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비 지출을 미·중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으로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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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각축전이 더욱 격화되는 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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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군비 증강 속도가 심상찮다.
첫째, 파격적인 수준의 방위비 증액이 결정됐다.
6월 8일 일본 정부가 각의(한국의 국무회의격)에서 통과시킨 경제재정운영 및 개혁 기본방침에 따르면, 일본은 5년 내 방위비를 현재의 2배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2022년 기준 약 5조 4000억 엔인 방위비를 2027년에는 10조 엔(약 100조 원)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는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퍼센트 수준으로 유지해 온 그간의 기조를 깨트리는 것이다.
방위비 1퍼센트 제한 기조는 1987년 법적으로는 폐지됐지만, 일본의 군국화를 우려하는 국내외 시선을 고려해 실제로는 유지돼 왔다. 그런데 지난해 1퍼센트 선이 처음으로 깨지더니 금세 2퍼센트대까지 증액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일본은 세계 방위비 지출 9위에서, 미국과 중국을 뒤잇는 3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주요 국가들의 군비 지출이 크게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이번 방위비 증액 결정은 세계적인 군비 지출 경쟁을 더한층 격화시킬 것이다.(관련 기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격해진 군비 경쟁’, 411호, 김영익)
평화헌법 무력화
둘째, 일본 정부는 올해 개정될 예정인 국가안보전략에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반격 능력’으로 이름만 바꿔서 명시할 계획이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이란 적국의 군사 거점을 선제 공격해 파괴하는 능력을 뜻한다.
일본 정부는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위해 ‘12식 지대함 유도탄’을 개조해 200킬로미터인 사거리를 1000킬로미터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 상하이는 물론 중국 동부의 해안 지역까지 타격 가능 범위에 들어오게 된다.
이 결정은 평화헌법(헌법 9조) 개정 추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평화헌법의 ‘전수방위’ 조항에 따르면 일본은 공격을 위한 군대와 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 적 기지 선제 공격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는 1956년 처음 제기된 이래 65년 넘게 지속된 논란거리였다.
평화헌법 개정을 1순위 안보 과제로 삼았던 아베는 2018년 ‘방어 능력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장거리 미사일들을 도입해 적 기지 공격 능력을 보유하는 데 ‘사실상’ 성공한 바 있었다. 그로부터 이번에 기시다 내각이 적 기지 공격 능력을 정책적으로 명시하는 수준까지 오는 데는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국·일본 vs 중국
일본의 군사력 증강은 미국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5월 23일 일본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기시다 총리한테 방위비 증액,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 등 군사력 강화 구상을 들은 뒤에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 방위 능력을 높이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더 강한 일본, 더 강한 미·일 동맹은 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좋은 것을 가져다준다. 그것이 대만해협에서도 지속되고, 남·동중국해에서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대만해협 긴장과 남·동중국해에서의 영토 분쟁은 화약고나 다름없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만큼이나 위험한 뇌관들이다.
미국은 중국과 경쟁 관계인 중국 주변국들을 동맹으로 포섭해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취해 왔다. 일본, 인도, 호주를 주축으로 그 하위에 한국 등 중간 강국들을 묶어 두는 것이다.
특히 현 바이든 정부는 이러한 동맹 강화를 전임 트럼프 정부보다 더욱 중시하고 있다.
5월 말 일본 방문에서 바이든은 쿼드(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안보 협의체) 대면 회의와, 경제적으로 중국을 배제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식을 열었다.
또,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국·일본·호주 3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3국은 중국을 함께 견제하기로 뜻을 모으고, 3국 공동 군사 활동 중에 미국과 호주의 군함이 공격받으면 일본 자위대가 출동해 방어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처럼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제국주의적 진출 심화는 격화하는 미·중 갈등과 깊이 맞물려,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매우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 측에 현안의 조속한 해결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군비 증강이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 대중의 불안과 불만을 더 많이 자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모순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초 여론이나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친제국주의 노선 속에서 한·일 관계를 개선하려 하는 이상, 윤석열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누적될 것이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런 불만이 한국 정부와 각국 지배자들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하도록 고무해야 한다.