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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함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교수(이하 호칭과 존칭 생략)가 내가 며칠 전에 쓴 글(최일붕, ‘민중주의란 무엇인가?’, 〈노동자 연대〉 168호, 2016.03.02)을 크게 오해한 논평을 그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에 그의 SNS 친구들이 노동자연대의 입장을 심각하게 오해할까 봐, 해명을 해야겠다고 느껴 몇 쪽 적고자 한다.

박노자는 내가 자영업자 서민을 “부르주아”로 보고, 그들을 배제한 채 “‘완벽한 리론’으로 무장된 ‘완벽한 로동자’만이 ‘완벽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사료를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역사가라면 당대의 텍스트도 이렇게 터무니없이 해석하고 판단해선 안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단체 밖 다른 활동가들이나 저술가들의 주장을 언제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해서 설명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면, 그러지 못한 경우도 많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박노자도 A4용지 7쪽밖에 안 되는 글을 오독해 놓고는 버젓이 SNS 상에 그릇된 논평을 공개하는 일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 오해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나는 소자영업자들을 단 한 차례도 “부르주아”로 부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을 적대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물론 노동계급은 중간계급의 일부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간계급 가운데 특히 영세 소농이나 영세 노점상, 철거민, 빈민 등은 노동계급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흔히 노동자의 가족일 뿐 아니라, 그들의 일부는 얼마 전까지 노동자였다가 실직한 사람이거나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처지이기가 쉽다.”

그리고 나도 소자영업자 등 서민층 중간계급 사람들이 노동계급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로 고통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지배계급이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중간계급의 일자리도 불안정해지고 복지 혜택도 감축된다. 게다가 노동자의 이웃 주민으로서 그들의 환경도 파괴를 당한다. 그래서 중간계급의 일부도 자본주의의 일부 효과들에 적개심을 품게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내 글은 천대받는 계급들과 집단들(이하 민중)이 ‘연대·연합’ 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나도 박노자처럼 “아주 광범위한 여러 피착취 계층들의 ‘련합’”과 “‘범민중적 행동’”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나는 그 연합의 내부 역학관계, 특히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사이의 동역학에 관심을 나타냈다. 레닌과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 개념을 바탕으로 한 관심사인 것이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관계 문제가 진정한 쟁점이다”라는 소제목 하에 이 문제를 논의한 단락도 있지만, 한 구절만 인용하면 이렇다:

“계급투쟁이 일어나면 이 집단도[전통적 중간계급과 신중간계급 모두를 가리킴] 양대 계급 중 어느 한쪽으로 이끌린다. 노동자 투쟁이 강력할수록 이 계층 하층의 일부 사람들은 노동자 편으로 이끌릴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의 이데올로기가 민중주의적이었음을 언급할 때도 나는 오클랜드의 오큐파이 운동은 “부두 노동자 등 조직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오큐파이 운동”이었다고 특별히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렇다. 모든 진정한 혁명은 민중 혁명이다. 그러나 그 혁명을 이끈 게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와 영국 혁명이나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처럼 부르주아지인 경우에는 ‘부르주아 혁명’이었던 것이고, 1917년 러시아 혁명처럼 노동계급인 경우에는 ‘사회주의(지향) 혁명’인 것이다. 설마 21세기에도 부르주아지가 민중 혁명을 이끌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중간계급이 이끌리라고 믿는 사람은 다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대다수는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박노자처럼 어떤 계급이 행사하는 것이든 헤게모니 개념 자체를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 발전의 동역학이 이윤 시스템이고, 이윤의 원천이 잉여가치이고, 21세기 자본주의가 취하는 잉여가치의 압도적인 부분이 노동계급에서 나온다는 이론적·경험적 연구 결과를 보면, 헤게모니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노자가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이라는 주관적 문제들을 제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박노자는 노동계급의 현재 주관적 조건에 대해 우리가 낙관적 평가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실증적·이론적 반론을 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그 대신에 노동자연대의 “도그마주의”(교리주의, 교조주의)라는 엉뚱한 비난을 제기했다.

도그마주의?

박노자는 나와 노동자연대를 “도그마주의”로 매도한다. 방법론 분야에서 도그마주의는 경험을 무시하고 교리(도그마)를 물신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내 글은 우리 나라 노동운동가들이 적어도 한두 번쯤은 겪어 봤음직한 일이나 국제 노동계급/좌파/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 가며 내 논지를 경험적으로 뒷받침하려 애썼다. 다루는 주제인 민중주의가 제3세계와 우리 나라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고 처음부터 전제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또한, 같은 호에 실린 김하영의 글은 지난해 민주노총 노조운동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민중주의적 경향의 사고·행동의 사례들을 예리하게 들고 있다. 박노자가 우리를 “도그마주의”라고 비판하려면 이런 경험들에 반대되는 반증과 함께, 더 나아가 자신이 지지하는 종류의 전술들이 효과적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저 멀리 노르웨이에서 그저 언론과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한국 노동운동의 실상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하게 아는 양 착각하면서, 국내 노동운동의 내부에서, 그것도 그 기층에서 분투하며 고민하는 투사들의 실제 경험을 무시하고 도리어 그런 사람들을 도그마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도그마주의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도그마주의 비판에 합리적 핵심이 있으려면, 인식의 절대성과 불변성을 부정하고 의심의 타당성을 긍정해야 한다. 운동하는 투사들이 전술 문제에서 이런 방법론적 회의를 구현할 수 있는 주된 수단은 (집단적으로) 실천해 보고 그 실천을 (집단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음식 만들기, 자전거 타기, 자동차 운전 배우기, 바이올린 연주 등을 관련 도서 읽는 것만으로 배울 수 있나? 나폴레옹 말대로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안다.” 또한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말한다: “친구여, 이론이란 무릇 회색일세. 하지만 소중한 생명나무는 늘 푸른색일세.”

그렇다고 해서 이 같은 인식론적 실용주의가 회의주의나 인식의 상대성을 지지하고 정치적 실용주의(기회주의)로까지 나아가지 않으려면, 어떤 한계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그 ‘한계’는 국제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적 경험이고(교리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그 경험으로부터 ‘엑기스’(진액)를 추출한 것이다. 당연히 이 마르크스주의는 복수형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원성’은 ‘다원주의’(상대주의를 함축하기 쉽다)와 구별돼야 한다. 박노자의 마르크스주의나 우리의 마르크스주의나 박노자가 자랐던 옛 소련의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주의가 설사 다 똑같이 타당할지라도(내적 일관성이라는 면에서) 결코 다 똑같이 건전한 것은 아니다. 그 건전성이 입증되려면 여기서도 역사의 시험대 위에 놓여야 한다. 박노자가 오해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과거의 러시아 혁명이 그 최종 시험대였다고 믿지 않는다. 심지어 미래의 실험조차 최종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목적론을 거부한다 해서 목적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니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있어야 한다. 그 수단의 하나가 국제 노동계급의 역사적 경험을 집약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지만, 현재의 경험도 수단에 포함된다.

사실, 방법 면에서 우리 단체 활동가들에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교리(교조)나 신조이기는커녕 인상에 불과한 것에 근거하기, 즉 경험주의다. ‘이론’이라는 낱말도 부담스럽게 느껴지거늘 “완벽한 리론” 따위를 말하는 회원은 없다. 그런 스콜라주의적 문구는 너무 냉랭하고 무미건조해, 활기찬 젊은 회원들에게는 아예 체질에 맞지 않는 듯하다. 박노자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도그마주의로 재단하는 것은 역사가가 취해야 할 신중한 태도가 아니다.

특수성에 대한 오해

위에서 보았듯이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은 역사적 경험을 초월할 수 없는 데다 사회 관계들도 계속 변하는 것이므로, “완벽한 리론”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분석과 실천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론이냐 아니냐가 있을 뿐이다. 이하에서는 교리와 구별되는 그런 이론을 그냥 이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박노자는 이론이 나라별로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모든 이론은 상황화(맥락화)돼야 한다. 각국의 특수성 때문이다. 하지만 박노자는 특수성을 예외성으로 혼동하고 있다. 그는, 트로츠키가 스탈린을 비판하면서 한 말(독일어 판에 붙이는《연속 혁명》 서문)을 빌리자면 특수성을 “마치 얼굴에 난 사마귀처럼, ‘보편적 특징’들에 단순히 부수적으로 붙어 다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국의 특수성들은 세계 경제의 운동 과정의 기본 특징들이 일국 내에서 독특하게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 일국 자본주의는 오직 세계 경제의 일부로서 이해해야 한다.” 박노자가 “한반도의 남반부”라고 부른 곳을 포함한 신흥국의 자본주의는 이언 록스버러가 지적했듯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의 확립과 선진 자본주의 산업국들의 세계적 자본축적의 맥락 속에서 발전한 것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an Roxborough, Theories of Underdevelopment, Palgrave, 1980.) 가령 한국의 경제성장(즉, 자본축적)은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과 함께) 자본과 시장을 한국에 제공한 덕분이었다. 소위 ‘삼각무역’은 이 관계를 요약한 말이다. 재벌 문제나 영남 지역주의 문제도 이런 식의 경제 발전 양상에 뒤따르는 지역간 불균등 발전의 한 효과였던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일국의 사회 형태의 특수성은 사회의 형성 과정이 지닌 불균등성의 구체적 표현인 것이다.

일국적 특수성이 세계적 보편성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더 예시하면 이렇다. 분단 문제는 미·소 두 초강대국이 세계를 양분한 당시 제국주의 체제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전쟁도 두 초강대국 간의 제국주의간 충돌이 한반도에 국한돼 벌어진 사건(“국제전”)으로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통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는 방식도 단지 반미가 아닌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 맞는 혁명리론”, “로서아의 력사적 경험에 맞는 혁명리론”, “한반도 남반부[의] 고유한 상황에 맞는 리론”이 각각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이론이 베네수엘라와 러시아와 한국 등지의 특수 상황들을 설득력 있고 유용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원시공산제 →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라는 계기적 사회 발전이 서구에 한정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며 도그마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반대했지만, 서구 바깥의 사회들이나 자본주의 이전 사회들을 자신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Marx and Engels, The Russian Menace to Europe, George Allen and Unwin, 1953, pp.277-280.) 1877~82년에 마르크스가 러시아에 관해 쓴 글들은 당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형이상학적 역사철학과 나로드니키(러시아 민중주의자들)의 친슬라브적인 특수론 사이에서 변증법적 종합을 나타내는 논저들이었다.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풀무질, 2003~2004)의 제1장(‘러시아 사회 발전의 특이성’)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비서구 세계에 적용한 훌륭한 사례이고,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책갈피, 2004)는 시간적·공간적으로 역사유물론의 적용 범위를 넓혀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세계의 역사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설명했다.

박노자는 과거의 제3세계주의자들과 현재의 포스트식민주의자들처럼 일국의 특수성을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의 ‘보편적 특징들’ 위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하나의 전체(totality)인 세계 경제를 초월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전의 어느 때보다 세계화된 시대에 말이다.

박노자가 이렇게 세계를 국민국가들의 단순한 총합으로 이해하는 바람에, 세계 자본주의와 분리된 실체로서 일국 자본주의가 박노자 머리 속에서 상정될 수 있게 됐다. 세계 자본주의와 분리된 일국 자본주의가 개념적으로 성립되니 일국 사회주의라는 퇴행적 공상도 개념적으로 성립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왜 각종 “우리식 사회주의”들을 실제의 사회주의 사회의 한 형태로 보는가가 설명된다.

1970~80년대 민중론의 발전적 계승?

일국적 특수성을 예외주의적으로 이해함에 따라 박노자는 우리에게 1970~80년대 민중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라고 주문한다. 물론 아무리 패러다임의 혁명을 이루며 등장한 이론이라 해도 이전 이론의 모든 측면을 전면 기각할 수는 없다. 레닌이 그의 저작 《러시아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발전》(태백, 1988)에서 러시아 민중주의자들(나로드니키)의 러시아 농업 분석을 전면 기각한 것에 대해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레닌이 러시아 농업의 자본주의화를 과대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나로드니키의 농업 분석에서도 일부 취할 바가 있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요즘의 한국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민족경제론의 실증적 조사 결과나 민중사학의 역사 서술(historiography)로부터는 일부 배울 바가 있다.

하지만 계급투쟁 문제로 말하자면 소련 붕괴 전 각종 민중론들은 스탈린주의와 그 민중주의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 건질 것보다는 버릴 것이 훨씬 더 많다. 레닌은 나로드니키의 영웅적 투쟁정신과 극도로 세밀하고 효과적인 조직 기술은 계승하면서도 그들의 테러리즘 전략이나 그 밖의 많은 것들은 이어받지 않았다. 나는 요즘의 한국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과거 한국 민중주의자들의 영웅적 투쟁정신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존한 옛 민중주의자의 대다수가 개혁주의자(좌파적 유형일지라도)가 돼 있는 건 우연이 아니고, 또 단지 나이 탓만도 아니다. 민중주의에 내포된 계급 협력주의의 논리가 세월이 가면서 그 진면목을 점점 더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박노자는 갑오농민전쟁(그가 거부할 용어)의 성격이나 조선 후기 상인 자본의 성격 등 매우 다양한 이슈를 놓고 “민중사학의 도식적인 끼워 맞추기 식 해석”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격주간 〈다함께〉 75호, 2006.03.08). 그런 그가 왜 우리더러는 민중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라는 것인지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는 없는 걸까? 페이스북에서 일축하듯이 단번에 내치지 말고 말이다.

2016년 3월 6일 최일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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