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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고시원 화재:
자본주의가 일용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다

자본주의에서 안전은 무엇보다도 계급적 문제다 검게 타 버린 화재 현장 ⓒ조승진

오늘(9일) 새벽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상자는 대부분 50대 이상 고령의 일용직 노동자였다.

소방 당국은 입주자들이 고된 노동으로 깊이 잠들어 신고가 늦었던 게 피해를 키웠다고 설명했다. 생존자들은 비상벨과 화재 감지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출입구가 화재 때문에 막힌 상태였다.

고시원은 42평 한 층에 2평 남짓한 방 2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1평짜리도 있었다. 복도 폭은 1미터 남짓이라 2명은 못 지나갈 만큼 좁았다.

창문으로 탈출한 사람들만 겨우 생존했다. 창문 없는 방은 뛰어내릴 수조차 없었다. 그 방은 고작 몇만 원 저렴했을 것이다.

고시원이 있던 건물은 1983년에 만들어져 심각하게 노후한 상태였다. 그런데 되려 오래된 건물인 ‘덕분에’ 안전시설 의무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 다중이용업소 특별법에 따르면 고시원은 2009년부터 간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고시원은 2009년 전에 만들어져서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밀양 세종병원 화재 등 연이은 참사에 대한 대책으로 ‘국가 안전 대진단’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올해 실시된 ‘대진단’에서 해당 고시원은 제외됐다. 고시원이 아닌 기타사무소로 등록돼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문재인이 말한 ‘국가 안전 대진단’은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대책으로 2015년부터 실시했지만 별 실효성이 없었다. 근본적 대책(안전 규제 강화, 구조 인력·훈련 예산 대폭 증액 등) 없이 박근혜의 보여 주기 식 대책을 반복한 것이다.

쪽방촌이 된 고시원

오늘날 고시원은 더는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다. 갈 곳 없는 청년들과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들, 노인들,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쪽방촌이 됐다. 도시에서 보증금이 없는 월세 25만~30만 원짜리 집은 고시원뿐이기 때문이다.

올해 다중이용업소 화재 10건 중 1건이 고시원 화재였다. 고시원은 화재와 보안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자살, 방화, 흉기 난동 사건도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주류 정치인들은 이런 문제에 반짝 관심을 보일 뿐 진정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권력자들이 걱정 없이 투자하고 배 불릴 수 있는 사회다.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관심사에서 매번 밀려난다.

카를 마르크스는 170여 년 전 《1844년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이렇게 썼다. “가난한 사람의 지하 주거는 적대적이고 낯선 힘을 가진 주거, 그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줄 때만 얻을 수 있는 주거이며, 그가 임대료를 지불하지 않는 날 언제든지 그를 내쫓고야 마는 타인의 집에 있을 뿐이다.”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은 고된 일용직 노동을 하고 돌아와 자다가 참변을 당했다. 노동자들이 만든 상품들은 자본주의를 갈수록 ‘삐까뻔쩍’하게 만들지만, 아무리 절실하게 집이 필요한 건설 노동자라 해도 그가 지은 건물에 손댈 자격이 없다.

이번 참사는 비정한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해야 함을 비극적으로 보여 준다.

화재가 일어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과 물품들이 놓여있다 ⓒ조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