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이 프라샤드에 대한 반론:
마두로 정권을 비판하는 것이 순수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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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의 좌파 지식인 비제이 프라샤드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최근 베네수엘라 논평을 비난하는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렸다. 캘리니코스가 “차베스의 ‘볼리바르 혁명’을 저버렸다”고 마두로를 비판한 것이 “수도원 같은 순수주의”라는 것이다. 또 다른 글에서는 “좌익 종파주의”라고도 비난했다.
사회주의 정치 언어에서 “순수주의”와 “종파주의”는 구체적 의미가 있다. “순수주의”(또는 초좌파주의)는 전술에 대한 고려 없이 원칙만 앙상하게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 “종파주의”는 자신들 나름의 방안과 현실 투쟁 주도 세력 사이의 차이를 앞세우며 현실 투쟁을 주도하는 세력과 함께 싸우려 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나 캘리니코스의 마두로 정권 비판은 둘 모두와 관계없다. 그는 트럼프와 미국 제국주의를 압도적으로 비판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그의 마두로 정부 비판은 제국주의에 맞선 베네수엘라 민중의 운동이 마두로 정권과 맺어야 할 관계라는 특정한 문제에 관한 고려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프라샤드는 마두로가 유가 하락과 미국의 제재라는 악조건 속에서 “차베스 사후 사회주의 프로젝트를 사수했다”면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이를 외면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유가 하락과 미국의 제재로 베네수엘라 사회 전체가 모두 똑같이 고통받은 것은 아니다. 사재기, 투기를 일삼고 조세 회피지로 국부를 유출한 기업들이나 개인들만이 득을 본 게 아니다. ‘볼리바르 혁명’ 과정에서 부상한 신흥 자본가들(“볼리부르주아지”)과 국가 관료, 경제의 핵심 부문을 통제하는 군부도 득을 봤다.
마두로 정권은 기업 몰수나 외채 디폴트 선언처럼 노동자·빈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중 어느 하나만 시행해도 계급 갈등이 첨예해졌을 것이고, 거기에 맞서려면 대중의 참여와 운동을 확대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두로 정권은 오히려 우파와 절충하고, 대중의 삶을 공격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거기에 맞서는 좌파를 탄압했다. 베네수엘라 공산당(PCV), ‘비판적 차비스모’를 표방한 ‘모두를 위한 조국’당(PPT), 투파마로스당, 혁명사회주의당(PRS), 좌파 인권단체 수르헨테스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배신의 결과 ‘볼리바르 혁명’에 대한 대중의 이반이 나타났다.
마두로를 납치한 트럼프 정부는 이제 베네수엘라를 마치 ‘신식민지’처럼 만들어서, 라틴아메리카 정부들과 중국 등 경쟁국에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 그런데 로드리게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미국과의 절충을 통해 자신의 통제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베네수엘라 대중의 잠재적 분노 사이에서 줄타기하고 있는 것이다.(관련 기사: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의 줄타기는 민중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올 것’)
이것은 마두로 정권과 그들이 이끄는 ‘볼리바르 국가’가 베네수엘라 자본주의에 자리 잡은 것의 귀결이다.
따라서 베네수엘라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미국 제국주의와 싸워야 한다. 그것은 마두로 정권이 우리가 보기에 충분히 사회주의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미국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프라샤드는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마두로 정권의 응원 부대가 돼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좌파 일부도 마두로 정권과 연계되는 식으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 접근법은 제2차세계대전 때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과의 군사적·정치적 통일전선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패퇴시켰다는 신화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당시 마오쩌둥의 민중전선적 수사와 별개로, 실제 현실에서 국민당은 하도 썩어 빠져서 일본 제국주의에 전혀 맞서지 못했다. 그 임무를 실제로 수행한 것은 오직 공산당뿐이었다.
우리는 베네수엘라 노동자·빈민들이 미국 제국주의에 맞서 스스로 투쟁에 나서기를 바란다. 물론 그 투쟁은 마두로 정권에 대한 반대를 전제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투쟁은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마두로 정권으로부터 이반했지만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광범한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을 것이다. 베네수엘라 바깥 해외에서 벌어지는 연대 운동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