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공포와 형사처벌 강화로 아동학대 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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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달 간 몇몇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건들이 보도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슬픔과 분노에 빠졌다.
하지만 주류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아동학대를 줄일 진정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도덕적 공포 부추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개별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데 치중하며 처벌 강화를 요구해 왔다.
주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정인이 사건’)과 경찰의 안이한 대처에 공분이 일자,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주류 정당들은 처벌 강화와 신상 공개 방안이 담긴 법안들을 경쟁하듯 내놓았다. 특히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그들은 처벌 강화책을 신속히 처리하고 있다.
2월 26일 통과된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안에는 ‘아동학대 살해죄’가 신설됐다. 학대로 아동을 숨지게 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 살인죄(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나 현행 아동학대 치사죄(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보다 법정 형량이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덮어놓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동학대의 진정한 대책은 되지 못한다.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주류 언론들과 정당들이 처벌 강화책을 내놨고, 그에 따라 법이 개정돼 왔다. 2013년 울산 아동학대 사망 사건 등이 일어나면서 2014년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돼 처벌이 강화됐다.
하지만 그 뒤 아동학대가 줄어드는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국보다 아동학대 처벌 수위가 높은 미국 등지에서도 아동학대는 줄지 않았다.
물론 아동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신고 건수가 계속 늘었고 학대 인정 건수도 늘었다.
불평등
불평등이 심하고 빈곤과 아동 복지에 돈을 적게 쓰는 나라일수록 아동학대가 많이 일어난다. 아동학대는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자본주의 체제에 원인을 두고 있고, 가족 제도가 사회 체제에서 하는 구실이 특히 큰 영향을 끼친다(본지 353호, ‘아동학대와 자본주의’).
따라서 복지를 크게 늘리며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실질적 효과를 내는 대책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보수 야당들은 모두 이런 대책을 한사코 추구하지 않는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해고를 더 쉽게 하고 임금 등의 비용을 줄이려는 사용자들과 그들의 정치인들은 복지비 증가를 최대한 억제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1월 19일 발표한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에도 아동학대 예방에 중요한 가정·아동 복지 확충 계획은 쏙 빠졌다. 아동학대 피해자 지원마저 미흡하기 짝이 없다(본지 354호, ‘피해 아동 지원에조차 여전히 인색한 정부’).
국민의힘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나 지금이나 그들은 미봉책을 내놓으며 처벌 강화에 주력한다.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을 상대로 터져나오는 ‘학교폭력’ 폭로에 대해서도 주류 정치권은 근본 대책 없이 덮어놓고 처벌 강화만 외치고 있다.
물론 청소년기에 당한 학교폭력은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지독한 경쟁과 소외, 통제 위주의 교육·훈련 시스템 등 본질적인 문제는 놔둔 채 가해자 처벌만 강조하는 것은 한계가 너무 크다.
게다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홍수 속에 사실 확인조차 없이 보도되다 보니, 그중에서는 진상이 불분명한 것도 많은 듯하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범죄를 사악한 개인들의 문제로만 몰며 문제의 근원을 감추고 왜곡한다. 빈곤과 불평등, 소외가 만연한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을 가리며 대중의 불만이 지배계급을 향하지 않게 하고, 대중의 불안과 공포심을 자극해 국가(특히 경찰)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
그러나 도덕적 공포와 처벌 강화로 아동 보호가 실제로 강화되지는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불평등이 심각하고, 양육을 대부분 개별 가정이 떠맡도록 강제되고, 온갖 차별이 난무하며 실패가 개인 탓으로 돌려진다. 아동은 이런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으므로 손쉬운 희생양이 되기 쉽다.
불황으로 실업이 늘고 임금이 삭감되고 복지가 축소되면 대중의 처지가 악화돼 아동이 입는 피해는 더 커진다.
아동학대를 줄이려면 빈곤을 줄이고 복지를 대폭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하다.
나아가 아동학대를 뿌리 뽑으려면, 불평등과 경쟁으로 절망과 좌절을 낳고 인간성을 왜곡시키는 자본주의 체제가 제거돼야 한다.
이를 위해, 대중의 조건을 개선하고 자신감과 의식을 높이며 사회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성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