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 시대 12년, 성적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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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5월 26일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2010년 처음으로 진보 교육감 6명이 당선됐고, 현재는 17곳 중 14곳의 시·도 교육감이 진보 교육감으로 분류된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1만 1700곳 중 1만 개 이상의 학교가 진보 교육감의 관할 아래 있으니, ‘진보 교육감 시대’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늘은 지난 12년을 돌아보며 진보 교육감 시대라는 말에 어울리는 개혁이 있었는지 개괄적으로 평가해 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얘기해 보려고 한다.
진보 교육감 등장 배경
진보 교육감의 등장과 대거 당선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첫째, 신자유주의적 경쟁 교육에 대한 반감과 새로운 교육에 대한 열망이 컸다. 김대중 정부 때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더해, 이명박 정부는 자사고를 늘리고 일제고사를 도입하는 등 경쟁 교육을 가속화했다.
이에 반발해 2008년 5월 청소년들이 ‘미친 교육 OUT’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시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구호는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의 심정을 절절하게 보여 줬다.
둘째, 진보 교육감의 대거 당선은 반우파 정서, 대중 운동의 부상과 맞물렸다. 2008년 촛불 운동, 2014년 세월호 참사와 항의 운동, 2016년 말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 등의 결과로 각각 2010년, 2014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대체로 우파 정당이 밀렸다.
이에 더해,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에 저항해 온 전교조 운동,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도 진보 교육감의 탄생에 일조했다.
대중의 변화 염원은 얼마나 충족됐나?
한국의 끔찍한 교육 현실에 넌더리가 난 많은 사람들이 경쟁 교육을 비판하고 새로운 교육을 약속한 진보 교육감을 지지했다.
2010년 곽노현 서울 교육감이 당선한 직후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을 때 벌어진 광경은 학생들의 바람을 단적으로 보여 줬다. 아이들은 곽 교육감에게 우르르 몰려가서 “일제고사 좀 없애 주세요” 하고 소리쳤다.
진보 교육감들은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 인권, 학교의 민주적 운영, 학생 자치, 교육과정·수업 혁신 등 학교 교육의 여러 측면에서 얼마간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진보 교육감을 지지한 대중의 가장 큰 바람은 경쟁 교육의 오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진보 교육감들의 제1 공약도 줄곧 입시·경쟁 교육 해소였다.
이런 기대와 약속은 얼마나 충족됐을까? 지난 12년을 세 시기로 나눠 간략히 살펴보겠다.
1기는 2010년 서울과 경기 등 6개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며 시작됐다. 이 시기는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 중 비교적 역동적인 때였다. 진보 교육감을 탄생시킨 운동이나 조직은 여전히 활력이 있었다. 초반에 진보 교육감들은 중앙 정부와의 갈등에서 저항하는 모습도 보여 줬다. 진보 교육감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무상급식, 혁신학교, 학생 인권은 대부분 1기의 성과다.
1기의 주요 시험대는 일제고사와 교원평가였다. 전북·강원 교육감은 학교들이 일제고사를 볼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했고, 교원평가의 평가 방식을 바꾸는 등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 교육감 등은 우파 정부의 압력에 굴복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2기에는 진보 교육감 지역이 13곳으로 크게 늘었다. 그들은 고교 평준화 확대, 자사고 폐지, 대학 평준화, 대입 제도 개선 등 입시 고통 해소와 교육 복지 강화 등을 공통으로 약속했다. 진보 교육감이 시·도 교육청의 과반을 차지하자 기대도 높았다.
그러나 그들의 실천은 기대와 달랐다. 2기의 주요 시험대는 특권 학교인 자사고 폐지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였다. 2014~2015년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진보 교육감 다수는 자사고들을 살려 줬다. 자사고의 절반 이상이 있는 서울의 조희연 교육감은 우파의 반발에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완패했다.
진보 교육감들은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 공격을 비판했다. 당선 전에는 “잘못된 정부에 복종하는 교육감이 아니라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교육감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당선 후에는, ‘노조 전임자를 복귀시키고 따르지 않으면 해고하라’는 교육부의 요구를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2016년에 ‘직선 2기 교육감 전반기 평가와 향후 과제’를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는 진보 교육감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현장 교사들은 교육감이 바뀌었는데 왜 학교는 바뀐 게 없냐고 하소연했고, 진보 교육감 당선을 그토록 바랐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한 차별에 고통받았다. 기대가 실망과 배신감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8년부터 시작된 3기에는 한 곳이 더 늘어 총 14곳이 진보 교육감 지역이 됐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쫓겨나면서 이제야말로 진보 교육을 펼칠 시대가 열릴 거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너무도 달랐다. 문재인 정부는 개혁 배신을 거듭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도 외면했다. 정시 확대, 자사고와 특목고 유지, 교원 감축 등 다른 교육 정책도 전임 우파 정부와 별다를 게 없었다.
문제는 진보 교육감들이 공동 성명을 몇 차례 발표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 외면을 비판했을 뿐, 실질적인 도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보 교육감들은 큰 틀에서 문재인 정부와 비슷한 교육 개혁 구상을 갖고 있었고, 스스로를 중앙 정부의 파트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결과 “한국 교육의 일대 개혁과 혁신”을 기대케 했던 “문재인 정부와 진보 교육감 시대의 결합”은 ‘교육 개혁의 실종’으로 결론이 났다.
학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도 사기극으로 끝났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이 크지만, 진보 교육감들도 전혀 이름에 값하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 진보 교육감들은 정규직화를 정부의 가이드라인보다도 적게 시행했고 노조와의 대화도 거부했다. 경기 교육청은 전체 심의 대상자 중 고작 6퍼센트만 전환 대상자로 발표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변화가 미미한 이유
지금까지 주장을 종합해 보면, 진보 교육감 시대 12년 동안 기대만큼의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다. 혁신학교가 수천 곳으로 늘어났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입시 경쟁의 고통에 시달린다. 무상급식 등 보편적 교육 복지가 조금씩 확대되긴 했지만, 교육 양극화는 심화했다.
일부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가 확대되긴 했으나, 특권 학교와 고교 서열 체제는 굳건히 유지됐다. 사교육비는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부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민주주의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물론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 차이도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점점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진보성이 옅어지는 방향이었다. 진보 교육감들의 개혁은 왜 이렇게 초라한 수준에 그쳤을까?
우선, 교육청과 교육감의 근본 성격, 즉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이자 학교 노동자들의 사용자라는 성격을 봐야 한다. 교육감은 자본주의 교육제도를 유지·관리하는 교육청의 근본 역할을 수행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이 압박 속에서 진보 교육감들의 강조점이 처음에는 평등 교육과 교육 복지였지만 점차 ‘기초 학력’이나 ‘미래 역량’으로 이동하고, 혁신 교육과 입시 교육의 절충, 평등 교육과 수월성 교육의 절충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경쟁 교육에 맞서는 공교육의 대안 모델로 출발한 혁신학교가 이제는 학력 향상이나 입시에도 유능함을 입증하고, 4차산업혁명 시대 ‘미래 교육’ 모델로 인정받으려 애써야 하는 상황이다.
또 작은 학교 살리기를 약속한 진보 교육감이 당선 후 입장을 바꿔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하기도 했는데, 이는 재정 효율화 논리 때문이었다.
둘째, 진보 교육감의 모순된 처지는 교육의 진보적 변화를 바라는 대중을 분명하게 대변하기보다는 좌우를 아우르려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많은 교육감들이 교육에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자사고 폐지 등 작은 개혁을 놓고도 좌우가 대립해 왔다. 이런 현실에서 좌우를 아우르려다 보면 결국 개혁 후퇴의 방향으로 미끄러지기 쉽다. 예를 들어, ‘충북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본부’의 상임대표였던 김병우는 정작 교육감이 된 뒤에는, 우파의 반발을 의식해 별 실효성도 없는 ‘교육공동체권리헌장’을 채택하는 데 그쳤다.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와 우파에 맞서기를 주저하면서 자신의 재량권조차 충분히 사용하지 않았다. 특히, 특목고에는 손댈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18년 강원외고는 학부모와 학생의 동의를 얻어 특목고 지정 취소 신청을 냈는데, 민병희 강원 교육감은 이 신청을 부결시켰다. 심지어 장석웅 전남 교육감은 영재학교 설립을 추진하려다 반발을 사고서야 중단했다.
셋째, 진보 교육감들은 위로부터의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2014년에 자사고 폐지를 1년 유예하면서 “설득과 유인”을 통해 자사고를 “고사”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결과를 알다시피, 이것은 개혁 목표를 향해 천천히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결국 개혁에서 멀어지는 길이었다.
또, 진보 교육감은 관료적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현장 교사들의 참교육 실천 운동의 일환이었던 ‘새로운 학교 운동’이 교육청의 사업이 되자, 교사들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전락했다.
왜 저항은 시원찮았을까?
그런데 진보 교육감들의 거듭된 후퇴에도 저항은 시원찮았다. 그 이유를 전교조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자 교육청을 활용해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점점 커졌다. 전교조 지도자들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리지 않고, 진보 교육감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진보 교육감과 협력해서 위로부터 개혁을 성공시킨다는 전망을 택한 것이다.
많은 상층 활동가들은 진보 교육감을 성공케 하기 위해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전교조의 “진짜 실력”이라고 믿었다. 많은 전교조 조합원들이 장학사, 장학관, 보좌관, 비서 등으로 교육청에 들어갔다. “교육청 기구에 직접 참여해 보수적 관료들을 견제하고 진보적 교육 정책을 관철”시키겠다며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교육청을 바꾸러 들어간 활동가들 자신이 바뀌곤 했다. 교육청을 견인하라고 파견된 사람들이 역으로 노동조합을 통제하려 들었다.
진보 교육감과의 협력 관계를 중시하는 태도는 노동조합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노동조합 상근 간부들은 진보 교육감의 후퇴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을 삼갔고, 점점 더 교육감과의 충돌을 피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수동적으로 교육청을 바라보는 경향이 자랐다. 혁신학교가 투쟁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는 경향도 커졌다. 전교조 활동가들이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통해 교장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늘었다.
투쟁을 멀리하고 진보 교육감과의 협력에 기대는 동안 노조의 진정한 힘인 조직력과 투쟁력은 점점 약해졌다. 그 결과 진보 교육감들의 후퇴는 더 쉬워졌다. 결국 교육 개혁 성공을 위해 투쟁을 자제한 것이 오히려 개혁의 진정한 동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반자본주의적 운동의 필요성
진보 교육감 당선은 교육 변화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진보적 교육 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교육 개혁을 위한 투쟁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고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제한하거나 온건화 압력을 넣는 모순적인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진보 교육감 당선이 자동으로 개혁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진보 교육감과의 ‘거버넌스 구축’이 아니라, 대중의 기대와 열망이 열어 주는 틈을 활용해 아래로부터 독립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보 교육감이 제공할 수 있는 개혁의 수준도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운동, 노동운동 진영의 투쟁에 달려 있다.
아래로부터 대중 투쟁은 개혁의 성취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주체적 역량을 키워 근본적 변혁의 주춧돌을 놓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실, 사회의 근본적 변화 없이 지금 같은 혹심한 경쟁 교육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학교 교육에서 경험하는 경쟁과 차별, 소외와 억압은 근본적으로 교육이 자본주의의 필요에 종속된 결과이다. 미래의 노동자들을 위계화된 노동시장에 배치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교육은 근본적으로 경쟁적이고 차별적이다.
모두에게 질 높은 평등 교육의 실현을 바란다면, 반자본주의적 전망이 필요하다. 그런 전망 속에서만 개혁을 위한 투쟁도 급진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