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사태, 교육 재정 지원이 핵심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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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학생들이 남녀공학 논의 철회(와 총장 직선제 등)를 요구하며 보름 넘게 점거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학생들의 점거는 11월 11일 시작됐다. 학교 측이 “대학 경쟁력”을 위해 단과대 일부를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논의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됐다. 해당 안건은 12일 교무회의에 올라올 예정이었다.
이에 반대해 학생들이 점거(현재 본관만 점거 중)와 함께 수업 거부를 하자 곧 뉴스의 중심이 됐다.
성차별적 백래시로 유명한 이준석은 재빠르게 이 운동을 “비문명”이라고 공격했다. 25일엔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이 “과도한 폭력,” “주동자 책임” 운운하며 비난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어른처럼 행동하시고, [정치·젠더 갈등에] 저희를 이용하지 마시라”고 반박했다(〈경향신문〉 인터뷰).
집권 여당 대표가 학생들을 비난하자 학교 측도 더한층 강경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학교 측은 피해 규모 24억~54억 원에 따른 민형사상 소송을 언급하며 교내 CCTV 300개를 분석해 책임자를 가려내겠다고 했다.
25일 진행된 3차 면담에서 학교 측은 본관 점거 우선 해제만 요구하고서 퇴장하고, 곧바로 “폭력 사태, 교육권 침해, 시설 훼손 및 불법 점거에 대해 ... 모든 대응을 단호히 실행”한다는 총장 명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편, 민주당(진성준 정책위의장)은 26일 학생들의 투쟁은 분명하게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여당과 대학당국을 이렇게 비판했다. “폭력을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한 대표의 주장은 본말을 뒤바꾼 것[이다,] ... 대학 당국의 비민주성에 대해서는 입 다물고 학생들만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도 않고 균형적인 태도도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시위를 두고 “폭력 사태” 운운하는 것은 침소봉대이자 위선이다.
학생들은 캠퍼스 바닥과 건물 벽에 래커로 자신들의 요구를 쓰거나 분노를 표현하고, 대학 설립자 흉상에 밀가루, 계란 등을 던졌을 뿐이다.
동덕여대 설립자 조동식은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된 자로, 지난해 학생들은 학교가 신입생에게 배부되는 책자 등에 설립자의 친일 행위를 미화한 것에 반발하며 “친일미화 잔재 청산”을 요구한 바 있다.
점거 농성은 전투적 학생 운동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가장 효과적인 투쟁 전술이다. 점거 농성이 투쟁과 연대의 초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84일간의 본관 점거 투쟁으로 요구를 성취한 바 있고, 가장 최근에는 올해 미국과 영국, 독일 등지에서 대학생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캠퍼스 점거 농성을 벌여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켜켜이 쌓인
학생들에겐 남녀공학 전환이 큰 문제로 여겨졌을 법하다.
하지만 동덕여대 투쟁이 대중적으로 벌어진 이면에는 그동안 학생들에게 켜켜이 쌓인 불만과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올해 초에도 동덕여대 당국은 “대학 경쟁력”을 위한다며 학사제도 개편을 강행했다. 전임 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학사제도 개편이 수업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것을 학생들이 우려한 것은 당연했다. 학생들은 반대했지만 결국 ‘절차대로’ 통과됐다.
이번에 학생들이 남녀공학 안건이 교무회의에 부쳐지기 전날 먼저 행동에 돌입한 것도 이런 경험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학생이 교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이 있었다. 학생들이 6년 넘게 안전 대책을 요구한 곳에서였다.
사고 이후에도 학교는 “책임 회피에 급급하고 구체적 안전대책 마련이 아닌 학생을 통제하는 방식의 대책만 내놓았다”(총학생회 1주기 추모 입장문). 당시에도 학생들은 사망 사고 책임을 물어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본관을 점거했었다.
지금 투쟁하는 학생들은 지난해 죽은 학생과 함께 공부했던 동기이자 선후배들이고, 그때 사퇴 요구에 직면했던 총장이 바로 지금의 김명애 총장이다. 동덕여대 학생들에게는 “불통”과 “학생 무시”의 아이콘인 셈이다.
단지 “불통”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모든 상황의 배경에는 부족한 전임 교원, 낙후하고 위험한 시설물 등 열악한 교육여건 문제가 있다.
2024년 기준 동덕여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30.58명이고(평균 23.3명), 대학이 재학생을 위해 지출하는 1인당 교육비는 1153만 원에 불과하다(평균 2043만 원).
반면 연평균 등록금은 747만 원으로 평균(681.9만 원)보다 높고, 전체 수입 중 재단전입금은 고작 1퍼센트다. 학교 시설도 매우 낙후돼 있다. 일체형 책걸상, 빗물이 새거나 천장이 부식된 건물 등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불문가지다.
그럼에도 학교 재단이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이를 위한 재정을 지원하기보다는, “대학 경쟁력”을 위한다며 일부 단과대에 학생을 더 들여와 등록금만 더 챙기려 하는 것에 학생들이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이해할 법하다.
학생들이 공부할 교육여건을 갖추려면 충분한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 예컨대 신생 대학이었는데도 단기간에 부상한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는 등록금 외에도 각종 전입금, 기부금, 국고보조금 등이 상당하고, 학생에게 투자되는 교육비도 월등히 높다(1인당 교육비가 포항공대 약 1억 2707만 원, 카이스트 약 9973만 원).
결국 재정 지원이 핵심 문제다. 그러려면 대학 재단의 투자를 강제하고,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재단이 부실한 대학은 국공립화해서 정부가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동덕여대 입학한 남학생들
현재 투쟁을 주도하는 ‘총력대응위원회’(동덕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SIREN, 근조화환 총대, 중앙운영위원회)의 요구 중에는 ‘남자 외국인 유학생/학부생에 대한 협의’가 있다.
2차 면담에서는 한국어문화전공을 통해 올해 학부생으로 입학한 외국인 남학생 6명이 논의 대상이 됐다.
투쟁하는 학생들은 외국인 남학생 입학이 남녀공학으로 나아가려는 발판이 될까 우려하는 듯하다. 남학생 수가 늘고 복수 전공까지 하게 되면 남녀공학과 다름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많은 대학들이 정원 외로 유학생(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을 더 많이 유치해서 등록금을 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유학생 등록금을 차등적으로 올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학교 당국의 의도가 뭐든, 동덕여대에 입학한 남학생은 동료 학우다. (남성 일반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일각의 견해는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다. 게다가 여자대학 구성원 중에는 이미 남성이 많다.)
이들이 남자라는 이유로 복수 전공 권리나 공적인 공간 사용을 제한한다면 이는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내국인, 외국인 학생 모두 학교의 열악한 재정 투자의 피해자이고(유학생이 더 취약하다), 동시에 이에 맞서 함께 싸울 이해관계가 있는 동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