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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부터 촛불 이후 현재까지: 세월호 참사 5년을 돌아본다

오는 4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다. 304명의 생때같은 목숨들이 속절없이 가라앉던 그날의 고통과 충격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해를 더해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현 사회 전체를 너무나 비극적인 방식으로 비춘 거울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단지 배 한 척만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완전히 뒤집어진 우선순위로 돌아가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침몰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느라 외면하고 방치해 온 여러 요인들이 2014년 4월 16일 그날따라 겹치고 겹쳤고, 결국 대형 참사를 낳았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크게 돌았다. 조타실에서 조작한 것 이상의 회전이었다.

정부 고시 기준에 따르면 정상적인 배는 아무리 심하게 급선회를 해도 10도 이상 기울면 안 된다. 그러나 여객실을 늘리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개조돼 왼쪽이 더 무거웠던 세월호는 금세 20도까지 기울었다.

18도 정도 기울었을 때 대충 묶여 있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월호에는 기준치를 훨씬 넘긴 양의 화물들이 실려 있었다. 그렇게 실으려면 규정을 어기고 대충 고박(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침몰하는 세월호 희생 학생들은 서로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했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구하러 다시 배에 뛰어들었다 ⓒ출처 해양경찰청
배가 기울수록 물은 점점 더 많이 들어왔고, 물이 들어올수록 배는 더 빨리 기울었다. 닫혀 있어야 할 문들이 대부분 열려 있었다. 고장 나거나 낡은 게 많아서 열어 두는 게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예고된 참사’였다. 세월호는 자주 왼쪽으로 기울었다. 참사 몇 달 전에도 세월호는 바람이나 파도 때문에 휘청거리다가 다시 육지로 되돌아오곤 했다.

세월호와 쌍둥이배였던 오하마나호의 선장은 “죽어도 더는 못 싣는다”고 버텨, 합해서 113톤 정도 무게인 중장비 두 대를 부두에 버리고 출항했다. 이 화물들은 2014년 4월 15일 세월호에 실렸다.

이것이 철근 묶음과 더불어 배가 기울자마자 쏟아졌고, 화물의 이동은 걷잡을 수 없는 전복으로 이어졌다.

제주 해군기지

세월호 참사 1기 특별조사위원회는 참사 당일 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수백 톤이 과적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기지는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전략을 돕기 위해 지어졌다.

인천·제주 간 항로를 독점해 온 청해진해운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물동량 증가를 예상하고 있었다. 청해진해운은 이 항로 운항에서 다른 선박회사가 진입하지 못하게 하려고 세월호 도입을 서둘렀다.

선체조사위 종합보고서는 4월 15일 세월호에 실린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의 양은 세월호 운항 이래 역대 두 번째로 많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덕분인지 이날 따라 화물 운임 수입이 1000만 원이나 늘었다.

세월호 화물칸에서 발견된 철근들 ⓒ출처 정성욱 4.16 가족협의회

왜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세월호는 출항했을까? 참사 후 던져진 큰 의문 중 하나였다. 제주 해군기지 공사는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이런 압박으로 다른 배들과 달리 세월호는 악천후 속에서도 출항을 강행했을 개연성이 높다.

국정원이 세월호를 실소유주처럼 관리하고, 침몰 직후 청해진해운 물류팀 직원과 수 차례 통화했던 것도 제주 해군기지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는 탄생부터 참사까지 위험천만한 친제국주의 정책과 얽혀 있었던 것이다.

안전보다 뇌물

자본주의에서는 투자 대비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 내는 것이 지상 과제이다. 이 시스템에서 확률상 일 년에 한 두 번 일어날까 말까한 사고 때문에 미리부터 안전 인력과 장비와 훈련에 투자하는 것이 낭비이자 비효율로 다뤄지는 이유이다.

국가도 청해진해운도 이 점에서 다르지 않게 행동했다. 청해진해운이 2013년 한 해 동안 직원 안전 교육에 쓴 돈은 겨우 54만 원이었다.

반대로, 온갖 불법들을 눈감아 주고 인천~제주 항로 독점권을 지켜 줄 국가 기관 책임자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은 낭비가 아니었다.

청해진해운은 매년 받는 선박 중간검사나 정기검사 때 뇌물을 200만~300만 원씩 사용했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 과장 박성규는 3500만 원과 양주 3병에 세월호 도입을 허가해 줬다.

역대 정부들은 ‘안전 투자보다 규제 완화’ 정책으로 참사로 가는 길을 놓았다.

국가, 준비된 무능

사고가 사건이 되고 참사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한국 국가의 무능이 드러났다. 안전 규제부터 구조까지 지속적으로 국가 역량을 감소시켜 온 탓이었다.

선박 안전 관련 규제는 2009년부터 눈에 띄게 풀렸다. 2012년에는 수난구호법이 개정됐는데 “해양 사고가 연간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조·구난의 많은 부분을 민간에 맡겼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해 첫해에만 600개 넘는 규제를 없앴다. 예산 부족 때문에 인명 구조, 수난 구호 명령, 선박 좌초·전복 대처를 담당하던 지방 해양경찰청 수색구조계가 없어졌다.

이것은 참사 당일 경악스러운 수준의 구조 무능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7000톤짜리 배가 침몰했는데 출동한 배는 100톤짜리 목포해경 경비정 123정 한 척이었다. 10명의 대원들은 물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구명볼 던져 주는 훈련만 해 왔다. 그마저도 2014년 2월 정기 인사로 직원이 바뀐 뒤에는 훈련이 없었다. 김경일 정장이 그 일부였다.

청와대는 ‘영상 보내라’, ‘구조자 수 보내라’ 집요하게 보고를 독촉했지만,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충격받은 여론을 수습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대중의 삶과 고통에 대한 평소의 무관심을 반영하듯, 박근혜는 구조 골든타임에 청와대 관저 침실에 있었다. 박근혜는 오후 5시 15분이 돼서야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냈다(“세월호 7시간”).

그 사이 최순실을 청와대로 호출해 문고리 3인방과 은밀하게 그들만의 ‘대책’을 논의했고, 미용사를 불러 ‘올림머리’를 했다.

촛불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질 생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참사를 낳은 여러 친기업·이윤 우선 정책들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세월호를 지워 버리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참사의 진상 규명을 회피하고 선체 인양을 차일피일 미뤘다. 해경에 대한 압수수색을 가로막았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끈질기게 항의하는 유가족들의 도덕성을 훼손하려고 유가족을 ‘돈벌레’, ‘세금 도둑’ 취급하며 모욕했다.

이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박근혜 일당의 멸시를 상징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공분이 더욱 컸던 것이다.

결국 이 악행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와 은폐에 대한 분노는 퇴진 운동의 중요한 동력이었다.

여전한 과제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고, 드디어 배가 뭍으로 올라 왔다. 그 덕분에 진상 규명이 한 걸음 진전했고, 일부 미수습자의 유해가 발견됐다. “세월호 7시간”의 윤곽이 드러났고, 박근혜가 쫓겨나 구속됐다.

그러나 유의미한 변화는 안타깝게도 거기서 멈췄다. (관련기사 281호 ‘세월호 참사 5년 — 문재인 2년 동안 수사·처벌은 제자리걸음’)

문재인은 전 정부와는 다르게 유가족을 대했지만 세월호 약속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여당이 주도해 만든 사회적참사 특조위(2기 특조위)는 권한 면에서 1기 특조위와 별로 다를 게 없게 됐다. 책임자 처벌도 더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검찰 내 특별 수사단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결단해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오히려 해경 내 참사 책임자들 중 문재인 정부 하에서 고위직으로 복귀한 자들도 있다. 침몰을 보고받고도 무대응이었던 해경 경비안전국장 이춘재, 침몰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았던 해경 경비과장 여인태는 모두 승진했다.

문재인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사이 참사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검찰 수사 방해 의혹을 받고 있는 황교안이 자유한국당 대표가 돼 설쳐 대고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 ⓒ출처 제천소방서
반복되는 참사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로 70여 명이 사망하는 등 대형 안전 사고들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고령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재인 정부 스스로 의료 산업 등의 규제 완화, 노동개악 등 박근혜의 못다 이룬 정책들을 이어받고 있다. 고(故) 김용균 씨 사망으로 노동 안전 문제도 부각됐지만, 정부는 미봉책으로 생색만 내려했지 실질적 개선은 외면했다.

반복되는 참사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우파 정권의 책임이, 더 큰 문제의 일부임을 보여 준다. 대형 참사는 근본적으로 생명보다 돈을 우선하는 자본주의 체제, 특히 국가의 비용 절감 논리와 기업 봐주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질서를 수호하는 친자본주의 정부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함께 분노하고 반(反)박근혜 항의에 동참했던 이들이 문재인 정부에도 항의하고 자본주의에도 분노해야 하는 이유다.

궁극으로 ‘돈보다 생명’인 사회를 만들려면, 그 열망들은 장차 반자본주의적 대중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책 추천: 《세월호 참사, 자본주의와 국가를 묻다》

《세월호 참사, 자본주의와 국가를 묻다》 김승주 지음 | 책갈피 | 2018년 | 196쪽 |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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