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사가 보는 아동학대:
부모의 잘못을 넘어 정부의 방임에서 비롯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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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지정된 초등학교 교사이다.
학교에서 십수 년 근무하면서, 다양한 아동학대 사례를 봤다. 내가 본 아동학대의 유형은 신체적 폭력이나 심지어 성학대도 있었지만, 그와 꼭 동반되고 더 광범한 형태는 방임이었다. 부모가 알콜 중독 등 정신적 문제 또는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 아동을 장기간 방임해서 아동의 학교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서 방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사례처럼, 한부모 또는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 일터에 나간 부모가 장시간 집을 비우면서 아동의 위생 상태나 식생활 문제가 발생하거나, 건강 및 안전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는 아동의 교우관계 악화로 작용하거나, 발달이 늦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아동학대는 분명 부모의 잘못이 있지만, 엄청 폭력적이고 악마 같은 부모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 위기 속에서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는데, 양육과 돌봄이 오롯이 개별 가정에 맡겨져 있어서 아동학대가 발생할 환경이 조성된다는 점을 학교 생활을 하면서 실감한다.
한편, 교사가 아동학대를 보아도 신고하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1월 11일 ‘실천교육교사모임’이 교사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40퍼센트가 아동학대를 목격했지만 이 중 19퍼센트만이 신고한 경험이 있다. 60퍼센트는 신고를 망설인 경험이 있었다.
교사들이 신고를 망설이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신고 뒤 아동의 상황이 더 나빠질까 봐’(33.8퍼센트)였다. 즉, 아동학대를 신고해도 분리 조처가 불가피할 때조차 제대로 분리되지 않거나, 분리되더라도 안전하게 학교 생활을 지속할 만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 의무만을 강조할 뿐, 그 이후의 대책에 대해서는 거의 내놓은 것이 없다. 이렇게 되면 신고한 교사만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원망을 듣거나, 심지어 가해 부모한테서 위협을 받을 수 있어, 교사들은 신고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몇 년 전에 지체장애 아동을 폭력적으로 학대하는 부모가 있었다. 상담교사가 이를 발견하고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부모와의 분리 조치를 요청하고, 아동을 병원에 입원시킨 적이 있다. 그런데 다음 날 병원에 가 보니 황당하게도 피해 아동은 학대 부모가 데려가고 없었다. 담당 경찰도 이 아동을 보호할 곳이 근처에 없으니, 부모더러 ‘다짐 서약서’ 같은 것을 쓰고 아동을 데려가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십중팔구 학대가 재발한다. 이러니 무조건 신고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주기적으로 상담하고, 집안 점검을 하는 등 조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맡았던 한 학생의 경우는 상담이 8회 정도로 끝났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인력과 재원이 턱없이 부족해 한 담당자가 지역의 수많은 위기 아동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도 꽤 관심을 받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8회가량 상담과 점검 조처로 가정 환경이나 부모와 아동의 생활 패턴이 쉽게 변할 수는 없기에 방임은 유지되거나 재발되는 경우가 많다.
아동학대 재발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한 후속 대책을 세우고, 전담 공무원이나 아동전문가들을 대폭 투입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재정을 충분히 투여해 아동보호기관을 직접 운영해야 한다. 또한 아동 보호 시설을 늘리고, 정신적 고통도 치유될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
예산 삭감
그런데 올해 아동학대 추가 신청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아동학대 사건들이 뉴스에서 떠들썩하게 보도될 때조차 문재인 정부는 이를 나몰라라 했던 것이다! 평범한 아이들의 삶이 문재인 정부와 지배계급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닌 것이다. 아동학대 문제는 부모의 잘못을 넘어 국가의 방임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동학대를 줄이려면 재정을 대폭 투입해 공적 보육·돌봄을 확대하고, 그 질을 상향시키기 위해 보육·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이런 복지를 확대하려면 현재 문재인 정부에 맞서 투쟁하는 돌봄전담사들처럼, 복지 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그 규모를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