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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암살 이후:
개헌을 향해 나아가는 일본 우파

참의원 선거 승리 직후, 일본 총리 기시다 후미오는 올가을 임시국회부터 자위대 존재를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안 발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베의 유지를 이어받아, 75년간 유지돼 온 헌법을 뜯어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 일본’을 완성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개헌안의 핵심 쟁점은 9조 수정이다. 일본 헌법 9조 1항과 2항에는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포기가 명시돼 있다. 집권 자민당은 이를 고쳐서 우선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분명히 밝히려 한다.

일본 자민당의 희망대로 헌법 9조가 수정되면, 그만큼 일본 제국주의는 군비 증강과 공세적인 군사 전략을 추진하는 데서 운신의 폭을 상당히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아시아에서 중국을 제압하려는 미국도 바라는 바일 것이다.

기시다 내각은 얼마 전 피습 사망한 아베의 대외 정책을 계승해 왔다 ⓒ출처 일본 총리실

이번 참의원 선거는 전 총리 아베 신조 암살 직후에 진행됐다. 아베는 선거 유세 중 사제 총으로 무장한 한 청년에게 피격돼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여당의 선거 승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연립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과 공명당은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로써 일본 참의원과 중의원 모두에서 개헌 논의에 찬성하는 정당들이 개헌선을 훌쩍 넘기는 의석을 차지하게 됐다.

개헌선

아베 암살이 참의원 선거에서 최대 화제가 됐지만, 그에 대한 추모와 연민으로 일본 대중이 모두 단결한 것은 아니었다. 아베는 전후 최장기 총리를 지내면서, 수도 민영화 등 서민의 삶을 악화시키는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그의 재임 기간에 임금 인상이 정체된 채 노동자들은 더 오래 일하도록 내몰렸다. 아베 재임 중인 2017년 한 조사를 보면, 일본 기업의 25퍼센트가 한 달에 80시간 초과 근무를 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닥쳤고 아베가 팬데믹에 엉망진창으로 대처하면서, 그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결국 아베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그해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아베는 일본 우파의 핵심 지도자로서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하려고 앞장선 인사였다.

2014년 총리로서 그는 헌법 해석을 변경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이는 미국을 도와 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일본의 군사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처였다. 미국·일본·인도·호주를 묶어 아시아의 기존 질서를 지키자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처음 주창한 자도 바로 아베였다.

총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아베의 우경화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개헌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대만 문제는 일본 자신의 문제라면서 개입할 것을 강조했다. 자민당이 ‘5년 내 방위비 2배 증액’을 공약으로 채택하는 데에도 아베가 큰 영향을 미쳤다.

방위비 2배

일본 기시다 내각은 본질적으로 아베의 대외 정책을 계승해 왔다.

일본 지배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정학적·경제적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에 불안감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부상은 일본 제국주의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다.

그래서 아베를 비롯한 우파 정치인들은 ‘산업 재부흥’, 군비 증강, 개헌 등 일본의 경제적·지정학적 위상 제고를 위한 변화를 모색했다. 이는 미국 제국주의와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추진된 것이었다.

다른 한편 일본 정부는 중국의 첨단 산업 육성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계획에 협력해, 이를 반도체 등 일본 첨단 산업의 성장과 경쟁력 제고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본 자민당이 개헌을 서두르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이 전쟁이 미·중 갈등을 비롯한 아시아의 불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제재를 신속히 단행했고, 평화헌법을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군수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행보는 아시아에서 긴장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 정치권에서는 사할린 가스관 사업에서 일본 기업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일본 방위성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일본 주변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행동이 2.5배 늘었다고 밝혔다.

기시다와 집권 자민당은 단기간에 일본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퍼센트에서 2퍼센트대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이러면 이미 세계 9위인 일본의 군비 지출이 세계 3위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일본의 개헌 추진과 군비 증강은 특히 중국과의 충돌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이런 행보는 미래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2017년부터 중국 견제를 위한 대규모 ‘인도·태평양 파견’(IDP) 훈련을 해 왔다 ⓒ출처 미 해군

그러나 일본 대중이 이런 행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아사히 신문〉이 매년 개헌 찬반 여론조사를 해 왔는데, 2000년 이래 그 추세를 보면 찬반 여론이 엎치락뒤치락해 왔다. 9조 개정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보다 지속적으로 높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일본에서 개헌 지지가 늘었다고 하지만, 지난 5월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도 헌법 9조 개정에 대한 찬반 여론은 팽팽했다.

자민당이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개헌 논의에는 찬성하나 9조 개정에는 주저하는 공명당부터 설득해야 한다. 그다음에는 국민투표가 있다. 자민당의 개헌 시도가 성공하려면 앞으로 여러 고비를 넘겨야만 하는 것이다.

이번 참의원 선거 투표율은 52퍼센트로, 역대 4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공식 정치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그만큼 낮다는 의미다. 일본 공식 정치의 우경화가 곧 일본 대중의 우경화는 아닌 것이다.

일본 국세청에 따르면, 일본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2000년 460만 엔에서 2020년 433만 엔으로 줄어들었다. 그중 1년에 200만 엔(약 1900만 원) 이하를 버는 노동자는 전체의 22퍼센트가 넘는다.

최근 물가 인상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대중의 삶에도 큰 압박이 되고 있다. 평범한 일본인들은 생계비 문제로 큰 불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막대한 군비 증강과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등은 일본 대중의 생계비 위기 해결 바람과는 어긋난다. 일본 우파의 계획이 앞으로 탄탄대로를 걷지 못하고 반발에 부딪힐 여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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