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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은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을까?

정의당 지도부가 ‘조국 대전’에서 조국을 방어하자, 당내 젊은 급진적 지지자들이 크게 반발했다. 정의당 지도부는 이런 반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정의당 지도부는 왜 좌파적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을까? 당 지도부의 마이동풍에 화가 난 일부 당원들은 당내 민주주의 강화를 해결책으로 보는 듯하다.

이번뿐 아니라 그전부터 정의당 지도부는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을 거의 비판하지 않거나 너무 유순하게 ‘비판’했다. 수구보수 세력의 복귀를 저지하고 개혁을 하려면 자유주의적 중도개혁파와 손잡아야 한다고 봐서다.

심상정 대표는 이를 두고 ‘현실주의’ 노선으로 명명했다. 이 경우에 ‘현실주의’는 당장 실현 가능한 개혁만을 요구해야 한다는 노선이다. 현실 가능성을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국회 내 세력 관계다. 국회 내 입법 협상 가능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런 노선에 근거해 심상정 대표는 국회 밖 투쟁(특히 노동자 투쟁)에 거리를 둬 왔다.

심상정 대표는 당내 좌파에 대해서도 ‘급진적’이라고 비난한다. 정의당 당 대표 선거 때 심상정 후보는 양경규 후보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이 ‘책임감 있고 온건하다’는 점을 보여 줘 자본가들을 안심시키려는 것이다.

10월 21일 정의당 창당 7주년 기념행사 ⓒ출처 정의당

정의당 안에서는 심상정 대표로 표현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인사권과 재정 등을 비롯해 당 기구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 정의당 의원단에도 좌파는 없다. 당내 좌파는 비교적 작고 주변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지난 7월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민주적 사회주의’ 후보는 16퍼센트를 득표했다.

이런 당 내부 세력 관계 때문에 정의당 안에서 눈에 띄는 대안적 정책 논쟁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선거에서 어떻게 더 많이 득표할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돼 있다.

온건파가 정의당을 독점하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정의당을 변화시키려고 입당했을 법한 젊은이들과 노동조합원들이 정의당의 변화 가망성을 발견할 수 없어 입당하지 않거나 다른 정당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들 중 정의당의 선거 기반이 가장 넓지만,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녹색당 후보가 정의당 후보를 앞지른 것은 시사적이다.

이 때문에 정의당은 자신의 왼쪽에 있는 세력도 필요로 한다. 2015년 정의당이 노동·정치·연대(민주노총 상근간부층 일부의 네트워크), 진보결집+(노동당 탈당파) 등과 통합한 것도 그래서다. 이들이 당 밖 좌파를 흡수하는 일을 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물론 정의당이 주도한 통합이었고, 지금도 그 세력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정의당에는 지도부와 다르게 급진적 사회 변화에 진지하게 헌신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좌파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강점 중 하나다. 자기 왼쪽에 있는 조직과 운동에 다가가서 그들을 흡수하는 동시에 오른쪽을 향해서는 ‘공당으로서의 책임’을 다한다는 인상을 주는 데 능숙하다.

혁명가들은 정의당 안에서 좌파가 전진하는 것을 지지한다. 정의당 같은 대중적 진보 정당 안에서 좌파가 전진하면, 비(非)정의당계 좌파들은 때때로 그들과 공동 행동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지금보다 더 광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주의를 둘러싼 토론을 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의회 중심주의

그러나 국제적·국내적 경험을 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안에서든 밖에서든 좌파적으로 개혁하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거의 모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내부에 좌파와 우파가 영구적으로 대립한다. 과거 민주노동당에서도 (좌우 대립일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항구적인 정치적 차이가 존재했고 당 내에는 상시 분파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끊임없는 내부 논쟁에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가령 2004년 가을 내내 민주노동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냐(자주파) 비정규직 철폐 투쟁이냐를(평등파) 놓고 대립하며 당력을 소모했다.

심지어 경기 규칙을 바꾸거나 그래도 안 되면 아예 경기장을 떠났다. 2008년 심상정·노회찬 등이 주도한 평등파는 민주노동당 당대회 결과에 불복해 탈당했다.

그러나 이 대립과 투쟁들은 당의 의회 중심적(따라서 선거 중심적) 성격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받아들이는 속에서 벌어졌다. 사실, 민주노동당 분열의 직접적 계기가 된 쟁점도 총선 비례후보 선출 방식을 둘러싼 것이었다.

이런 선거·의회 중심적 성격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권력 중심은 의원단에 있다. 그런데 의원단은 선거가 가하는 압력을 받으며 국가기구와 밀착돼 있는 집단이다. 또한 의원단은 평당원들에게 책임지지 않는다. 가령 민주노동당 시절 정규직 양보론인 사회연대전략이 중앙위원회에서 거듭 부결됐음에도 당 의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언론들에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것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의사 결정 방식이다. 민주주의와 권한집중이 따로 논다. 즉, ‘당원들은 토론하라, 그러나 지도부는 따로 갈 수 있다.’ 당내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당내 투사들의 열정을 보존하면서도 실행에서는 자주 그들을 거스르는 방식이다.

의회 밖 투쟁

이런 이유들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좌파 주도 정당으로 확고하게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 개혁주의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은 내일은 개혁주의의 강력한 힘에 압도당할 것이다.

물론 국제적 경험을 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당 내 좌파가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나마 성공을 거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의회 밖 투쟁과 연결될 때였다.

영국 노동당의 사례를 살펴보자. 전후 영국 노동당 좌파의 핵심이었던 어나이린 베번은 의회 밖 활동을 거침없이 주장한 인물이었다. 1951년 베번 좌파 운동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대중운동의 성격을 띠었다. 제러미 코빈은 대중적 난민 방어 운동을 지지한 덕분에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15년 노동당 대표가 됐다.

물론 다른 조건에서 좌파가 부상한 경우도 있었다. 1980년대 초 토니 벤을 중심으로 새로운 좌파가 떠오른 것은, 당시 노동쟁의의 하향으로 매우 힘든 시기에 많은 투사들이 노동당을 변화시키는 것만이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고, 토니 벤이 그런 염원의 초점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의당 좌파는 당 대표 선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얻어 약간 의기소침해 있는 듯하다. 정국 전체를 집어삼킨 조국 정국에서도 아쉽게도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좌파가 자신들의 독자적인 정치적 주장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당 지도부와의 변별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당의 통합과 중도층 유권자 붙잡기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그때도 좌파가 당 지도부의 온건 노선에 대해 침묵을 지키면 더욱 주변화될 것이다.

정의당 좌파가 전진하려면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좌파적 시각에서 정견을 자주 내고, 당 밖 투쟁들을 열의 있게 지지하고, 그것과 진정으로 연결되고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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