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의 줄타기는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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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한 지 불과 6일 만에 존 맥너마라 주콜롬비아 미국대사와 미 국무부의 베네수엘라 담당 직원들이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방문했다. 베네수엘라에 미국대사관을 설치하려는 것이다.
마두로 납치 직후 트럼프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하겠다”고 선언했다. CIA는 친 마두로 세력을 포섭해 베네수엘라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기밀보고서를 제출했고 트럼프가 이를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대사관은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미국이 베네수엘라 정부 운영에 개입하는 핵심 수단 노릇을 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 정부 내 실권자이자 민병대 ‘콜렉티보’를 지휘해 온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을 향해 협조하지 않으면 “제거 대상”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로페스 국방장관도 “잠재적 표적”으로 지목했다. 정부가 분열해 로드리게스가 실각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두 사람에게 마약 밀매 조직 혐의로 내건 2,500만 달러(약 337억 원), 1,500만 달러(약 202억 원)의 현상금은 여전히 유효하다.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마두로 대통령 납치 하루 만에 트럼프 측에 손을 내민 데 이어 미국의 베네수엘라 석유 통제 계획에도 협조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베네수엘라] 국가는 모든 당사자에게 이익이 되는 조건으로 에너지 관계에 개방적이다.” 로드리게스가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로드리게스의 행보를 보며 미국의 전면 침공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혹은 ‘전술’로 여기는 견해가 있다. 로드리게스 자신은 베네수엘라 석유가 베네수엘라의 발전을 위해 쓰여야 한다며, ‘평화’와 ‘실리’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현 정부와 국가기구들을 일시적으로 안정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베네수엘라 민중에게는 끝없는 고통만 안겨 줄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 민중에게도 훨씬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를란도 치리노가 이끄는 베네수엘라 급진 좌파 단체 ‘사회주의와해방당’(PSL)은 트럼프와의 협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공격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라는 맥락 속에서 미국의 경제적, 패권적 지배력 위기를 뒤집으려는 트럼프가 전개하는 전 세계적 반격의 표현이다.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 후, 트럼프는 … 쿠바, 콜롬비아, 멕시코, 그리고 그린란드까지 위협했다.
“트럼프 본인의 말에 따르면, 석유 통제 계획은 이미 하락하고 있는 유가를 더 낮추고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트럼프와의 어떠한 협정도 거부하는 이유다. 우리는 단호해야 한다. 만약 제국주의와 협정을 맺는다면, 우리 자원에 대한 약탈과 비참함만 더해질 뿐 근로 인민에게는 아무런 혜택도 없을 것이다.
“미국 및 다국적 기업들과 함께한다고 해서 혜택이나 더 나은 임금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근로 인민의 필요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직장, 학교, 지역사회에서의 끈기 있는 조직화와 투쟁, 그리고 동원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되찾고 우리의 주요 요구를 쟁취할 수 있다.”
실리?
로드리게스는 마두로 납치 전부터 차베스가 시행한 국유화(특히 석유) 조처를 되돌리고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에 시장을 내어 주는 정책을 추진해 온 대표적 인물이다. 트럼프가 로드리게스를 파트너로 인정하려는 이유다.
2013년 마두로 취임 이후 중용돼 미국 제국주의와의 타협 정책을 이끌어 온 로드리게스는 외교장관이던 2017년 국영 석유 회사의 미국 자회사인 시트고(Citgo)에 지시해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 5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반면, 2018년 부통령 취임 뒤 그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국내에서 추진한 긴축 정책과(2020년부터는 재무장관을, 2024년부터는 석유장관을 겸임하고 있다) 민영화는 식품 가격을 폭등시키는 한편, 공공부문 임금을 억제해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선 이하의 삶으로 내몰았다.
〈로이터〉의 2024년 5월 보도를 보면, 베네수엘라 한 가구의 기본 식료품 비용이 500달러를 넘지만 공공부문 임금은 2022년 이래 30~100달러 수준으로 동결돼 왔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보너스 임금’으로 이를 보조했지만 문제 해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로드리게스는 이번에 미국과의 석유 협상을 예고하며 “베네수엘라가 서반구의 모든 나라와 경제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는 최근 트럼프가 서반구에서 미국의 통제력을 재천명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그 목표에 일조할 뜻이 있음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백보 양보해 로드리게스의 타협이 순전히 ‘전술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성공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마두로도 석유 부문을 해외 민간 시장에 개방하려 시도했지만, 트럼프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전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며 이를 훼방놓다가 결국 마두로를 납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6월, 마두로는 외국 자본가들을 초청해 석유 부문 투자를 권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모든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그리고 전 세계의 투자자들은 베네수엘라가 기회의 땅이며, 투자가 성장할 것을 보장하고, 국제 시장에 보증과 에너지 안보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드리게스의 줄타기는 결코 베네수엘라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베네수엘라의 안정과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줄타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은 (마두로처럼) 국내에서 민주적 권리 억압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베네수엘라 민중은 로드리게스에게 어떤 기대도 걸지 말고 자신의 독자적 조직과 투쟁을 건설해 나아가야 한다.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베네수엘라 정부를 향해 긴축 반대, 파업과 결사의 자유 쟁취, 좌파 정치범 석방과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과 결합될 때 진정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