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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격차는 왜 갈수록 확대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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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교육 격차 확대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졌다. 언론은 학력 격차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정부는 문제에 대응한다면서 (안전하지 않은) 전면 등교를 밀어붙였다. 그러나 지배자들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저소득층 학생들이 아니라 학력 저하가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학습 손실을 보충하지 못하면 ... 국가 국내총생산(GDP) 1.5퍼센트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OECD의 경고는 그들의 진정한 관심사를 보여 준다.
팬데믹으로 인해 분명히 심화하기는 했지만, 교육 격차는 오래전부터 심각한 문제였다. 최근 교육 격차에 관한 연구나 논문이 늘어난 것은 문제의 심각성과 사회적 관심의 증대를 보여 주는 듯하다. 몇 달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결과를 분석해 보고서를 내놨는데, 교육 격차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PISA는 3년 주기로 약 80개국의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읽기·수학·과학 등 세 영역을 평가한다. 연구진은 학생의 가정 배경을 알 수 있는 변인 지표인 경제·사회·문화적 지위 지표(ESCS)에 따른 학생들의 영역별 성취도 평균을 산출하고, 2009년과 2018년 사이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했다.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학력 격차가 최근 10년 사이 더 커졌다.
둘째,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 가능성이 크게 줄었다.
셋째, 학교 간 및 (특히 두드러지게) 학교 내 학력 격차가 증가했다.
교육 양극화
연구진의 분석 결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모든 영역에서 학생들의 성적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SCS가 1단위 상승할 때마다 각 영역별 성취도 점수가 37점, 43점, 36점씩 증가했다(읽기, 수학, 과학 순). 이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학업성취도 간의 분명한 상관관계를 보여 준다. 또한 ESCS 상-하위 10퍼센트 학생들의 점수 차이를 비교해 보면, 영역별로 96점, 111점, 96점으로 크게 차이가 난다. 이 격차는 2009년(각각 90점, 110점, 87점)보다 더 벌어진 것인데, 부모 배경에 따른 학력 격차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얘기다.
두 시기 사이에 전반적으로 평균 성적이 하락했고, 동시에 평균 부근에 분포한 학생들의 비중이 줄면서 성적이 양극화됐다. PISA 과목별 성취도는 1~6수준까지로 나뉘는데, 상위(5수준 이상)와 하위(2수준 이하)의 비율은 증가하고, 중위(3·4수준)의 비율은 감소했다.
최상위와 최하위의 비율을 구체적으로 비교해 보자. 최상위(6수준)의 비율이 읽기 영역은 1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과학은 1.1퍼센트에서 1.8퍼센트로 증가하는 한편, 최하위(1수준 이하)의 비율은 5.8퍼센트에서 16.1퍼센트로, 6.3퍼센트에서 14.2퍼센트로 많이 증가했다. 수학 영역에서는 최상위 비율이 7.8퍼센트에서 6.9퍼센트로 다소 줄어들긴 했으나 최하위 비율은 8.1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크게 늘어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또 보고서는 ‘학업탄력적 학생들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감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학업탄력적 집단’이란 ESCS 하위 25퍼센트에 속하면서 3개 영역 모두 3수준 이상의 성취도를 보이는 학생들의 비율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 자녀 중에서 평균 이상의 성취도를 보이는 학생들의 비율이 12.71퍼센트에서 9.34퍼센트로 눈에 띄게 줄었다. 가난한 집 자녀 10명 중 9명은 하나 이상의 영역에서 하위 수준의 성취도를 보인다는 뜻이다. ESCS 하위 25퍼센트 미만 학생이 세 과목 평균 점수가 상위(5수준 이상)에 속하는 비율은 5.9퍼센트로 아주 낮은 반면, 최하위(1수준 이하)에 속하는 비율은 24.2퍼센트나 된다.
학교 간 격차와 학생의 구성 측면에서 성취도 격차를 분석한 결과, 2009년보다 2018년의 학교 간과 학교 내의 성취도 격차는 모두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 간 서열화도 심화했지만, 특히 학교 내에서의 성취 격차가 상당한 정도로 증가한 것이 눈에 띈다.
또한 세 과목 모두에서 학교 내-학생 간 ESCS 격차와 학교 ESCS 맥락효과가 증가했는데, 이것이 뜻하는 바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학교 내에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성취 격차가 증가했다. 이는 학교 내 격차가 증가한 주요한 원인을 설명해 준다.
둘째, 사회·경제적 수준이 같은 학생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동료 학생들의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성취도가 크게 달라졌다. 예를 들어 소득수준이 같다 하더라도 특목고나 자사고처럼 고소득층 자녀가 많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일반고에 다니는 학생보다 성취도가 높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보고서의 결론을 요약하면, 지난 10년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업성취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커졌고, 그에 따른 교육 격차가 더 벌어졌으며, 교육을 통해 저소득층의 자녀가 중산층 또는 고소득층으로 이동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2020년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교육 분야 양극화 추이 분석 연구’ 보고서도 같은 현상을 보여 준다. 사교육비·학업성취·대학 진학 등 교육 분야 10개 핵심 지표에서 양극화 지수가 지난 10년간 대부분 악화됐다.
또 다른 연구는 이러한 경향이 2010년대뿐 아니라 2000년부터 심화했음을 보여 준다. 김위정(2012)을 보면, 2000년과 2009년 사이 PISA 읽기 점수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SES)에 받는 영향이 증가했고, 계층 간 학력 격차가 확대했다. 2000년에는 SES 1표준편차 증가시 읽기 점수가 7.25점 증가하는데, 2009년에는 11.33점 증가한다. 또한 학교 평균 SES의 효과가 증가했는데, 이는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학교에 다닐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현상이 강화됐다는 뜻이다. 2000년대의 민주당 정부하에서도 교육 격차가 꾸준히 증가해 왔음을 보여 준다.
위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2000년 이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학력 격차가 심화했고, 학교 간 격차뿐 아니라 학교 내 학력 격차가 커졌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교육 격차의 원인
2000년 이후 교육 양극화의 원인을 해명하기 전에 근본적으로 교육 불평등이 왜 발생하는지를 먼저 살펴보자.
자본주의에서 학교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즉 계급을 재생산하는 구실을 한다. 따라서 자본가들과 정부는 ‘질 높은 평등교육’에는 이해관계가 없다. 자본가들은 다수의 노동자를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경쟁과 차별에 기반한 위계화된 노동시장이 필요하다. 따라서 모두에게 질 높은 교육이 아니라 각 계급과 계층에 부합하는 경쟁·차별 교육을 원한다. 소수의 지배 엘리트를 위한 교육, 기업과 정부 운영을 보조할 국가관료·전문직·중간관리자를 위한 교육,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해 줄 다수의 노동자를 위한 교육 등. 각각 그에 맞는 학교 유형이나 교육 수준이 대응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교육이 팽창하면서도 동시에 교육이 계층화되는 이유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학교는 평가(시험)와 성적 매기기를 중시한다.
학교 교육이 경쟁적인 노동시장에 종속돼 있으므로 학력 경쟁은 필연이다. 더 나은 직업이나 소득을 얻으려면 상위 대학(학교)에 진학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높은 성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실업이 증가하고 취업 경쟁이 격화된 것은 2000년대 이후 입시 경쟁 강화의 배경이 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계급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 동원할 수 있는 유·무형적 자원이 계급·계층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학업성취 격차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교육이 곧 계급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하의 교육은 계급 격차를 반영하고 계급 재생산에 이바지한다. 경제 호황기이자 대중교육이 팽창하던 시기에는 교육이 일부 계층 이동의 사다리 구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장기 침체에 빠진 지금, 얼마 안 되던 계층 사다리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교육은 점점 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동이 받는 교육의 질은 부모의 부와 소득 수준에 따라 천지차이다. 2019년 〈동아일보〉가 보도한 ‘가구 소득 구간별 자녀 양육 비용’ 자료를 보면, 출생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자녀 1인당 총 양육비가 월소득 300만 원 미만 가구는 8894만 원인데 반해, 600만 원 이상 가구는 9억 839만 원으로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미취학 시기(영유아) 양육비조차도 각각 1067만 원과 1억 2424만 원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물론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다양할 수 있다. 부모의 학습지원, 부모의 기대와 관심, 학습 환경과 자원, 학생의 교육 포부, 학습 시간이나 수업태도, 자기주도학습 능력, 자존감이나 자기효능감 등등. 그러나 많은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이러한 요인들을 매개로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자녀의 학업성취도와 상위학교로의 진학 격차로 이어지는 것이다.
1960년대 유명한 ‘콜먼 보고서’는 일찌감치 학업성취에서 가정 배경의 중요성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존스홉킨스 대학 콜먼 교수는 “도대체 무엇이 교육의 불평등을 야기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얻기 위해 4000개 학교에서 학생 60만 명과 교사 6만을 대상으로 방대한 연구를 했다. 당초 학교 효과와 학업성취와의 인과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시작된 이 연구는 뜻밖의 결론에 도달했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교 내적인 요인보다는 ‘학생의 가정환경’과 ‘친한 급우의 가정환경’ 두 요소뿐이었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와 연결해 설명하자면, 이는 학생의 ESCS와 학교 평균 ESCS가 학업성취에 결정적이고, 이 두 지표의 격차가 커지면 학업성취의 격차도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교육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계급 불평등과 교육의 계급적 구실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왜 교육 불평등이 심화하고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답하려면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양극화 심화와 1995년 이후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이 교육 불평등 심화의 주된 원인이다. 교육 격차가 발생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탐색하려면 가정(양육)환경, 사교육, 공교육 세 가지 경로를 모두 살펴봐야 한다.
가정환경은 의식주뿐 아니라 부모의 양육태도(일관성, 온화함), 부모와의 대화(양과 질), 가족 간의 관계, 부모가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 등이 두루 포함된다. 연구 결과들을 보면, 이런 요인들이 아동의 인지 발달과 비인지적 역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가 저소득층 부모보다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한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전문직 부모의 세 살배기 아이가 아는 단어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아이보다 43퍼센트 더 많다. 가정환경에 관해서 더 할 얘기야 많지만, 논의의 주된 관심사인 사교육과 공교육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경제적 양극화와 사교육 격차
2000년대 이후 교육 불평등이 확대된 핵심 원인은 경제적 양극화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 교육비 지출 격차가 발생하는데, 경제적 양극화는 교육비 지출 격차를 더 벌어지게 만든다.
민주노동연구원의 분석을 보면, 2020년 기준 가구 소득별 교육비 지출액은 5분위(상위 20퍼센트) 가구가 791만 원으로 1분위(하위 20퍼센트) 가구의 22만 원보다 무려 35배가 많았다. 1인당 교육비 비중을 보더라도 5분위 가구 대비 1분위 가구는 7.15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는 소득 격차에서 비롯하는데 2020년 기준 5분위 가구의 경상소득이 1억 3903만 원인 반면 1분위 가구의 소득은 1155만 원에 불과하다. 부의 격차는 더 크다. 순자산 상위 20퍼센트 가구의 평균 순자산을 하위 20퍼센트의 순자산으로 나눈 값은 166.5배나 된다. 최근 몇 년간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자산 양극화가 더 커진 것이다.
2010년대 내내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10년 이후 10년간 1분위 가구의 경상소득이 476만 원 오르는 동안 상위 20퍼센트의 소득은 5079만 원 올랐다. 상대빈곤율(전체 인구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소득 수준이 중위소득의 50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의 비율)도 2011년 19.6퍼센트에서 2019년 20.8퍼센트로 늘었다. 10분위 배율(소득 상위 10퍼센트인 10분위 인구의 소득 점유율을 하위 10퍼센트인 1분위 인구의 소득 점유율로 나눈 값)은 2011년 시장소득 기준 28.2배에서 2019년 32.43배로 악화했다.(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자료)
교육 기회 격차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지표가 사교육비다. 사교육은 학습의 양과 질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며 학업성취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민성(2010)을 보면, 사교육비가 커질수록 높은 내신등급에 속할 확률이 높아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교육비가 50만 원으로 올라가면 1등급을 받을 확률이 4.0퍼센트로,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을 경우(1.4퍼센트)보다 3배가량으로 높아진다. 100만 원 지출 땐 11.1퍼센트로, 200만 원 지출 때는 52.5퍼센트로 급등했다. 학생의 내신성적이 4등급 이하일 확률은 사교육비를 전혀 쓰지 않을 경우 74.6퍼센트였던 반면, 사교육비로 월 100만 원을 쓸 경우 24.9퍼센트로 낮아졌다. 또 월평균 사교육비 1만 원은 학생이 1주일에 1시간 혼자 학습하는 것과 비슷한 영향을 내신에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월 사교육비로 30만 원을 쓴다면 학생이 주당 30시간 혼자 학습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가구 소득이 1만 원 늘어날 때 사교육비는 550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는데,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비에 지출하는 절대 금액이 많아져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내신등급 격차도 커진다.
2018년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소득 5분위 가구의 월평균 학원비는 24만 2600원으로, 소득 1분위 가구(8925원)의 27배에 이른다. 전체 소비지출 규모는 5분위(433만 원)가 1분위(115만 원)의 3.8배 수준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학원비의 격차는 훨씬 큰 셈이다. 2019년 조사를 보면, 소득 5분위 가구는 번 돈의 11.9퍼센트를 교육에 투자한 반면 1분위 가구는 고작 2.1퍼센트만 지출했다. 부유한 가정과 달리 가난한 가정은 식료품비, 주거비, 의료비 등 생존에 필수적인 부문에 대부분의 돈을 써야 하기 때문에 자녀 교육에 쓸 돈이 별로 없다.
2007년 이후 매년 정부가 발표하는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고소득 구간으로 갈수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커지고 사교육 참여율도 높다. 코로나 대유행 이전인 2019년 사교육비 조사를 보면,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53만 9000원)는 200만 원 미만 가구(10만 1000원)의 다섯 배가 넘는다. 사교육 참여율을 비교해 봐도 800만 원 이상 가구 중 85.1퍼센트가 사교육을 받는 반면, 200만 원 미만 가구는 47퍼센트만 사교육을 받는다. 매년 사교육비 총액과 1인당 사교육비가 증가하면서 사교육 격차 역시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로 벌어지는 사교육 격차는 고스란히 학력 격차 심화로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교육개혁과 공교육 차별
2000년대 이후 교육 양극화의 원인을 설명하려면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임영진·박현신(2020)을 보면, 2000년 이후부터 교육 기회를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일련의 교육 정책들은 학생들의 성적에 따라 서로 다른 효과를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상위권 성적의 학생들에게는 유리하게, 하위권 성적의 학생들에게는 더 불리하게! 또한 가정 배경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영향을 받은) 2000년 출생의 고등학교 1학년에서 1984년 출생 학생들 때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때문에 가정 배경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더욱 커졌음을 보여 준다.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5·31 교육개혁 조치 이후다. 김대중 정부는 7차 교육과정과 자사고를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는 영재학교를 도입하고, 특목고를 대거 늘려 고등학교 입시 경쟁이 치열해졌다. 고교 내신 상대평가와 대입 논술 시험 도입으로 대입 경쟁이 격화됐다. 이명박 정부는 4·15 학교자율화 조치(학교 관련 규제를 없애고 학교 단위의 자율경쟁체제를 확립하려는 것), 자사고 대폭 증가, 고교 선택제, 고교 다양화 정책 등을 실시했다. 입시 경쟁이 강화되는 속에서 학교의 자율성과 다양성의 증대는 학습 기회의 분화(차별화)를 낳았다. 이는 결국 학교 간에도, 학교 안에서도 가정 배경에 따른 학력 격차가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은 자율, 다양, 선택 등 듣기 좋은 말로 포장돼 있지만 본질은 경쟁과 차별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운영자들이 학교에 자율을,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교사와 학생을 교육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교육에 경쟁적인 시장 논리를 적용해 효율과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학교의 다양화·특성화는 학교 간 격차 증가 즉 고교 서열화로, 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특성화는 학교 내 교육 경험의 차이 증가 즉 교육 과정의 위계화로 이어졌다. 학교 선택권의 확대와 교육 과정 차별화는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나 성적 면에서나) 선택이 자유로운 부유층 자녀들에게는 이로웠을지 몰라도, 가난한 노동계급의 자녀들에게는 교육 기회를 제한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해악을 끼쳤다.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지배계급에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첫째,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이 꺾이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교육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둘째, 이미 양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른 중등교육 단계에서 교육체계의 질적인 분화를 통하여 계급·계층 간 학력 차이(즉 교육의 계층화)를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지배자들은 평준화 정책을 ‘하향평준화’로 비난하면서 ‘수월성’ 교육을 내세웠는데, 이는 사실 엘리트 교육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소위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해 경쟁력 있는 소수의 ‘선택’된 학교와 학생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대중교육의 양적 확대가 중요했던 1970~1980년대와는 달리 지난 20여 년간 경쟁 교육이 한층 강화됐고 질적인 차별화가 증대돼 왔다. 그 결과 예전에 중등교육이 확대되던 시기에 실시된 평준화 효과가 사라지고 중등교육의 계층화가 되레 심화했다.
2015년 김희삼의 연구(‘사회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정책 방향’)를 보면, 특목고(50.4퍼센트), 자율고(41.9퍼센트) 학생의 부모는 고소득자(월소득 500만 원 초과)가 많은 반면, 일반고(19.2퍼센트), 특성화고(4.8퍼센트)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다. 반면 특성화고(57퍼센트)와 일반고(28.8퍼센트)에서는 저소득층(월소득 200만 원 이하)의 자녀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학교의 평균적인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을수록 학업성취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를 고려한다면, 위계화된 고교 체제는 학력 격차를 심화시키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남궁지영·김위정(2014)은 학교의 평균 사회·경제적 지위(SES)가 중등학교에서 수학 점수 향상과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 줬다.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은 공교육 기회를 차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체계적으로 교육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특목고는 학부모가 부담하는 학비가 비싸기도 하지만, 일반고에 비해 월등히 많은 재정 지원을 받는다. 예를 들어, 2019학년 예산 기준 인천과학고의 1인당 교육비가 2960만 원인데 학비 799만 원을 뺀 나머지 2200만 원가량은 정부 지원을 받는 셈이다. 2008년 한 국회의원이 폭로한 자료를 보면, 서울의 인문계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교육청으로부터 1인당 평균 58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을 때 서울국제고 학생들은 1인당 1890만 원을 지원받아 그 격차가 32배에 달했다.
고교 유형별로 학생들의 배경이나 학교 교육환경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고교 서열화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공교육의 기회를 차등 제공하는 것이다. 상위권 학교에 진학하는 것은 학업성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시 원인이 돼 더 높은 학업성취나 더 높은 수준의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가능성을 높인다. 특목고나 자사고 출신들이 소위 명문대에 입학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고교 다양화 정책이 학교 간 학력 격차를 증가시킨 주요 요인이라면, 학교 교육과정 다양화 정책은 학교 내 격차 심화와 연관이 있다. 7차 교육과정 도입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까지 선택과목과 수준별 수업이 확대됐다. 이런 과정에서 같은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경험하는 학교 교육의 질이 차별화됐다.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의 다수가 학생들의 학력 격차를 의미하는 학교 내 분산 비율이 OECD 평균(71퍼센트)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100.2퍼센트), 스웨덴(100.2퍼센트), 뉴질랜드(100퍼센트), 호주(98.9퍼센트), 핀란드(94퍼센트), 캐나다(90.6퍼센트) 등은 한국(77.2퍼센트)에 비해서 학교 내 학력 격차가 높은 편이다. 고교학점제가 불평등 심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물론 이런 나라들의 학교 간 분산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한국은 학교 간 분산과 학교 내 분산 모두 OECD 평균보다 높은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는 점(그래서 두 분산을 합한 전체 분산이 높은 국가임)을 지적해야겠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구조적인 공교육 격차를 유발함에도, 혹자는 학생의 성적(노력이나 능력)에 따른 차별이니 공정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업성취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사실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이 아니라 가정 배경에 따라 (사교육은 물론이고) 공교육의 기회에서조차도 차별받는다. 운이 좋아 성적이 되더라도 평범한 노동계급의 자녀가 소위 특권학교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 사립초등학교 평균 1년 수업료는 웬만한 4년제 대학 등록금보다도 비싸고, 국제중학교와 전국단위 자사고의 학비는 연간 1000만 원이 넘는다. 진짜 부자들이 이용한다는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의 연간 학비는 수천만 원이다.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다.
요약하자면,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으로 학생들이 경험하는 공교육의 질이 크게 달라졌고, 이는 가정 배경에 의한 교육 불평등을 증가시켰다.
팬데믹과 교육 불평등
코로나19는 부모의 배경이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했다. 팬데믹은 가정 배경의 영향력을 극대화해 교육의 양극화를 키웠다.
‘2020년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인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모두 국·수·영 전 과목에서 기초학력 미달을 의미하는 ‘1수준’ 비율이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가정 배경을 함께 조사하는 PISA와는 달리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생의 개인적인 배경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몇몇 연구를 보면 코로나 이후 학력 저하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집중됐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간한 ‘교육통계 FOCUS’(2021년 1월호)를 보면, 기초생활수급 대상 학생 비율이 많은 학교일수록 국·수·영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높았다. 예로 중학교 수학의 경우 기초생활수급 대상 학생 비율이 2퍼센트 미만인 학교에서는 기초학력미달비율이 7퍼센트인데 반해, 10퍼센트 이상인 학교의 비율은 무려 17.2퍼센트에 이른다. 반대로 전자의 경우에는 우수학력 비중이 32.1퍼센트인데, 후자의 경우에는 우수학력 비중이 9.3퍼센트에 불과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서울 강남구와 도봉구 고교생의 수학 학업성취도를 살펴본 결과, 강남구의 한 고교는 2019년 1학기에 24.5퍼센트였던 상위권 비율이 2020년 1학기에 57.5퍼센트로 큰 폭으로 늘었다. 코로나 전후 하위권 비율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반면 도봉구의 한 고교는 42.8퍼센트였던 상위권 비율이 33.6퍼센트까지 내려갔다. 하위권은 9.9퍼센트에서 32.5퍼센트로 급증했다. 두 지역(학교)에 존재하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격차가 불러온 상반된 결과로 풀이된다.
팬데믹하에서 이토록 학력 격차가 확대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코로나 이후 각자의 ‘가정환경’이 곧 ‘수업 환경’이 됐다. 그런데 가정의 경제 수준에 따라 원격수업 환경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 원격수업을 위한 전용 디지털 기기 소유 여부, 기기의 성능 측면에서도 격차가 나타났다. 열악한 가정의 자녀들은 보호자로부터 적절한 돌봄과 학습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원격수업이 학습 결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경제적 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을 통한 학습 지원을 더 많이 받은 반면, 저소득층 자녀는 사교육 기회가 줄었다. 2021년 초·중·고 학생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액을 갈아치웠다. 1인당 사교육비와 사교육 참여율도 증가했다. 한편 소득수준별 사교육 격차는 심화했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에 비해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의 1인당 월 평균 사교육비가 53.9만 원에서 59.3만 원으로 5.4만 원이 증가한 반면, 200만 원 미만 가구는 10.4만 원에서 11.6만 원으로 고작 1.2만 원 증가했다. 사교육 참여율의 경우 유일하게 200만 원 미만 가구는 47퍼센트에서 46.6퍼센트로 오히려 줄었다. 2020년은 39.9퍼센트로 크게 줄었었다.
셋째, 팬데믹하에서 벌어진 격차는 등교 수업(일수)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등교일수 감소가 고등학교 학생의 학업성취 및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평균 성적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지만 불평등의 증가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등교 일수가 낮은 학교는 국어·수학·영어 모든 과목에서 상·하위권 학생의 비율이 늘고 중위권 비율이 줄었다. 코로나로 인한 등교 제한이 학력 양극화 심화로 이어진 것이다.(〈시사인〉 2022년 2월 22일자)
정부의 무책임한 등교 제한 조치는 사교육뿐 아니라 공교육에서도 계급 차별적인 결과를 낳았다. 2020년 서울 사립초등학교의 주당 평균 수업일수는 4.2일로 공립초등학교의 1.9일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2019년 기준 사립초 학비는 1295만 원으로 국공립 51만 원보다 25배 이상 많다. 일반고가 교차 등교할 때 과학고는 전 학년 등교를 했다. 대다수 과학고는 전면 등교가 가능한 소규모 학교(전교생 300명 이하)이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일반고의 학급당 학생 수는 23.9명으로 과학고(16.4명)의 1.5배다. 과학고처럼 학급당 학생 수가 16명 이하여야지만 교실에서 거리두기(학생 간 2미터)가 가능하다. 그러나 과밀학급(정부가 정한 기준으로 28명 이상) 비율이 23.5퍼센트에 이르는 일반고에서는 꿈도 못 꾸는 일이다. 2019년 기준 일반고의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11.1명일 때 과학고는 4.9명으로, 일반고 교원이 과학고보다 2배 많은 학생을 지도해야 한다.
가난한 집 자녀는 가정에서 방치되고, 사교육과 공교육에서도 소외됐다. 이런 상황에서 심각한 학습결손이 발생했다. 사회·경제적으로 어렵고, 집에서 돌봐 줄 보호자가 없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코로나 팬데믹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다.
코로나로 인한 학력 격차는 가정환경에 따른 학습 경험의 차이를 학교가 완충해 주는 역할이 줄어들면서 가정환경이 학생들의 학업 결과에 더 크게 반영된 결과다. 팬데믹하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면서 교육 격차가 심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그러나 최근의 학력 격차는 명백하게 문재인 정부가 만든 참사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위해 신속히 교사 수를 늘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였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취한 조치는 뒤늦게야 초등학교 저학년 과밀학급에 기간제 교사 2000명을 추가 배치한 것이 전부다. 소수 학생들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과학고 같은 교육 여건에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모든 노동자에게 유급 육아 휴가를 보장하고 돌봄 인력을 대폭 확충했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핑계로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고, 학급 수와 교사 수를 줄여 왔다. 돌봄전담사의 고용과 처우 개선을 외면하고 일선 교사들에게 돌봄 업무 부담까지 지웠다. 지칠 대로 지친 학교 현장에 방역 책임까지 떠넘겨 학교는 수업을 진행하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정부는 수능 절대평가 공약을 배신하고 오히려 정시 비중을 늘렸고 특목고·자사고를 유지해 사교육 경쟁을 부추겼다. 기업에는 코로나 지원 명목으로 수백조 원을 안겨 주고 국방비 예산은 수조 원씩 증액하면서도 안정적 등교수업을 위해 필요했던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위한 예산은 아예 편성하지 않았다. 전교조가 주도해 입법 청원까지 했던 학급당 학생 수 20명 제한 법안은 정부와 국회에서 논의하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2002년 당시 민주당 정부는 영재교육법을 만들면서 손수 학급당 학생 수 20명 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소위 ‘우수 인재 양성’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해서 말이다. 반면, 팬데믹하에서 원격수업과 아슬아슬한 등교를 오락가락하는 대다수 평범한 노동계급 자녀들에 대한 걱정 따위는 그들의 안중에 없다.
질 높은 평등교육
정리하면, 교육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계급 불평등과 교육의 본질적 성격(경쟁, 위계, 차별)에서 비롯한 것이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경제적 양극화와 1995년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으로 인해 교육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대학 무상화·평준화, 입시 폐지(수능 자격고사화), 특목고·자사고 폐지 등 교육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쟁취하려면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운동 진영이 투쟁보다는 점점 더 정책적 대안에 골몰하고, 민주당 정부와의 협상이나 진보교육감과의 협력(파트너쉽)에 기대는 경향이 자랐다. 좌파는 민주당 정부, 우파 정부 가릴 것 없이 지배계급이 합심해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진보교육감들도 자사고 폐지에 미적대는 등 중요한 문제들에서 우파나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여 왔다.
정부나 교육청으로부터 독립적인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만이 실질적인 교육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 윤석열이 정시 확대, 자사고·특목고 유지, 학력 평가 전수 실시(일제고사 부활) 등을 예고하는 상황인 만큼 정부에 양보를 강제하려면 강력한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일부 대학 평준화를 실현한 힘은 1968 항쟁에 있었고, 핀란드에서 평등교육이 진전한 배경에는 강력한 노동운동이 있었다.
자본주의하에서도 ‘질 높은 평등교육’이 가능한 사례로 흔히 핀란드를 꼽는다. 그러나 핀란드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교육 불평등이 주요한 사회적 문제 중 하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에서 비교한 5개국(한국·싱가포르·에스토니아·일본·핀란드) 중 지난 10년간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성취 격차가 가장 악화한 국가는 핀란드다. 1990년대부터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추진됐고,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학교선택제가 도입된 후 고등학교 간 경쟁과 격차가 커졌다. 교육예산 삭감으로 교육복지도 후퇴했다.
역대 정부의 수많은 대책은 물론, 심지어 진보교육감이나 혁신학교조차도 (일부 의미 있는 교육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육 불평등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특정 교육정책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교육이 하는 근본적인 구실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소위 교육적 해법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또한 부분적인 개혁을 통해 교육 불평등을 완화한다손 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학교 교육의 구실, 교육의 계급적 성격이 바뀌지 않는 한 교육 불평등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더욱이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 위기에 직면하면 교육 재정을 감축하고 착취율을 높이기 위해 교육에 경쟁과 통제를 강화한다. 자본주의에서 질 높은 평등교육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이유다. 따라서 모두에게 질 높은 교육을 보장하려면 교육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 체제를 바꾸기 위한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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