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
개혁 배신이 정치 양극화를 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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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초기에 이 정부가 진보 개혁 정부라거나 또는 (설사 진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촛불 운동의 덕을 봤고 그 여파가 미칠 것이므로 어느 정도는 진보적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거라는 관측이 많았다.
그런 주장은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고, 우파의 공격에서 엄호하며, 문재인 정부와 개혁 공조를 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2년이 지나 3년차로 들어서는 지금,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크게 빠지고 찌그러졌던 우파가 그 틈을 타 세력을 회복하는 지금, 그런 관측과 실천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문재인에 대한 기대에서든, 노동운동이 촛불 운동의 견인차였다는 자부심 때문에서든, 문재인에게 진보적 노동 개혁과 조건 개선을 요구해 온 노동자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노동자들은 문재인을 더는 믿고 기다리기 힘들다며 스스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줄타기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 “노동 존중”, “페미니스트 대통령”, “적폐 청산”, “한반도 평화 운전자” 등을 내세우며 집권했다. 촛불 운동에 잘 보이려고 한 것이다. 조기 대선과 정권 교체는 순전히 박근혜를 쫓아낸 운동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문재인은 이 운동이 하루 230만 명을 모으고, 연인원 500만 명 참가를 넘길 때까지도 박근혜 퇴진 요구를 지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안철수보다 늦었다. 그 때문에 문재인은 더더욱 촛불 친화적 제스처를 취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문재인은 ‘좌우로 벌려’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2012년 대선 이후 진보성보다 지배계급에게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더 부각했다. 2016년 총선 공천권을 보수 인사인 김종인에게 맡겼던 이유다.
또한 그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완벽하게 남 탓으로 돌렸다. “운동권 내 기득권 세력이 노무현에게 비토[했고]”, “노동자들은 더 급하게 더 많은 요구를 하면서 노정이 부딪히고 갈등을 일으켰[던]” 것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첫해부터 노사관계와 비정규직 개악안을 노사정 대화 안건으로 올렸고, 이라크 파병을 추진했으며, 집시법 개악과 네이스 같은 학생·교사에 대한 정보 통제 강화를 추진했다.
반면, 생존권 투쟁을 하던 노동자들은 구속되거나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 첫해 가을에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가 잇따라 자살하자 노무현은 “죽음으로 투쟁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야멸차게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기득권의 비토”를 행한 것인가?
노무현의 실패에 대한 책임전가식 평가는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려는(그랬다가 괜히 집권 후 곤란해지니)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의 2017년 대선 공약이 노동·교육·인권 등에서 2012년 대선 공약보다 못하다는 비판이 대선 당시에도 많았다.
그렇다고 문재인의 2012년 대선 공약이 충분히 진보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당시 복지 재정 늘리기에 박근혜보다 소극적이어서, 문재인은 박근혜의 기초연금 증액 공약에도 반대했다.(물론 박근혜는 당선 후 기초연금 증액 공약을 철회했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은 촛불 계승을 강조하다가도 안희정·안철수 등의 지지가 올라가자 금세 민감한 쟁점들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안희정은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우파 포지션을 자임했고, 안철수는 민주당 오른쪽에서 중도 보수층을 대변하겠다고 했다.
문재인이 차별금지법 공약을 거부하고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답변을 내놓은 것도 이때였다. 이는 문재인 개혁이 좌우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모호함과 모순, 불충분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박근혜를 투쟁으로 몰아낸 대중은 선거에서도 우파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을 바꾸길 원했다. 당시 세력균형에서 그것은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뜻했다.
노동개악
한마디로 문재인 초기는 사람들이 이명박과 박근혜 시절을 너무 끔찍이 여기는 것에서 반사 이익을 크게 얻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문재인은 자신이 집권해서 하려는 것(한국 자본주의의 효율적 개혁)과 자신을 쉽게 집권하게 만들어 준 운동의 염원(한국 사회의 진보적 개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처지로 임기를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가 ‘준다고 했다가 뺏기’(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줄 것처럼 하다가 시치미 떼기’(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엉뚱한 걸 주기’(노동개악을 의제에 올려놓고서야 사회적 대화기구를 본격 가동) 등 신묘한 통치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실 문재인식 개혁이 처음부터 줄타기였다는 것은 첫 현장 방문이라던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즉석 대화를 할 때 드러났다. 문재인은 이런저런 노동조건 불만을 말하며 즉각 개선을 바라는 노동자들에게 “기업 부담”도 생각해야 한다며 “노사정 고통 분담”을 답으로 내놨다.
바로 그런 이유로 집권 첫해에 이미 가장 온건한 진보 진영 지도자들에게 “촛불 개혁 이행률 2퍼센트”라는 진단을 받았다.
문재인은 집권 2년차에 평창올림픽을 시작으로 남북 화해 국면을 이끌어내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국민 다섯 중 넷이 문재인을 지지했고, 그 덕에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이런 힘 실어 주기는 남북 화해 국면에 대한 지지일 뿐 아니라, 높은 지지를 지체된 진보(촛불) 개혁의 동력으로 삼으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문재인은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식은땀이 흐른다”며 부담감을 토로했던 것이다.
남북 문제만 봐도 그렇다. 2017년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부르며 매우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시기에 문재인은 사드 배치 강행, 이른바 “김정은 참수부대(제13특수임무여단 흑표부대)” 창설 등 박근혜 적폐를 이어받았다.
지난해 트럼프가 태도를 바꾼 덕에 문재인의 “한반도 평화 운전자” 행세가 가능했다. 문재인의 기만은 남북 정상회담 당일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군비 증강이나 한미군사훈련 등을 멈추지 않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문재인은 내년 예산안에서 김정은 참수부대 예산을 30배 가까이 증액했다.
문재인은 오히려 남북 화해 국면으로 지지가 오르자 국민 화합 분위기를 이용해 박근혜가 못했던 노동개악을 재개했다. 더구나 지난해 경제 실적이 악화되면서 노동개악과 친기업 규제 완화 정책은 급속도로 진행됐다.
놀란 개혁주의 진영에서 “역주행”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1년 넘게 일관되게 노동개악의 길로 달려온 것을 이제는 “정주행”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문재인은 박근혜보다 효과적으로 노동계급의 저항을 막고 개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자 한다. 이 때문에 자한당이 우파 결집으로 사기를 회복했어도, 아직 지배계급 내의 저울추가 자한당 쪽으로 완전히 쏠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문재인의 진보 개혁을 기다려 보자는 기대를 거두고 있다. 최근 4월 재보선에서 민주당 성적이 형편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역주행? 개악 정주행!
창원 성산에서의 정의당-민주당 후보 단일화를 (각자의 이유로) “여권연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정의당이 아니라 민주당 측이 단일 후보가 됐다면 자한당한테 참패했을 것이다. 조직 노동자들은 집권 여당과 진보 야당의 차이, 민주당과 정의당의 계급적 차이를 구분할 줄 알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우경화와 촛불 염원 배신, 그로 인한 환멸은 찌그러졌던 우파가 사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자한당이 20~30퍼센트대의 지지를 회복했다.
이것이 공안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내내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로 내각을 지켰던 황교안이 최근 자한당 당대표가 돼서 색깔론과 국회 폭력 사태 등으로 강공 드라이브를 펴는 배경이다. 자한당은 최근 2만 명 넘게 동원하는 장외 집회도 열었다. 물론 촛불 여파인 반우파 정서 때문에 우파의 회복은 우여곡절이 많을 것이다.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가 다시 심화되면서 최근 우파의 강경함, 공식 정치의 분열, 기대에서 실망과 분노로 바뀌어 가는 노동자·서민층의 정서 등이 부각되고 있다. 그 탓에 정치 상황이 문재인 초기와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지난 2년간 문재인 정부의 위선과 실체를 폭로해 왔던 좌파들은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며 이를 보편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이 전진해야 기를 쓰고 세력균형을 과거로 돌리려는 우파의 시도에도 더 잘 맞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