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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정치 방침과 진보대통합당 안에 대해

총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 문제가 민주노총 상층 간부들의 제일가는 관심사가 됐다. 내년이 대선이기 때문에 이 논의는 곧 일선 활동가들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에서 주요 쟁점은 새 노동자 정당 건설 문제다. 부울경연합을 필두로 해 자민통계가 일제히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 안(案)을 주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울산에서 두 명의 노동자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에 크게 고무돼 ‘민주노총당’을 만들자고 촉구하고 있다.

우선순위 선거연합이나 진보대통합당 등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대중투쟁 건설에 도움이 되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이미진

그러므로 많은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에게 진보대통합당 안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진보대통합당이 정계 진출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 통합진보당이 분열한 뒤로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에게는 마땅한 정치적 표현체가 없었다.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이 정의당으로 가긴 하지만, 이 당은 과거 민주노동당만큼 민주노총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신승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전현직 민주노총 간부들 일부가 진보대통합당 건설 활동에 나서고 있다. 박유기 현대차 지부장도 최근 울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비슷한 생각을 말했다. “노동자가 후보 단일화의 여세를 몰아 진보정당 단일화도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민통계의 프로젝트

개혁주의적인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일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진보대통합당 안은 본질적으로 자민통계의 프로젝트다.

진보대통합당과 상설연대체는 자민통계의 핵심 전략을 이룬다. 자민통계는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정당을 건설하지 않고 진보대통합당이나 전선체 안에서 움직이는 것(또는 전선체로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오랜 스탈린주의 전통이 있다. 이때 합법적 진보대통합당이 제도권 정치를 맡고, 상설연대체가 대중 투쟁을 담당한다. 이 프로젝트가 가리키는 전략적 방향은 민중전선이다.

민중전선 전략의 뼈대는 노동계급만으로는 신자유주의와 냉전 수구 반통일 세력에 맞설 수 없으므로 중간계급과 (심지어 부르주아지 일부와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자본주의 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를 체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전략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각각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에게 상당한 선거적 실리를 안겨 줬다. 그러나 기본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계급 간 동맹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의 힘을 약화시킨다. 정치 동맹자들이 곧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중연합당은 자본주의 야당과 체계적으로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진할 수 없었다. 더민주당 등 자본주의 야당이 선거적 실익이 없다는 계산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부 선거구들에서 민중연합당 후보가 자진 사퇴하는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가 있었다.)

그렇다고 자민통계가 민중전선 전략을 폐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민중전선은 자민통계의 역사적 전통이다. 전통은 물질적 토대가 변하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여기에 울산의 선거적 성공이 자민통계로 하여금 내년 대선에서 민중전선(연립 정부)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 것 같다.

진보대통합당은 민중전선을 실현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자민통계가 총선 직후 신속하게 ‘어게인 민주노동당’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권오길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민주노총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과거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는 달라진 형편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이 직면한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주도해 만들었다. 반면, 현재 민주노총은 진보대통합당 건설을 주도할 힘이 1990년대 후반 같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래서 민주노총과 여타의 정치 세력들이 연합해 상시적인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 진보대통합당의 발상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의 강력한 근거는 울산의 경험이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모든 정파가 총단결하고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선거 운동을 해 계급 투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노동자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분명 통쾌한 일이었다. 또, 계급과 정치 성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일부 좌파의 주장이 틀렸음도 보여 줬다.

그러나 울산의 경험을 곧장 전국화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한다. 울산의 경험을 이치에 맞지 않게 억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울산의 승리를 “진보당의 정치적 복권”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물론 당선한 두 후보는 진보당 출신이다. 그러나 결정적 승인(勝因)은 그들이 노동자 후보이자 진보·좌파의 단일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진보당의 계승 세력으로 여겨진 민중연합당의 전국 득표는 극히 저조했다. 진보대통합당 안 — 진보당도 진보대통합당을 표방했다 — 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무리하게 갖다 붙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과잉 일반화 울산의 승리를 "진보당의 복권"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다. ⓒ사진 출처 민중연합당

정의당의 기본 성장 전략

정의당은 지난해 말 민주노총의 선거연합당 제안조차 내키지 않아 한 바 있어,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정의당 지도부가 진보대통합당 안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에 당선한 진보 국회의원 8명 중 6명이 정의당 소속이다. 원내에서 정의당이 다수인 것이다. 크게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할 법하다.

둘째, 정의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진보대통합당보다는 더민주당과의 야권연대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물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 둘이 길항관계인 것은 전혀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정의당 지도부는 야권연대를 적극 제안했지만, 더민주당이 우클릭 하면서 이 제안을 거부해 성사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정의당의] 지역구 의석은 최소화됐다.”(정의당 중앙당 20대 총선 평가기획팀이 제출한 ‘정의당 20대 총선 평가’에서)

여기서 정의당 지도부가 내린 결론은 “힘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야권연대 전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민주당 등으로부터 선거구 양보를 이끌어 내려면 지역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정의당의 수도권 지지율은 10퍼센트를 상회한다. 따라서 전략적 야권연대는 여전히 정의당의 핵심 성장 전략이다. 정의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내년 대선에서도 더민주당 등과 연립 정부를 수립하고 싶어 한다.

셋째, 정의당 안에는 스탈린주의 세력과의 합당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존재한다.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 간 갈등과 북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두 정치 세력의 날카로운 차이점이 드러났다. 북한의 핵실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서해 NLL 인근 해상사격훈련, DMZ 목함지뢰 폭발 등에 대해 정의당은 북한을 강경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해 왔다.

마지막으로, 정의당 내 노동·좌파 계열도 진보대통합당 안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 내심으로는 부울경연합이 정의당에 입당해 그 당 안에서 노동·좌파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정의당은 노동자 정당이 아닌가?

자민통계가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정의당을 노동자 정당으로 보지 않고 있음을 함축한다.(일부 급진좌파도 이렇게 주장한다.)

자본주의적 노동자당 정의당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바라는 것이지, 노동 기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조승진

정의당이 노동계급과 맺고 있는 조직적·전통적·이데올로기적 연계가 과거 민주노동당만큼 밀접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당의 당원과 투표 기반은 주로 노동계급이다. 정의당 당원 3만 명 중 2만 명이 노동자다.(그중 민주노총 조합원이 1만 명이다.)

물론 지난해 11월 정의당에 합류한 노동계 리더 출신자 하나가 당의 비례 후보 경선에서 후순위에 배정돼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를 두고 정의당이 ‘노동을 홀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작 비례 후보 경선 때는 노동계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반면, 〈노동자 연대〉는 당시 노동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 소속 정의당 당원이 1만 명이라 해도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의 1.25퍼센트밖에 안 된다. 즉, 정의당의 조직 노동자 기반은 아직 미약하다. 정의당이 성장하려면 조직 노동자 운동을 훨씬 더 중시해야 한다. 그 점에서 정의당의 비례 후보 결정은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의당이 노동자 정당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심상정·노회찬·이정미 의원 등은 모두 노동운동 출신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지도부와 정책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해서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헌법 안의 진보”), 그 당은 레닌이 말한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다.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적 정경 분업 원칙 — 파업이나 임금 인상 등 경제적 쟁점들은 주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다루고, 주로 선거 문제로 여겨지는 정치적 쟁점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소속 의원들이 다루자는 것 — 에 따라 민주노총과 역할 분담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 민주노총과의 단절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심상정 의원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온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 극복’론이다. 그러나 이런 정경 분리는 정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을 사용하는 것을 삼감으로써,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적·부문주의적 약점을 강화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반면, 자민통계는 민주노총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현실에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을 부활시켜 진보대통합당을 만들려는 것으로 나타난다. 당이 계급을 대표하고, 따라서 대중 운동은 정당의 전달 벨트일 뿐이라는 스탈린주의적 당 개념을 보여 준다.

이런 당 개념 때문에 자민통계는 자신들 밖에 있는 노동계급 조직과 운동에 흔히 종파적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자민통계 활동가들은 ‘정의당에 민중성과 투쟁성이 부재하다’고 비판한다. 이 말을 선거 결과와 결부시키면 정의당의 득표는 정치적 의미가 없음을 함축한다. 뒤집어 말하면 울산의 결과만이 ‘민중적’이고 ‘투쟁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의당의 전진을 부정하는 것이자 무엇보다, 정의당에 투표한 노동자 대중을 무시하는 종파주의다. 이런 태도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진지하게 공동 행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에는 분열 요인들이 많다

물론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좌파의 단결을 바랄 것이다. 선거에서 노동자 정당들이 분열하는 바람에 자본주의 정당들이 표를 가져가는 것을 막고 노동자들의 정치 진출을 이루고자 하는 정서는 정당하다. 2012년 총선 때 경남 창원을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각각 따로 출마하는 바람에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해 노동자들이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 연대〉는 지난해 말 민주노총이 선거연합당을 제안하기 전부터 이미 그런 대응의 필요성을 주장했다.(이번 호에 실린 최일붕의 ‘진보대통합당 안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기사를 보시오.)

선거연합당처럼 선거에서의 공동 대응 수준을 넘어 진보대통합당 안은 상시적인 정당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는 단결 촉진이 아니라 많은 분열 요인들을 안고 있다. 노동자 운동 안에 중요한 정치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은 이런 차이를 애써 간과하고 강령적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민통계의 역사적 전통을 봐도 그들은 서로 동의하는 구체적 요구 중심으로 투쟁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 주로 자신들의 강령을 채택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의 문제점은 과거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인 진보당의 분열이 보여 줬다. 갈등을 촉발시킨 날카로운 쟁점들 — 각각 일심회 당원 제명 기도와 경선 부정 문제 — 이면에는 원칙과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 차이가 좁혀졌다는 증거는 없다. 따라서 북한 문제, 계급투쟁 문제,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와 연립 정부 문제 등이 불거지면 진보대통합당은 또다시 쓰라린 분열을 겪을 수 있다.

자민통계는 주로 패권주의를 중심으로 지난 시기의 분열을 평가하는 듯하다.(2012년 진보당 경선부정과 중앙위 폭력 사태가 성찰 항목에서 빠져 있다!) 자민통계는 패권주의를 자신들이 운동의 다수파라는 ‘숙명’에서 비롯하는 문제로 사고하는 듯하다. 그래서 조직 운영 방식 문제에 골몰한다.(《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에서도 이런 기술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층 노동자 운동에서 자민통계는 다수파가 아니다.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수준에서는 근소하게 다수일지 몰라도, 일선 활동가와 현장조합원 수준에서는 결코 다수파가 아니다. 2014년 12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좌파인 한상균 후보가 이긴 일이 이를 입증한다. 총선에서도 자민통이 노동계급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게 아니다. 정의당이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자민통계의 다수성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좌파가 다수성 자체를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패권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세력이 동의하지 않고 반대하는 것을 자민통계가 자주 무리하게 추진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사례를 봐도, 민주노총에 특정 정당 지지 방침을 채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정치적 쟁점을 회피하는 것이 좋다고 보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세월호 참사, 여성·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속죄양 삼기 등에 반대하고 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안에는 정치적 차이들이 존재한다. 계급의식이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안에 복수의 진보·좌파 정당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조합 쟁점으로 행동 통일을 이루되, 정치적으로는 먼저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코드가 맞을 때 비로소 공동 행동을 하는 방식이어야지, 그러지 않고 ‘진보 정당 단일화’를 요구하는 것은 커다란 분열을 낳고 원한만 깊어지게 할 것이다. 그리 되면 조직 노동자 운동이 약화될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진보대통합당에 참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보다는 선거연합정당이 선거 시기에 노동계급의 단결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진보·좌파 다원주의에 입각하면서도, 사안별로 괜찮은 입장을 취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신축성을 발휘하는 것이 좋겠다. 어느 한 정당이나 개인, 운동이 언제나 올바른 입장을 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설연대체와 공동전선

사회주의자들은 자민통계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상설연대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대중 운동이 활성화돼 계급의식이 고양되는 특정 시기에는 포괄적 쟁점들을 아우르는 상설연대체가 그 기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

게다가 자민통계의 상설연대체는 자본주의 정당과의 동맹을 지향한다. 이 때문에 2005∼06년에 격론이 벌어졌고, 민주노총이 최종 불참을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한국진보연대다.

자본주의 야당들과의 동맹 정책 때문이 아니어도 상설연대체에 좌파와 민주노총이 참여할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각 단체의 당면 전망과 중장기 전략, 강조점, 정치 문화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민통계가 아니라 민주노총이 주도한다고 해도 이 점은 별로 바뀌지 않을 것 같다. 2013년 민주노총이 발의한 ‘민중의힘’은 그 뒤 일어난 운동들에서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해 해산될 운명에 처해 있다.

따라서 실효성도 없는 상설연대체가 아니라 제한된 특정 쟁점들을 중심으로 공동 행동을 할 수 있는 사안별 연대체가 단결에 이롭다. 실제 투쟁 경험들을 봐도 어지간한 대중 행동은 — 2008년 촛불, 용산 참사, 세월호 등 — 사안별 연대체가 주도했다.

도시 노동계급 한국 사회 변혁의 운명은 도시에 달려 있다. ⓒ이미진

노농빈 동맹이냐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냐

자민통계가 말로라도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은(‘노동 중심 진보대통합’) 한국에서 계급투쟁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자민통계는 노동계급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각계각층”을 아우를 것을 강조한다. 중간계층들이 포함된 노농빈(노동자·농민·빈민) 동맹이다.

노농빈 동맹은 자민통계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성격과 변혁 목표와 관련 있다. 자민통계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먼 미래의 문제이고, 당면 과제는 각계각층을 결집해 박근혜 정권과 냉전 우파를 물리치고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이다. 즉, 민족주의·민주주의 변혁이 당면 과제인 것이고 그 주체는 노농빈 동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농빈 동맹은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전략이다. 한국은 대규모 도시화와 프롤레타리아화를 겪었다. 경제활동인구 중 노동계급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경제활동인구 2천6백95만 5천 명 중 임금 노동자는 71.4퍼센트인 1천9백23만 3천 명이다.(2016년 3월 통계청 자료)

반면,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로 농민 계층은 극도로 수축됐다. 2015년 12월 농민 인구는 2백60만 명으로, 경제활동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된다.(2015 농림어업총조사) 특히 고령화가 심화됐다. 70대 이상이 17퍼센트로 가장 많고, 고령 인구(65세 이상)가 38.4퍼센트다.

빈민은 대부분 도시 노동계급의 일부이며 조직된 빈민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이거나 정의당 친화적이다.

요컨대, 한국 사회 변혁의 운명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 달려 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노총이 비할 데 없이 감수성 있게 대처해야 하는 차별 문제는 여성·성소수자·이주민 차별 문제다. 이들에 대한 차별이 지배계급의 분열 지배 전략에서도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