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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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에서 6명의 진보 교육감이 탄생한 이후 진보 교육감은 그야말로 대세가 됐다. 현재 대전
진보 교육감들이 새로운 방향과 가치를 제시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일부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 학교 교육의 변화는 변화 염원 대중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예컨대, 지난해 초
이 글은 지난 12년간의 진보 교육감 시대를 돌아보면서 그들의 교육 개혁이 왜 초라한 수준에 그쳤는지, 실질적인 교육 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진보 교육감 시대를 거치면서 전교조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살펴보고,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진보 교육감 시대
진보 교육감의 등장과 대거 당선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에 대한 반감과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특권
전교조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본질을 폭로하고 저항을 지속해 대중의 교육 변화 열망이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경쟁이 아닌 협력, 차별이 아닌 평등 교육의 비전을 제시해 왔다. 이 때문에 교육감 선거에서 흔히 보수 후보들은 반
둘째, 대중 운동의 부상 덕분에 반우파 정서가 커졌다. 2008년 촛불 항쟁, 2014년 세월호 참사와 항의 운동. 2016년 10월~2017년 3월 전개된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과 그 여파로 정권 교체 등. 역대 지방선거 결과는 진보 교육감 당선이 다른 지방선거 결과
셋째,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진영은 분열한 반면, 민주
12년
진보 교육감은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 인권, 학교의 민주적 운영, 학생자치, 교육과정
1기
서울, 경기, 강원, 광주, 전남, 전북 등 6개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했다. 전교조에 대한 정부의 공격이 거센 시기였고, 보수 진영은 선거에서 반전교조 기치를 전면에 내걸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
1기는 진보 교육감 시대 중 상대적으로 역동적인 시기다. 진보 교육감 탄생에 대한 기대가 높았고, 그를 배출한 운동이나 조직이 상대적으로 건재한 때였다. 중앙 정부와의 대립
1기의 주요 시험대는 일제고사와 교원평가였다. 전북
2기
13개 지역
시
2016년
2기의 주요 시험대는
2014~2015년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진보 교육감 다수는 진지한 폐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사고 지정을 연장했다. 전체 자사고의 절반 이상이 있는 서울이 관건이었는데, 조희연 교육감은 진보 진영의 폐지 압력과 우파의 반발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양 진영을 다 만족시키려고 부분적이고 부드러운 개혁을 추진하다가 결국 완패로 끝났다. 그뿐 아니라 입시 비리가 불거진 영훈중학교
또한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공격에 대해 비판은 하면서도, 교육부의 후속 조치
3기
울산이 추가돼 총 14곳에서 민주
3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대는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문제였다.
교육부와 진보 교육감이 충돌했던 이전 정부 때와 달리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개혁 배신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진보 교육감들은 시도교육감협의회의 공동 성명을 몇 차례 발표했을 뿐, 정치적으로 진지한 도전을 하지는 않았다. 1, 2기 때는 불충분하지만 우파 정부의 공격을 완충하는 구실을 했다면, 오히려 3기의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의 개혁 배신과 교육 공격에 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이전 시기보다 악화한 문제도 여럿 있는데, 그중 한 사례가 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3년 동안
또 다른 시험대는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그야말로 사기극으로 끝났다. 이 사태는 분명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지만, 각 시
거듭된 후퇴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진보 교육감들의 개혁은 불철저하고 일관되지 못하며 때때로 모순적이기도 했다. 말과 실천 사이에 적잖은 간극이 있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주요한 시험대에서 거듭 미끄러졌다. 물론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 편차가 있지만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진보성이 옅어졌다. 진보 교육감들의 대표적인 후퇴 사례를 몇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보자.
첫째, 경쟁 교육 체제에 진지하게 도전하지 않았다. 진보 교육감들의 제 1공약은 줄곧
사실 자사고 폐지는 중요하지만 비교적 작은 개혁이기도 하다. 설령 자사고를 전면 폐지한다고 해도 고교 서열 체제와 교육 불평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서열의 정점에는 과학고와 외국어고가 있고, 무엇보다 대학 서열 체제와 입시 경쟁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적인 개혁에서조차도 주저하고 망설이는 진보 교육감이
둘째, 정부와 우파의 압력에 쉽사리 흔들리고 굴복했다. 당선 전에는
셋째, 부담스러운 개혁을 회피하거나 우회하는 경향이 커졌다. 학생인권조례는 진보 교육감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최근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충남
넷째, 자신의 공약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장석웅 전남교육감은 2018년 선거에서
다섯째, 갈수록 사용자로서의 본색이 분명해졌다. 학교 비정규직 처우를 일부 개선하기는 했지만, 예산을 핑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조건 개선을 외면했고 심지어 투쟁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매년 크고 작은 규모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해서 농성이 끊이지 않았다. 장휘국 광주교육감도 여러 차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집단 해고해 노조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이는 진보 교육감들이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한 사례 중 일부일 뿐이다. 한편, 노노 갈등을 부추기거나 이를 이용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단협 체결을 지연하는 등 사용자다운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진보 교육감의 개혁은 왜 이렇게 초라한가?
진보 교육감이 등장한 지 12년. 시
우선 개혁주의 문제가 있다. 진보 교육감들은 위로부터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조희연 교육감은 2014년 자사고 폐지를 1년 유예하면서
한편, 위로부터의 개혁이 갖는 전형적인 한계도 보여 줬다. 교육감은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대체로 관료적인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아래로부터 개혁의 동력을 끌어내기보다
둘째, 그들은 교육의 진보적 변화를 바라는 대중을 분명하게 대변하기보다는 좌우를 아우르는 개혁을 추진하려 한다. 2014년 여러 진보 교육감들이
그의 발언을 보수 교육감
그러나 교육은 결코 정치 중립적일 수 없다. 오히려 가장 정치적인 사회제도 중 하나다.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자사고 폐지 등 작은 개혁조차도 좌우가 대립해 왔다. 이런 현실에서 좌우를 아우르는 교육개혁이란 결국 개혁 후퇴의 방향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셋째, 교육감 권한의 한계 문제도 있다. 교육감을 종종
넷째,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 없이 학교나 지역단위 개혁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혁신학교가 수천 곳으로 늘어났지만, 입시 경쟁 체제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제시한
다섯째, 개혁의 진정한 동력인
진보 교육감 시대에 전교조 지도부의 투쟁 자제
마지막으로, 근본에서 교육청은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다. 다시 말해, 노동자
진보 교육감의 성격과 구실
진보 교육감은 대부분 진보
우선 진보 교육감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하자면, 첫째, 교육감이 아무리 좌파적인 인사일지라도 당선 후에는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이자 학교 노동자들의 사용자이다. 전교조를 비롯한 운동진영이 그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 진보 교육감의 이런 지위 때문에 일관되게 진보적인 행보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국가기구가 가하는 압력에 굴복한다. 그들이 흔히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다가 꾀죄죄한 개혁에 그치는 이유다. 따라서 교육 개혁의 성취 정도는 진보 교육감 당선 후에 벌어지는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에 달려 있다.
진보 교육감
이와 같이 진보 교육감은 투쟁에 유리한 환경과 교육 개혁의 기회를 열어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제한하거나 온건한 압력을 넣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은 투쟁보다 협상을 중시하는 태도를 낳았고 진보 교육감에 대한 무비판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진보 교육감 시대에 전교조는 조직력과 투쟁력이 약화됐다.
진보 교육감과 전교조
진보 교육감이 대거 포진한 상황에서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제기됐다.
우선 정부와 우파가 진보 교육감을 공격할 때는 진보 교육감을 방어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에 대한 공격은 단지 진보 교육감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그를 배출한 진보 진영과 진보 교육감에 투표한 지지자 모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타협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공개적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된다.
조합원 중에는 진보 교육감의 성공을 곧 전교조의 성공과 동일시하면서 진보 교육감을 비판하면 우파가 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의 잘못에 침묵한다면 오히려 대중은 진보 교육감뿐 아니라 진보적인 교육 운동 자체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우파가 득세하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따라서 진보 교육감의 동요와 후퇴에 대해서 공개적 비판을 삼가지 말고 독립적인 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진보 교육감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도 위험하지만,
그런데 전교조 지도부는 그동안 진보 교육감의 후퇴에 공개적인 비판을 삼가고, 교육청으로부터 독립적인 투쟁보다는
전교조 내의
한편, 상대적으로 좌파적인 의견그룹인
교육 개혁 성취를 위해 진보 교육감과 협력하고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협력 관계 유지를 위해 비판을 삼가고 교육감과의 충돌을 피하는 쪽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사실 노동조합인 전교조가 사용자인 교육감
진보 교육감과의 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낳는 방식은 전교조 활동가들이
노조 지도부가 교육감과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태도는 노동조합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노동자들의 조직과 무기를 사용하기보다는 교육청을 바라보는 경향이 자랐다.
한편, 진보 교육감의 등장은 혁신학교가 대폭 확대되는 계기가 됐는데, 혁신학교를 투쟁의 대체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자랐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교조는 나름 좌파적인 노조 중 하나였는데,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진보 교육감 시대는 전교조 내에서 위로부터의 점진적 제도 변화 프로젝트가 급속하게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전교조 지도부는
전교조는 오랫동안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우파의 표적이었다. 그래서 전교조의 주된 활동 무대는 학교 안과 밖
역대 전교조 지도부 사이에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은 대체로 투쟁을 자기 제한적인 방식으로 이끌었다. 쟁의권이 없어 다른 노조와 같은 방식의 산업적인 투쟁이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투쟁은 서명이나 선언이 주를 이뤘고 드문드문 연가나 조퇴 투쟁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조차 신통치 않다. 투쟁의 효과
전망과 과제
아무래도 최근 대선 결과와 그에 따른 우파 정부의 복귀가 이번 선거 구도와 쟁점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쪽에서는 대통령 임기 초반 허니문 정서가 지방선거에 반영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우파 집권에 대한 반발로 진보 지지층이 투표에서 결집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예측도 나온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윤석열의 당선이 문재인의 배신에 대한 환멸 때문이지 대중 의식이 보수화된 탓이 아니고, 또한 노동계급이 사기 저하에 빠진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현재 사회 전체적으로 계급투쟁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은 진보 진영에 유리하지 않다.
이전보다 보수 진영의 후보들이 일찍부터 단일화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곳곳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지만 말이다.
선거에서 양 진영의 후보 단일화 여부
지난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다수의 득표율이 상승했으나, 3선의 경우 민병희를 제외한 두 명
이런 데이터는 진보 교육감에게 거는 기대, 즉 진보적인 교육 개혁에 대한 열망은 확대해 왔지만, 실제 진보 교육감이 보여 준 행보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늘어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우파 정부가 다시 들어선 상황에서 진보 교육감이 보호막 구실을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몇몇 진보 후보들은
이번 선거에서 보수 후보들이 내세우는 핵심 공약은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의 폐지, 자사고
그러나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투쟁이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자동으로 개혁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교조 내에서
진보 교육감 시대 전교조의 과제는 진보 교육감과의
윤석열 정부는 이미 정시 확대, 자사고
노조 지도자들은 흔히
영국 마르크스주의자 크리스 하먼의 다음 말은 좌파 활동가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참고문헌
김인식 2014,
김학한 2018,
이형빈 2014,
이형빈 외 2016,
정원석 2014,
정진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