스라엘 정부와 회사의 관계에 도전하고, AI 기술을 이스라엘군에 판매하려는 딥마인드의 결정을 막으려 했다. 고임금 기술 노동자들이 정치적 쟁점을 계기로 노조로 조직되는 것은 AI 산업이 노동계급 투쟁에서 면제된 영역이 아님을 보여 준다. 유리 프라사드가 보도했듯, 2018년 구글 노동자 3000여 명이 군 드론 영상 분석 사업 참여에 반대하는 청원에 서명하기도 했다. 28

맨체스터 노조 활동가 회의에서는 전략을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29 연구자 앤 알렉산더는 자신을 ‘AI 폐지론자’로 소개하며 이 기술이 엄청나게 파괴적이라고 했다. 반면 시린 아소는 AI가 위험하고 반복적인 일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소는 노동조합원들이 기술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기술이 중립적이지 않고 소유자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논쟁은 중요하다. 폐지론의 도덕적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기술 자체를 적으로 삼으면 노동자들을 자본에 맞서 단결시키지는 못하고 기술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으로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 반면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순진한 입장은 자본이 기술을 기획하는 방식 자체에 계급적 목적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놓친다.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은 둘 사이의 산술적 중간이 아니다. 기술의 개발과 도입, 사용을 누가 통제하느냐, 곧 계급 권력의 문제로 논쟁을 옮기는 것이다.

6. 코드에 새겨진 차별: 성차별과 AI

AI는 기존 사회의 차별을 반영하고 증폭한다. 딥페이크의 96퍼센트가 동의 없는 포르노이고, 그중 99퍼센트가 여성을 다룬다. 30 딥페이크는 추상적 위협이 아니라 이미 여성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데 쓰이는 도구다. 일부 활동가들은 포르노가 성폭력을 정상화해 남성들을 폭력으로 몰아간다고 주장하지만, 성차별적 문화에 새로운 학대 수단이 더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31 AI의 이런 이용은 성차별적 광고나 바비 인형처럼 성차별적 세계의 문화적 구성물이며, 성차별의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성차별의 원인을 가족 제도와 계급사회에서 찾는다. 성차별은 여성에게 가사와 육아를 떠맡기는 것을 정당화하는 핵심 구실을 하기에 계급사회의 오랜 특징이 돼 왔으며, 자본주의 가족의 비밀주의와 위계가 그것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킨다.

그렇다고 기술 기업에 자율 규제를 호소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다. 문제는 평등한 세계를 건설하는 일이 기술 억만장자들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대립한다는 데 있다.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에게 진정한 규제와 감독을 요구하는 것은 석유 재벌에게 화석연료 금지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7. 국가의 눈: AI 감시와 억압

AI는 일터 밖에서도 노동자와 활동가를 겨누는 무기가 되고 있다. 2024년 영국 노동당 정부는 극우 폭동을 명분으로 안면인식 기술 확대를 추진했다. 이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분명하다. 경찰은 안면인식 기술로 인종차별 폭도들을 처벌하게 됐다고 떠벌리지만, 이 기술은 국가가 좌파와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들에게도 쓸 무기다.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1936년 영국 공공질서법은 오즈월드 모즐리의 파시스트들을 다루려고 도입됐지만 파시스트에게는 거의 쓰이지 않았고, 오히려 좌파 동원을 막는 데 쓰였다. 연구자들도 이런 ‘기능 확장’에 대해 경고한다. 실시간 안면인식 기술 배치는 사람들이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권리 행사를 결과가 두려워 스스로 삼가는 ‘위축 효과’를 낳을 수 있다. 32

기술 자체의 편향도 심각하다. 2018년 MIT 미디어랩 연구에서 오류율은 피부색이 밝은 남성에게서 0.8퍼센트였지만 피부색이 어두운 여성에게서는 34.7퍼센트였다. 33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연구에서는 흑인과 아시아인이 백인보다 10배에서 100배 사이 더 자주 오인됐다. 34 이 편향의 원인은 사회 구조적이다. AI는 사람들이 수집한 데이터로 훈련되고 프로그래밍되기 때문에 언제나 그 사회의 편견 속에 놓이며,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가 만드는 AI는 그 편견을 반영하고 재생산한다.

감시 기술의 상업적 측면도 놓칠 수 없다. AI 투자가 늘어도 수익성이 부진해 투자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윤을 얻으려면 더 많이 판매해야 하므로 안면인식은 거대 기술 기업들에게 수익성 좋은 판로가 될 수 있다. 거품과 감시 국가는 서로 맞물려 있다.

감시 문제의 최전선은 미국의 빅데이터 및 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다. 팔란티어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미등록 이민자 추적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AI 무기화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시민 감시 논란과 윤리적 비판을 받고 있는 기업이다. 2026년 9월 영국 곳곳에서 반(反)팔란티어 운동이 일어났다. 35 보수당 정부는 2023년 팔란티어에 약 5943억 원 규모의 국민보건서비스(NHS) 연합데이터플랫폼(FDP) 운영 계약을 줬다. 계약은 2030년까지이지만 이르면 2027년 3월에 발동할 수 있는 해지 조항이 있다. 병원 노동자들이 반대에 앞장섰다. 런던 호머턴 병원에서는 유니슨(공공노조)뿐 아니라 영국의사협회(BMA)와 유나이트까지, 병원에서 활동하는 모든 노조가 함께 팔란티어 소프트웨어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경영진에게 보냈다.

이 운동에서 배울 점은 쟁점들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NHS 전체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문제로 운동을 벌이기는 어려웠지만, 팔란티어가 이스라엘군과 연루돼 있어 그런 논의를 시작할 계기가 됐다. 36 팔란티어와 팔레스타인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노동자들의 대화는 곧 이민세관단속국과 미국의 인종차별적 치안 문제로 옮겨 갔다. 긴축 반대, 인종차별 반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을 한데 모아 팔란티어를 밀어낼 기회가 있다. AI 반대 운동이 협소한 기술 문제에 갇히지 않고 제국주의, 인종차별, 공공서비스 방어를 아우르는 폭넓은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한국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공공기관의 AI 도입, 플랫폼 노동의 알고리즘 관리, 경찰과 출입국 당국의 데이터 활용은 노동자, 이주민, 활동가를 겨누는 감시 도구가 될 수 있다. 배달 라이더와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의 배차 통제에 맞서 싸운 경험은 이 투쟁의 출발점이다.

8. 지구를 태우는 AI

AI는 물질적 기반 없이 존재하는 ‘클라우드’가 아니다. 거대한 전력과 물을 삼키는 산업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945테라와트시를 넘어 일본 전체의 전력 소비와 맞먹으리라 추산한다. 37 물 문제도 심각하다. 2023년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냉각에 쓴 물은 8000억 리터로, 미국 가정 200만 곳 가까이가 1년 동안 쓰는 양과 같다. 38

그런데 데이터센터는 점점 더 화석연료에 의존한다. 영국의 데이터센터 운영자들은 전력망 연결이 지연되자 가스 연결로 몰리고 있다. 39 영국 가스 공급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는 지난 2년 동안 데이터센터 운영자들로부터 100건이 넘는 가스 연결 요청을 받았다. 미국 사례는 더 극단적이다. 오픈AI,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xAI가 쓸 미국 데이터센터 11곳은 가스를 너무 많이 태워서 그 배출량이 모로코 전체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가 선호하는 범용 AI 모델은 서버를 늘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술의 기획 방향 자체가 자본의 경쟁 논리에서 나온다는 점이 드러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거대 모델을 만들려는 경쟁이 필연적으로 에너지 낭비를 낳는다. 노동조합은 기업에 대규모 언어 모델 대신 환경 피해가 적은 소규모 언어 모델을 쓰라고 요구할 수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AI가 화석연료 산업 자체를 강화한다는 사실이다. 2026년 8월 《네이처》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AI의 도움을 받는 석유·가스 시추는 전 세계 배출량을 크게 늘려 녹색 에너지의 잠재적 이득을 압도할 것이다. 40 연구는 AI가 해마다 최대 18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화석연료 기업의 약 44퍼센트가 이미 AI를 쓰고 있고, 45퍼센트가 앞으로 3년 안에 도입할 계획이다. 연구의 결론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AI가 그 자체로 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은 아니며, AI가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은 AI가 작동하는 기존의 경제적·제도적 구조를 강화할 뿐이다. 기술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놓인 사회관계다.

이에 맞선 저항도 자라고 있다. 맨체스터 노조 활동가 회의에서 환경단체 ‘지구의 벗’의 메리 스티븐스는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프래킹’이라고 말했다. 프래킹은 셰일가스를 뽑아내려고 땅속에 고압의 물과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수압파쇄 공법으로, 영국에서는 지역 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의 대중운동이 이를 멈춰 세웠다. 스티븐스는 데이터센터에 맞서려면 바로 그런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41 런던 브릭레인에서는 트루먼 양조장 부지에 계획된 데이터센터에 반대하는 주민 집회가 열렸다. 42 한 참가자는 정부가 데이터센터를 서두르는 동안 주택 개발은 지연되고 있으며, 타워햄리츠구의 안정적 주택 대기자가 2만 4000명이 넘는다고 지적했다. 트루먼 양조장 데이터센터 한 곳이 쓸 물은 1만 8000가구가 쓰는 양과 맞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미 약 2000만 가구가 물 사용 제한을 받으며 살고 있다. 가정의 물 사용까지 묶어 두는 판에 데이터센터에는 막대한 물을 대 주겠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은 노동계급 주거, 기후 재앙, 전쟁을 둘러싼 투쟁들을 하나로 모을 잠재력이 있고, 노동조합이 지구 파괴에 맞선 행동에 나서도록 이끌 기회다. 동시에, 석유·가스 시추 종식은 노동자들이 버려지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의 일부여야 한다.

한국의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 클러스터와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대려고 석탄발전 폐쇄를 늦추고 핵발전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새만금에 추진되는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산업단지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요구한다. 기후정의 운동과 노동운동이 AI 산업 전략을 함께 문제 삼아야 하는 이유다.

9. 추가적 쟁점

이 글에 대한 반론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첫째, 주류 경제학의 생산성 낙관론에 근거한 반론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혁신은 단기적 실업을 낳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새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 발전은 실제로 인류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그러나 이 낙관론은 두 가지를 간과한다. 하나는 ‘장기적 조정’의 과정이 노동자들에게 몇 세대에 걸친 고통을 뜻했으며, 그 조정 자체가 노동운동의 투쟁으로 강제된 측면이 컸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호브먼과 캘리니코스가 분석했듯 AI 투자가 기대한 생산성과 이윤을 낼지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43 게다가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누구에게 가느냐는 경제학이 아니라 계급투쟁이 결정한다.

둘째, AI 안전론자들의 반론이다. 이런 담론은 대기업의 이해관계에 복무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빠르게 개발되는 모든 기술처럼 실제 위험이 있다. 쟁점은 그 위험을 누가, 어떻게 통제하느냐다. 경쟁하는 기업과 국가들에 맡기는 것이 과연 안전을 보장하는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안전을 말하는 기업조차 경쟁 압력 속에서 군과 손잡는 현실이 그 근거다.

셋째, AI 폐지론이라는 반론이다. 맨체스터 노조 활동가 회의에서 앤 알렉산더가 표명했듯, AI는 너무 파괴적이어서 전면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44 이 입장은 AI 산업의 생태적·군사적 파괴에 대한 정당한 분노에서 나온다. 그러나 전략 문제가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개 구체적 조건, 곧 고용과 노동 강도와 감시와 임금을 둘러싸고 시작된다. 이 투쟁들을 기술의 통제권 문제로 발전시키는 것이 추상적 전면 거부보다 더 많은 노동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넷째, 거품 붕괴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는 반론이다. 〈노동자 연대〉 신문은 AI 거품 붕괴를 몇 차례 예고했지만 거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거품은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 거품의 붕괴 시점과 규모는 예측할 수 없고, 거품이 꺼진 뒤에도 인프라와 기술은 남아 경제를 재편할 수 있다. 45 캘리니코스도 이를 인정한다. 46 이것은 분석의 약점이라기보다 겸손의 필요성을 보여 준다. 마르크스주의는 경향과 모순을 분석하는 것이지, 시점을 맞히는 점술이 아니다.

10. 노동계급의 전략: 통제권을 위한 투쟁

지금까지의 분석에서 노동계급 운동의 전략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끌어낼 수 있다. 첫째, AI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통제권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민주적 노동자 통제를 지지하며, 사람을 이윤보다 우선하는 사회에서라면 AI는 일자리 손실 없이 단조롭고 하찮은 일을 자동화하는 데 쓰일 수 있다. AI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지루한 일을 없애 사람들을 해방하며,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쓰일 수 있다. 그러려면 AI가 우리가 의존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람들, 곧 노동계급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둘째, 통제권은 요구 사항들을 협상 테이블에 제출한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투쟁으로 쟁취된다. SAG-AFTRA의 118일 파업, 캐나다 DHL 노동자들의 파업, 딥마인드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NHS 노동자들의 반팔란티어 운동은 모두 구체적 쟁점에서 시작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을 세운 사례다. 유리 프라사드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 트로츠키의 경고를 인용한다. 47 전쟁은 거대한 영리 사업이고, 그래서 지배적 금융·산업 엘리트는 일급 애국자이자 전쟁의 주요 선동자이며, 전쟁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가 전쟁 제조자들에 맞선 투쟁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걸음’이라는 표현이다. 노동자 통제는 특정 산업에 대한 법률적 요구이기 전에,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조직이 자라나는 과정이다.

셋째, 노동조합 투쟁의 핵심은 현장 조합원 조직이다. 국제사회주의 전통은 노조 관료를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중재하는 특수한 사회계층으로 분석해 왔다. 관료는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한편 투쟁을 협상 가능한 범위 안에 가두려 한다. AI 도입 문제에서도 노조 지도부는 ‘노사 협의 구조’, ‘노동 영향 평가’, ‘사회적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틀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현장 조합원들의 행동과 결합되지 않으면 사용자의 일방 도입을 추인하는 절차로 전락하기 쉽다. 현장 투사들의 과제는 지도부를 규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장에서 조합원들의 독립적 행동을 조직하면서, 지도부에 투쟁할 것을 요구하는 공동전선 전술을 펴야 한다.

넷째, 분열을 넘어서는 단결이 결정적이다. 자본은 AI 도입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내국인과 이주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노동자를 이간질하려 한다. AI를 생산하는 전 세계 저임금 노동자와의 연대는 곁가지가 아니라 필수다. 한국에서 이것은 무엇보다 공통의 사용자에 맞선 원·하청 공동 투쟁을 뜻한다.

다섯째, AI 문제는 다른 투쟁들과 연결돼야 한다. 팔란티어 반대 운동이 팔레스타인 연대 및 반인종차별과 결합하고,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이 주거권 및 기후정의와 결합한 것처럼, AI 문제는 반전, 반인종차별, 기후정의, 공공서비스 방어 운동의 교차로에 자리 잡고 있다.

여섯째,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대안 사회의 문제다. 기술이 인간 해방에 복무하려면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민주적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 소유와 같지 않다. 소련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로 본 국제사회주의 전통의 분석은 생산수단이 국가 소유여도 노동계급이 통제하지 않으면 착취가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 준다. AI를 ‘국유화’하라는 요구는 누구의 국가인가라는 질문과 분리될 수 없다. 오늘날 한국 국가는 AI 산업의 가장 강력한 추진자다. 필요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곧 노동자들 자신의 민주적 권력이다.

맺음말

AI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압축해 보여 준다. 인간 노동을 줄이고 풍요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닌 기술이 노동자를 감시하고 노동 강도를 높이고 일자리를 위협하는 데 쓰인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계산 능력이 화석연료 채굴을 가속하고 데이터센터로 물과 전기를 삼킨다. 인류의 지식을 모은 도구가 전쟁과 학살의 표적 선정에 동원된다. 이것은 기술의 운명이 아니라 체제의 논리다.

그 체제는 난공불락이 아니다. 거품 위에 선 AI 붐은 경제적으로 취약하다. 그리고 AI 산업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한다. 데이터를 라벨링하는 노동자, 칩을 만드는 노동자,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노동자, 모델을 설계하는 노동자, AI를 도입하는 일터의 노동자, 이들 모두가 이 체제를 멈출 힘을 지니고 있다. 기업주들이 신기술에 투자할수록 그것을 운용하는 노동자들의 힘도 커진다. 그 힘을 조직하는 것이 현장 투사들의 과제다.

[부록]
〈노동자 연대〉 신문의 AI 관련 기사에 대한 몇 가지 생각

강동훈 기자가 올해 AI에 관한 기사를 잇따라 실었다. 필자와 생각이 거의 같다. 그렇기에 좀 더 따져 볼 가치가 있다.

강동훈 기자가 쓴 AI 기사들 중 특히 〈AI 개발 속도 조절론〉에서 내린 결론에 필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거대 AI 기업들이 갑자기 인류를 걱정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규제는 진입 장벽이고, 트럼프가 안전장치를 “사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중국과의 경쟁이다.

그러므로 이 부록은 논박이 아니다. 같은 신문에 글을 쓰는 동지끼리 생각을 함께 벼리는 일이다. 다섯 개의 질문을 던지고 싶다.

⑴ 생산성 향상 여부

강 기자의 〈3대 메가 프로젝트〉 기사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훌륭하게 설명한다.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경쟁이 강제하는 기계화, 잉여가치의 유일한 원천인 산 노동까지. 그런데 기이하게도 결론에서 미끄러진다. 신기술이 보편화되면 이윤율이 떨어지고, “그러니 생산성 향상 수치도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쓴다.

마르크스에게서 이윤율 하락은 생산성이 오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노동자 한 명이 더 많은 기계를 돌리게 되는 것, 그것이 생산성 상승이고 동시에 이윤율 하락의 원인이다. 롭 호브먼이 2월에 〈소셜리스트 워커〉에 기고한 대로, AI로 생산성이 얼마나 오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오른다 해도, 아니 오를수록 이윤율 압박은 커진다.

이 구분은 사소하지 않다. AI가 ‘생산성을 못 높인다’는 데 판돈을 걸면, 어느 분기 통계가 반대로 나오는 순간 우리 주장 전체가 흔들린다. 우리 주장은 그보다 단단하다. 생산성이 올라도 자본주의는 그 열매를 위기로 바꾼다.

⑵ 거품의 폭발 시점

강동훈 기자는 AI 거품이 ‘분명’하다고 쓰고, 붕괴 이후 재정 위기와 ‘이웃 거지 만들기’까지 내다본다. 방향은 맞다. 하지만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호브먼은 시장이 1조 달러를 날린 뒤에도 거품이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고 봤다. 놓칠까 봐 두려워하는 심리와 ‘더 바보가 있으리라’는 믿음이 거품을 떠받치기 때문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도 ‘좋은 거품’론에 일단 “그럴지도”라고 여지를 남겼다.

실천적 활동가에게 시점 예측은 사실 별 쓸모가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거품이 커지는 동안 그 대가를 누가 치르는가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⑶ 노동자의 두려움과 일터의 현실

본지 4월 기사의 제목은 ‘인공지능과 로봇 도입, 막연하게 두려워할 필요 없다’였다. 강 기자의 의도는 이해한다. 두려움은 무력감을 낳고, 무력감은 저항의 적이다. 강 기자는 노동자들에게 신기술 도입 조건을 두고 싸울 힘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옳은 결론이다.

하지만 그 근거로 든 통계, 곧 AI 노출 직종에서도 실업률 격차가 거의 없다는 보고서들은 중요한 것을 놓친다. 위에서 든 해외 언론계 사례들을 보라. 기자들이 대량 해고된 뒤 하루 수십 건의 AI 기사를 편집하는 일자리로 재고용된다. 의사들은 AI 서기가 진료 기록을 쓰는 동안 환자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신입 프로그래머들은 코드를 직접 짜 볼 기회를 잃는다.

실업률은 그대로일 수 있다. 하지만 노동 강도, 감시, 탈숙련, 그리고 우리 노동의 생산물을 수탈해 기계에 집어넣는 일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두려움을 부추길 필요는 없지만, “아직 별일 없다”는 메시지는 일터 활동가들이 겪는 현실과 어긋난다.

맨체스터 노조 활동가 회의에 참석한 통신 노동자 시린 아소가 AI는 생각하지 않고 예측할 뿐이라고 말했을 때(1장 참조) 그가 말한 요점은 AI가 무능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기업주들이 원래 하려던 감원의 핑계로 AI를 쓴다는 것이었다. 진짜 무기는 기계가 아니라 기계에 관한 얘기다.

⑷ 기술의 중립성 문제

강 기자의 〈AI 개발 속도 조절론〉은 이렇게 끝난다.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AI의 자본주의적·제국주의적 이용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절반만 맞다. 그 기술이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보라. 화석 연료, 반도체, 물을 삼키는 데이터센터, 그리고 남반구의 저임금 데이터 노동자들이다. 이 글의 8장에서 지적했듯, AI를 어떤 목적으로 쓰든 환경 파괴는 따라온다.

이재명 정부는 18.4기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하고, 그 전력을 대려고 핵발전소를 늘리려 한다. 그런데 메가 프로젝트를 다룬 강 기자의 기사에서 환경 문제는 다른 단체들의 반대 이유로만 등장한다. 이것은 주변 의제가 아니다. 맨체스터 노조 활동가 회의의 환경 활동가들은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프래킹”이라 불렀다.

기술의 기획 자체도 중립적이지 않다. 노조가 거대 언어 모델 대신 소형 언어 모델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제안은 기술의 형태가 투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노동자 연대〉 편집국 안에서 이 문제는 토론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기자 혼자 깔끔하게 정리할 문제가 아니다.

⑸ 위험은 “터무니없”는가?

강동훈 기자는 초지능이 인류를 파멸시킨다는 주장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AI의 통제 이탈을 주로 확률 모델의 한계로 설명한다. SF 같은 종말론에 대해서는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유리 프라사드가 썼듯,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스스로 찾아내 공략하는 모델이 국가의 금고 속에 보관되는 시대다. 프라사드 동지는 이 맥락에서 AI가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무기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강동훈 기자 자신의 〈AI 위험성과 민주적 노동자 통제〉는 AI 모델이 격리 장치를 우회해 오스트레일리아 공공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침해한 사건을 만만찮게 다룬다. 그 기사가 〈속도 조절론〉 기사보다 정확하다.

위험은 기계의 ‘의지’에 있지 않다. 실제로 강력해진 능력이 제국주의 국가와 군대의 손에 들어간다는 데 있다. AI의 한계를 강조하는 논조가 이 점을 흐려서는 안 된다.

같은 트로츠키, 다른 문장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강동훈 기자와 프라사드는 둘 다 노동자 통제에 관해 트로츠키를 인용한다.

강동훈 기자는 1931년 글을 빌려 한계를 말한다. 자본주의에서 안정적인 노동자 참여는 노조 관료가 자본에 종속되는 것으로 끝나고, 진정한 노동자 통제는 이중권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는 진보당·정의당의 법안이 조직된 힘 없이는 종잇장에 불과하다고 옳게 지적한다.

프라사드는 트로츠키에게서 출발점을 읽는다. 전쟁 산업에 대한 노동자 통제가 전쟁 제조자들에 맞선 투쟁의 첫걸음이라는 대목이다.

둘은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법안 비판에서 곧장 계획경제로 건너뛰면, 그 사이의 구체적 투쟁이 빈다. DHL 노동자들은 데이터 보호법을 이용해 운전석 감시 카메라를 막았다. 배우들은 파업 위협으로 목소리와 얼굴의 무단 사용을 막았다. 구글 딥마인드 노동자들은 국방부·이스라엘 관련 계약에 맞서 노조를 만들었다. 신기술 협약에 해고 금지, 임금 삭감 금지, 업무량 상한, 동의 없는 데이터 수집 금지를 박아 넣는 싸움도 있다. 현대차 노조가 “노사 합의 없이 단 1대도” 안 된다고 선언한 것도 바로 그런 출발점이다.

이런 싸움들이 노동자들을 국가와 자본에 맞서는 더 큰 투쟁으로 묶어 낼 잠재력이 있다는 데에는 강동훈 기자도 원칙상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잠재력을 일터 전술로 번역하는 일이 다음 과제다.

결론

강동훈 기자의 기사들은 개혁주의적 좌파가 AI 거품을 외면한다는 점, 그리고 자본주의를 조절해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환상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 점에서는 필자가 배울 것이 많다. 하지만 분석이 조심스러워야 선동도 단단해진다. 생산성과 이윤율을 구분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이미 겪는 피해를 통계 뒤에 숨겨서는 안 된다. 환경과 감시를 중심 의제로 올려야 한다. 그리고 혁명이라는 목표와 오늘 일터의 싸움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강동훈 동지에게 감사와 동지적 인사를 보낸다.


참고 문헌

그 밖의 문헌

  •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1권.
  • Nikolai Bukharin, 《Imperialism and World Economy》 (1915/1917).
  • Alex Callinicos, 《Imperialism and Global Political Economy》 (Polity, 2009).
  • Tony Cliff, 《State Capitalism in Russia》 (1955/1974).
  • Chris Harman, 《Zombie Capitalism》 (Bookmarks, 2009).
  • V. I. Lenin,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1916/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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