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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정의당 성장의 역설

지난해 노동자들은 박근혜 정권의 공세에 어느 정도는 저항했다.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서 좌파인 한상균 후보가 당선한 것은 노동자들이 저항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 준 것이었다. 또, 4월과 9월에 하루 행동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어도 파업을 했다. 11월 민중총궐기에는 대부분이 노동자와 좌파인 10만 명이 참가했다. 지난해 노동자 저항의 절정이었다.

물론 노동계급의 투쟁 수위는 박근혜 정권과 사용자들의 맹공격에 필적할 만한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공무원연금 문제 같은 일부 전투들에서는 패배하기도 했다. 핵심 문제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거듭 소심하게 뒤로 물러섰다는 점이다. 그들은 행동 수위를 제약한 뒤, 패배하면 투쟁 동력이 없었다거나 행동은 별 효과를 못 낸다고 말했다. 단연 공무원노조 이충재 전 위원장이 대표적이었다.

그럼에도 2013년 박근혜 정권 취임 초기 노동자들이 보인 낙담·사기저하·우울·무력감·두려움 등을 떠올려 보면, 노동자들의 투쟁 자신감이 조금씩, 불균등하게나마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경제 상황의 악화와 친일 외교 행각 등이 겹치면서 (처음에는) 철옹성처럼 보였던 박근혜 정권에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동자 저항 덕분에 개혁주의 정당이 소생하다

조금씩 회복되는 노동자들의 자신감 덕분에 통합 정의당 같은 정치적 개혁주의가 소생했다. 이 말이 당장 이번 총선에서 통합 정의당의 의석 증가로 나타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법과 선거 정치 지형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므로 지나치게 단순한 전망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확실히 지난해는 2012년과는 다른 정치적 공기가 감돌았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분열 이후 진보 정당들은 ‘각개 기어가기’를 했다. 진보 정치가 실패했다는 말이 유행어였다. 그러나 지금 민주노총 안에서는 ‘노동개혁’ 저지 같은 노동자 운동의 핵심 의제를 부각시키는 데 총선을 이용해야(기다려야) 한다는 (잘못된) 기류가 형성돼 있다. 노동자들의 염원을 개혁주의 정당으로 표현하는 정당의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 힘입어 공식 정치 영역에서 통합 정의당이 성장했다. 〈노동자 연대〉는 이미 일찌감치 이런 상황 전개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최일붕, ‘[2014년]상반기 투쟁을 돌아보며 주의할 것들’, 〈노동자 연대〉 137호와 김인식,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 〈노동자 연대〉 150호를 보시오.)

통합 정의당은 노동자 투쟁의 수혜를 입고 있다. 2015년 2차 민중총궐기. ⓒ이미진

현재 통합 정의당의 당원은 3만 명이 넘는다. 2012년 12월 창당 때(7천여 명)의 네 배로 늘었다.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당들만이 공식 정치를 반세기 이상 지배해 온 나라에서 이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20세기 전반에 독일·영국 등에서 고전적 사회민주주의가 누린 광범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충성을 — 독일 사회민주당은 “국가 안의 국가”로 널리 인식됐다 — 더는 받지 못한다. 장기간에 걸쳐 노동계급 기반이 상당히 침식돼 온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고전적 사회민주주의가 완전히 무의미해졌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당원 수를 분석할 때는 이런 국제적·역사적 추세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공공노조·화섬노조·사무금융노조 지도자들 상당수가 통합 정의당을 지지한다. 이들이 정의당의 의회 지도부와 조직 노동계급을 연결시키는 구실을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봤을 때, 일부 좌파가 의회주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종국적 파산”을 선언한 것은 개혁주의의 생명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이자, 실천적 함의로는 개혁주의 세력과의 공동전선을 기각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그저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노동자 대중 외부에서 주입하는 사상이 아니다. 이런저런 개혁주의는 피착취·피억압 집단이 고통에 맞서 행동에 나설 때 보이는 자연스러운 첫 반응이다. 피착취·피억압 집단의 성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나고 자란 기존 사회 말고는 알지 못한다. 당연하게, 기존 방식으로 조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빨간 안경을 쓰고 자란 사람이 분홍빛 이미지 말고는 상상할 수 없듯이 말이다.

자연스러운 첫 반응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썼듯이,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또,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어떤 사회의 “상식”은 지배적인 사상을 당연시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그 사회의 주요 특징이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하고서 자신들의 최초 요구를 제기한다. 그래서 봉건 사회에서 농민 반란은 흔히 나쁜 영주나 왕을 착한 영주나 왕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은 정교회 사제가 이끈 행렬이 경찰 간부와 공장주의 ‘학정’을 해결해 달라고 차르에 청원하면서 시작됐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조합의 협상이나 국회에 압력을 가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이 협상을 조직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방식에 기대를 걸 때 정치 운동으로서의 개혁주의가 떠오른다. 이렇듯 개혁주의 정당의 성장은 노동계급의 의식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

2000년에 작고한 팔레스타인 출신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가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한, 그러나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한 자신감이 없을 때, 노동당은 결정적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이 말을 지금 우리 현실에 맞게 번안하면 이럴 것이다.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권의 공세에 저항할 만큼 자신감이 자라기 시작했지만, 진정하고 실질적인 총파업을 통해 박근혜 정권의 공세를 좌절시킬 만큼 자신감이 충만하지는 않는 상황에서 통합 정의당 같은 개혁주의 정당이 떠오르고 있다.

이것이 통합 정의당의 패러독스(역설)이다. 통합 정의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운동과 정치를 예리하게 분리시키고자 한다. 노회찬 전 대표는 이를 “진보의 세속화”이자 “진보 정치의 혁신”이라고 했다. 그런 통합 정의당이 노동자 투쟁의 수혜를 입을 수 있고 실제 입고 있다.

물론 지난해 하반기 민주노총 하루 파업과 민중총궐기 등 노동자 투쟁이 부상하자 통합 정의당은 전보다 좀 더 적극성을 발휘해 그 운동들에 참가했다. 그러나 그때조차 노동자 파업을 통해 ‘노동개혁’을 저지하자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과연 노동자 투쟁보다 의회 활동에 무게중심을 두는 개혁주의 정당인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공식 정치 영역에서 통합 정의당의 부상 조짐은 단지 의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공식 정치가 다시 한 번 변화의 문턱에 들어서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2012년 말 박근혜가 이긴 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사기가 저하됐는지를 떠올려 보라.

민주노총의 총선 방침에 대해

진보 정치 세력이 통합 정의당과 진보당 계승 세력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진보 유권자의 표가 온전히 통합 정의당으로 몰리지는 않을 수 있다.(두 세력은 같은 선거구에서 경쟁하지 않도록 후보를 단일화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난해 말 민주노총은 표 결집을 최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거연합정당 안을 제시했다. 이것은 ‘노동자연대’가 오래 전에 제안한 전선체적 연합정당 방안과 매우 흡사하다. 현재의 구체적 한국 상황에서는 지지할 만한 방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연대’의 강조점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에서 범좌파 정당 건설 쪽으로 이동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본가 양당 체제 왼쪽에서 개혁주의 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선거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논리였다.

그런데 통합 정의당은 방금 전에 4자 통합을 마친 터라 민주노총의 제안을 거절했다. 반면, 진보당 계승 세력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단일한 이념에 기초한 단일한 세력이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가정도 깔려 있다.(특히, 신석진·김정엽 등이 쓴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 반성과 성찰의 기록》(생각비행)에서 이런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노총 중집 성원의 다수는 통합 정의당이 빠진 채 진보당 계승 세력이 주도하는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면 노동조합이 분열될 수 있음을 우려해 결국 선거연합정당 안을 폐기했다. 정당 지지 문제로 노동조합이 분열해 단결력과 투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현재 민주노총 중집은 선거연합정당의 대안으로 ‘총선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요구, 민중총궐기 11대 요구에 동의하고 박근혜 정권의 반민중적 공세에 대한 공동 투쟁 조직화에 동의하는 정당, 정치조직, 사회운동조직”과 함께 ‘총선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총선공동투쟁본부를 통해 지역 선거구에서 후보를 조정해 ‘민중단일후보’로 출마하고, 총선공동투쟁본부 참여 진보 정당들을 정당 투표 지지 대상으로 한다는 구상이다. 진보/좌파 다원주의에 입각하되, 진보 세력들이 최대한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안이다. 민주노총이 그 내부에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고려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물론 박근혜 정권이 노동 개악 2대 지침을 강행한 지금, 총선을 기다리기보다 투쟁을 확대하는 것이 이후 선거 돌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박근혜에 맞설 수 있는 조직 노동계급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줄 때 다른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총선 때까지 기다려 ‘노동개혁’을 저지하자는 선거주의적 접근은 오히려 선거 승리 가망성을 적게 만들 것이다.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좌파적 개혁주의의 부상

2008년 경제 공황 이후 지속된 경제 침체 시기에 국제적으로 좌파 개혁주의에 대한 광범한 지지 추세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전에도 독일의 좌파당(디링케),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과 그 뒤 좌파전선), 포르투갈의 좌파블록, 덴마크의 적록동맹, 한국의 민주노동당이 급진좌파 정당을 형성한 바 있다.

경제 위기 이후 유럽의 우파 정부는 열정적으로, 그리고 개혁주의 정부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긴축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이 커졌다. 환멸은 하나의 방향을 향하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거나,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이나 파시스트 정당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더 급진적인 방향을 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급진좌파가 재림했다. 보수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수용하면서 당원 수와 유권자 기반이 감소했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들은 정치의 이런 점진적인 공동화(空洞化)를 메우고자 했다.

영국에서 변화 염원의 구심이 된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가운데 노란 셔츠) ⓒ출처 lewishamdremer (플리커)

그리스에서는 2015년 초 시리자가 총선에서 급진적인 반긴축 강령을 내세워 집권했다. 시리자는 그리스의 커다란 공산주의 운동이 분열하면서 등장했다. 스페인의 새로운 급진좌파 정당인 포데모스는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21퍼센트(약 5백 20만 표)를 획득해 69석을 차지했다. 포데모스는 ‘분노한 사람들’ 운동 같은 사회 운동 속에서 등장해 기성 정치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공산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과 경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했는데, 1년 전에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남아공에서는 경제자유투사당이 2014년 총선에서 1백만 표를 넘게 득표해 (4백 석 중) 25석을 차지했다.

계급투쟁

이런 사태 전개의 핵심 추동력은 새로운 투쟁과 운동의 발전이었다. 그런 투쟁과 운동 덕분에 더 많은 노동자들과 청년들이 대안을 위해 저항하고 투쟁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계급투쟁 수준이 높으면 좌파의 공간이 확대되고 우파의 공간이 압착된다.

물론 국제적 정당 스펙트럼을 따르자면 통합 정의당은 결코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이 아니다. 통합 정의당 지도부 자신도 서구식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 당의 강령도 “한국 자본주의의 민주적 개혁”을 표방한다. 그래서 통합 정의당은 과거 민주노동당보다는 정책과 실천 모두에서 주류 사회민주의 정당에 더 가깝다.

예컨대, 정의당 지도부는 안보 문제에서 냉전 시기 서구의 반공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연상시키는 행보를 해 왔다. 지난해 1월 정의당 지도부는 천안함 위령탑을 참배했다. 〈동아일보〉는 이를 두고 “종북과 선 긋기”라고 보도했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해 8월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고를 두고 북한의 반인도적 전쟁범죄라고 규탄하고, 박근혜 정부의 안보 무능을 질타했다. 올해 1월 북 핵실험에 대해서도 정부의 “안보 무능”을 비판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물론 그 당은 평화주의도 설파한다. 둘 사이에 모순이 있다. 그러나 정의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집권하면 국가를 강화하겠다고 시사하고 있다.

노자 대립에서도, 정의당 지도부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가령, 정의당 지도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일방적 추진은 반대했다. 확실하게 자본가 계급의 편을 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모순의 실천적 결론은 사회적 타협 — 계급 평화 — 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의당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여야 야합과 공무원노동조합 집행부의 배신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라고 두둔했다.

그러나 보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주류 양당 정치를 지배해 온 유럽과 달리, 한국의 양당 정치는 두 자본가 정당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통합 정의당이 새누리당이나 더민주당 등 부르주아 정당과 맞붙는다면 사회주의자들은 환상을 갖지 말고 통합 정의당에 투표하라고 대중에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통합 정의당의 온건함 때문에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투표를 넘어 그 당에 입당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